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59)
지옥에서 독식-59화(59/346)
59화. 플루드 (1)
“우와! 오빠, 화장실에 있던 모기 봤어요?! 엄청 크던데!”
“아, 그거…….”
“산이라 모기도 엄청 큰가 봐요. 모기약을 잔뜩 뿌렸는데도 안 죽어서 백과사전 떨어뜨려서 잡았다니까요. 그런데도 안 죽고 꿈틀거리길래 에프킬라에 라이터 붙여서 태워 버렸어요.”
“…….”
“어쩌면 그게 이곳 집주인을 살해한 원흉이었을지도!”
현무는 차마 그게 자신의 권속이었다는 말은 꺼내지 못하고 가엾은 모기에게 애도를 표했다.
물론 천국에 모기를 위한 자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겠지만.
모기를 풀어 놓았던 것은 딱히 유민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권속을 얼마나 조종할 수 있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시야 밖에 있어도 더듬더듬 장님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했는데, 어느새 화장실까지 간 듯했다.
현무와 유민이 있는 곳은 한 고층 호텔 스위트룸이었다.
방공호는 지금 밤낮 없는 개·보수 작업에 들어가 머무를 수 없었다.
세종 연구소에서 구입했을 때 이미 현대화 작업을 마친 듯했지만 인테리어 면에서는 개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뭐 하고 있었어요?”
“아, 주식.”
“엥? 웬 주식요. 오빠,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 돈이 모자라는 건 아닐 테고, 노후 대비?”
“비슷하려나. 뭐 좀 아는 거 있으면 도와줄래? 우리나라 금융 사이트는 죄다 뭘 깔고 인증하고 난리쳐야 해서 영 복잡하네.”
“제 계좌가 있으니까 도와줄까요? 뭐, 사고 싶은 거 있어요?”
“아, 필요한 건 이미 사 뒀고. 음, 선물 거래라고 알아?”
유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무를 바라보았다.
“첫걸음을 도박으로 떼시려고 하시네. 그게 뭔지 모르는 건 아닌 것 같고. 뭐, 들은 거 있어요? 내부 정보는 불법인 거 아시죠?”
“이제 와서 불법을 따지기도 뭐하지만…… 내부 정보는 아니니까 걱정 마.”
현무는 슬쩍 지옥에서 가져온 스크랩북을 보며 말했다. 미래에서 가져온 정보라면 꼭 내부 정보라곤 할 수 없겠지.
“그럼 뭐 파시게요?”
현무가 회사 이름을 몇 가지 말하자 유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성을 비롯해 마나 산업이나 던전 부속물로 큰돈을 벌어들이는 회사, 그리고 국내 유수의 기업들 거의 대부분이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망할 리 없는 회사들. 현무는 그 회사들의 주가가 며칠 후 폭락할 것에 배팅하고 방금 산 주식들을 시장에 내걸었다.
“서울에 핵이라도 떨어져요? 그래서 방공호도 산 거예요?”
“그걸 내가 알았으면 나라를 떴지.”
유민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현무가 하는 것을 따라 했다. 유민의 말대로 현무는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휘청일 사건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사건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주식을 사들일 작정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돈이라면 수정이끼를 내다 파는 걸로 충분했다.
현무의 목적은 주식을 사들여, 지분을 확보하는 것 자체에 있었다.
‘물론 의미 있는 지분을 확보하기에는 아직 현금이 부족하지만.’
곧 벌어질 사건은 그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다 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 계획까지도 준비되어 있다.
현무가 계획을 하나씩 진행할 때마다 시장이 들썩이고, 그걸 이용해 차차 주식을 늘려 갈 생각이었다. 물론 현무가 아닌 현무가 가진 회사의 이름으로.
‘태성만 한 뒷배경을 만들어 놔야지.’
그 과정에서 무수한 피해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부터 피해자 발생은 현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현무는 그저 반드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시기를 조정만 할 뿐이었다. 막을 수 있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현무는 핸드폰을 들어 박휘소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배송 성공」
짧고 간결한 문자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이제 문자가 온 지 3일이 지났으니 슬슬 준비해도 좋을 것 같았다.
현무는 백골이 남겼던 스크랩북을 쓰다듬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윤곽은 있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현무는 자신이 흐름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 이것은 첫 번째 단계였다.
“오빠, 그러고 보니 그건 뭐예요? 사진첩?”
유민이 현무가 든 스크랩북을 보고 물었다.
현무는 짧게 대답했다.
“멸망에 관한 기록.”
유민은 잠시 현무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 아직도 중2 병이에요?”
“……아니, 그게…….”
“괜찮아요. 능력자들 중에서는 능력 각성하고 나서 다시 겪는 사람도 흔하대요. 막 자기 스킬에 주문이나 기술명을 붙여서 외친다거나. 그러면 위력이 더 강해진다고 믿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근거 없는 말이라는 건 아시죠?”
현무는 좀 억울해졌다.
진짠데.
***
늦은 오후.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절두 던전 주변은 산책로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삼엄한 경비 병력이 세워져 있는 던전이라고는 해도 일상적으로 마주하면 두려움도 덜해지는 법이다.
몬스터 유출이 일어나더라도 대개 장벽 안에서 해결되었으니, 그냥 불편하게 느껴지는 장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절두 던전의 악명은 높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풍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은 있었다.
찰칵.
던전 입구가 들여다보이는 장벽 위에서 한 공무원이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첩에는 수백 일에 걸친 기록이 담겨 있었다. 공무원은 핸드폰 사진첩을 천천히 넘기며 이전에 찍은 다른 사진들과 달라진 점들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가끔 석조물의 배치가 달라질 뿐, 크게 다른 점은 느끼지 못했다.
“거, 뭐 찍는 겁니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공무원은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뭡니까? 일반인은 출입 금지인데요.”
“헌터라고 하니까 그냥 들여보내 주던데요?”
남자는 헌터 등록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강현무.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생김새는 그다지 헌터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장이나 장비도 보이지 않고, 나이도 지나치게 어려 보였다. 하지만 군인들은 수상해도 최대한 헌터들을 많이 옆에 두려고 했다.
아무래도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헌터가 더 나으니까.
“강해철입니다. 사진은 제 개인적인 연구 때문입니다.”
“연구요?”
“유동형 던전 입구의 형태로 몬스터 출몰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가…… 뭐 그런 연구입니다.”
“유동형 던전이요? 아, 들어 본 적은 있는데. 던전 상태가 자주 변한다면서요?”
강해철은 현무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놈이 헌터가 될 수 있는 거지? 능력자 등급만 받으면 그냥 시켜 주는 건가?
강해철은 불합리함을 느꼈지만 현무가 그저 신입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고 계신 것 같군요. 상태가 유동적이라는 말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략하러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던전을 탐사하는 셈입니다. 지도도 소용없고, 몬스터 정보도 소용없어요. 숫자며 강함의 정도며 매번 바뀌니까. 그래서 공략도 오래 걸리는 편이죠. 가장 큰 문제는 던전 입구가 불안정해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도 쉽다는 겁니다.”
“몬스터가요?”
현무는 고개를 빼 내밀고 절두 던전을 들여다보았다.
깎아지른 절벽에 검은 현무암의 석조물들이 기생하듯 돋아나 있었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환경이라는 점은 청계 던전과 비슷했지만 철망에 둘러싸인 장벽, 무장하고 순찰을 도는 군인들과 대기하며 상주중인 헌터들 등, 경계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삼엄했다.
“걱정 마세요. 그러니까 그 몬스터 막으려고 이렇게 상주 헌터도 있는 거니까요. 어지간한 몬스터는 여길 못 뚫습니다. 다만 걱정해야 할 문제는 플루드 현상입니다.”
“플루드요?”
“8년 전에 평양 근처에서 백두 던전이 플루드를 일으켰다는 거 들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플루드는 유동형 던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죠.”
백두 던전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5성급 던전에서 플루드 현상이 일어난 곳이었다.
북한의 폐쇄적인 경향 탓으로 던전의 존재조차 몰랐던 세계는 플루드 현상으로 몬스터들이 평양을 뒤덮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북한 내부에서 고요한 내전이 일어났고, 버섯구름에 대한 목격담과 방사능 검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왔다. 결과는 몬스터의 승리였다.
주변국들은 잠시 난민으로 인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넘치도록 증가한 5성급 몬스터들을 제거하기에는 시간도 예산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귀중한 전력인 헌터를 사지로 내모는 결정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북한군 대신 북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몬스터들이랑 싸우고 있죠.”
“이지태가 5성인 태백 던전도 공략했다는데 백두 던전도 금방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해철은 현무의 말에 코웃음 쳤다.
“하, 고정형 던전인 태백 던전이 유동형, 그것도 플루드가 터진 백두 던전이랑 똑같겠습니까? 유동형만 해도 헌터들이 죽으려고 하는데, 플루드면 몬스터 숫자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실상 한 단계 올랐다고 봐야죠. 만약 최초의 6성 던전이 백두 던전으로 지정되더라도 저는 놀라지 않을 겁니다.”
현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플루드, 플루드라……. 그렇군요. 그럼 여기서도 플루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겠네요?”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때까지 플루드는 유동형 던전에서만 일어났으니 가능성은 존재하죠. 뭐,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클랜에게 맡겨 던전 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변이 감지됐다면 클랜에서 보고가 들어왔겠죠.”
“그렇군요. 요즘 뭐, 이변이라도 있었나요?”
“글쎄요…… 요즘 던전에서 어울리지 않는 고블린이 발견됐다느니, 어린아이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느니 하는 말이 있긴 한데, 고블린 정도는 딱히 주목할 정보가 아니라서. 아, 그리고 사진을 찍는 건 유동형 던전 입구가 매일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 모습과 현재 모습을 비교하면서 던전 상태를 추측해 보는 거죠. 유난히 불안정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면 그날은 몬스터가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 같기도 해서.”
“그럼 오늘은 위험한 날인가요?”
“글쎄요. 사실…… 오늘 패턴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사진 한번 보여 주시죠.”
그러자 강해철은 약간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어, 일반인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일 겁니다. 사실 이건 헌터들이 징크스 삼아 하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찍기 시작한 거라서, 아직 유의미한 대조를 이루기는 좀 부족해요.”
“과연…….”
강해철은 쑥스러워했지만 일단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때까지 그가 보고서를 쓰고 상부에 올려 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헌터가 자신의 연구에 관심을 가져 주니 기분이 좋긴 했다.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던 현무는 씩 웃으며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훌륭한 일을 하시는군요. 꼭 언젠가는 도움이 되실 겁니다.”
현무의 칭찬에 강해철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하는 일이 허튼짓이라며 비웃지 않는 사람은 현무뿐이었다.
하지만 현무는 정말로 그가 하는 일이 허튼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확실해. 오늘이다.’
현무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며 절두 던전으로부터 멀어졌다.
강해철이라는 공무원의 가정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서, 플루드가 일어난다.’
오늘 플루드가 일어나고, 강해철이라는 공무원이 수년간 연구해 온 자료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가 찍었던 사진을 기반으로 연구가 시작되어, 수년 뒤 플루드가 일어날 징후를 미리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아는 것은 강현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