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47)
지옥에서 독식-47화(47/346)
47화. 가마솥 밑바닥 (1)
“어? 뭐? 잠깐만. 맛있는 게 뭐?”
[앞으로의 생존 시간, 47시간 59분 56초.]현무는 재차 물었지만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무미건조한 내레이터의 대답이 들려올 뿐이었다.
현무는 대체 자신의 몸에서 무엇이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장 이렇다 할 변화는 없지만, 대체 맛있어진다니? 그게 인간의 몸을 두고 할 말인가?
‘에이, 설마.’
현무는 자신의 손목 냄새를 킁킁 맡았다. 찝찔한 땀 냄새가 약하게 느껴질 뿐, 딱히 달라진 점을 찾지 못했다. 그때 현무는 레니안과 눈이 마주쳤다.
창틀에서 레니안이 눈을 반짝이며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레니안이 움직이기 전에 현무가 재빨리 경고했다. 레니안은 입술을 샐쭉거렸다.
“모처럼 집사가 맛있어졌는데 맛도 못 보게 하려고 그래?”
“항상 맛있다며. 잠깐, 너 이게 무슨 저주인지 알아?”
“응.”
레니안은 헤벌쭉 웃으면서 말했다.
“오직 요굴렘의 만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신료지. 그 저주에 걸리면 주변에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겨. 집사는 요굴렘이 직접 간을 한 셈이니까 그 향도 대단할 거야. 맛도 일품이지. 한번이라도 맛있는 저주에 걸리면 그 맛에 중독되고 끊임없이 그 맛을 찾아 헤매는 아귀가 될 정도라고. 굶주리는 별의 백성들은 대부분 그런 존재들이야. 자기들끼리 먹고 먹히는 탐욕스러운 아귀지옥이지.”
레니안은 마치 맛집 소개라도 하는 것처럼 경쾌한 태도로 설명했다. 현무는 참으로 골 때리는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식욕을 자극하는 저주라니. 그것도 식사 대상은 현무 본인이다.
“너는 먹어 본 적 있는 거야? 괜찮아?”
“요정은 괜찮아. 모든 세상을 먹어 치울 약속된 짐승들이니까.”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레니안은 비폭력주의를 유지할 생각인 것 같았다.
현무는 재빨리 키르손을 돌아보았다. 키르손은 당황한 표정으로 침을 닦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륵. 저는 이상한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 자체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긴 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현무의 의지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몬스터들에게는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현무는 서둘러 움직일 채비를 했다. 냄새가 풍긴다면 몸을 숨긴다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요굴렘의 권속들이 추적한다고 했지. 레니안, 혹시 어디 있는지 알아?”
현무는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쾅! 무언가가 창문에 친 바리케이드를 들이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덩이라도 던지는 듯한 소리에 현무는 바싹 긴장하며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창밖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게 날갯짓하는 소리.
우우웅─ 쾅, 콰쾅! 연달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바리케이드가 박살났다. 그 구멍을 통해 모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현무는 잇소리를 내며 모기를 후려쳤다. 모기떼는 수백에 달했지만 키르손과 현무의 능력만으로도 정리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기들은 이상할 정도로 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곤 억지로 살갗에 주둥이를 꽂아 넣길 반복했다.
현무의 피를 빤 모기들은 바닥에 떨어져 비실대며 기어 다녔다. 그러면서도 현무의 발치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현무는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기들을 발로 짓이겨 밟았다.
“모기가 움직일 시간이 아닌데?”
“모기는 요굴렘의 권속 중 가장 기초적인 말단이야. 요굴렘의 권속들은 늘 배 속에 뭔가를 채우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지. 그것도 맛있어진 집사의 피 냄새를 맡았으니까 이제 환장할걸.”
레니안의 대답에 현무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곧 이어진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음, 그리고 집사는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모기들은 요굴렘의 가장 어린 첩자들이기도 하거든. 이제 근방에 있는 요굴렘의 권속들이 전부 이쪽으로 몰려올 거야. 아, 요정도 도망가야겠다.”
레니안은 잽싸게 바닥에 떨어진, 현무의 피를 먹고 기절해 있는 모기들을 줍고는 사라져 버렸다. 키르손은 현무를 보고 머뭇거리다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지금 당장 제 힘은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거기 그대로 서 있어.”
현무는 잇소리를 내며 창밖을 힐끔 내다보았다. 모기 다음으로 무엇이 찾아오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하늘을 본 현무는 지금 이 상황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내려오고 있었다.
***
현무는 사거리에서 다소 떨어진 무너져 가는 건물에 몸을 숨겼다. 오래전부터 비상시 제2의 쉘터로 사용하기 위해 봐 뒀던 건물이었다.
사거리 쪽을 내려다보자 한때 몬스터가 거의 없이 클린했던 곳이 완전히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하늘 위의 구름층 일부를 형성하고 있던 모기떼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내려왔는데도 구름층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현무는 오래전에 던전에 관련된 다큐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동물과 몬스터를 나누는 기준은 몇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라고.
첫 번째는 식생활.
몬스터는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몸집에 비해선 놀라울 정도로 적게 한다. 추측하기로는 마나로 필요한 열량을 얻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현무는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모기들이 저 미친 숫자를 유지하고도 살아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인간에 대한 적대감.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을 마주치면 도망친다. 인간을 너끈히 잡아먹을 수 있는 육식 동물들도 어지간하면 인간을 피한다.
인류의 조상은 육상의 대형 포유류 90% 이상을 잡아먹어 멸종시킨 바 있다. 그 기억이 DNA까지 새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는 다르다. 그들은 인간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인 적의를 보인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놈들이 벌레 새끼다운 구석이 있어서였는데.’
현무의 피가 독성이라는 것을 알고 꺼려했기 때문에 현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지, 결코 그가 강해져서가 아니었다.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어쨌든 쪽수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아니, 저 숫자면 공룡한테 달려들어도 미라로 만들겠네.”
현무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폈다. 지금 이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모기들이 현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주변으로 서서히 퍼져 나갈 것이고, 그 촘촘한 포위망에서 현무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확률은 거의 없다.
“키르손.”
“키륵, 예.”
키르손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재빨리 대답했다. 부락민들의 생사 여부가 걱정되는 것 같았다.
“내가 너희 부락에 숨으면 어떨 것 같냐?”
“켁, 키륵. 그,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부락은 냄새도 많이 나고, 그, 아시다시피 ‘맛있음’이라는 저주는…….”
“네놈들에게도 적용된다 이거지. 알겠다.”
딱히 요굴렘의 권속이 아니어도 모든 몬스터에게 사랑받는 매력 덩어리가 되는 저주인 셈이다. 키르손은 약간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거기다 ‘맛있어진’ 대상을 먹으면, 중독되어 저절로 요굴렘의 백성이 됩니다. 키륵.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는 아귀가 되지요. 킷, 그런 자들은 아사(餓死)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둬 놓고 자기 스스로를 잡아먹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기 따위는 상대도 안 되지요.”
현무는 키르손의 설명에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뭐야, 너도 아는 저주야?”
“알고 자시고를 떠나…… 키륵, 허기진 자들은 이 주변을 벗어나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현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흔하게 볼 수 있다고?
요굴렘의 권속들이 현무를 추적한다고 했다. 모기떼들이 현무를 발견해서 제일 먼저 달려들었고, 위치를 들켰으니 이제 다른 권속들도 몰려들 것이다.
즉, 모기떼는 프롤로그일 뿐이지 본편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씨. 그걸 왜 이제!”
꾸구구국!
현무는 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층 건물 외벽에 언제부터였는지 난생처음 보는 새들이 우르르 앉아 있었다.
검은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깃털에,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기괴한 몸통, 상한 녹조빛의 눈동자까지.
현무의 머릿속은 저것을 본 기억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저것과 그 이름을 연결 지을 수 없었다.
[역병 비둘기(LV 9)]꾸구구국!
아까부터 무슨 농담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비둘기 떼가 한꺼번에 날개를 푸드득거리는 순간, 그리고 그 날개에서 새까맣게 벼룩 떼가 쏟아져 내렸다.
현무는 바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비둘기는 그 기형적인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대신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맛있어지는 저주에 모기, 비둘기까지.
도저히 진지해질 수가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물론 목숨이 달린 일이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긴 했다.
그렇게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맛있어졌다는 이유로 말짱 헛것이 되었다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두 개나 되는 전설 무기도, 스킬도 소용없어졌다. 현무는 문득 요굴렘이 요 근래 자신을 열심히 지켜보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니, 설마 받아들일 것을 예상하고 그에 맞춰서 엿 먹이려고 이런 걸 내놨다고?’
현무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차라리 제대로 싸울 놈을 내놔!”
현무는 노성을 터뜨리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순간, 현무는 밖에 자신 말고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식자 구울(LV 33)] [광기 어린 가스트(LV 41)] [허기진 좀비(LV 24)]못해도 백은 넘을 듯한 무수하게 많은 인간형 몬스터들이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러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몰골들이었지만 레벨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아니, 저 다시 들어갈게요.”
[‘지옥 최강자’ 칭호의 효과로 레벨 대비 능력치가 상승합니다.]눈치도 없이 내레이터 음이 들려왔다.
허기진 자들은 주저 없이 괴성을 내지르며 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2일 1시간 16분 15초.]***
“하하, 개 같네.”
현무는 부활과 동시에 바로 뛰기 시작했다. 사거리에 모기가 잔뜩 몰려 있는 상황에선 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몇 방을 물린 상태였다.
처음 죽었을 때 키르손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놈은 아예 현무와 다른 방향으로 달아난 것 같았다.
‘빌어먹을 놈.’
누굴 닮았는지 비열하고 가열 차기 짝이 없다. 레니안도 그렇고. 왜 이렇게 주변에 믿을 만한 놈이 없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이 세계 자체였다.
‘이걸 대체 어떻게 깨라고?’
매번 퀘스트를 접할 때마다 하는 생각 같았지만 이번에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키르손과 싸울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전략이라도 세울 수 있었다. 패배를 반복하면서도 승리를 향해 다가간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고 아예 레벨 업이 막힌 상황에서 압도적인 숫자에, 압도적인 레벨을 가진 몬스터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현무의 레벨 두 배는 되는 가스트라는 몬스터만 해도 이미 두 자릿수가 넘는다. 이건 깨라고 만든 퀘스트가 아니다.
죽으라고 만든 퀘스트지.
[굶주리는 별, 요굴렘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그래, 재밌겠지. 새끼야! 네가 먹인 엿이 이렇게나 달콤한데!”
현무는 요굴렘이 어디서 보고 있는지 모르니까 아무 데나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달렸다.
“아예 소금이랑 후추도 치지 그랬냐, 새끼야?! 차라리 요리를 하지 그래, 응? 굽고 찌고 회 치고 해 보라고! 그렇게 맛있게 먹고 싶으면!”
하지만 당연하게도 요굴렘으로부터 대답은 없었다.
별들은 그런 식이었다.
무미건조하게 보고 있다거나 아주 사소한 감정 표현, 혹은 의도만을 전달할 뿐, 절대로 깊게 개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시련에는 요굴렘의 악의가 아주 강력하게 느껴졌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오른쪽으로 틀어야 해.’
현무는 삐끗 다리를 삘 뻔했다.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려다가 발을 헛디딘 것이다. 이대로 다리를 접질렸으면 그대로 모기떼에 물려 미라가 되었을 것이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현무는 오른쪽으로 가는 대신 그대로 앞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오른쪽으로 틀어야 해.’
현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어.’
현무는 머릿속에서 낮게 웃는 낯선 여성의 웃음소리를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 대신에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