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79)
지옥에서 독식-79화(79/346)
79화. 그렇다면 그런 거 (2)
거북한 침묵과 정신적 공황과 약간의 소란이 지나간 뒤, 원정대는 다시 진정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제대로 해석한 요한의 메시지는 ‘이것은 보스가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었다.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흑요석 팀의 팀장 유성연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통상 던전은 1차 목표인 귀환석만 찾아도 됩니다. 그리고 이 늑대인간 전사는…… 2차 목표인 것은 확실한 것 같군요. 그럼 3차 목표까지 달성해야 한다는 건가요?”
요한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절두 던전의 3차 목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었다. 때문에 헌터들은 대개 2차까지만 완수하고 귀환하곤 했다.
겨우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했던 시점에서 다시 싸워야 한다고 하니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다들 목마른 표정으로 귀환석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손을 짚기만 하면 나갈 수 있다.
“서태경 팀장은…… 이미 귀환했겠죠?”
적나비는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서태경과 약속했던 시간은 이미 지난 상태였다. 지금쯤이면 귀환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적나비와 유성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적나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한 사제가 나가는 것을 말린 건 아직 플루드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다들 지쳐있습니다. 강현무 씨를 빼면 실종자도 다 찾았고…….”
“유성연 팀장님은 귀환석을 사용해야 할 것 같나요?”
유성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귀환석을 찾았으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은 걱정할 필요 없겠죠. 주변을 탐색해보고 강현무 씨를 찾아내거나, 최소한 3차 목표가 뭔지 정도는 알아내보죠. 저희 힘으로 할 수 있으면 해보고, 못할 것 같으면 귀환하는 겁니다.”
적나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연이 결정된 사항을 다른 헌터들에게 알리러 간 사이,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던전을 둘러보았다.
랫맨들의 불가사의한 의식은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불길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이제 한명을 제외하고 헌터들을 모두 찾았다는 것이다.
비록 지쳐있긴 해도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상의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던전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을 준다.
어둡고 좁은 던전에서 혼자 방황하는 것은 체력보다도 정신에 안 좋았다.
때문에 적나비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한 사람이 걱정되었다.
‘강현무 씨, 당신은 어디 있죠?’
***
“아, 역시 있네.”
현무는 벽을 밀어낸 자리에서 비밀 금고를 찾아냈다.
몰락제국의 검은 부리 성채의 구조와 이 절두 던전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몰라도 구조가 상당히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검은 부리 성채는 탁 트인 산 위에 지어졌고, 절두 던전은 어두운 땅 속이라는 점이었다.
어쨌거나 그 설계의 유사성 덕분에 현무는 절두 던전을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중에서는 검은 부리 성채에서 병사들이 지키고 있던 덕분에 갈 수 없었던 보물창고의 위치 같은 것도 포함되었다.
“이건 보물창고라기보단 그냥 창고 같지만…….”
어쨌든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비밀 금고를 연 현무는 씩 미소 지었다.
금고 안에는 현재 시점에는 그렇게 찾기 힘들다는 전설 아이템이 놓여있었다.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전설)] [구분: 양손 도검] [물리 공격: 중, 마법 공격: 중상, 관통력: 하] [특수능력: 마나를 소모해 검에서 열기를 끌어올린다. 온도에 따라 마나 소모량이 상승한다. 소지자는 열기 면역을 가진다.] [주석: 초대 마녀사냥꾼 헬부르크는 마녀를 불태우는 일이 바르다고 믿었다. 문제는 문제를 맞닥뜨리면 일단 불태우고 보는 그의 방화범 같은 열정이었는데, 마녀를 태운 잿가루가 마녀 역병이 되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녀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불태워야 한다던 헬부르크의 광기는 결국 제국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결국 헬부르크는 황가의 드래곤 모르크페논에 의해 잿덩이가 되고 말았다.]꽤나 화려하게 생긴 양손검이었다.
현무는 한번 휘둘러보며 이 무기를 원래 소지했어야 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원래는 이지태가 찾아서 유용하게 쓴 물건이라고 했지.’
백골 기록문에 보면 이지태의 상징처럼 사용된다던 무기였다.
이지태는 가속 스킬과 광휘의 날개라는 궁극기 스킬을 가지고 있었는데, 광휘의 날개를 이용해 공중에서 적을 관찰하다가 가속을 사용해 냅다 내리꽂는 스킬 연계를 즐겨 사용했다.
화려한 비주얼과 강력한 효과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에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을 더하면서 그 스킬 연계는 훨씬 더 강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내 손에 들어와 버렸네?’
물론 이지태에게는 이미 쓸 만한 무기가 있으므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현무는 미련 없이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을 탐에게 먹잇감으로 주었다.
탐은 피 흘리는 단검을 먹었을 때처럼 쩍 갈라지면서 검을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친 탐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좀 더 길어지고, 화려한 무늬들이 나타났다.
[탐貪(전설/진품)] [구분: 도검] [물리공격: 중, 마법공격: 중, 관통력: 하] [특수 능력: 제물로 바쳐진 무기를 먹어치우고, 그 무기의 능력을 갖는다. 체액을 흘려보내는 능력이 있으며, 아군에게 체액을 보낼 경우 치유 효과를 일으키고, 적에게 체액을 보낼 경우 타격을 입힌다. 마나를 소모해 검에서 열기를 끌어올린다.] [흡수한 무기: 피 흘리는 단검,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 외 4종]‘역시 능력치가 상승하는군.’
희귀 무기 몇 개 먹여봤을 때보다 효과가 좋았다.
적어도 자신보다 능력치가 높은 것을 먹어야 스펙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자신보다 낮은 등급은 ‘외 몇 종’으로 표시되는 걸 보니 차별의식이 투철한 검인 것 같았다.
‘입맛 까다롭기는.’
그래도 귀찮게 이것저것 들고 다닐 필요 없다는 건 장점이었다.
탐에 마나를 가볍게 주입해보자 피가 가득 차오르는 동시에 검에 새겨진 무늬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열기는 바로 그 무늬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현무는 다른 비밀금고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로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처럼 괜찮은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완력 증가 포션과 랫맨 조각상이 전부였다. 랫맨 조각상은 머리맡에 두고 자면 쥐가 나오는 꿈을 꾸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쓰레기잖아.’
완력 증가 포션은 줍자마자 마셔버렸다. 하지만 크게 힘이 늘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역시 난이도 차이 때문인가.”
던전의 숨겨진 공간을 발견했다는 생각 때문에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 외에는 난이도 지옥에 쓰레기처럼 널리고 널린 것들이었다.
현무는 툴툴거리며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현무는 문을 열기 전, 잠깐 여기가 어디였는지 떠올렸다.
난이도 지옥 시점에서 야녹 막스가 주문을 외우던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다들 이쪽으로 왔으려나?’
현무는 절두 던전으로 오자마자 원정대의 생사부터 확인했다.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요한 역시 무사했다. 예상대로긴 했지만 상처 하나 없는 걸 확인하니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아니지. 여기로 왔을 리는 없겠군.’
이쪽까지 오는 일부 구간은 비밀 통로를 여러 차례 지나야 했다. 아무도 드나든 흔적이 없는 걸 보아 아직 여기까지는 못 온 것 같았다.
현무는 최상층의 문을 열었다. 순간 던전 전체가 우르르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현무는 던전이 또 한 번 변형된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만약 시간제한 비밀 방이라면, 좀 쓸만한 게 있을지도.’
탁, 타탁!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벽과 바닥을 박차는 동안 현무는 짙은 어둠 속에서 던전의 구조물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밤눈이 좀 좋아진 것 같은데. 이것도 능력치 향상 때문인가?’
밤눈만이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움직이는 던전을 딛고 달리고 있는데, 그냥 동체시력이 좋아져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던전이 무슨 원리로, 어떻게 움직이고, 언제 움직일지 눈에 훤히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뭐야, 그새 머리라도 좋아진 건가?’
솔직히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근거는 없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했다.
재능을 꽃피울 기회가 없었는데, 혹시 지금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재능이 꽃피어나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가 들었다.
현무는 순식간에 움직이는 복도를 박차고 끝에 도착했다.
탁, 발을 내딛는 순간 탁 트인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허.”
규모만 놓고 보자면 야녹 막스가 주문을 외우던 그 옥상과 비슷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안의 디테일은 조잡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현무는 가운데 뭔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작은 랫맨 하나였다.
정확히는, 햄스터 랫맨이었다.
“야녹?”
“찍.”
놈이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여기…… 어딘가 숨겨진 보스방으로 향하는 길이 있을 텐데…….”
유성연은 주변을 둘러보며 괜한 물건들과 벽들을 더듬어보았다. 적나비도 귀환석과 주변에 새겨진 기이한 진을 살펴보았다.
몬스터들이 이 주변에서 난리를 치던 걸 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진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른 길에 있는 거 아닐까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에 관련된 힌트가 있을 겁니다. 구조가 복잡한 던전은 그만큼 힌트를 주니까요. 물론 그 정도로 구조가 복잡한 던전은 4성 이상부터나 나오지만…… 여기 난이도는 이미 4성이라고 봐도 이상할 게 없군요.”
적나비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요한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헌터들은 다들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참에 좌절한 참이었다. 적나비는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저 혼자서라도 주변을 둘러보고 오죠. 도망치는 거라면 자신 있으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던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던전 변형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헌터들은 서둘러 모여들었다. 흩어지지 않는다면 당할 일은 없다.
“변형이 꽤 큽니다! 서로 붙잡으세요!”
적나비는 이번 변형이 처음 헌터들이 흩어졌을 때 당했던 그 변형 급으로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던전의 벽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방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귀환석이 있던 자리가 바닥으로 쑥 꺼지자 다들 표정이 창백해졌다. 유사시 도망칠 길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뭐, 뭔가 건드렸나요?”
그들이 있는 방만 멀쩡할 뿐, 던전 전체가 대격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성연은 급변하는 벽을 보면서 표정이 굳어졌다.
“방이 위로 솟구치고 있군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솟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