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45)
지옥에서 독식-345화(345/346)
외전 7화.
당신을 위한 특별한 지옥 (3)
카자트는 아무 말도 못하고 현무 앞에 엎드려있을 뿐이었다.
“괜찮아. 나름 ‘일하는 중’이었잖아. DJ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어. 그리고 급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현무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따지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그 짓거리를 해온 거야? 갑자기 음악에 대한 재능이라도 눈을 떴나?”
“그것이…….”
카자트는 눈알을 데룩데룩 걸리며 길게 변명을 이어갔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 듯한 변명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랫맨의 종족명을 찾기 위해 시작된 여정이었다는 것이었다.
“……주문의 운율과 단어의 조화, 그리고 단어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숨겨진 언어들을 찾기 위해…… 디제잉을 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노래와 시, 주문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저는 저희 종족의 잃어버린 이름을 찾기 위해…….”
“그냥 스케이븐이라고 적당히 지으면 안 되나?”
“표절은 안 됩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그러면 한 30초만 더 디제잉을 했으면 종족명을 찾을 수도 있었나보지?”
“…….”
현무는 이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믿어주긴 힘들었지만 카자트의 ‘종족명 찾기’에 대한 집착은 잘 알고 있었다.
카자트가 현무에게 충성을 바치기 시작한 이유도 종족명을 찾기 위함이었으니, 그 목적을 이뤄주지 못한 현무는 사정을 조금 이해해주기로 했다.
“좋아. 이해해주마.”
“하해와 같은 아량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카자트는 다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취미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정서적으로 좋겠지.’
그저 살육밖에 모르던 권속들에게 취미가 하나씩 생기고 있다는 것은 현무에게도 긍정적으로 여겨졌다.
하현은 예술, 키르손은 명품 수집, 예르단은 요리, 카자트는 음악.
“어쨌거나 너희를 이렇게 부르게 된 건…… 흠. 별 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만약을 위해서다. 최근에 이지태를 통해서 묘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무는 이지태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넷에게도 전했다.
크롬이 밝은 면을 감시하고 있다면, ‘마왕’ 카자트와 그의 수하들은 인간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어두운 구석까지 훑었다.
카자트는 몬스터로 바글바글한 무인 지대를 감시하고, 하현은 음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보를 모은다.
예르단은 뒷세계의 사정에 정통하며, 키르손은 언제 어디든 나타나 고문과 첩보로 정보를 얻어낸다.
“다 들었냐? 이해했지?”
현무의 이야기를 들은 카자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자트만이 아니라 키르손, 예르단, 하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정복하는 별이 나타나는 징조에 대해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그래. 그렇지.”
“저기, 현무.”
그때 하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이미 알고 있었는데?”
***
노인은 팔을 벌린 채 중얼중얼 주문을 이어나갔다.
주문이 이어지는 동안 물러진 공간을 통해, 마치 진흙 속을 빠져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입은 병사들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병사들의 투구 속에는 불타오르는 눈동자만이 보일 뿐, 그 외에는 모두 어둠뿐이었다.
한때 고요했던 오지의 숲 속은 벌목되고 그을려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즈넉했던 계곡은 이제 정복하는 별의 군세가 들어오기 위한 통로로 활용되고 있었다.
“후우…….”
한참 주문을 이어가던 노인은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통로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대편’인 정복하는 별 쪽에서 적극적으로 통로를 유지하기 위해 돕고 있었지만 이쪽에는 노인 한명 뿐이었다.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사제.”
병사 중 하나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병사는 노인과 비슷한 키로, 정복하는 별의 군세 치고는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 하급에 속하는 권속이었다.
주로 정복할 영토의 정찰이나 치안유지, 보급 같은 심부름을 맡는 게 대부분이었다.
“8차 보급은 이걸로 끝났다.”
“……그래.”
노인은 땀을 닦아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수정이끼와 수정석, 그리고 구하기 힘든 희귀한 광물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병사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모두 짐을 나르기 위해 파견된 것이 전부인 하급 권속들이었다.
노인 혼자만의 힘으로는 고작 하급 권속들 몇몇이 드나드는 통로를 만드는 게 한계였다.
‘……그래서 아르단의 도움과 사전작업이 필요한 거지.’
하급 권속들은 통로를 유지하기 위한 제단을 건설하고, 필요한 물자들을 비축했다.
이 세계의 적들이 눈치 채기 전에 최대한 전력을 빠르게 전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첩자들을 심고, 근거지도 충분히 마련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장간’이었다.
노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버려진 사냥꾼의 오두막은 이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용광로로 바뀌어 있었다.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대장간이었다.
“얼마나 완성된 거지?”
“당장 오늘부터라도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대장간’이 마련되면 하급 권속들의 수준도 일제히 올라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로가 완전히 개척되지 않더라도 대장간이 있다면 상급 권속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
상급 권속을 만들어내려면 대장간이 필수적이었기에, 정복하는 별이 전쟁을 할 때면 그 영토에 대장간을 최대한 많이 짓곤 했다.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군.”
“이 정도 수준의 세계라면 상급 권속을 서둘러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지. 아직 이 세계의 수준은 하찮다. 백부장급만 만들어낼 수 있어도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간단한 일일 거다.”
병사는 묵묵히 말을 이어갔다.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거기서 얻는 자원과 노예들로 대장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반 년 안에 정복은 끝난다. 못해도 그전에 정복하는 별이 현신하실 육신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
정복하는 별이 직접 나타난다.
대리인이 아닌, 그가 직접 빚어낸 육체에.
그렇게만 된다면 게임은 끝난 셈이다.
별은 그 존재만으로도 일대의 세계를 뒤바꿀 힘이 있다.
엄연히 게임 중이라면 이러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
별은 오직 대리인과 그 사도를 통해서만 의지를 이 땅에 현현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게임은 어그러졌고, 심판 격인 사제는 뒷문을 열어준 상태였다.
정복하는 별은 이미 별을 통일시킨 정복자다. 이런 평화에 젖은 땅을 무너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정도가 되면 이제 이 세계 어딘가에 숨어있을 다른 사제들도 모습을 보일지 모른다.
단순한 복수를 넘어, 자신이 새로운 가시왕관회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그때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보급은 더 이상 없다.”
“뭐라고?”
“여기 있는 자원들만으로도 반 년 간 정복전을 운영할 자원은 충분하다. 내일부터는 보급보다 병사들을 불러들이는데 치중할 거야.”
“효율을 생각하면 대장간으로 병사들을 진화시키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비축한 자원에 비해 이곳의 방어 능력이 너무 떨어져. 당장 근거지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내일부터는 정예병들을 불러들일 거다. 무리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해.”
노인은 씨근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보급 물자를 들이는 것과 강력한 존재를 통과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하루에 정예 열 명만 불러들여도 노인은 녹초가 될 테니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정복하는 별, 아르단이 한 판단이라면 그의 판단을 따라야만 했다. 전술에 능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아르단이니까.
“그리고 네가 다른 나라에 심어두었다는 첩자들을…….”
그때였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병사의 머리가 우그러들었다.
그러나 그걸로 멈추지 않고 연신 쇠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병사의 몸 전체가 길고 납작한 형태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노인은 순식간에 젓가락만한 사이즈로 변해버리는 병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아담 폴트! 아담 폴트다! 짐승의 팔이 나타났다!”
***
아르단은 도열을 마친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사제가 뚫어준 좁고 긴 차원균열 앞에는 사단 급의 정예병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단순히 단련된 병사들을 넘어서 공성을 위한 기계장치들과 강철의 괴물들이 대기 중이었다.
사제의 능력을 넘어선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아마도 놈은 갈가리 찢겨질 테지만.’
어차피 당장 내일 제단이 완성되면 어차피 사제는 필요 없어진다.
사제가 죽는다고 바로 구멍이 닫히는 것도 아니다. 제단이 대신해서 안정성을 확보해줄 것이다.
아르단은 애초부터 사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복할 영토를 늘려주는 것은 좋지만, 공정성을 더한답시고 이런저런 제약을 붙이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효율적인 전쟁을 위해서라면 최단기간 최대전력 투입은 당연한 것이지.’
사적인 감정이 없더라도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제의 계획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사이에 적이 눈치 채고 공격해오면 곤란해질 뿐이다.
일부러 병력 대신 보급 물자를 잔뜩 쏟아 부어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병력을 먼저 보내고, 그 다음 보급 물자를 투입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담이 없는 보급 물자를 먼저 쏟아놓고, 그 다음 강력한 병력을 일시에 쏟아 부어 균열을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사제가 이 와중에 갈가리 찢겨죽더라도 최대한 많은 병력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적들이 대응할 준비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한 달. 그 안에 저쪽 세계를 정복…….’
아르단은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급 권속이 죽어갈 때 내지르는 단말마였다.
그에게는 아주 하찮은 감각에 불과했지만, 그 느낌이 바로 저 균열 너머에서 느껴져 왔다는 것이 문제였다.
‘설마?’
***
“레니안, 오른쪽!”
아담 폴트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짜증을 느꼈다. 하지만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오른쪽 수풀 속에서 숨어있던 병사를 잡아 으깨버렸다.
막 창을 던지려던 철갑 병사는 깡통 사이즈로 우그러들어 바닥에 떨어졌다.
아담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말라니까.”
등 뒤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꽂은 현무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하지만 유민이 개를 못 키우게 하는걸.”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개를 키우면 레니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뻐해 주려고 했거든.”
개를 키우지 못한다고 사람한테 개 이름을 붙이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지 아담은 알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레니안이라는 이름의 개라도 키웠던 건가.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성질을 내봤자 강현무가 교정되는 꼴은 본 적이 없으므로 그냥 늘 그렇듯 무시하기로 했다.
“뭐야. 저번에 사준 목걸이, 이게 무슨 개 목줄이냐며 싫어하더니 잘 차고 나왔네. 사실은 마음에 들었나 봐?”
아담의 목에는 중동 풍으로 치장된 금 초커가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병사를 순식간에 또 하나 으깨버렸다.
길쭉하게 늘어진 철갑 병사를 둥글게 휘어버린 아담은 현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쪽도 초커 하나 채워줄까.”
“……아니, 됐어.”
숲 곳곳에서 비슷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크롬과 전능련 소속의 헌터들이 빠르게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포위망을 구성하고, 아르단의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함정 아닌가?”
“쉬운 게 아니라 ‘쉽게’ 만든 거야.”
아르단은 정복자다. 당연히 능숙한 전술가이기도 했다.
수 킬로미터 밖부터 정찰병과 감시자들을 배치해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선을 구축해왔다.
다만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적을 지나치게 과소평가 했다는 것에 있었다.
그에게 적은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카자트와 하현, 키르손, 예르단은 이미 도망친 사제를 주시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감시병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감시병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아담 폴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철갑 투구를 덜렁덜렁 들고 다니는 고블린 하나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무의식중에 적을 공격하려던 그녀는 가까스로 멈췄다.
고블린은 방해받지 않고 병사 하나에게 달려들어 뚜껑 하나를 더 따버렸다.
“……몬스터를 구분해서 공격하려니 힘들군.”
“익숙해져야 할 거야. 카자트 덕분에 공격이 쉬워졌으니까.”
헌터들은 ‘마왕’ 카자트의 권속들과 함께 공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몬스터가 어째서 인간에게 협조하는지, 그것도 같은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간단하게 ‘구역 싸움’이라는 변명으로 납득할 수 있었다.
인류 역사 속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지.’
아담 폴트는 강현무를 바라보았다.
강현무가 ‘마왕’ 카자트와 묘한 관계라는 것은 이미 권력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실상 지배자와 피지배자 관계라는 소문이었는데, 강현무는 그걸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비밀 아닌 비밀은 강현무의 보이지 않는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리아와 강현무는 서로 정반대로 강한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정신은 강했지만 육체는 약했다.
강현무는 힘으로 꺾을 사람이 없었지만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닮은 점이 있었다.
특히 아담 폴트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아담은 그런 타입에게 약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지.’
아담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머릿속의 짐승이 부글거리는 것을 느낀다.
그녀에겐 어느 정도 목줄을 끌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쿠구구구궁.
‘마왕’ 카자트의 군세와 전능련, 크롬의 능력자들이 일제히 전력을 전개하며 아르단의 군세를 전멸시켜가던 와중이었다.
최종 목적지인 사냥꾼의 오두막 쪽에서 갑작스러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병사들 서넛이 한꺼번에 크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현무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오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