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7)
지옥에서 독식-7화(7/346)
7화. 지옥에서의 첫날 밤 (6)
창문에 쳐 놓은 바리케이드 한쪽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아까 모기들이 들락날락거리다가 헐거워진 건가? 지옥 모기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순간 현무의 온몸이 경고를 울리기 시작했다. 경직되었던 현무의 몸은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 책상 밑으로 피했다.
그때 바리케이드 사이로 작고 가느다란 녹색 손가락이 기어들어 왔다.
콰직, 뚝, 뚜둑.
현무의 제작 스킬로 단단하게 박아 놓았던 바리케이드는 그 가느다란 손가락에 단숨에 박살 나 떨어져 나갔다. 바리케이드에 발라 놓은 독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현무는 이렇게 숨어 있을 게 아니라 당장 도망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무가 정성 들여 만든 쉘터는 이 낯선 침입자로부터 조금도 방어벽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현무가 움직이기도 전에 창문 너머로 녹색 손가락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아이처럼 작고 마른 몸에 붉은 모자를 쓴 녹색 피부의 존재. 노란 눈동자가 희번덕거리며 쉘터 안을 훑고 있었다.
‘고블린?’
현무는 난생처음 보는 제대로 된 몬스터의 모습에 당황했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했던 것은 과하게 덩치가 크고 흉포한 벌레나 작은 짐승들이었을 뿐, 고블린처럼 제대로 된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고블린에 대해 아는 거라곤 대처 요령 정도였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던져 주의를 끈 다음 도망친다, 였던가.’
야생 짐승을 대하는 요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지능이 낮은 몬스터가 고블린이었다. 하지만 놈은 달라 보였다. 고블린은 얼어붙은 현무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현무를 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옥 최강자’ 칭호의 효과로 레벨 대비 능력치가 상승합니다.]현무는 발작적으로 몸을 튕겨 책상 밖으로 나왔다. 이 메시지가 떴다는 것은 상대가 분명히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현무가 적의를 가졌을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칭호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고블린은 덩치가 작고 허약해 보였다. 가는 팔다리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현무는 놈이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뜯어낸 것만 봐도 저 가느다란 팔 안에는 현무의 목을 잡아 뜯을 만큼의 힘이 숨어 있을 것이었다.
[레드캡 고블린(LV 20)]“…….”
레벨 차이는 단순히 큰 정도를 넘어 압도적이었다.
“빌어먹을!”
현무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고블린은 재밌다는 듯 바라보다가 여유 있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사냥할 수 있지만 놀이라도 하는 듯 즐기는 모양새였다.
현무는 곧장 2층 계단을 뛰어 올랐다. 계단 끝 부분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덫을 설치해 두었다.
현무는 덫을 뛰어넘었지만 고블린을 기다리진 않았다. 덫이 고블린의 발목을 잡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블린이 보여 준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놈은 가뿐하게 벽을 타고 달리더니 천장을 박차며 2층으로 뛰어 들어왔다.
묘기라도 보여 주는 듯한 모습에 현무는 기가 질렸다. 하지만 고블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도약했다.
고블린은 단숨에 현무의 앞을 가로막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놈은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현무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 자세히 보니 놈은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부랑자 같은 고블린의 모습과는 달랐다. 가죽 옷과 징이 박힌 신발을 신고, 유독 새까만 왼손에는 딱 봐도 심상찮아 보이는 커다란 단검이 들려 있었다. 현무는 문득 고블린의 검은 왼손에 새겨진 보랏빛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것을 일일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까.
‘도망갈 구석이 없군.’
고블린은 통통 발을 튕기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큭!”
현무는 가까스로 허리를 틀어 단검을 피할 수 있었다. 단검은 목젖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하게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블린은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현무는 알고 있었다. 칭호 효과 때문에 능력치가 증폭된 덕분에 피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
그때 고블린은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고블린이 말을 하다니.
고블린은 고함이나 비명 지르는 것 외에는 달리 언어 체계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고블린은 체계적이고 발음이 분명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강현무가 대답하지 못하자 고블린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고 현무는 은밀하게 인벤토리에서 지옥 다트를 꺼내 들었다.
‘놈이 방심하고 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야.’
고블린을 상대로 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는 것보다는 낫다. 현무는 재빨리 지옥 다트 세 개를 집어 던졌다. 순간 고블린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왜애앵!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옥 다트가 날아갔다. 모든 것이 현무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다. 쾅, 콱, 콰직! 세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진 뒤, 현무는 벌어진 상황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지옥 다트 둘은 반듯하게 잘려 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날아드는 지옥 다트를 잘라 낸 고블린의 솜씨도 놀라웠지만, 다른 하나 때문에 그 솜씨는 현무의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져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고블린의 손목에 박혀 있었다.
고블린은 잘라 낸 오른 손목을 움켜쥔 채로 으르렁거리며 현무를 노려보고 있었다.
현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손에 지옥 다트가 박혀 있다고 손목을 잘라 낸 건가? 그때 현무는 고블린의 잘린 손목에 박혀 있는 지옥 다트에 자신의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이 살짝 베여 흘러나와 있던 바로 그 독혈.
잘려 나간 고블린의 손목에선 기이한 수포가 부글거리며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고, 지독한 냄새를 내뿜는 검은색 고름이 흘러나왔다.
‘저딴 게 내 몸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고?’
에일리언도 아니고 대체.
현무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피가 묻어 있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
현무는 빠르게 다시 지옥 다트를 던지려 했다. 한번 맞춘 걸로 이렇게 된다면 잘하면 죽일 수도…….
“───.”
그 순간, 목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제야 강현무는 고블린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무가 움직인 순간 고블린은 그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속도로 공격해 온 것이었다. 등 뒤에서 비웃는 듯한 고블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뜨끈한 피가 상의를 적시는 것을 느끼며, 불이 꺼지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번에는 말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왔다.
“키륵, 인간이 아직, 남아 있었나. 킥.”
놈이 장난을 그만두기로 한 순간이 현무의 목숨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애초부터 현무가 지옥 다트로 놈을 맞춘 것은 운이었을 뿐이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동안 고블린의 조롱을 감내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고블린은 현무의 기대대로 죽어 가는 그를 조롱할 뿐, 마무리 짓지 않았다.
모든 것이 기대대로였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최후의 1인’ 칭호 특전으로 재생을 시작합니다.]현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수없이 죽어보면서 저 메시지를 봤던 경험에 의하면, 재생 특전은 하루에 한번 50% 까지의 체력을 회복시킨다. 출혈을 감안해도 버틸만했다.
애초부터 현무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하지만 낯선 대면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던 패턴으로 볼 때,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백 번의 패배와 수십 번의 죽음마저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제 하나만은 확실했다.
고블린에게는 졌지만, 이 지옥에게서는 드디어 첫 승리를 거뒀다는 것.
고블린의 등 뒤로 창문 밖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퀘스트 성공!] [‘지옥에서의 첫날 밤’ 퀘스트에 성공하였습니다.] [‘실버 박스’ 1개가 보상으로 제공됩니다.] [레벨 대비 난이도 보정으로 보상이 상승합니다.] [‘실버 박스’ 1개가 ‘골드 박스’ 1개로 변화합니다.] [다음 퀘스트까지 귀환석이 활성화됩니다.] [다음 퀘스트까지 남은 시간 14일 0시간 0분 0초.]현무는 귀환석을 꽉 움켜쥐었다.
곧 눈앞이 아득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
촤아아아아.
쏟아지는 비가 수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짙은 구름이 낀 밤하늘은 무너질 듯 휘청거리며 비를 쏟아 냈다.
현무는 눈을 똑바로 뜬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보고 냄새 맡았던 지옥의 땅이 거짓말 같았다.
현무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목을 따갑게 만드는 미세먼지는 없다.
입을 벌리고 빗물을 받아 마셨다.
내장을 쥐어짜는 독극물도 아니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고인 물을 손으로 떠올렸다.
이물질이 떠 있긴 했지만 지옥에서 마셔야 했던 물에 비하면 한없이 깨끗한 청정수였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를 죽이려는 몬스터도, 온갖 독과 함정을 품고 있는 잡초도, 방금 전까지 베여 있던 목의 상처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주변은 그저 평범한 하천일 뿐이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지만, 현무는 드디어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안전하다’는 감각이었다.
순간 현무는 다리의 힘이 풀려 휘청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현무는 어이없다는 듯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아이처럼 박장대소하던 현무는 개천에 흐르는 물을 걷어차고 몸을 닦아 냈다.
영락없이 미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무는 이렇게 소란스럽게 물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하하하!”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현무는 미친 사람처럼 개천을 뛰어다니며 물을 튀겼다. 현대로 돌아오면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잔뜩 있었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은 쏟아지는 빗물조차도 맛있었다. 심지어 이 개천에 흐르는 물조차 달았다.
“아, 그래!”
현무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캐러멜이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왔으니 캐러멜쯤은 슈퍼마켓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테지만, 현무는 그 캐러멜 한 개를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조심하면서 깠다.
현무는 그 짙은 갈색의 정육면체 덩어리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곧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에 현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흐, 흐흐흐흐…….”
현무는 승리자의 웃음을 실실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겼다.
아버지, 저는 당신이 먹인 엿을 극복하고 이렇게 또 살아남아 버렸습니다!
현무는 귀환석을 꽉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이걸 잡아 떼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손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현무는 자신이 정말 미쳐서 잠깐 꿈이라도 꾼 건 아닌지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챙겼던 물건들과 수정이끼,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있었다.
분명한 현실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엿을 먹인 것은 분명했지만 달콤한 엿이었다. 먹고 뒈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만한 엿.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현무에게 기회를 준 것이겠지만,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파밍하기 좋은 지옥으로 몰아넣는단 말인가.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군요, 아버지.”
현무는 하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아니지. 생각해 보니 댁이 거기 있을 리 없잖아.”
다시 손가락을 땅 쪽으로 내렸다.
“부디 거기서 오래오래 푹 쉬시길 빕니다.”
“……현무 씨?”
그때 빗소리에 섞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에 묻힐 만큼 조그마한 목소리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현무는 자신의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증폭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옥은 그의 감각을 날카롭게 갈아 놓았던 것이다.
“아, 유민.”
공단 배수로에서 채취 일을 돕던 연구 조교, 유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