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60)
지옥에서 독식-60화(60/346)
60화. 플루드 (2)
현무는 인벤토리에서 백골이 남긴 기록문을 꺼내 들었다.
결국 이 글에 멸망에 관한 기록 대신 백골 기록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둠스데이 다이어리’라는 명칭도 생각해 봤지만 그걸 붙이면 정말로 유민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을 것 같았다.
백골 기록문 가장 첫 장.
맨 처음 나온 사진은 다름 아닌 절두 던전 입구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공무원이 찍었던 사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그마한 사건 수십 개가 누적된다.
인류 멸망은 말할 것도 없다. 멸망의 전조는 하나가 아니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능력자들의 수, 잦은 던전들의 속성 변화, 예상치 못한 이변, 진화하는 몬스터들의 대응, 새로운 던전들의 출현…….
그 모든 정황들이 백골 기록문에 기록되어 있었다.
현무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기에 일어나는 사건.
절두 던전 플루드 현상이었다.
현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대 규모의 병력이 경계 중이었고, 헌터들과 전차까지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주둔 중이었다. 사태가 발생한다면 즉시 근방의 주둔군과 클랜에게도 연락이 갈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는 잘 대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현무는 결과를 알고 있었다. 플루드 발생 10분 만에 이 장벽은 깨진다.
예상치 못한 몬스터들의 수와 힘에 방어선이 뚫리고 합정동 일대에는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다.
소요 사태는 새벽까지 이어진다.
희생자는 1만여 명에 육박하고, 재산 피해는 헤아릴 수도 없다. 뒤늦게 방산 비리와 헌터들의 유착 관계 등이 밝혀지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수도는 치명상을 입은 뒤였다.
이 때문에 한국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이어져 그 뒤에 따르는 재앙도 미처 대비하지 못하게 된다.
현무는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2개월 뒤에 일어날 일이지만.’
본래부터 불안정한 절두 던전이지만, 플루드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
현무가 키르손에게 시킨 것은 그 조건을 일찌감치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현무가 예상한 시간은 사흘. 키르손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2개월 뒤보다는 지금보단 나으니까.’
2개월 뒤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더 벌어진다. 그것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진 감도 있었다. 절두 던전 플루드 이후로 세계 곳곳에서 플루드가 연달아 이어지고, 던전의 상태가 급변하고, 몬스터들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
난이도 상승.
인간은 튜토리얼이라는 유년기를 끝내고 드디어 본 게임에 접어들게 된다.
절두 던전 플루드는 그저 신호탄에 불과했다. 현무는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다. 단순한 헌터로는 안 된다. 클랜의 장 정도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그보다 더 높게.
더 높게.
별을 움켜쥘 정도로 높아져야만,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가 있다.
현무는 가볍게 심호흡하고 절두 던전을 바라보았다. 인근은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삼엄하게 경계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플루드가 벌어질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벌어질 일은 벌어지지.’
현무는 가까운 강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그리고 난이도: 지옥에서 자주 하는 호흡법을 시작했다.
이제 미세먼지 따위로 죽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현무는 평범하게 숨 쉬는 것도 이 호흡법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도로가 붐비기 시작한 저녁 6시.
갑작스럽게 절두 던전 입구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
타다다다다─.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방송국 헬기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서치라이트를 쏟아 냈다.
번쩍거리는 섬광과 서치라이트 불빛이 콘서트 장을 방불케 했고, 주변 사람들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온갖 방송국 중계 차량들은 고가 도로를 점령하고 절두 던전 현황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KBC의 기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기색으로 절두 던전 현황을 중계했다.
[지금 이곳은 몬스터가 출현 중인 절두 던전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총성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출현하는 몬스터가 증가하면서 플루드가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습니다!]비춰진 던전 입구에는 검은 석재들이 온통 무너져 있었다.
자욱하게 낀 흙먼지 사이로 붉은 눈을 빛내며 달려드는 수인종 몬스터들이 장벽에 매달리다가 총탄 수백 발을 맞고서야 쓰러졌다.
그때 한 놈이 장벽에 매달려 철조망을 몸에 휘감은 상태로 군인을 잡아챘다. 군인이 끌려 들어가는가 싶은 순간, 놈은 곧 헌터에게 얻어맞고 장벽 안쪽으로 나가떨어졌다.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둘러 플루드를 선포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달리, 정부와 클랜은 던전 관리에 대한 무능을 지적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이런 우라질!”
절두 던전의 관리 책임을 맡은 전능련의 강북 지부장 서태경은 욕설을 내뱉으며 TV를 꺼 버렸다.
“누가 전전긍긍한다고 그래! 섣불리 선포했다가 패닉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고!”
“하지만 지부장님, 아무리 봐도 플루드가 맞는 것 같은데 다른 클랜들 전면 지원이라도 받으려면…….”
“그걸 누가 몰라!”
서태경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방송에서 한 말대로 그는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맞았다. 이 와중에도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부분이 있을까 봐 최대한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상황 다시 말해 봐.”
“1차 방어선이 뚫렸고, 2차 방어선에서 막는 중입니다. 하지만 몬스터의 수가 워낙 급속도로 늘고 있어서…….”
서태경은 머리가 아파 왔다. 몬스터 유출 사태는 헌터들이 던전에서 뭔가를 잘못 건드렸거나, 몬스터 숫자가 지나치게 늘어났다는 뜻이다.
대개 던전 안에서 몬스터들은 자기들끼리 생태계를 구축해 수를 조절한다. 하지만 헌터의 개입이나 유동형 던전 특유의 이변으로 인해 폭증하기도 한다. 몬스터 유출은 대개 그래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서태경은 제발 이번에도 후자이길 바랬다.
플루드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였으니까.
“정말 3성 던전 플루드면 우리 전력만으로는 못 막아. 강남 지부는? 다른 클랜들에게서는 연락 없나? 오대성 단장님은?”
“오대성 단장님은 지리산 던전에 고립된 헌터들을 구하러 가셨고, 이지태 대표는 크롬인지 뭔지 하는 단체의 발대식에 참석한다고 스위스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박도령 단장은 항상 그렇듯 연락이 안 됩니다.”
서태경은 이를 악물었다. 하필 이 상황에 헌터들의 중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능력자들이 일시에 자리를 비운 것이다.
“부대표들은? 노하을이나 마파람 팀 같은 애들 있을 거 아냐?”
“오고 있다고는 합니다. 가장 가까운 건 호환마마의 노하을 팀이……. 하, 하지만 다른 클랜들에게도 연락이 갔으니 금방 지원이 올 겁니다.”
“당연히 서울권 헌터들이 모이면 막기야 막겠지! 하지만 단장 급이 없으면 피해가 클 테니까 하는 말 아냐!”
숫제 비명 같은 절규였다.
절두 던전이 있는 합정동 인구만 해도 2만 명이다. 군이 대피시키고 있다고 해도 2차 방어선이 뚫리면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산간 오지에서 발생한 플루드 같은 경우는 몬스터들이 목표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 배회하다가 각개 격파당하지만, 서울은 사방이 타깃이다.
“몬스터들이 넘어왔다!”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달려오는 것은 키가 가슴께까지 오는 쥐머리의 몬스터, 랫맨이었다.
“랫맨…….”
서태경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수인종 몬스터는 고블린이나 오크보다 월등하게 강하다. 그런 수인종 몬스터들 중 랫맨은 최악까지는 아니지만 그 개체수가 어마어마한 데다 협공에도 능숙했다.
놈들은 결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즉, 장벽 너머에도 엄청난 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태경은 잇소리를 내며 장벽을 넘어온 몬스터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아후우우우─!”
랫맨들이 움찔하며 서태경을 주목했다. 그의 스킬, ‘포효’는 수인계 몬스터들에게 유효한 스킬로 전의를 꺾고 느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랫맨들이 서태경의 포효에 움찔한 순간, 헌터들이 달려들어 공격했다. 하지만 단숨에 랫맨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고레벨 헌터는 없었다.
그래도 자신의 스킬이 유효하다는 것을 느낀 서태경은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였다.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사방에 돌 파편이 튀어 올랐다. 순간 얼굴 정면으로 날아든 콘크리트 덩어리에 서태경은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한순간 의식이 아득해졌지만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웅웅거리는 이명 속에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벽이 무너졌다!”
서태경은 사방에 날린 파편으로 헌터들 몇몇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벽 위에서 싸우던 군인들이 허겁지겁 부상자들을 이끌고 빠지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제 헌터들이 나설 타이밍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충격에 움직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무너진 장벽을 짓밟으며 키가 2.5m에 육박하는 거대한 늑대인간이 나타났다. 서태경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놈을 올려다보았다.
‘늑대인간…… 보스 몬스터잖아.’
벽이 쪼개진 모양을 보니 ‘스킬’을 사용하는 놈이 분명했다. 보스급 중에는 그런 놈들이 종종 있었다.
벽이 넓게 뚫리자 화망이 흩어지고, 늑대인간의 지휘를 받는 듯한 랫맨들이 물밀듯 밀려오고 있었다.
놈을 지금 잡지 않으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테지만, 지금 당장 이 많은 수인종 몬스터들을 뚫고 늑대인간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서태경의 어깨를 짚었다.
“여기서부턴 제가 맡죠.”
***
[보이십니까! 장벽이 돌파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랫맨들이 밀려들고 있습니다!]방송국 기자들은 여전히 절두 던전 상황을 생중계 중이었다. 장벽이 돌파된 것을 보면 기자라도 겁을 먹고 도망갈 법한데 기자는 여전히 고가 도로 밑을 내려다보며 중계했다. 기자 정신이 투철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전능련의 서태경 지부장이 영웅적으로 막아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랜들의 지원은 아직일까요?]근방에 사는 헌터들이나 대기 중이던 헌터들은 실시간으로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어나는 몬스터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 지원은 미미했다. 몬스터들의 숫자에 겁을 먹고 물러나는 헌터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플루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건 이제…… 잠깐, 저게 뭐죠?]기자가 플루드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 무리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곳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있었다.
[저, 저기 누구죠? 지금 몬스터 무리 한복판에 누군가가 단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무리 귀가 민감하게 단련되었다 해도 수백 마리의 랫맨과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에서 기자의 목소리를 듣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쏟아진 서치라이트를 보고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는 대충 짐작했다.
현무는 접근해 오는 랫맨 하나를 바라보았다.
[랫맨(LV 17)]칭호조차 발동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현무는 괜찮을까 생각하면서도 요굴렘의 시련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간단했다. 난이도: 지옥에서는 쓰레기 주워 먹는 쥐새끼도 레벨 15는 한다.
현무를 향해 랫맨이 달려들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느리고 약해 빠진 공격이었다. 현무는 가볍게 피해낸 뒤 손등으로 랫맨의 턱을 후려쳤다.
콰득.
“응?”
그 순간 랫맨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몇 바퀴인가 머리가 휙휙 돌아갔다. 마치 걸레를 쥐어짜듯 뒤틀린 랫맨의 모습에 현무는 당황했다.
“뭐야, 뭐가 이렇게 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