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43)
지옥에서 독식-43화(43/346)
43화. 한계 레벨 (3)
현무는 키르손이 단검을 쥐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키르손은 단검을 쥔 채 이리저리 살펴보고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그러다 현무를 힐긋 보고는 빙글 돌려 날을 쥔 채 내밀었다.
“균형도 잘 잡혀 있고, 킥, 훌륭한 무기로군요. 키륵. 보스께 어울리는 무기, 같습니다.”
“나한테 어울리는 무기?”
“키륵. 손잡이를 움켜쥐어 보십시오.”
현무는 일단 단검을 움켜쥐어 보았다. 그 순간 따끔한 통증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현무는 단검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단검의 가운데 붉은 심을 타고 피가 길게 번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단검은 그 핏빛을 닮은 듯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허, 이래서 피 흘리는 단검인가?”
현무는 신기한 듯 단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아깝게 피를 뚝뚝 흘리지는 않았다. 그건 현무에게도 곤란했다. 몇 번 휘둘러 본 현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피를 아예 흘려보내지 않을 수도, 흥건할 정도로 흘러넘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만큼 자신의 피를 소모하는 셈이니 자주는 못 쓰겠지만.
‘이거라면 확실히 쓸 만하겠군.’
이 단검이 있으면 억지로 적의 환부에 상처를 낸 손을 쑤셔 넣어 중독시키거나 할 필요가 없다.
칼빵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중독시킬 수 있는 셈이었다.
키르손이 왜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기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맙다. 키르손. 너한테도 조만간 무기 하나 만들어 줄게.”
“켁, 제게도 말입니까?”
키르손은 약간 놀란 것처럼 보였다. 목숨을 구해 주고도 은혜 갚아 주겠다는 말에 놀라다니, 키르손의 머릿속에 자신이 어떤 이미지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원한은 못 잊어도 빚진 건 곧잘 까먹거든. 그러니까 잊어버리기 전에 갚아 줘야지. 네 덕분에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그 정도는 해 주마.”
“키륵. 감사합니다.”
키르손은 꽤 기쁜 것처럼 보였다. 검은 손과 자신의 단검을 모두 잃어버린 탓에 전보다 거리에서 버티기 어려워진 참이었다.
현무는 레니안에게도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고맙다. 레니안. 죽을 뻔했어.”
“괜찮아. 집사는 허약하니까.”
“그러고 보니 포션은 어디서 난 거야? 어디서 주워 왔어?”
“그거? 그냥 인벤토리에서 꺼냈는데?”
레니안은 허공에서 슥 다른 포션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강화 산성 포션. 우연이라도 줍기 힘든 포션이었다.
현무가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자 정말 강화 산성 포션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벤토리가 공유되어 있다고?’
현무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레니안은 다소 독특한 위치에 있긴 하다.
몬스터도 아니고 권속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펫 같은 것인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인벤토리가 공유된다면 쓸모가 어마어마해진다.
예를 들어 현무가 현실에 있을 때 레니안이 지옥에서 물건을 보내 준다든가.
그렇다면 일일이 지옥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이건 좀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군.’
현무는 좀 더 레니안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키르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시한 것들을 준비해 왔습니다.”
키르손이 바깥에 손짓을 하자 고블린 몇 마리가 보따리를 짊어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고블린들은 현무를 증오할 법도 하다고 생각했지만 눈에는 공포와 두려움뿐이었다. 난이도: 지옥에서 더 강대한 자에게 굴복해 목숨을 부지하는 일은 흔한 것이었다.
고블린들은 바닥에 아이템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현무가 고블린들을 죽여 놓고 착용할 수 없어 그냥 버렸던 장구류들도 보였다.
나름대로 깔끔하게 수집했던 모양이다. 그 양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며 현무는 히죽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손안에 남은 수정석을 꽉 움켜쥐었다.
‘이건 시장에 내놓을 수 없겠군.’
미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무기를 잔뜩 수출하면서도 최상급의 것은 절대로 해외에 반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상급 기종보다 몇 세대는 떨어진 물건을 팔면서 결코 자신들에게는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수정석은 바로 현무를 그런 입지에 올려놓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
오늘은 더 이상 제작할 엄두가 나질 않아 현무는 해체 작업에 매진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나가 빨리 회복된다고 해도 고블린들이 모은 수많은 병장기들을 다 해체하기에는 체력적으로 역부족이었다.
현무는 약간 고물상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대체 고블린들이 이 많은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왜 만들었나 의아해졌다. 키르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키륵. 그냥 저희 대장장이들이, 만든 것입니다.”
“대장장이 불러와 봐.”
“킷, 이미 죽었습니다.”
현무는 잠시 말을 잊었다. 아마 그날 죽였던 절반 중 한 마리였던 모양이다. 그런 현무의 기색을 읽은 건지 키르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장장이는 다른 몬스터의 습격으로 죽었습니다. 키륵. 저도 제련 기술을 배웠으니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십시오.”
“너도 배웠다고? 네가 만들어도 희귀 등급의 아이템이 나오나?”
“그렇습니다. 키륵.”
제작 스킬은 일반 스킬인 만큼 단련하면 얻을 수 있다. 키르손도 할 수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설마 전설 등급도?”
거기에는 키르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에도 전설 단검이 있었잖아?”
“그것은 제가 부서지는 별, 가울과 계약을 맺으면서 보상으로 받은 것입니다. 키륵. 저희 대장장이는 그런 단검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키르손은 거기에 단서를 덧붙였다.
“희귀 등급의 무기들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장장이에게 기술을 배운 고블린만 할 수 있었습니다. 킥. 대장장이는, 울간의 용광로에서 철혈 군단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노예였습니다.”
“……울간의 용광로? 철혈 군단?”
“그게, 저 북쪽에 있는 군대인데…….”
키르손은 어렵사리 지리와 몬스터들의 분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작 이 사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동네밖에 알지 못하는 현무에게 키르손이 하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면 각각 별개의 규칙들이 지배하는 영토들이 나오는데, 자신들은 그중 서쪽에서 도망쳐 나온 부락이라고 했다.
“서쪽은 키륵, 불과 철, 재 가루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곳입니다. 킷, 북쪽은 죽은 자들이 겨울과 함께 모든 것을 조용히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얼마 안 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입니다.”
현무는 골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사거리가 이상할 정도로 안전한 곳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벗어나면 군세니 죽은 자들이니 하는 것들이 나온단 말이지.
활동 영역을 넓혀 갈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 되면 괜한 벌집을 건드릴 확률도 있었다. 세상이 이런 꼴이니까 인간이 멸망하지.
“……일단 여기는 안전하다 이 말이지?”
“키륵. 그렇습니다. 이때까지 이곳만큼 몬스터의 수가 적은 곳은 본 적이 없습니다.”
키르손은 단언하듯 말했다. 그런 키르손조차 지하에 숨어 살았을 정도니 이 세계가 얼마나 막장인지 알 법도 했다.
“그럼 이 근처에 사는 다른 녀석들도 있나?”
“군세와 부딪치고 싶지 않은 녀석들도 들어와 있어서 아무래도…….”
현무는 조잡한 지도 한 장을 꺼내 들어 키르손에게 내밀었다. 키르손을 추적하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어설프게나마 그린 지도였다.
“대충 서식지가 어디고 활동 영역은 어딘지 전부 표시해.”
키르손은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받아 쥐었다. 단단한 녹색 살가죽을 본 현무는 키르손이 펜을 잘 다룰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키르손은 능숙한 솜씨로 지도 곳곳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알아보지 못할 기호와 문자 같은 것도 함께 적었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아볼 수 없지만 상당한 달필이었다. 심지어 현무보다 글씨체가 깔끔했다.
‘이 녀석 혹시 인간으로 치면 장교나 귀족 정도 되는 위치인 거 아냐?’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만, 당장 현무에게 도움되는 것은 아니었다.
“야.”
“키륵, 예?”
“못 읽겠으니까 그림으로 그려.”
언어이해 스킬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무리였다.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뜨는 걸 보니 기본적인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긴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국제 기호랑 공용 문자인데…….”
키르손은 불만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시키는 대로 열심히 그렸다.
불행하게도 키르손은 글씨체에 비해서 그림 실력은 별로였다. 하지만 대충 늑대 모양과 슬라임, 해골 모양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직관적이니까. 하지만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상당히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지도를 들여다보던 레니안이 말했다.
“여기.”
“응?”
레니안이 짚은 자리는 지도 변두리 쪽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곳이었다.
“여기 무서운 거 있어. 아, 여기도.”
현무는 키르손을 돌아보았다. 이 새끼가 날 엿 먹이려고 한 건가?
하지만 키르손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놈은 권속에 속해 있는 만큼 의지는 현무에게도 선명하게 전해져 온다.
정말 모르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무서운데?”
“음…… 커.”
“네 입장에서 안 큰 게 어딨어?”
“앗, 그러네. 그럼 집사한테는 별로 안 클지도 모르겠다.”
뭐냐. 이 두루뭉술한 진술은……. 현무는 찝찝함을 느꼈지만 레니안의 경고를 무시할 정도로 담이 크진 않았다. 일단 뭔지는 모르니까 그 부근에 원을 그리고 별 표시를 했다.
현무는 자신이 용케도 이런 곳들을 잘도 피해 다녔구나 싶었다. 물론 슬라임 같은 것은 본 적 있지만 위험 요소들이 상당했다.
“키르손, 레니안.”
현무는 둘을 불러 지시하기 시작했다.
“너희 둘은 이제부터 이 지도의 빈틈을 채워. 다른 몬스터들의 동선도 세밀하게, 놓치는 녀석이 없게 말야. 아, 아예 지도도 만들어라. 큰 종이에. 자원 분포는 물론이고 몬스터가 없어도 위험한 지대라든가, 은신처로 쓰기 좋은 곳 등등 전부 표시해서.”
“키륵. 알겠습니다.”
“특히 자원 같은 거. 수정석처럼 특이한 거 있으면 다 가져와. 알겠지?”
레니안과 키르손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니 영지 경영이라도 하는 것 같군. 자신과 원수 진 고블린 50마리와 식인 요정 하나가 전부인 영지였지만.
하지만 별들도 영지 놀이를 한다니까 특이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부서지는 별, 가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속삭이는 별, 몽스트릴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어, 씨. 깜짝이야.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네. 이 양반들은.”
유독 저 둘이 자신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현무는 몸서리를 치며 투덜거렸다.
“혹시 질문 있냐?”
레니안이 손을 들어 올렸다.
“뇌수 빨아 먹어도 돼?”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