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44)
지옥에서 독식-344화(344/346)
외전 6화.
당신을 위한 특별한 지옥 (2)
“맞아.”
이지태는 눈동자를 무겁게 빛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제가 별을 불러들이려 하는 것 같다. 가벼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별들이 개입한 게 확실하다면, 네가 나서야만 해.”
“흐음.”
이건 확실히 이지태가 찾아올만한 일이었다.
다시 별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은, 다시 게임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현무는 별로 완성되지도 않았고, 게임의 승리자가 되지도 못했지만 지금 상태에 충분히 만족 하고 있었다.
난이도: 지옥에서 현무는 이미 별로 완성된 존재들이 어떤 놈들인지 목격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목적과 관념에 사로잡힌 괴물들이었다.
그들이 원래부터 그랬을 리가 없다.
별로 재탄생되면서,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갉아내면서 빚어놓은 모습일 터였다.
현무는 그런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이 그런 자신에게 재단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지금의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세상이 충분히 마음에 들었으니까.
‘뭐, 아직까지는 말이지.’
현무는 서류를 테이블 위에 탁 던져놓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유민한테 허락을 구해봐.”
“뭐?”
이지태가 당황한 듯 되묻자 현무는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 이지태를 바라보았다.
“왜? 전능련 단장은 유민이야. 나는 전능련 소속의 헌터고. 전능련 소속 헌터를 빌려서 활동하려면 내가 아니라 단장한테 허락을 구해야지.”
“아니, 어, 하지만, 전능련의 실질적인…….”
“이지태, 이지태, 이지태.”
현무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권위에 익숙해져서 늘 편한 길만 가려는 건 알지만 절차가 있으면 절차를 따라. 도련님 티 내지 말고. 지금 전능련 단장을 제치고 일개 헌터한테 뭐 하는 거야?”
사실 현무는 자꾸 이런 일 저런 일 물어오는 이지태가 귀찮아서 떼놓으려고 하는 말이었다.
이지태는 어째선지 유민을 어려워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아닌 유민에게 보고 해야 한다면 연락하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지태는 현무의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무의 말에 수긍했다.
“네 말이 맞다. 강현무. 내가 오만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군.”
이지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유민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현무에게 했던 설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 사이 현무는 사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사제가 불러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별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에라도 정복하는 별이 이미 이곳에 와 있다면 대단한 위기였다.
이제 현무에게는 난이도: 지옥도, 귀환석도, 레니안도 없었다.
그런데 찾아오는 상대가 정복하는 별이라면, 그것도 대리인이나 사도가 아닌 본체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득 현무는 아까 유민에게 마저 던지지 못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유민은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슬퍼할지언정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지금 유민과 지금의 자신은 어떨까.
유민도, 현무도 사람의 목숨을 직접 빼앗은 적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유민이 아버지보다는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민은 지금, 자신들이 천벌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
강렬한 비트가 클럽을 두들겼다.
검은 가면을 쓴 DJ가 만들어내는 비트에 맞춰 발을 구르는 사람들 중 반은 술에, 반은 약에 취해 있었다.
혹은 둘 다에 취해있거나.
당장 경찰이 들이닥쳐도 이상한 풍경이었지만, 그들 중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마왕’ 카자트의 영토, 국제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무법지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마왕 카자트의 영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자트의 영향력은 거짓이 아니었고, 인간과 생활공간이 겹치기도 했다. 그러한 회색지대는 범죄자와 무법자의 도피처가 된 것이다.
몬스터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역설적으로 카자트가 러시아의 극동반군을 전멸시키는 사건으로서 증명해보였다.
‘마왕’ 카자트는 대화가 통하고 외교적 교섭이 가능한 상대다, 라는 것을.
물론 여전히 카자트의 영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없었다.
카자트는 어디까지나 대량살상범에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잔혹한 괴물이다.
하지만 모험을 즐기고 사회적인 시선을 피하고 싶어 하는 자들은 이러한 회색 지대를 은밀하게 방문하곤 했다.
“야, 빌어먹을! 안 놔!”
물론 무법지대라고 해서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대륙법과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을 뿐, 그곳 안에도 나름의 룰이 있었다.
댄스홀 옆쪽의 스태프 전용 긴 복도.
하현은 긴 곰방대를 입에 문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몸부림쳤지만 그를 붙들어 든 보디가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남자의 바지춤은 무릎까지 내려와 있었다. 여자 화장실에서 방금 끌고 온 놈이었다.
“너 뭐야? 내가 누군 줄 알고…….”
하현은 번거롭게 말을 다투는 대신, 남자의 팬티 속에 곰방대의 재를 털어 넣었다.
비명은 클럽의 환호와 음악 소리에 묻혔다.
하현은 남자의 지갑과 신분증명서를 뒤지면서,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들어 왔는지 확인했다.
꽤나 있는 집 자식이었지만, 호기심 삼아 몰래 들어온 것 같았다.
전과도 적지 않았다. 주로 성범죄인 걸 보아 평범한 부잣집 망나니였다.
기록을 확인한 하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이런 놈을 먹을 만큼 굶주린 건 아니지. 너희가 알아서 해.”
하현은 표정 없이 보디가드에게 눈짓을 보냈다. 보디가드는 송곳니가 가득한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보디가드는 남자를 끌고 지하실로 향했다. 비명은 지하실 계단 문이 닫히자마자 뚝 끊어졌다.
하현은 저런 부잣집 망나니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카자트의 영토엔 군대도 접근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외부의 영향력이 통할 거라고 믿는 건가?
‘그게 범죄자들한테는 꿀 발라 놓은 모양새긴 하지만.’
그 덕분에 이 도시에는 온갖 검은 자본과 비밀스러운 물자가 모여들 수 있었다.
약물을 비롯해 외국에선 구하지 못할 물건도, 여기서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거기다 카자트의 영토는 세간의 인식보다 치안이 좋다는 점도 한몫했다.
규칙만 어기지 않으면 몬스터들은 함부로 인간을 습격하지 않고, 오히려 몬스터 전부가 치안을 담당하는 감시자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들은 마약을 하든 암거래를 하든 장기매매를 하든 신경 쓰지 않으므로, 범죄자들에게는 낙원 같은 곳이었다.
‘뭐, 그래서 나도 굳이 이런 곳을 만들긴 했지만…….’
하현은 바로 그런 상황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그녀의 집에는 비록 장물이긴 했지만, 세계 곳곳의 미술품들이 모여 있었다.
정작 박물관에는 위작을 걸어놓고 그녀의 집에 진품을 걸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하현.”
그때 하현은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전신에 금은보화를 치렁치렁하게 걸친 고블린…… 키르손이었다.
“질린 표정이우?”
“질렸다…… 라. 그건 그런 것 같네. 클럽 운영이라는 게 생각만큼 즐겁지가 않은걸.”
“아아, 뭐. 여기에 클럽을 세우는 거야 카자트의 의견이었으니까. 금방 질릴 만도 하지.”
원래 하현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미술관을 겸한 오페라 홀이었다.
하지만 키르손이 ‘그럴 바에야 여길 찾아오는 범죄자 자식들 수요도 채울 수 있는 초호화 클럽을 만들어서 그 돈을 쓸어 담자’라고 주장해 클럽으로 변경되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하현은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식은 아마 사이키델릭이랑 클래식도 구분 못할 거야. 음악이면 다 뚱땅거리고 똑같은 줄 알지? 빌어먹을 자식.”
“그걸 하현 아가씨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넘어 갔잖수. 클럽에서 돈을 쓸어 담으면 보스한테 보낼 수도 있고, 애들도 인간과 교류하는 법을 익힐 수 있고.”
키르손, 하현, 카자트는 이미 각자의 담당분야에서 인간과 교류하는 나름의 요령을 찾았다.
심지어 예르단도 오래 전부터 박휘소를 따라다니며 그의 뒷바라지를 했기 때문에 협박과 고문을 포함한 모든 교류에 익숙했다.
하지만 다른 몬스터들은 달랐다.
그들은 대개 포식자와 피포식자로서의 관계에만 익숙했다.
도시에 들어올 수 있는 놈들은 어느 정도 교육이 된 상태지만 실제 인간과 마주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 장기적으로는 인간도 이쪽을 자연스럽게 여겨야 할 테고…….”
“그렇슴다. 그게 보스를 위한 영원한 제국을 만들 길입죠.”
이 모든 것은 몬스터들을 위한다기보다 강현무 개인을 위한 방침이었다.
카자트의 영토를 위협적으로 느끼면서도 동시에 협상 가능한, 달콤살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강현무의 뜻이 어떻건 이미 그들은 향후 수백 년간 강현무 개인에게 충성을 바칠 토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지.”
하현은 키르손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키르손은 구두 하나부터 시계, 귀걸이까지 전부 수천만 원대 명품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부 금과 보석으로 이뤄진 호화스럽기 짝이 없는 디자인이었다.
“아름답지 않슴까?”
“졸부 같아.”
“뭐, 패션이라는 건 본인이 만족하면 되는 것입죠. 알다시피 제 혈중 성좌 지수는 정복하는 별이 20%, 부서지는 별이 40%, 굶주리는 별이 30% 그 외 기타 등등이 10% 정도 될 텐데 굶주리는 별의 지분이 적지 않거든요.”
“……’혈중 성좌 지수’는 뭐야?”
“제 몸뚱이를 형성하는데 별들의 힘이 얼마나 들어갔나 추정해 본 검다. 그러니 저는 자연스레 호사스러운 보물이나 명품에 끌릴 수밖에 없는데, 이 시대는 또 풍요롭기 짝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그때 둘의 시선이 한 쪽으로 돌아갔다. 강렬한 끌림이 느껴지는 방향의 허공에서 검은 균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주인’의 부름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든 목숨이 걸린 상황이 아니라면 이 부름에는 무조건 응해야했다.
키르손과 하현은 대화를 중단하고 망설임 없이 균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빠르게 시야가 회복되었다. 그리곤 곧 둘은 당황했다.
소환처는 그들이 있던 클럽의 마스터룸이었기 때문이다.
벽면 전체를 차지한 창문 아래로 거대한 댄스홀과 춤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키르손, 하현.”
그리고 강현무가 그들 눈앞에 있었다. 키르손은 바로 부복했지만 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언제 오셨슴까? 부르셨으면 언제든 저희가 갔을 텐데…….”
“네놈들 부르면 돌아갈 방법이 막막하잖아. 괜히 눈에 띄고. 차라리 내가 오는 게 낫지.”
귀환석이 사라진 뒤 ‘소환’은 되지만 ‘역소환’은 불가능하게 된 뒤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늘어났다.
불러내는 거야 쉽지만 돌아 갈 때는 자력으로 돌아가야 하니,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하현이나 예르단은 그렇다쳐도 카자트나 키르손이 문제였다.
그때 균열이 또 하나 열리며 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끔한 정장에 피투성이 흰 장갑을 낀 은발의 소년, 예르단이었다.
“넌 왜 볼 때마다 누굴 고문하다 나온 것 같냐.”
“그 말도 매번 하면 지겹지 않나요?”
예르단은 퉁명스레 말했다.
“그리고 요즘은 박휘소 씨가 쉬면서 내내 이 도시에 머물고 있어요. 그런데 이 타락한 도시는 제게 쉴 틈을 조금도 주질 않네요.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로 먹어서 응원해주는 것밖에 없고.”
예르단이 말하는 ‘먹어서 응원하자’는 원본과 어감이 남달랐다.
이 도시에서 예르단의 역할은 한니발 렉터와 배트맨을 합쳐놓은 모양이다.
그래도 장갑을 끼고 피범벅이 되진 않은 걸 보아 박휘소가 식사 예절 하나는 잘 가르쳐놓은 것 같았다.
현무는 키르손과 하현, 예르단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카자트가 유독 늦고 있었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안 와?”
현무는 카자트에게서 조바심, 긴장, 초조함의 감정을 느꼈다.
현무는 권속들에게 강력한 의지를 심어 두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명령에 불응하는 상황은 이때까지 거의 없었다.
혹시 위기에 처한 건가 싶던 현무는 문득 댄스홀이 내려다보이는 창가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서 현무는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이 새끼가 근데.”
현무는 카자트를 향해 강렬한 의지를 보냈다. 순간 클럽 안에 와당탕 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노이즈가 울려 퍼졌다.
클럽을 뒤흔들던 비트가 갑자기 멈추면서 댄스홀에 소란이 번졌다.
갑자기 중단된 음악에 당황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곧 누군가 녹음된 음악을 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수습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게 가지 않았다.
“위, 위대한 분이시여.”
현무는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는 카자트를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카자트는 검은 가면에 펑키한 스타일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경박한 차림새인지 평상시 언론에 나타나는 ‘마왕’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황한 것은 하현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카자트. 너 이 새끼. 네가 DJ였어? 세상에, 나한테 클럽을 세우자고 억지 부렸던 것도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