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74)
지옥에서 독식-74화(74/346)
74화. 아홉 머리의 쥐 (3)
랫맨 주술사서는 현무보다 강했지만 겁이 많았다.
지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공포는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머리가 꿰뚫려 있는 동족의 시체를 몸에 얹고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에서 장악을 당했으니 상대가 누구든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야?”
현무는 심문을 시작했다.
놈이 쉽게 떠들지 않을 상황을 대비해 이런저런 고문도 염두에 뒀지만 생각 외로 주술사서는 술술 입을 열었다.
“여, 여기는 검은 부리 성채입니다. 제국의 마지막 요새입니다! 그, 그런데 왜 여기 인간이? 어, 언데드도 아닌 것 같은데?”
검은 부리 성채가 뭔지 모르니 가치가 없는 정보였다. 게다가 쓸데없는 질문까지 하고 있다.
현무는 해야 할 답변을 좀 더 한정해 주기로 했다. 징집병의 시체에 난 구멍을 더 크게 도려내어 피를 쏟아 내자 랫맨 주술사서는 몸을 더욱 크게 떨었다.
“초, 총통 야녹 막스와 제국 선전부장 외르길께서 제국 최후의 생존을 걸고 결전을 준비 중인 곳입니다! 총통 야녹 막스의 위대한 계획이 실현된다면 모든 송곳니 가진 자들이 해방되고 우월한 송곳니가 비로소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야 조금 퀘스트를 깨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나온 것 같았다.
보아하니 야녹 막스라는 놈이 최종 보스고, 외르길이라는 놈은 중간 보스쯤 되겠군.
위대한 계획이 ‘몰락 제국의 마지막 발악’인 것 같고.
“야녹 막스는 뭐 하는 놈이냐?”
“저, 저분입니다.”
현무는 주술사서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액자에 다른 랫맨과는 조금 다르게 독특하게 생긴 랫맨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현무는 그 얼굴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풋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 저거 랫맨 맞긴 하냐?”
“야, 야녹 총통께서는 가장 위대한 주술사인 동시에 랫맨들을 가장 우월한 송곳니로 선언하고 이끌어 주신 분입니다. 마침내 도래할 영원한 제국을 위해…….”
“됐고, 그게 저 가운데 있는 탑에서 하는 거랑 상관있는 거냐?”
현무는 힐긋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앙탑이 있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주술사서는 현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야, 야녹 총통께서는 모,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뭔데?”
주술사서가 망설이는 동안 현무는 속으로 셋을 셌다.
3초 뒤 그의 칼이 주술사서의 어깨를 콱 뚫고 들어갔다. 주술사서가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징집병의 주둥이를 놈의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현무는 다시 30을 세고 물었다.
“비명 안 지를 거지?”
주술사서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가 이때까지 상대했던 몬스터들에 비하면 이정도 상처는 그냥 긁힌 수준이다. 내장을 질질 끌면서 날뛰던 놈들도 흔했으니까.
하지만 놈은 자신이 중상을 입은 게 분명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아홉 머리의 쥐.”
“뭐?”
주술사서는 말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외, 외르길 선전부장은 아홉 머리의 쥐가 우리들이 잃어버린 이름을 알고 있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홉 머리의 쥐를 불러낼 수 있다면 다시 강대한 제국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조금 도움이 되나 했는데 또 신화적인 이야기인가.
하지만 죽은 자들이 지평선을 가득 메우며 쳐들어오고 쥐들이 마법을 부려 싹 쓸어버리는 상황에서 현실성을 따져 봐야 뭐 하나 싶었다.
현무는 이 쥐새끼들의 목적이 아홉 머리의 쥐인지 뭔지를 불러내는 거라면, 그걸 막는 게 자신이 할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거 어디서 하고 있냐?”
“주, 중앙탑…….”
“저 녹색 광선이랑 상관있는 거야?”
“저 광선은 열등한 송곳니들의 피로 왕궁 주술사들이 만들어 낸 등대입니다. 아홉 머리의 쥐가 저 불빛을 보고 이곳을 찾아낼 것입니다.”
요컨대 저 광선을 꺼뜨리면 된다 이거지. 현무는 NPC가 읊는 장문의 퀘스트 요청을 스킵 하는 기분으로 마지막 질문을 했다.
“저기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교각 위치가 막 바뀌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던데.”
“그, 그게, 중앙탑은…….”
주술사서는 또다시 대답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현무는 왜 또 고문당할 짓을 하는 거지, 하면서 칼을 쑤셔 넣었다. 이번에는 독혈을 조금 넣으려 했다. 팔이 떨어져 나가면 정신이 들겠지.
하지만 그 순간 문을 박차고 한 무리의 랫맨들이 들이닥쳤다.
[몰락 제국 랫맨 폭풍 돌격병(LV 44)]현무는 급히 몸을 던졌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돌격병이 휘두른 핼버드가 스쳐 지나갔다.
주술사서는 징집병의 시체를 내던지고 현무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현무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역함을 느꼈다.
[저주: 종복생성(쥐)에 걸렸습니다.]구역질과 함께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왔다. 새끼 쥐였다.
현무는 쥐를 통으로 먹는 취미가 없다. 그것도 산 채로.
배 속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장을 파 먹히는 듯한 고통과 함께.
현무는 이다음 벌어질 일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에, 바로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한 랫맨 석궁병이 현무를 저격했고, 그걸로 의식은 끊어졌다.
***
적나비와 요한은 랫맨 주술사를 처치한 뒤 땀을 훔쳤다.
랫맨 주술사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마법은 단순히 불덩이를 날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드는 정도의 저주였고, 특별한 전술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현무가 말했던 ‘호각’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놈은 헌터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호각을 불었다.
헌터들은 무수한 쥐 떼와 함께 싸우는 동시에 날아드는 불덩이도 피해야만 했다. 결국 랫맨 주술사를 잡은 사람은, 가호를 중첩해서 걸고 다가간 요한의 총알 세 방이었다.
요한이 헌터들을 치유하는 사이, 적나비는 랫맨 주술사의 시체를 뒤졌다.
적나비는 랫맨의 시체에서 머리에 한 발, 가슴에 두 발이 박힌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입고 있는 것은 로브라기보다 넝마에 가까웠다.
그래도 발가벗은 거나 다름없는 다른 랫맨에 비하면 옷 같은 옷을 입은 셈이었다.
“……이 녀석이 혹시 1차 목표였을까요?”
흑요석 팀의 팀장, 유성연이 적나비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글쎄요. 사전에 들은 정보와는 다릅니다만, 애초에 플루드는 모두가 처음이니…….”
적나비의 중얼거림을 들은 유성연 팀장은 안타깝다는 듯 요한을 돌아보았다. 적나비는 다른 랫맨들도 살펴보았다.
이번에 상대한 랫맨들은 유난히 어려웠다. 놈들은 좀 더 기민하고 지능적으로 움직였다.
제대로 회피하고 제대로 찔렀으며, 서툴지만 조직력까지 보여 주었다.
심지어는 랫맨 주술사가 찍찍거리는 소리로 지휘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호각이었다.
갑자기 그렇게 많은 쥐 떼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만약 현무가 초반에 호각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면 또 한 번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아까 죽은 척했다가 요한을 급습했던 랫맨도 그렇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던전 난이도가 갑자기 상승하는 경우도 있나요? 플루드 때문에 몬스터가 많아지는 것 말고 몬스터의 수준 자체가 상승하는 거요.”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인지는…….”
유성연 팀장도 비슷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요한도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나비는 그에게 다가갔다. 요한은 그녀가 다가오자 그녀의 뺨에 생긴 작은 상처도 치유해 주기 시작했다.
“요한, 왜 저 랫맨 주술사는 당신 손으로 처치한 거죠?”
요한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적나비는 요한의 권총을 툭툭 치고 랫맨 주술사를 가리키는 등 보디랭귀지를 시도했다.
짧게라도 영어가 통하면 좋을 텐데 요한은 영어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는 대신, 적나비를 가리켰다.
무슨 의미인지 다시 물으려던 순간 요한은 다시 헌터들을 차례대로 하나하나 가리켰다.
그러곤 다시 랫맨 주술사를 가리킨 뒤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우리가 죽일 때까지 기다렸다고?”
그렇게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순간 적나비는 요한의 포지션을 다시 이해했다.
이지태는 요한을 조언자 입장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는 태성의 핵심 엘리트들을 데려오는 대신, 한창 배우는 입장인 적나비 조와 흑요석 팀을 데려왔다.
플루드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학생인 우리를 평가하기 위해 온 거군요.”
그들을 평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때문에 요한은 이때까지 오직 치유와 보조, 자기 보호에만 힘을 썼다.
헌터들이 직접 해결할 능력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자면 이지태는 이번 플루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충분히 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상황을 관리할 요한도 파견했다.
하지만 요한은 이번에 이례적으로 직접 나섰다.
적나비는 요한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가 직접 전투에 나섰다는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헌터들이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F학점을 받은 기분인걸.’
적나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해하지만 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을 수습하려면 요한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이미 사망자가 나온 시점에서 평가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그때 랫맨 주술사의 시체를 뒤지던 유성연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적나비를 불렀다.
“예? 이게 뭔가요?”
“이거 꼭…… 외우기 힘든 암호문을 몸 어딘가에 적어놓은 것 같지 않습니까?”
유성연은 하얀 천 조각 같은 것을 내밀었다. 랫맨 주술사가 입고 있던 로브였다. 귀퉁이에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
“넌 대체 뭐가 문제냐?”
세 번째 죽고, 네 번째로 주술사서와 마주쳤을 때 드디어 현무는 다시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번에 협박할 때처럼 쾌적한 상태는 아니었다. 위치가 고문실이고, 고문 기술자는 랫맨 주술사서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피고문자가 현무라는 것이었다.
랫맨 주술사서는 현무를 잡은 뒤 수고를 들여 인간 말을 하는 대신 마법을 택했다. 풍부한 심문을 위해서였다.
랫맨 주술사서가 지팡이로 현무의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러자 옆방의 고문실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현무는 말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말했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드나 보지?”
랫맨 주술사서는 현무와 즐겁게 수다를 떠드는 대신 달궈진 부지깽이로 몸을 지졌다.
생각해 보니 세 번째 죽었을 때에도 고문만 당하다 죽었었다.
[열기 내성이 증가하였습니다.]내성이 증가한다고 해도 별 차이점은 느끼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현무는 비명을 참는 게 어른스럽다고 느끼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껏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 대는 것은 고문 기술자를 만족시켜 금방 고문을 중단하게 만든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군.”
생각대로 주술사서는 부지깽이를 일찍 떼 냈다. 부지깽이 끝에는 미키 마우스 모양의 금속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현무의 허벅지에도 미키 마우스 모양의 화상이 남았다.
주술사서는 부지깽이를 다시 화로에 꽂아 넣었다.
“인간, 넌 어디서 뭐 하러 온 놈이냐? 회색 군세와 상관있는 놈이냐? 통곡하는 별과는 무슨 관계지?”
랫맨들은 밖에 있는 언데드들을 회색 군세라고 부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키르손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북쪽의 회색 군세라고 했던가.
“회, 회색 군세?”
현무는 너무 비명을 질러서 쉰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는 척할 건가? 이 중요한 시기에 인간이, 그것도 죽음을 몇 번이나 극복해 가며 나타날 리가 없지. 오직 죽음으로 이 땅을 휩쓰는 통곡하는 별만이 가능할 것이다. 외르길 선전부장이 너를 특별히 심문하라는 말만 안 했다면…….”
현무는 이 심문이 재밌어졌다.
자신은 한마디밖에 안 했는데 놈은 술술 털어놓는다. 어쩐지 서재에서 고문할 때보다 지금이 더 말이 많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현무는 주술사서의 말을 듣고 문득 통곡하는 별이 이 성채를 함락하기 위해 자신을 써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것 봐라? 그런 식으로 써먹으려면 최소한 시련을 걸든가 해서 보상을 높여 준다거나 해야지 공짜로 써먹으려 드네?’
[통곡하는 별, 베르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양반은 아닌 모양인지 통곡하는 별에 대해 이야기하자마자 주시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그가 뭔가를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곡하는 별도 별수 없는 모양이군. 부려먹을 자가 없어서 이렇게 나약한 인간을 꽂아 넣다니……. 놈도 이젠 쥐꼬리라도 잡고 싶은 모양이지.”
“나, 나는 통곡하는 별과 관계없다. 놈은 나와 아무 상관없어.”
“그걸 믿으라고? 군수 부장이 주변에 독 안개를 뿌려 두었다. 산 자는 그곳을 건너지 못해. 네 녀석이 죽음을 유예 받고 있다는 뜻이 분명하지. 죽을 때마다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 가끔 독성이 증가했다는 메시지가 뜨는 게 그거 때문이었나? 현무는 그저 이곳의 미세먼지가 좀 더 지독해서 그런 건 줄 알고 있었다.
현무의 침묵은 주술사서에게 긍정으로 이해된 것 같았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띤 채 부지깽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네놈의 등장으로 통곡하는 별의 패가 다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군. 외르길 선전부장이 네놈을 제국 방송에 내보낼 것이다. 적들은 패배하고, 우리들이야말로 진정 우월한 송곳니라는 것이 증명되겠지.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날 테지만!”
“내, 내일?”
“그래! 그때 마침내 아홉 머리의 쥐께서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빛을 내려쬐어 주시겠지!”
설마 시간제한이 달린 퀘스트인가?
현무는 설마 하면서도 만약 퀘스트가 이대로 실패로 끝나면 어떻게 되나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최선은 그냥 퀘스트가 없던 일로 치부되는 것이지만, 최악의 경우 재시작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현무는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뭐?”
현무는 서둘러야 할 필요를 느꼈다.
뒤로 묶여 있던 그의 손에서 훅 마술처럼 검은 손 단검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