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98)
지옥에서 독식-98화(98/346)
98화. 난이도: 쉬움 (1)
“뭐?”
“344번 던전이 완전 무력화되어 소멸했어. 관리자 역시 소멸 상태야.”
“말도 안 돼. 불사 상태는 세포단위까지 남아도 부활할 수 있어. 부활이 좀 어려운 상태라면 모를까. 설령 소멸했다하더라도 백업 데이터 복제하면 되잖아?”
“그것도 안 돼.”
“무슨 말이야?”
노인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백업 데이터까지 완전히 망가졌어. 그래서 불사 상태가 먹히지 않은 모양이군. 이대로는 불러내봤자 더미 데이터만 나올 뿐이야. 뭔진 몰라도 데이터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에 당한 모양이군. 던전 데이터도 완전히 소멸해서 기록도 확인할 수 없어.”
둘 사이로 긴 침묵이 오갔다. 이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여자는 두려워하는 대신, 즐겁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웃었다.
“정말이라면 30년 만에 발생한 오류로군. 다른 곳들보다 훨씬 빠른데? 엘프 상대로 했을 때에는 70년 쯤 걸리지 않았나?”
“우선 별들 중 누군가 개입한건지도 모르니 확인해보겠다. 오류 발생보다는 성격 급한 별 중 하나가 분탕질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 너는 복구지원센터로 가봐. 남아있는 더미 데이터라도 해석해볼 수 있는지 확인해보게.”
“너는?”
노인은 눈을 낮게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별의 권속들을 만나보겠다.”
***
난이도 상승.
전대미문의 사태에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일반인은 메시지를 듣지 못했지만 모든 능력자들이 일관적으로 증언해왔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 증시가 요동치고 수정이끼 가격이 폭등했다. 4성 이상의 던전을 원정 중이던 헌터들은 즉각 귀환 명령을 받았고, 하위급 던전부터 재탐색이 시작되었다.
현무는 이 상황을 재밌게 보았다.
“정부 대응이 느릴 줄 알았는데, 고작 사흘 만에 전 세계가 통일된 반응을 내놓을 줄은 몰랐네. 고작 헌터 몇 명 죽어나가는 걸로 생각할 줄 알았는데 말야.”
“그거야 이제 수정이끼가 미래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원이 되었으니까 그렇죠.”
유민의 말대로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과 수정이끼들이 이젠 미래 산업의 핵심이었다.
수정이끼와 결합해 나온 신소재는 조그만 핸드폰부터 대형 선박까지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없다. 당장 수정이끼 가격이 급등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무가 게으른 고양이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동안, 유민은 다크서클이 짙게 낀 눈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쓰는 거야?”
“……갑자기 난이도가 상승하는 바람에, 원래 쓰고 있던 박사 논문을 싹 다 고쳐먹게 생겼어요. 던전이랑 직접 관련된 연구를 하던 애들보다야 처지는 낫지만…… 그래도 꽤나 고쳐야 할 것 같아요.”
“던전 난이도가 올라간 게 무슨 상관인데?”
유민은 음울한 눈으로 현무를 바라보았다.
“공산주의는 지속가능한 국가통치모델인가 라는 논문을 열심히 작성했더니, 심사를 앞둔 날 소련이 멸망하는 걸 보게 된 정도?”
“……저런.”
소련이 멸망했을 때 현무는 어린 나이였으므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공든 탑이 무너졌다는 비유임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저는 난이도 상승으로 인한 던전 생태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능력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만 확인하면 돼서 괜찮아요. 그냥 2주 정도 잠을 안 자면 되겠죠.”
난이도가 상승한 것은 결코 현무 탓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게 맞다. 현무는 어쩐지 약간 미안해졌다.
“내가 도울 건 없나? 돈으로라도?”
“돈으로 박사 학위를 살 수 있……을 지도.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하면 좀 분하네요. 아, 그러고 보니 오빠는 어때요? 난이도 상승 여파를 뭔가 몸으로 느낀 게 있나요?”
난이도 상승으로 인한 여파의 보고는 빠르게 상부로 올라갔다. 현무도 던전을 가봤지만 개인적으로 큰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전능련 헌터들은 다른 것 같았다. 그들 말로는 변화가 확 눈에 띄었다고 했다.
“난이도가 확실히 올라가긴 했다고 하더라고.”
“몬스터들은 더 강해지고, 장비의 품질도 좋아지고. 그런 거 말고 또 있나요?”
“어지간하면 무리를 이루게 됐다고 들었어. 옛날에는 랫맨처럼 군집 특성이 있는 놈들 아니면 그냥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달려들었거든. 그냥 서로 잡아먹지 않는 정도였지.”
절두 던전에서는 플루드 때만 발견할 수 있었던 랫맨 주술사가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고되었다.
위험할 때에는 호각을 불어 지원을 부르기도 해 훨씬 공략이 어려워졌다고 들었다.
“그런데 장점도 있다고 하더라고. 나오는 아이템 질이 상승했어. 희귀 아이템의 발견이 좀 더 잦아졌다고 하더라고. 그래봤자 1%만큼 떨어지던 게 3% 정도로 상승한 느낌이지만. 수정이끼의 질도 올라갔다고 들었고.”
“공급은 떨어지고 질은 올라갔으니 헌터랑 장비 회사들만 신나겠네요.”
현무는 씩 웃었다.
난이도 상승의 충격이 한순간 세계를 휩쓸었지만, 반면 급 호황을 누리는 분야도 있었다.
헌터들의 능력이 한계에 이르면서 30년간 정체되어 있던 헌터 아이템 산업 분야였다.
그중 가장 큰 두각을 드러낸 것은 D&W 인더스트리와 그리모어 랩. 공교롭게도 현무가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던 회사들이었다.
“내가 사두라고 했었잖아.”
“사뒀어요. 어쩐지 사람 목숨으로 장사하는 것 같아서 조금 찝찝하지만.”
“세상에 사람 목숨 안 걸고 장사 하는 게 있나? 집이 없어도 사람은 죽고, 옷이 없어도 죽어. 밥이 없어도 죽고. 보험이며 군수며 제약이며 다 살자고 장사하는 거지.”
“또, 또 나쁜 말한다.”
어쨌거나 덕분에 이 준 군수산업체에 자본이 쏟아져 들어갔다.
던전 발생 초창기에 생겼던 공포가 수정이끼 호황으로 잠잠해졌다가, 난이도 상승으로 다시 대중에게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헌터 산업체 역시도 불안 불안한 호황을 이어갔다. 이미 은밀한 속삭임이 나돌고 있었다.
‘난이도 쉬움이라고 했잖아?’
그 말은 앞으로 계속해서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최소한 난이도 어려움까지도 있을 터였다. 현무 역시도 그런 두려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난이도 지옥까지 갈 테지만.’
만약 현무가 ‘난이도 지옥이 있으니 다 같이 대비하자!’라고 선언하면 어떨까? 운이 좋으면 협력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무가 생각하기에 난이도 지옥은 인류 모두가 협력하고 대비해서 막아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전부 다 살리겠다는 생각이 결국 다 죽게 만들었지.’
이미 그 시도는 백골 아저씨가 했다.
현무는 같은 방법을 반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수정이끼 질이 올라간 게 문제에요. 그게 다 제 연구를 혼잡하게 만들어놔서…… 그러고 보니 희귀 아이템도 많이 떨어진다고 했었죠? 그러고 보니 이지태도 전설급 무기를 하나 찾았다고 하던데. ‘구천용왕의 파천검’이라고 했나. 이름 진짜 누가 짓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이지태의 전설급 무기라. 현무도 그 뉴스는 봐서 알고 있었다.
사실 이지태가 찾았다기보다 누군가 찾아낸 것을 구매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파천검은 알려진 바로는 벼락을 다루는 특수 능력이 있다고 했다. 현무는 자신이 탐에 먹여준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을 떠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이걸 이지태가 먹고 전설급 무기를 얻었다고 홍보했어야 했는데, 불 대신 벼락을 얻었군.’
살짝 바뀌긴 했지만 큰 맥락에서 벗어나진 않은 것 같았다. 이게 얼마나 또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현무로선 딱히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었다.
구천용왕의 파천검이라는 무기는 백골 기록문에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일일이 다 기록 할 수야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바뀐 미래의 대체제가 생겨난다면, 결국 난이도 지옥이라는 결말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도 얼마나 길지 확신할 수가 없다. 튜토리얼이 30년이나 됐다고 다른 난이도도 그만큼 길란 법은 없다. 현무가 절두 던전 플루드를 터뜨린 걸로 웨이브가 시작되었고, 13번째 플루드를 막아냄으로서 난이도가 상승했다.
이런 방식이라면 또 어느 순간 난이도 상승 절차가 시작될 수도 있었다.
‘최대한 대비 해야겠어.’
귀찮더라도 손발이 되어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던전 그 자체가 끝장나더라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권력이 되어줄 사람들.
이미 그 명단은 어느 정도 정리 중이었다.
***
서울시 중구의 한 호텔.
최고급 귀빈만이 방문 가능한 최상층 스위트룸에서 흑요석 팀의 팀장, 유성연은 누군가를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은 이미 30분이나 지났지만 유성연은 얌전한 강아지처럼 곧 도착할 누군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오직 이 방으로만 향하는 엘레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성연은 복장을 가다듬고 곧 도착할 누군가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유성연은 침착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박규 비서실장님.”
청와대의 숨은 실세, 박규는 인사를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름 함부로 말하지 말게. 어디 듣는 귀가 있을지 모르니까.”
“죄송합니다.”
유성연은 박규를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에게 쩔쩔매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규는 태성 그룹이 국가의 핵심권력까지도 주무르고 있다는 가장 상징적인 존재였다.
현재 대통령을 탄생시킨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많은 주요 정책들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숨은 실세라고 일컫는 사람도 많았다.
유성연 입장에서는 태성 그룹의 상관처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지시한 물건은?”
유성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작은 USB였다.
“태안 던전이 소멸하기 전에 찍은 영상입니다.”
태성의 팀장급은 모두 바디캠을 달고 다닌다. 기록용, 교육용 모두를 위해서다.
태안 던전에 현무와 함께 원정을 했던 영상도 모두 담겨 있었다.
전능련 헌터들의 활약과, 플루드가 터진 후 현무가 숲으로 향하던 모습, 던전에서 빠져나온 직후의 모습까지 전부.
박규는 USB를 가지고 온 태블릿에 꽂고 빠르게 돌려보기 시작했다. 유성연은 그 모습을 보며 초조해졌다.
원래 유성연은 이 영상을 가지고 오고 싶지 않았다. 현무에게 어떤 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현무가 플루드를 제압하기 전에 말했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라는 경고도 신경 쓰였다.
현무는 태안 던전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떠들지 말라고 경고해둔 상태였다. 다들 현무에게 목숨을 빚졌기 때문에 모두 그러겠노라고 했다.
덕분에 태안 던전이 사라진 이유도, 사건도 불명으로 남아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은인은 은인이니.’
만약 현무가 없었다면 자신은 절두 던전에서, 태안 던전에서 죽었을 것이다. 두 번이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다. 하지만 박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유성연 외에 영상을 찍은 자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가 정보를 빼돌려, 박규에게 넘겼다.
박규가 유성연을 부른 것은 이중 확인을 위해서였다. 이미 알고 있는데 거부할 명분은 없다. 유성연은 현무에게 폐가 되지 않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전부인가?”
“예? 예. 전부입니다.”
박규는 노트북을 노려보았다.
“큰 차이는 없군.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야.”
유성연은 안도했다. 그나마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규는 영상 내용에 몸을 떨고 있었다. 태성 내부의 누군가가 발신한 듯한 유출 영상을 처음 받아봤을 때엔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게 존재할 수가 있다니. 박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믿을 수가 없군.”
“저, 강현무 헌터가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습니까?”
“응? 강현무? 그 친구가 왜?”
“예?”
강현무의 실력을 보고 놀란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럼 뭘 보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박규 역시 유성연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헌터란 놈들은 역시 시야가 좁다고 생각하며.
“됐네. 참고는 됐으니 이만 가보게.”
“예.”
유성연은 꾸벅 인사하고 서둘러 나갔다. 아무리 상관에 준하는 자라고는 해도 자본과 붙어먹은 권력자를 좋게 볼 수는 없었다.
유성연이 떠난 후 박규는 영상을 한참이나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강현무, 헌터들은 그를 무슨 준신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강해봐야 개인이다.
국가에 대항할 존재는 못 된다.
대한민국 최강자인 이지태의 전투력도 내부적으로는 대대급 전투력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이런 분석은 이지태에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국가도 탑랭커 능력자에 대한 분석과 능력 파악은 최고기밀로 다뤄졌다.
따지고 보면 능력자들은 자아를 가진 전략무기다. 경계와 감시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어떤 능력자도 국가에 대항할 존재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박규는 전능련 헌터들이 입고 있는 외골격을 뚫어져라 보았다.
똑같은 규격에 똑같은 구동방식. 이건 틀림없이 양산된 형태의 공산품이다.
헌터들의 능력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견제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재앙 같은 물건이었다.
‘전능련처럼 허접한 헌터들의 능력마저도 이렇게 끌어올릴 수 있는 물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