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82)
지옥에서 독식-82화(82/346)
82화. 뒤풀이 (2)
레벨 30.
현무는 자신이 달성한 레벨에 뿌듯함을 느꼈다.
절두 던전의 몬스터들은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몰락제국 랫맨들의 레벨이 워낙에 높았기 때문인지, 현무는 고작 이틀 만에 레벨 30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아무나 붙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 강현무 씨.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테라스에 서 있던 현무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흑요석 팀의 막내 헌터였다.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자신보다는 어리다고 알고 있었다.
안에서는 절두 던전에서 희생된 헌터에 대한 영결식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이지태가 아직 춘천 던전에서 돌아오지 않았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영결식은 태성의 사무팀장인 태민수가 맡아 했다. 현무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무의식중에 헌터의 레벨을 확인하고 얼굴이 굳어졌다.
[인간(LV 32)]“…….”
“어, 제, 제가 뭐 잘못 말했나요?”
현무가 대답하지 않자 막내헌터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다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현무는 이내 자신의 한심함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저 애기가 무슨 죄겠냐.’
경력으로만 따지면 저 친구는 10년은 넘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헌터로 뛰면서 만든 레벨이겠지.
하지만 현무는 고작 두 달 좀 넘긴 시간으로 만든 레벨 아닌가. 비교가 불가능하다.
앞으로 오를 레벨을 생각하면 이지태를 따라잡는 것도 석 달을 넘길 것 같지 않았다. 운이 따라줘야겠지만.
원정을 마친 후, 저 헌터 말고도 쭈뼛거리며 말을 걸려던 헌터들이 여럿이었다.
그나마 말이라도 건 경우는 용기가 있는 경우였다. 흑요석 팀은 계속해서 힐끔힐끔 현무를 바라보았고, 다른 태성 클랜의 헌터들에게 던전에서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인상은 깊이 남긴 것 같군.’
사실, 이제 현무는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몬스터 상대로는 적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인간을 상대할 때가 문제였다. 방금 그 헌터만 해도 막상 싸움이 붙으면 현무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 테니까.
때문에 현무는 맞설 상황이 되기 전에 상대를 압도하는 쪽에 치중하고 있었다. 새롭게 퍼져나갈 소문은 살이 덧붙으면서 현무를 공포와 광기로 포장해줄 것이다.
영결식장 맨 앞쪽에 흐느끼는 유가족들이 보였다. 국내 최초 플루드 완전 제압이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희생자가 많았으니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전 세계적으로 플루드가 급증하고 있었다.
‘고작 며칠 사이 24개 던전에서 플루드라…….’
다행히 등급이 높은 던전은 없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조만간 난이도가 상승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연회장이 어수선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결식이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유가족들은 일어나 어딘가로 향하고, 헌터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에 남았다.
“그럼 지금부터, 유품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영결식장에서 유품을 경매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아이템 하나도 귀중하게 취급되는 헌터들의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유가족들도 어렵게 판매처를 찾기보다 고인의 동료들에게 우선적으로 파는 것을 선호했다.
현무도 아무 자리나 잡고 앉았다.
‘어디보자, 제작 청사진으로 삼을만한 물건이 있으면 좀 사둘까.’
예산은 부족하지 않다.
절두 던전 플루드 당시 현무의 자산은 이미 상당히 불어난 상태였고, 거기서 원정을 마친 다음에는 또 엄청나게 불었다.
돈이 알아서 새끼치고 번식하는 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플루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은 한동안 잠잠할 테지만 세계적으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터질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질수록 자신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온다. 헌터들의 지위와 가치는 더더욱 상승할 것이다.
현무는 그 흐름의 가장 앞쪽에 서 있었다.
‘정말 첫 번째 도미노를 건드린 걸지도 모르겠군.’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인상을 남길만한 아이템은 없었다. 태성에서 지급한 물건은 회수하고 대부분 개인적인 아이템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한 물품 경매가 현무의 눈에 띄었다.
아이템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매에 참가한 사람이 문제였다.
“3200.”
“3200,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십니까?”
그러자 한 남자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100만원을 더 얹는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경매에 참가한 사람을 보고 웅성거렸다.
참가자는 요한 헤스너였다.
요한이 가격을 올렸지만 다른 헌터도 계속해서 돈을 얹었다.
그리 좋아 보이는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아마도 죽은 헌터와 무언가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물건이 아닌가 싶었다.
처음 2천에서 시작했던 아이템은 어느새 4천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4800,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1억.”
경매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가격을 부른 사람에게로 쏠렸다.
강현무였다.
경매에 참가하고 있던 헌터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필이면.’
죽은 헌터와의 개인적인 이유로 간직하려 했던 아이템이었다. 실제 가치는 3천 정도가 적당했다. 그런데 요한이 갑자기 끼어든 것도 모자라 강현무까지도 가격을 올려놓은 것이다.
크게 부담되는 돈은 아니지만 솔직히 강현무가 무서웠기 때문에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1억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십니까?”
진행자의 시선이 요한에게로 향했다. 헌터가 포기한 게 분명했으니 더 부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요한뿐이었다.
요한은 딱딱하게 굳은 시선으로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무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요한은 한 번 더 손가락을 올렸다.
“1억 천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십니까?”
“2억.”
이번에도 현무였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 정도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 잠시 침묵하다가 현무가 얼마를 불러도 살 생각이라는 것을 안 듯, 더 이상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그럼, ‘인내의 팔찌’는 2억에 낙찰되었습니다.”
현무의 시선이 요한에게로 향했다. 현무는 자신이 산 게 팔찌라는 것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요한이 그 팔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
경매가 끝난 뒤, 현무는 팔찌를 인수받았다.
혹시나 숨겨진 능력이 있을까 싶어서 외알안경으로도 확인해봤지만 손떨림을 보정하고 무거운 것을 오래 들 수 있게 해주는 평범한 희귀등급 장비였다.
‘왜 이런 걸 사려고 했던 걸까.’
사연 있는 물건은 아닐 것이다. 요한은 4성에 한계레벨을 달성한 사람이다. 돈이 문제가 되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필요로 하긴 했지만, 딱히 고집부릴 정도로 욕심나는 물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무에게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을 때 기다리고 서있는 사람을 보고 현무는 씩 미소 지었다.
창백한 얼굴에 움푹 패인 눈을 가진 어두운 인상의 독일계 남자. 요한 헤스너였다.
요한이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강현무 씨. 반갑습니다.”
현무는 요한과 같은 원정대원이었는데도 난생 처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현무는 그의 손을 마주 쥐었다.
“저도 반갑습니다.”
“던전에서는 신세를 졌습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같은 원정대원인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현무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잠깐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눈치 챘다. 멀찍이서 통역사가 다가오려다가 굳은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현무는 자신이 요한과 능숙하게 독일어로 대화했음을 깨달았다.
특히나 요한과 대화를 할 수 없어 답답해하던 원정대원들이 가장 크게 놀라고 있었다.
‘언어 이해 스킬은 내가 말할 때도 적용되나보군.’
“그러고 보니 요한 사제님의 경호원들은 안 보이는군요. 그분들은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한 모양이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쪽은 요한의 경호원들이었다. 요한을 지키기 위해 말 그대로 몸을 아끼지 않은 탓인지 희생자가 유독 많았다. 그런데 이번 영결식장에는 요한은 물론 경호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들은…… 조금 특별한 분들이라 크게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요한의 반응에 현무는 살짝 흥미가 생겼다. 사제인 요한이 타인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이상했다.
헌터라도 자신을 위해 죽은 사람이라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득 현무는 죽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그런 가치가 낮은 생명체에 대해 약간 짚이는 것이 생각났다.
‘권속이라도 되는 건가?’
요한이 권속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권속은 본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붙여줄 수 있다.
현무도 여러 차례 키르손에게 단독 행동을 맡기곤 했으니까. 경호원들은 늘 얼굴을 가리는 면갑을 쓰고 있어 인간인지도 불확실했다.
‘수상하군.’
하지만 요한은 자세히 이야기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렇다고 따져 물어 괜한 의심을 살 생각은 없었다. 이런 것은 조금 더 확실하게,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알아내야 했다.
“요한 사제님은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십니까?”
“저는 국가에 소속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제가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갈 뿐입니다. 이지태 씨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지요. 일단 이지태 씨의 초청을 받아서 왔으니 그가 돌아오는 대로 거취를 결정해야겠지요.”
현무는 미소 지었다.
요한은 떠나지 않는다. 현무가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현무는 박휘소를 통해서 요한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만큼 알아낸 상태였다.
과묵한 사제 같은 인상과 달리 그는 지독한 위험 중독자였다.
요한은 종군사제 출신이었다.
능력자로 각성했음에도 전쟁터를 전전하던 그는 시리아의 던전 플루드 제압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중대원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중독된 듯이 플루드가 일어난 던전만 찾아가는 헌터가 되었다. 그는 은연중에 죽음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백골기록문에 의하면 단순한 아드레날린 중독자는 아니지.’
이 당시 요한은 뛰어난 힐러지만 오직 던전만 돌아다녔기 때문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난이도가 상승할수록 그의 활약은 더욱 강해지게 된다. 심지어 이런 별명까지도 붙게 된다.
‘요한 헤스너, 인류의 방주.’
요한의 능력 하나에 의지해 수십만의 민간인이 난이도: 악몽 속에서도 생명을 연장시켜왔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가호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죽음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던전을 공략하려면 강력한 치유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요한만한 실력을 갖춘 자가 없었다.
덕분에 헌터들 사이에서도 요한의 거취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몬스터의 위협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아득한 몬스터 무리에 부딪치며 인명을 소모해 나갈 것인지.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요한이 느꼈을 중압감은 엄청났겠지.’
그래서 자살한 것이다.
종교적 신념 따위는 잊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그쯤 되면 종교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눈앞의 우울한 남자는 그렇게 죽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결국 스스로의 손을 쓰게 되기 전까지 살아남고 말았다.
“참, 그러고 보니 이 팔찌를 구매하려고 하셨었지요.”
현무는 생각을 마치고 요한 앞에 인내의 팔찌를 내밀었다.
“혹시 이 팔찌에 뭔가 개인적인 사연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냥 제게 필요한 기능이 있기에 사려했던 것뿐입니다.”
현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럼 선물로 드리지요.”
원래 가격보다 10배에 이르는 가격을 치러놓고 태연하게 선물하겠다니.
그에게 말을 붙이려고 경매에 참가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지만 요한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요한은 현무를 빤히 바라봤다.
“이유 없는 선물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왜 제게 말을 걸려고 했는지 알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 건 일단 받은 다음에 생각하세요.”
현무는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하며 요한의 손에 팔찌를 움켜쥐어줬다.
요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려다가 자신이 받아 든 팔찌를 보고 순간 굳었다. 현무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당신이 원래 사려고 했던 것보다는 좀 더 나을 겁니다.”
[오르도 빌라의 인도자(전설)] [특수 능력: 장거리 무기 사용시 명중 보정이 붙는다. 소지자는 피격 된 대상 최대 3인에게 ‘추적’ 저주를 영구적으로 부여하여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추적 저주는 대상 사망 시 해제된다.] [주석: 오르도 빌라의 마녀사냥꾼들을 증명하는 장신구. 마녀사냥꾼들은 마녀의 시야가 닿는 거리에서 교전해선 안 된다는 전투교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저격과 함정은 그들에게 거의 필수적인 교양이다. 이 팔찌는 스승에서 제자로 대물림되며, 스승이 마녀에게 살해당한 경우, 제자가 그 마녀를 죽일 때까지 다른 마녀사냥꾼들이 교육을 대신한다.]요한은 렌 제독의 외알안경이 없으니 주석까지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보지 않는 쪽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설명이다. 어쨌거나 요한이 사려던 팔찌의 상위호환이라고 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뚝딱 만들어낸 것치고는 나쁘지 않아.’
덕분에 현무는 마나 고갈로 무릎이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수정이끼를 녹여 만든 임시 마나포션을 마시긴 했지만 그것도 회복속도는 지옥만 못했다. 현무는 최대한 태연한 척 하며 입을 열었다.
“수전증을 가지고 계시지요. 요한 사제님?”
현무의 속삭임에 요한의 표정이 딱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