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55)
지옥에서 독식-55화(55/346)
55화. 한계돌파 (2)
몬스터라.
현무는 내심 동요했다. 난이도: 지옥에서 자신이 벌이는 일이 몬스터랑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한 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유민은 자신의 등급을 결정하는 결정체가 인간보다 몬스터의 것을 닮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민은 재빨리 손을 들어 올려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 물론 오빠가 몬스터 같다는 뜻은 아니에요. 결정의 형태가 유사한 거지 결정체들의 혈중 농도나 크기, 성질 같은 건 완전히 인간이랑 똑같거든요. 게다가 결정체만 가장 눈에 띄는 관측물일뿐이지 마나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해요. 현재로서는 이때까지 관측된 적 없는 높은 등급을 오빠가 가지고 있다는 게 그럴듯하죠.”
유민은 설렌다는 표정으로 현무의 팔을 꽉 붙잡았다.
“어쩌면 오빠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 없는 최초의 5성급 능력자인지도 몰라요! 아니, 5성이 있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있었으니까 모르죠. 6성급인지도! 아무튼 굉장한 거죠!”
“으음, 그렇군.”
현무는 솔직히 와닿지도 않고 기분만 복잡했다. 하지만 유민이 두 손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흔들며 춤추는 통에 함께 춤을 춰야 했다.
음악도 없이 열심히 몸을 흔들며 손을 들어 턴까지 하는 유민의 모습에 현무는 피식 웃고 말았다.
“기분 좀 괜찮아졌어요?”
“뭐, 내 등급이 1성이 아닌 건 확실하군.”
생각해 보면 현무는 ‘신체가 마나에 각성했다’라는 메시지를 받아봤을 뿐,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강제로 마나 밀도를 높인 환경을 통해 등급을 올린 것은 무조건 한 단계만 올라간다.
거기다 스킬을 각성하지 않고 능력자가 되었다는 것은 1성이라는 뜻이다.
현무는 몇 번 죽고 살아나서야 독혈 스킬을 얻었으니 그런 착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일단 한계 레벨에 부딪칠 때까지 무작정 마음 놓고 레벨 업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러면 왜 진작에 레벨 업을 하지 못했던 거지?’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도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현무는 레벨 20에 도달한 순간부터 단련을 멈췄고, 이후로도 사냥보다 아이템 업그레이드와 스킬 강화에 치중했다.
사실 그 덕분에 시련을 깰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요굴렘의 시련은 레벨이 높다고 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이성을 잃고 싸우던 사이에 레벨 업을 하게 된 거군.’
막바지를 제외하고 현무는 한 번도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 저주받은 자신의 피를 적의 몸 안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놈들끼리 잡아먹게 했을 뿐이다.
온전히 현무의 힘으로 죽였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레벨이 여섯 단계나 오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흠, 그래서 레벨이 오른 거였군.”
“오빠가 저번에는 레벨이 20이라고 했었죠? 지금은 몇인데요?”
“26.”
유민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11일 남짓한 시간 만에 여섯 단계나 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현무는 이미 불가능의 기록을 나날이 갱신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실종되었다가 돌아올 때마다 사람이 달라져서 돌아오는데 더 이상 놀랄 것도 없겠다 싶었다.
“어쨌든 앞으로도 좀 알아봐야겠어요. 슬슬 저 혼자 알아볼 수 있는 단계는 완전히 벗어난 것 같은데…… 도움을 구해 볼까요?”
현무도 생각하고 있던 점이긴 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전히 내 사람이 아니면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아. 혹시 이미 말한 사람 있어?”
“아뇨. 없어요. 하지만…….”
유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빠가 사라진 사이 세종 연구소에서 연락이 엄청나게 많이 왔었거든요. 일부러 안 받았었는데 아마 그쪽에서도 뭔가 알아낸 것 같아요. 그냥 간단한 혈액 채취만 했을 테니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쪽이 장비도 좋고 예산도 많이 나오고.”
“세종 연구소?”
“이능관리부요. 보통 세종 연구소라고 불러요. 국내 던전이랑 마나, 아이템, 능력자, 거기랑 관련된 건 다 총괄하는. 서비스를 막 시작했을 때 말고는 이렇게 오랫동안 등급 발표를 미룬 적이 없었거든요.”
“허, 나 때문에 전체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고?”
“오빠한테 관심 갖는 인크루트며 헤드헌터들이 많았으니까 아예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서 무식한 방법을 쓴 거죠. 거기 연구소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해요.”
현무는 핸드폰을 열어 수식 목록을 살펴보았다. 낯선 번호들이 수도 없이 찍혀 있었다.
“스팸인 줄 알았는데.”
“연락해 보게요?”
“뭘 알고 있는지는 알아야지.”
“그건 그렇죠…….”
유민은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쩐지 세종 연구소 쪽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현무는 유민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뭐, 그건 나중에 해도 되고. 너는 너대로 계속 알아봐 줘. 아무래도 랩에서 실험 장비로 이거에 대해서 전념해서 알아보기는 힘드려나? 아예 장비를 사다 줄까?”
“장비가 한두 푼 하는 줄 알아요? 그건 또 어디다 두게요?”
“집도 하나 사지, 뭐. 이제 오피스텔은 벗어나도 되잖아.”
이미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계획이었다. 특히 오늘 지옥에서 돌아오면서 있었던 일로 확실해졌다.
좀 더 인적이 드물고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현실에서 지옥에서 얻은 아이템이나 스킬을 실험하기에 유민의 집은 너무 위험하고 좁았다.
‘게다가 계속 얹혀살 수도 없고.’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 두기에는 너무 오래된 문제였다. 그때 현무는 유민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저도 데려가는 거 맞죠?”
“뭐? 데려가다니 무슨 말이야? 내가 모셔 가는 거지. 연봉 협상도 설마 새로 해야 하나?”
현무의 말에 유민은 피식 웃었다.
“그건 연말로 미루죠. 지금 연봉 협상을 하기에는 아직 제 가치가 충분히 입증된 것 같지 않아서 불리하니까.”
“협상할 줄 아는데?”
“이런 건 유리할 때 해야죠.”
유민은 그렇게 말하며 현무의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근 며칠 동안 사람의 온기를 느껴 본 적 없던 현무도 기꺼이 서서히 몸을 포갰다.
상의를 탈의한 현무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을 본 유민은 잠시 놀란 표정을 했다.
현무는 아차 싶었다.
포션으로 상처들은 회복되었지만 이번에는 죽었다 부활하지 않은 탓에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거 안 아파요?”
유민은 어쩌다 다쳤냐고 묻지 않았다. 현무가 언젠가는 말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금방 없어질 거야.”
뭐, 다음에도 한 번도 안 죽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유민은 손가락으로 울퉁불퉁한 상처 주변을 더듬어 보다가 어깨 쪽을 앙 물었다.
작은 잇자국이 무시무시한 흉터들에 비해 앙증맞게 새겨졌다.
“……뭐 하는 건데?”
“왠지 맛있는 냄새가 나서.”
현무는 잠시 섬뜩해졌지만 유민은 씩 웃어 보였다.
“저도 오빠한테 흔적을 남겨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둘은 그날 서로에게 잇자국을 아주 많이 남겼다.
***
어두운 체육관 링 한가운데서 현무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요굴렘의 시련 마지막에 치열하게 싸웠던 장면들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현무가 그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받았던 ‘맛있음’ 저주 때문이었다.
그 피를 사방에 뿌려 놓음으로써 지능이 낮은 몬스터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저주가 없었다면 그냥 죽었겠지.’
하지만 그 처절했던 난전은 치명적이면서도 귀중한 경험이었다.
허기진 자의 피에 정신이 나간 바람에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현무는 단편적인 정보라도 되새기며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장면 하나를 떠올릴 때마다 근육이 움찔움찔 떨렸다.
배틀 헬퍼의 패시브 ‘기록’ 기능은 그런 현무의 경험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배틀 헬퍼는 근육 속에 야수와 같이 날뛰던 움직임과 본능을 새겨 넣었다.
어둠 속에서 현무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열기가 피어오르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느새 현무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하나하나 퍼즐 맞춰지듯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의 맛과 생살을 씹던 감촉까지.
“웁……!”
현무는 벌떡 일어나 링 바깥에 대고 토해 냈다. 은연중에 그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했지만 그게 구체적인 기억으로 돌아온 순간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왔다.
속을 다 게워 낸 현무는 입가를 훔쳤다. 더 이상 토해 낼 것도 없어지자 개운해졌다.
하지만 기분은 여전히 이상했다. 현무가 구역질을 느낀 지점은 양심의 가책 따위가 아니라 그 역겨운 맛이었다.
몬스터나 살아 있는 인간의 생살을 씹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회의감은 없었다.
‘아니, 잠깐.’
현무는 기억의 말미 속에서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그가 대대장을 물어뜯던 순간이었다.
[파편을 습득했습니다.]의식이 없던 와중에 있었던 일이라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현무는 서둘러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손에 새겨진 문신의 무늬가 조금 더 복잡해진 상태였다.
상처가 하도 많아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현무는 렌의 외알 안경을 끼고 문신을 살펴보았다.
현무에게는 처음 보는 정보가 있었다.
[별의 파편(LV 2)] [권능: 권속(흡수)] [주석: ■■■■■는 ■들 중 ■■■■■■, 그중 ■■■■■■를 찾아내기 위해 ■■을 시작했다. ■의 상황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오직 한 가지의 ■■만을 남기게 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을 탄생시키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었으며, ■■■■■의 동맹과 적을 동시에 만들어 냈다.]“……뭐야, 이건?”
스킬도 아니고 칭호도 아니고 아이템도 아니다. 처음 보는 권능이라는 탭은 스킬인 것 같은데 주석이 엉망이다.
현무는 자신이 잘못 본 건가 했지만 외알 안경을 뺏다가 다시 끼워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뭐, 주석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현무는 찝찝했지만 대충 넘기고 다른 부분으로 넘어갔다. 보아하니 별의 파편이 완성되어 갈수록 그만큼의 혜택도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현무는 별의 파편에 새롭게 붙은 ‘흡수’라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시전자는 권속을 흡수해 대상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과 능력치, 체력, 마나, 스킬 일부를 단시간 습득할 수 있다. 시간은 대상이 보유한 칼로리에 비례한다.]
“……뭐야, 이 변태 같은 특성은?”
모 고전 게임의 컨슘 같은 스킬이었다. 이런 게 있었다면 요굴렘의 시련을 통과할 때 상당히 편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래서 준 건지도 모르겠군.’
요굴렘의 권속을 처치하고 얻은 권능이니 그에 어울리는 특성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현무는 예상치 못한 선물 상자를 받은 기분이었다.
체육관에 불이 갑자기 훅 들어왔다.
“뭐 하는 거요? 불 다 꺼 놓고.”
들어선 것은 박휘소였다. 언제나 그렇듯 말쑥한 정장 차림에 지팡이를 짚은 채였다.
현무는 렌 제독의 외알 안경을 꺼내 들고 그를 관찰했다.
[박휘소(LV 40)] [스킬: 이중베기, 은신(무호흡)]어려울 것 없이 단출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박휘소는 기본적으로 잘 싸우는 사람이다.
스킬 한 번 안 쓰고 무술과 완력만으로 현무를 제압한 걸 보면, 스킬 개수만으로 그의 전투 능력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로 불렀소? 체육관인 걸 보니, 한 번 더 붙어 보자고?”
“간단한 상황 보고입니다, 영감님. 제 등급에 대해서 교정해야 할 사항이 있어서요.”
현무는 지옥에서 있었던 일을 잊으려 애쓰며 자신의 등급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박휘소에게 설명했다.
유민이 찍었던 사진도 함께였다. 결정체의 형태를 보자 박휘소도 이미 아는 분야인 듯, 놀란 표정을 했다.
거기다 현무가 자신의 레벨이 올랐다는 것까지 얘기하자, 박휘소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는 현무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등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특정할 수 없는 정도라는데, 바로 믿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한참 침묵을 지키던 박휘소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들지만…… 믿는 수밖에 없겠군.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매번 똑같은 소리를 하기도 민망하오.”
“역시 그렇죠?”
“그 말을 듣고 보니 세종 연구소가 침묵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군. 초창기 서버가 터졌을 때 말고는 등급 판정 결과 발표를 미룬 적이 없거든. 클랜이나 인크루트 그룹에서 항의가 엄청나니까.”
“유민도 그 얘기를 하던데 항의가 그렇게 심해요?”
“능력자들의 레벨은 연봉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니까. 인크루트나 헤드헌터 같은 데선 자원이 없어서 공장을 못 돌리는 셈이오. 클랜도 이번 분기 신입을 뽑아야 하는데 일정에 문제 생길 테고. 가벼운 문제가 아니오. 곧 누군가 어떻게든 당신한테 접촉할 것 같군.”
박휘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무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든 어쨌든 작은 그릇이 아니라는 건 이제 잘 알겠소.”
“라인을 바꿔 타실 마음이 드십니까?”
박휘소는 낮게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유쾌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이런 늙은이에게 그렇게 욕심을 내 주니 고맙군.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드오. 하지만 내가 당신을 따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요. 나의 동맹들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하니까. 이 늙은 몸뚱이에 엮여 있는 줄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오.”
그러면서 박휘소는 가늘게 눈을 떴다.
“혹시…… 내가 동맹을 설득할 만한 그럴듯한 증거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박휘소는 정말 의심한다기보다 저번에 가져왔던 전설급 무구와 같은 충격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미 어지간한 것들은 다 경험해 본 베테랑인 박휘소에게도 강현무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만하면서도 자신만만한 그의 매력에 박휘소는 스스로 한 발짝씩 자신을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증거…… 라기에는 미묘하지만.”
마침 현무에게 박휘소를 놀라게 할 만한 것이 있긴 했다. 그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렌 제독의 외알 안경을 꺼내 들었다.
“이걸 보고 판단해 주시면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