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45)
지옥에서 독식-45화(45/346)
45화. 준비만전 (2)
현무의 경험으로 보건데, 죽을 고비를 넘기면 스킬이나 특성을 얻곤 했다.
헌터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본 것 같았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거나 역경을 극복한 헌터가 새로운 스킬이나 특성을 얻었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그런 일이 흔치는 않다. 역경을 극복한 것 외에 특정한 조건이 만족되어야 했으니까.
현무 역시도 쉽게 죽어서 쉽게 얻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지, 특성을 얻는 과정 모두 쉽지 않았다.
독혈은 미세먼지를 먹고 수십 번이나 죽고서야 얻었고,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가면서 전염성 특성을, 허수아비에게 개처럼 구타당해 죽어가면서 강기 특성을 얻었다.
‘물론 일반 스킬은 엄청 쉽게 얻었지만.’
일반은 일반이니까 넘어가자. 누가 일반 따위에 신경 쓴단 말인가. 현무는 보유중인 스킬 숫자도 희귀 등급부터 헤아렸다. 제작은 스킬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인식 중이었다.
현무는 다시 뚫어져라 강화 산성 포션을 들여다보았다.
현무는 잠시 그걸 들여다보다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미친놈아.’
오늘은 전설 등급 아이템을 제작하느라 이미 지친 상태다. 온몸이 쪼개질 것 같은데 여기서 또 무슨 무리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애초에 산성은 독도 뭣도 아니다. 그냥 화학 물질이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미세먼지에 있는 독성 역시 그냥 유해 물질일 뿐이다. 거기에 모기한테 물렸다는 이유로 ‘전염’ 특성이 붙을 이유가 없다. 전염되는 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특징이니까.
그런 맞물릴 리가 없는 특성이 그저 해롭다는 이유로 ‘독’으로 묶인다면, 산성도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아니, 나는 또 뭘 스스로 설득하는 거냐?’
현무는 이미 산성 포션을 맞아 본 적 있었다. 키르손을 잡을 때였다. 포션을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독이 강해졌다는 메시지는 들어 보지 못했다.
‘부족했나 보지. 독혈이나 전염성도 하루 이틀 만에 얻은 게 아니었잖아?’
그러니까 예를 들어…… 끼얹는 게 아니라 아예 마신다면?
아니, 미친 소리다. 그러다 죽으면 이때까지 쌓아 올린 생존 경험치 추가 보정도 싹 날려 먹는 셈이다.
아무리 오늘 ‘최후의 1인’ 칭호 특전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죽으면 소용없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할 수 없다. 해서는 안 된다.
***
[일반 업적 달성!] [당신은 산성액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대부께서 끓여주신 수프’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대비 난이도 보정으로 효과가 상승합니다.] [독혈에 ‘산성’ 특성이 추가되었습니다.] [독혈의 독성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고통 한계 내성이 상승하였습니다.] [산성 내성이 상승하였습니다.] [몸부림치는 별, 에르구난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7일 03시간 02분 42초.]***
죄송합니다. 무리였습니다.
현무는 부활한 다음 과거를 복기했다.
구태여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사실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현무 스스로조차 알지 못했다.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하다가 별로 상기해 보고 싶지 않다면 그냥 넘어가자.
현무는 체력 회복 포션을 잔뜩 마셔 두고 딱 한 모금만 시도해 본다는 생각으로 산성 포션 한 모금을 들이켰다.
한 모금, 정말 딱 한 모금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산성 포션이 혀는 물론 턱에 구멍을 내 버렸다는 점이었다. 당연하지만, 구멍 난 턱으로는 아무것도 마실 수 없었다.
거기다 산성 포션액이 구멍 난 턱을 따라 목까지 흘러내리면서 현무의 목숨은 경각에 달했다.
그 순간 현무가 마셔 둔 체력 회복 포션들이 빛을 발했다. 내장 속에 머물러 있던 포션들이 반죽음에 이르렀던 현무의 몸을 빠르게 치유시키기 시작했다. 문제는 산성 포션이 몸을 녹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점이다.
고통이 뇌를 마비시켰다. 산성은 여전히 몸을 태우고 있고, 회복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무는 견디다 못해 한 가지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깨끗하게 산성 포션을 전부 마셔서 목적도 달성하고, 죽었다가 되살아나 고통을 끝내 버리자는 것이었다.
현무는 구멍 난 목구멍에 산성 포션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최후의 1인’ 칭호 특전이 발휘되었다.
최후의 1인 특전은 완전 치유가 아니라 50% 정도의 체력만 아주 빠른 속도로 치유된다. 때문에 현무는 원하는 만큼 일찍 죽지 못하고 온몸의 내장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 갔다.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기억은 추상적이고 흐릿해서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부활했을 때에는, 인간으로서 뭔가를 포기한 기분이었다.
“……음, 그래도 특성이 추가되었으니까.”
현무는 피 흘리는 단검으로 슬쩍 피를 떨어뜨려 보았다. 붉은 피는 공기에 닿자마자 검게 변색되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피 한 방울은 시멘트로 이루어진 바닥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구멍을 남겼다.
“이거 유민이 잘못해서 혀를 깨물기라도 하면 큰일 나겠는데.”
현무는 유민이 새삼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대신 포상으로 캐러멜을 꺼내 입에 물었다. 이정도면 캐러멜을 수여할 자격이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피 흘리는 단검은 치유 용도로도 쓸 수 있다고 했는데 독혈을 가지고 있어도 그게 적용될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실험할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실험을 한다면 키르손이 적당한데, 중독시킨 다음 단검을 꽂겠다고 하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현무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이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적과 아군은 어떻게 구분되는 거지?’
그냥 적대감과 유대감으로 구분되는 건가?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 명백하게 구분되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인 동시에 아군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현무가 철학적인 고찰에 빠져들려 할 무렵, 사거리 모퉁이 쪽에서 키르손이 나타났다.
“키륵, 보스.”
키르손은 현무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의 허리춤에는 현무가 만들어 준 무기가 꽂혀 있었다. 녀석이 주로 쓰던 단검이 아닌 짧은 낫이었다. 추수할 때 쓰는 바로 그 낫.
현무는 외알 안경으로 살펴보았던 아이템의 성능을 떠올렸다.
[겨울 추수꾼의 낫(전설)] [구분: 비주류] [물리공격: 중하, 마법공격: 중하, 관통력: 중] [특수 능력: 주변의 살아 있는 것들을 추적할 수 있으며, 적을 처치할 때마다 주변 모든 적들에게 냉기 상태를 중첩 부여한다.] [주석: 겨울 공작의 사냥개들로 알려진 망령 노예들이 쓰던 낫이다. 겨울 공작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 외출하는 시기만 되면 겨울 추수꾼들을 풀어 돌아다니거나 창밖을 훔쳐보는 자들을 처단하였다고 전해진다. 시계가 좋지 않아 겨울 공작 관측에는 실패하였으나,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키르손은 무기를 건네받은 다음부터는 현무를 향해 대단한 존경심을 보여 왔다.
지금까지는 부락민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상대해 준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주인에게 복종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철저하게 강자에게 복종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무기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물론입니다. 키륵. 보스.”
키르손은 뿌듯하게 미소 지으며 지도를 내밀었다. 지도는 전보다 확연하게 빽빽하고 자세히 그려진 상태였다.
“북쪽 정찰을 마치고 왔습니다. 키륵.”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은 레니안이 예전에 표시했던 ‘주의 요망’ 지역 중 하나였다.
키르손도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레니안도 두루뭉술하게 크다고만 묘사하던.
거기에는 웬 콘센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뭐냐, 이건?”
“키륵? 어, 아마 오크로 추정됩니다.”
아, 콘센트가 아니라 돼지를 묘사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크라고? 그걸 왜 레니안이 무서운 거라고 표현한 거지?’
물론 레니안 눈에 안 무서운 게 있겠느냐마는 강조해서 말할 정도니 뭐라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크라니.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진지해질 수 없는 상대였다.
‘아니지. 지옥에서는 고블린도 레드캡 고블린이 되어서 완전 미친놈들이 됐는데, 오크는 더 심하면 심했지 약하진 않겠지.’
“위험해 보여?”
키르손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키륵.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오크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는데, 킷. 한 마리 정도라면 보스께서 주신 무기로 제가 어떻게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가면 안 된다라. 근거도 논리도 없는 말이지만 현무는 키르손의 의견을 높이 쳤다. 이 정신 나간 세계에서는 자신의 육감이 가장 중요하다.
“왜 그렇게 느꼈지?”
“……키륵. 그곳만 유독 수정이끼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이 너무 노출된 공간이었습니다. 키륵. 저희도, 오크도 그런 곳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정신 나간 놈이거나 뭔가 있거나. 현무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렌 제독이라는 놈처럼 목숨 걸고 찾으러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렌 제독이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그 호기심을 채우러 다니다가 죽었을 게 뻔하니, 현무는 그리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 일단 여기는 가면 안 된다 이거지.”
현무는 지도에 한 번 더 별 표시를 했다. 이걸로 이 근방 지리는 완전히 표시된 셈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여기가 서울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구조가 꽤 많이 바뀐 것 같았다. 현무는 이제 지도도 만들었겠다, 슬슬 퀘스트 대비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한번 죽은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군.’
죽었다 살아나면 상처도 체력도 복구된다. 현무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다음 퀘스트까지는 체력 소모가 없는 것들로 준비하기로 했다.
“키르손.”
“예, 키륵. 보스.”
“네 생각에는 네 가치가 숫자로 치면 어느 정도인 것 같냐?”
***
새벽, 항상 이 시간대면 찾아오는 모기떼가 쉘터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현무는 바로 그 모기떼 한가운데서 태연하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맨몸이나 다름없었지만 온몸에 발라진 피는 모기들이 피해 갈 정도로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몇몇 불행한 모기들은 현무의 주변을 비행했고, 곧 독혈에 내재된 전염성 특성으로 인해 비실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무의 주변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기들의 사체가 수백 마리씩 쌓였다.
날갯짓 소리 때문에 귀가 멀 것 같았지만 현무는 그 안에서도 착실하게 자신의 작업을 수행했다.
여분의 지옥 다트는 충분했고, 수정석을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지옥 다트는 만드는 데 소모되는 수정이끼의 양이 적어서인지 해체해도 수정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무는 모기를 권속으로 들이고 있었다.
“권속.”
[모기(LV 3)이 권속에 합류하였습니다.]또 하나의 모기 한 마리가 손안에서 살아났다. 모기는 키르손과 달리 대화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지는 고스란히 전할 수 있었다.
현무는 모기가 자신의 손 위에서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체크하고 놓아주었다.
’11마리째.’
모기를 살려내는 것은 스킬 개발을 위해서였다.
원래 현무는 키르손 외에도 고블린들을 더 권속으로 들이려 했다.
당장 고블린 정찰대원 같은 놈들 두셋만 더 거느릴 수 있다면, 당장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20레벨짜리 헌터들이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현무의 시도는 실패했다.
‘하지만 모기들을 더 받는 것은 가능하단 말이지.’
그래서 이렇게 실험을 하게 된 것이었다. 현무가 또 한 번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들은 것은 모기를 21마리째 들이면서부터였다.
모기떼는 이제 사거리를 떠나갔지만 총 20마리의 모기들은 여전히 현무의 주변에서 춤추고 있었다. 현무는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과연, 종족이나 레벨에 따라 값이 정해져 있고, 그 값 안에서 권속으로 들일 수 있는 양의 한계치가 정해져 있는 거군.’
예를 들어 현무가 들일 수 있는 권속의 한계값이 10이라고 치자. 그리고 키르손의 값은 6, 고블린 정찰대원들은 5라고 쳤을 때, 현무가 들일 수 있는 한계는 고블린 정찰대원 둘이거나 키르손 하나뿐인 셈이다.
하지만 모기들은 1도 안 되는, 0.2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스무 마리씩이나 거느리는 게 가능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써먹느냐는 건데.’
현무는 손 위를 맴도는 모기들을 보며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권속을 포기한 것도 다시 권속으로 들일 수 있는가를 실험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현무가 죽인 것으로 판정되지 않는 건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키르손을 권속에서 배제하면 다시 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키르손이 고블린 정찰대원 둘보다 나을까?’
낫다. 확실히 낫다.
검은 손도, 전설 단검도 없지만, 놈은 다른 고블린들 보다 머리도 좋고 판단력도 믿을 만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일이 필요하다면 키르손을 쓰는 편이 낫다.
현무는 일단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권속 스킬을 레벨 업 시키거나 특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방법을 전혀 모른다.
인간 하나와 고블린 하나, 모기 스무 마리. 그리고 식인 요정 하나.
그때 레니안이 현무의 곁으로 다가왔다.
“모기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