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57)
지옥에서 독식-57화(57/346)
57화. 동상이몽 (2)
현무도 한계 레벨에 막혀서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 없을 줄 알았을 때 느꼈던 심정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쓴다.
특히나 한계 레벨에 막힌 초고위급 헌터들이라면,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직 하나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바로 등급을 상승시키는 것.
아직 현무는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공급하는 수정이끼에 그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기술의 진보는 충분히 대중화되지 않았을 뿐, 생각보다 훨씬 더 앞서 있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공급하는 수정이끼가 등급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 시점에서 공급을 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현무는 등급마저 한계를 알 수 없게 된 데다, 수정석이라는 새로운 희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그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자신이 있었다.
“그치들은 이미 가질 만큼 다 가진 사람이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전 재산도 기꺼이 쏟아부을 겁니다. 그건 영감님도 아시잖습니까. 그 절박한 졸부들 돈을 뜯어다가 좀 더 힘든 사람한테 나눠 주면 좀 어떻습니까?”
현무는 박휘소의 벤틀리 차 문에 기댄 채 씨익 웃었다.
“독점이 좋은 게 뭡니까. 가격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이지요. 영감님이 공급받은 수정이끼로 수익을 얼마를 뽑아내든 상관없으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1차 가격 조정은 제가 합니다. 아시겠지요?”
박휘소는 얕게 신음했다.
현무의 나이는 20대 후반, 레벨 역시 고작해야 20대 초반의 갓 신입 헌터를 벗어난 정도다.
심지어 공식적인 던전 출입 횟수는 고작 1성 던전 한 번인데도 베테랑 중 베테랑인 자신을 마음대로 주무르려 들고 있었다.
공급량을 왜 적게 조절해 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공급량이 적으면 비축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독점권을 쥔 사람의 힘은 더 커진다.
시장을 혼자 쥐락펴락할 수 있는 현무는 박휘소를 비롯해 언젠가 수정이끼를 필요로 하는 랭커들까지 쥐락펴락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고작 수정이끼 때문만은 아냐.’
수정이끼가 엄청난 이익이 되긴 하지만 박휘소가 구태여 다 사들였던 이유는 그 물량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이지태와 자신의 동맹만이 수정이끼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제 누가 올라가고 내려갈지에 대한 기준은 온전히 네가 정하겠다는 거지.’
박휘소는 돈을 대가로 그 선택권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했다.
전 세계 랭커들과 이지태를 쥐락펴락하는 데뷔한 지 갓 한 달 넘은 레벨 20대 신입 헌터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박휘소는 수정이끼보다도 강현무라는 인물에 대해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품었다.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자.
하지만 그 내면에는 동기를 알 수 없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수없이 모험을 걸어왔던 박휘소는 그런 현무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결국 그는 현무에게 좀 더 배팅하는 길을 선택했다.
“……얼마나 회사에 쓰시겠소?”
“두 배 올렸으니까 절반 정도 쓰는 걸로 하죠. 일단은.”
간단 계산만으로도 가격을 두 배, 공급량도 두 배로 올렸으니 이전까지 지급하던 액수의 네 배를 지급해야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요구였다.
수정이끼는 안 그래도 필요한 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현무가 가져오는 수정이끼는 말마따나 대체제가 없는 자원이고, 가격은 독점하고 있는 사람 마음이다.
게다가 정말로 현무가 그 돈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복지에도 쓴다면 그에 따른 세제 혜택도 따라온다.
떳떳해지면 할 수 있는 행동도 많아진다. 박휘소는 이지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서로 윈 윈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현무는 웃으며 박휘소와 악수를 나눴다.
“영감님,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죠. 얼마나 남겨 먹고 계십니까?”
“당신도 말했잖소. 조직을 운영하려면 상상 이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지. 적자 볼 생각은 꿈에도 없으니 내 걱정일랑 마시오. 나는 그보다 당신 마음이 바뀐 이유가 궁금하군. 갑자기 왜 사회봉사에는 관심을 갖는 거요?”
“글쎄요. 상류층 놀이? 돈 쓰는 법을 알고 싶어서? 착한 일을 하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니까?”
“차라리 유기견 한 마리 키우시오. 그게 돈이 덜 들겠군.”
현무는 소리 내어 웃다가 박휘소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무는 그가 좀 더 진지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을 알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도 이제 사회적 명망이라는 게 필요해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
키르손을 박휘소에게 맡기고 며칠 후. 서울 외곽.
“이 집은 KCGP 트레이딩 그룹 CEO가 소유하고 있던 별장입니다. 보안에 철저하게 신경 쓰시던 분이라 주변 동선까지도 꼼꼼하게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담을 둘러놓았죠. 배후에 있는 산은 출입조차 불가능하고, 3천 평의 정원은 말씀하셨던 확장성과 운동 공간을 확보하기 딱 적당합니다. 집터가 좋아서인지 들어왔던 사람들은 모두 잘 돼서 나갔다더군요.”
부동산 중개인은 오랜만에 만난 거물들을 향해 신나게 설명했다.
국내에선 찾아보기도 힘든 외제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그들은 예산 제한 없이 조건에 맞는 최고의 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던전 개방 이후 한동안 서울 부동산 시장은 상당 기간 불황이었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인은 필사적이었다.
그중 지금 소개한 집은 그가 가진 매물 중 가장 최고급의 것이었다.
수천 평의 정원과 3층으로 지어진 언덕 위의 대저택은 그들을 틀림없이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거물들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어때 보여?”
“정원은 넓긴 한데 입구 주변에 주택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여기 국정원 근처잖아요. 저 산만 넘어가면 국정원이라 영 찝찝한데. 개발 제한도 걸려 있고요.”
“그래. 게다가 언덕이라 정원이 내려다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기 원래 주인은 사업이 망해서 사기죄로 구속됐네.”
강현무는 부동산 중개인을 바라보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미 최고급 주택은 돌 만큼 돌았다. 남자 쪽이 헌터라는 말을 듣고 능력자들이 찾는 취향의 집도 소개해 줬지만 그들이 원하는 부지가 어떤 곳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중개인 아저씨, 조건 다시 설명드려요? 서울 근교, 인적이 드물 것, 넓을 것, 보안이 강할 것. 이 네 가지만 충분하면 예산은 상관없다니까요.”
정말 없다면 현무와 유민은 이대로 돌아갈 기세였다. 부동산 중개인은 머리를 쥐어 짜내 봤지만 딱히 짚이는 바가 없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은 좋은 집터라기보다 군부대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뭐, 핵 방공호 같은 거라도 찾고 계시는 겁니까? 그런 곳이 아니고서야…….”
그때 현무의 눈이 반짝였다.
“핵 방공호? 그런 것도 있어요?”
부동산 중개인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래전에 기억 저편에 파묻었던 오래된 매물 하나가 떠올랐다.
부동산 중개인으로서의 이익이냐, 양심의 가책이냐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결국 한참 뒤 이익 쪽에 굴복했다.
“하나 있긴 합니다만…….”
***
부동산 중개인이 안내해 간 곳은 산비탈에 세워진 석조 건축물이었다.
이때까지 봤던 집들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었는데, 절반 정도는 경사진 산속에 파묻혀 있었다. 산으로 올라오는 길을 제외하고는 주변 모든 곳에 철조망으로 둘러져 출입이 불가능했다.
“맘에 드는데.”
울창한 숲에 가려진 석조 주택은 오랜 시간 방치된 것 같았지만 상당히 튼튼해 보였다. 입구부터가 묵직한 느낌이 드는 철문이었다.
“산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길목은 단 하나로, 감시가 용이하고, 산 전체가 이 저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과 성남 사이에 걸쳐진 곳이고요. 주변에 민가라곤 걸어서 30분쯤 걸어가야 나오는 희귀한 곳이지요.”
“추리물 보면 꼭 이런 데서 살인 사건 일어나던데.”
유민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을 본 현무가 추궁을 시작했다.
“말해 봐요, 아저씨. 왜 이런 곳을 진작에 소개 안 해 줬어요?”
“……여긴 집이 아니라 정말 방공호 같은 곳입니다. 군부 독재 시절에 피해망상증 걸린 졸부가 짓기 시작했고, 북에서 핵을 쏠 거라고 믿던 아들이 진행했죠. 그리고 던전 개방이 시작된 이후에 언젠가 던전에서 괴물들이 기어 올라와 인류를 멸망시킬 거라고 믿던 손자가 완전히 완성시켰어요. 덕분에 군사 공격과 폭격, 몬스터들의 공격까지 대비가 된 방공호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장점 같은데.”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셋 모두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아십니까?”
“오, 나 이런 이야기 완전 좋아. 어떻게 됐어요? 미쳐서 서로 죽였나? 아니면 유서도 없이 자살했어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대로 실종?”
유민이 두근두근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부동산 중개인이 벙찐 얼굴로 바뀌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앞서 말한 둘은 정신 병원에서 죽었어요.”
“에이, 뭐야. 그건 당연하잖아요. 망상증 환자들이었는데.”
“문제는 이 방공호를 완성시킨 손자입니다. 그는 몇 년 전에 벙커 밖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됐어요. 그토록 밖이 무서워 틀어박혀 있던 사람이 벙커 안에서 뛰쳐나오다가 죽은 겁니다. 범인은 누군지도 알 수 없었지요.”
“보안이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나요?”
현무가 물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오는 길은 단 하나뿐이지요. CCTV도 물론 설치되어 있고, 올라올 방법은 아무리 찾더라도 벙커 입구는 하나뿐인데 거기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지요. 풍광도 안 좋은 벙커를 사겠다는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정부에서도 준(準)군사 시설로 유사시 징발할 수 있다는 공지를 보내서 법정 공방까지 벌인 적 있지요.”
“내부는 어떻죠?”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1대째에 만들었던 비밀 방이며 비밀 통로 따위가 2대째에 설계도로 공개되긴 했었는데, 3대째에 또다시 미친 듯한 불법 개조를 했거든요. 때문에 안정성도 보장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이제 왜 제가 매물로 소개해 드리지 않았는지 아시겠죠?”
저주받은 불법 건축물이다, 이거 아닌가.
현무는 귀신을 믿지 않기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이 집에 자신 말고도 유민도 함께 살 것이란 점이었다.
과연 유민이 오래되고 저주받은 데다 음습한 반지하 건물을 좋아할지 의문이었다.
“유민 네 생각은…….”
“오빠, 이 집 산다면 꼭 안에 스펙트럼 카메라나 녹음 장치 같은 거 설치해 봐요! 유령 같은 거 찍힐지도 모르잖아요! 응?”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지만.
“여자들은 무서운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여자들이 얼마나 살인마나 고어 영화에 매료되는지 알면 놀랄걸요.”
과연. 현무는 일단 사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어차피 집을 하나만 살 생각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쉘터 개념으로 마련해 둘 생각이었다.
자세한 건 설계도와 내부를 살펴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겠지만, 큰 문제가 없으면 살 것 같았다.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정말 사시려는 겁니까? 어, 그게, 사실 가격은…….”
부동산 중개인은 시세대로의 가격을 꺼냈다. 하지만 현무가 단호하게 잘라 냈다.
“오래됐으니 보수도 해야 할 테고, 인테리어도 새로 하고, 사연 있는 집이니 그것도 감안해야겠고.”
유민도 말을 보탰다.
“사연 있는 집을 털어 낼 기회니까 그것도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 세금만 빠져나가던 악성 자산을 저희가 처리해 주는 데다, 인터넷이나 기타 설비도 싹 다 새로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소유주분께 양심적인 제시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그건…….”
“대신 현금으로 치르죠.”
부동산 중개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한참 통화 끝에 새로운 가격을 들고 왔다.
처음 제시했던 가격의 절반이었다. 현무와 유민은 서로의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저,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는데요?”
“조건요?”
“예. 일단 전화 바꿔 드리겠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은 현무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현무는 왜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자신에게 바로 말하는 건가 했지만 일단 받아 들었다.
[강현무 씨?]중개인이 내 이름을 말했나? 현무는 순간 의심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핸드폰에서 마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종 연구소의 도원경 소장입니다. 강현무 씨가 저희 이능관리부 자산에 관심이 있으시다니 기쁘군요. 안 그래도 한번 만나 뵈었으면 했는데, 마침 서울에 올라와 있던 참이니 이 기회에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