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96)
지옥에서 독식-96화(96/346)
96화. 천사 (1)
‘경이로운 업적?’
들어본 적 없는 메시지였다.
불가능한 업적이나 일반 업적과는 뭐가 다른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슨 업적을 이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쭉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
마치 모니터에 바싹 코를 대고 있다가 강제로 뒤로 끌어당겨지는 것처럼.
가장 가까이 있던 카자트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커먼 공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어둠에 잠긴 공간이었다.
현무는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둡지도 않았다. 자신의 팔다리는 또렷하게 보였으니까.
그 순간 발이 바닥에 닿았다. 발이 그래도 바닥에 닿자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재빨리 인벤토리와 스킬들을 점검했다.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때 무언가가 나타났다. 현무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떠올린 것이 있었다.
‘그리스 조각상?’
동공이 없는 눈과 하얀 얼굴,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였다.
인종도, 성별도 분간하기 힘든 외형이었지만 등 뒤에 달린 날개와 머리에 씌어있는 하얀 가시나무 왕관이 눈에 띄었다.
분수대 같은 곳을 보면 날개가 달린 알몸의 아기 조각상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생김새는 예쁜 아기 천사였지만 호흡도 흔들림도 없는 무기질적인 외형이 지독한 위화감을 주었다.
그때 ‘그것’이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현무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살짝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자주 들었던 목소리. 머릿속에 들리던 ‘메시지’의 목소리였다.
설마 그 목소리가 인격체의 목소리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례한 초청이 될 것 같았지만, 경이로운 솜씨를 보고 몇 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점이 있어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확인?”
직감적으로 이것이 시스템 외적인 존재, 혹은 시스템 그 자체임을 느꼈다. 게임으로 치면 운영자 정도 될까.
현무는 자신이 난이도: 지옥을 오가는 게 반쯤 버그에 가깝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혹시 그게 버그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만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레벨도 이름도 뜨지 않았다. 아무런 능력도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스템 외적 존재라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상황을 볼 때 후자로 봐야할 것 같았다.
“실례지만, 사용자 강현무 씨는 현재 난이도: 튜토리얼의 수준을 상회하는 성장속도와 등급, 아이템을 보유중입니다. 이는 이례적인 사태로, 저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역시 그런 용무로 온 것이었군.
현무는 삐딱하게 천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아이템의 출처와 습득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보상은 적절한 수준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네가 뭔데?”
천사가 기대했던 대답은 아닌 것 같았다.
“저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오류를 정정하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제 업무에는 외부 간섭과 상정 외의 오류를 배제하는 것도 포함되어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아이템의 출처와 습득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현무의 대답은 짧았다.
“노력.”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무의 적의를 읽어본 천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호의적인 미소는 아니었다.
같잖다는 듯, 마치 벌레가 본 적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신기하다며 웃는 미소였다.
“강현무 사용자님, 저희는 가급적이면 겸손하게 행동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판단과 노력을 존중하며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지기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비스 센터 직원 같은 말들이었다. 현무는 이 녀석이 던전의 등장이며 난이도 상승이며 모든 것들을 배후에서 통제하고 있는 집단의 일원임을 느꼈다.
“강현무 사용자님.”
천사는 나긋나긋하게 속삭이며 현무를 채근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저항하지 않는 편이 좋을까?’
현명하게 판단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고, 순응함으로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내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현무가 침묵하자 천사는 더욱 부드럽게 미소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어쩌랴.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기에는 현무의 인성이 너무나도 개판이었다.
현무가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그의 주먹이 천사의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다.
천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주먹을 얻어맞고 뒤로 허무하게 나가떨어졌다.
“아차.”
현무는 실수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
“미안, 너무 만들어놓은 것 같은 얼굴이라…… 한 대만 때려보고 싶어서.”
주먹을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천사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근육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마치 땅이 일어서 그를 세워놓는 듯 움직였다. 현무는 천사를 보고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런데, 얼굴이…… 정말 만들어놓은 얼굴일 줄은 몰랐네.”
천사의 얼굴은 정말 찰흙반죽을 뭉개놓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천사는 일그러진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불쾌하군요.”
“내가 미술공작을 망쳤니? 그런데 다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더라.”
현무는 탐을 꺼내드는 동시에 천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럼 일단 전부 뭉개놔야겠지?”
탐의 칼날이 날아든 순간 천사는 왼팔을 휘둘렀다. 탐의 칼날은 너무나도 손쉽게 천사의 팔을 둘로 갈라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천사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갈라지는가 싶던 팔은 순식간에 달라붙어 칼을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천사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탐,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하사품. 잠깐, 진품이라고? 진품이 벌써 풀렸을 리가 없는데.”
그때 천사가 무언가를 발견한 건지 흠칫했다.
“아니, 잠깐. 이 속성이 대체 왜 여기에?”
“싸우는 도중에 한눈팔면 쓰나!”
탐이 사로잡힌 것은 현무가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그는 일단 탐에 독혈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천사에게는 반응이 없어보였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확실히 체액이 없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현무의 노림수는 여기까지가 아니었다.
그는 최근에 절두 던전에서 탐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었던 전설급 무기,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을 발동시켰다.
탐을 움켜쥐고 있던 천사의 팔이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천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열기와 반응한 독혈이 폭발을 일으켰다.
퍽!
천사의 팔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현무는 멈추지 않고 자유로워진 탐을 재차 휘둘렀다.
천사는 몸을 던지다시피하며 칼을 피했다. 현무는 그 엉성한 회피 동작에 황당한 표정을 했다.
“뭐지? 봐주는 건가?”
천사는 여전히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현무는 놈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다고 느꼈다.
“당신…… 그 칼 뭡니까? 어디서 얻은 겁니까?”
탐? 현무는 왜 천사가 저렇게 긴장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독혈도, 열기도 사실 천사에게 큰 데미지를 준 것 같지 않았다.
천사의 박살났던 팔은 벌써부터 다시 들러붙고 있었으니까. 현무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 피와 땀으로 얻었다. 왜?”
“저능한 건지 오만한 건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상정 외의 존재가 확실히 개입한 듯하니, 긴급상황으로 인식, 오류를 수정하겠습니다.”
천사는 잘려나간 팔을 수복시키는 대신 현무와 훌쩍 거리를 벌렸다.
그때 현무는 이때까지 무기질적으로만 느껴지던 천사에게서 갑자기 기이한 존재감을 느꼈다.
현무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지만 거기에 더 집중할 수 없었다. 천사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명령어: 소환: 미궁들개: 인식: 인류에게 적대적: 레벨상한: 최대치.”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붉은 갈기털에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늑대였다. 놈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현무를 노려보았다.
[미궁 들개(LV 60)]갑자기 레벨 60짜리를 상대해야 한다라.
현무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여기서 죽으면 지옥에서 과연 다시 부활할까? 현무는 내심 부정적이었다. 그건 지옥에서나 기대해야했다.
현무는 인벤토리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들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키르손, 카자트.”
어둠을 가르고 권속들이 불려나왔다. 녀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현무의 의지를 읽고 즉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천사는 그런 현무의 움직임을 보고도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천사는 현무의 의지를 완전히 꺾겠다는 듯, 명령어 하나를 더 부여했다.
“상태: 불사.”
현무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사가 비스듬히 웃으며 속삭였다.
“겸손을 배울 시간입니다.”
***
쾅, 콰직!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궁 들개의 발바닥에 깔렸던 현무는 간신히 몸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투성이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현무는 숨을 몰아쉬며 탐을 바닥에 짚고 일어서려 애썼다. 키르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망쳤거나, 저 뭉개진 시체 파편 중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카자트는 확실하게 잡아먹혔다. 미궁 들개라는 놈의 입안으로 삼켜져 들어가는 것을 확실히 봤다.
현무의 꼴도 만만치 않았다. 이빨에 이리저리 짓이겨진 팔다리는 제 기능을 할지도 의문이었다. 현무는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뒈질 것 같군.”
하지만 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불러낸 개새끼보다는 상태가 나은 것 같지?”
천사가 불러냈던 미궁 들개의 몸은 사방팔방에 토막 나 흩어져 있었다.
현무도 상태가 안 좋았지만 미궁들개보다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토막난 몸뚱이들은 ‘불사’ 상태 때문인지 계속해서 수복되려는 듯 뭉치려 했다.
하지만 현무가 사방에 엮어놓은 맹약의 구속 때문에 움직이질 못했다. 설령 수복된다 해도 독에 절여지고 익어버린 환부는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사실상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였다.
현무는 천사가 포기 못한 것 같자 손가락을 튕겼다.
“카자트.”
퍼억. 미궁 들개의 배를 가르고 카자트가 걸어 나왔다.
놈의 수백 마리 쥐떼와 함께.
미궁 들개의 몸 속에는 이제 피보다 쥐들이 더 많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피에 절어있었지만 놈의 털은 여전히 굵었다.
“남김없이 먹어치워라.”
“예, 위대하신 분이시여.”
이때까지 내상을 입히는 데만 집중하던 카자트는 쥐들을 시켜 미궁들개의 파편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쥐들의 뱃속으로 미궁들개가 녹아내리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불사능력이 있어도 의미가 없었다. 천사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당신은 버그 덩어리로군요. 미궁 들개는 원래대로라면 현재 난이도에서는 클리어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더군다나 불사 속성이 부여되어 있는데…….”
“말이 짧구나. 뭐 하시는 분이시냐고 여쭤봐야지.”
천사는 상황을 부정하려는 듯 다시 무언가를 소환하려 했다.
이미 현무는 지쳐있다. 같은 급의 몬스터를 소환하면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다.
그 순간, 현무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시체 파편 속에서 갑작스럽게 키르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무만을 신경 쓰던 천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키르손의 낫이 천사의 목을 주저 없이 갈랐다.
순간, 찰흙덩어리 같던 천사의 목에서 우윳빛 액체가 솟구쳤다.
명령어를 외치려던 천사는 울컥거리는 피를 쏟아내며 당황했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충격이 스쳤다. 명령어를 외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거품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키르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놈은 천사를 마구 난도질해 턱을 완전히 떼버렸다.
혀도 목도 잃어버린 천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은 수복되려 애썼지만, 키르손은 그 몸뚱이를 걷어차 버리곤 현무 앞으로 천사의 머리통을 질질 끌고 가 앞에 바쳤다. 현무는 즐겁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했냐고 묻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