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Idol RAW novel - Chapter (901)
성스러운 아이돌-901화(901/902)
◈ 901화. 렘브러리의 초대 (21)
신조운과 장태리는 대신전에 도착한 이후로는 이세계로 오면서 그들이 상상했던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렘브러리는 닌링과 물루를 데리고 여기저기 대신전 내부와 외부를 구경시켜 주었다.
레드린 신관들의 일상이 어떤지도 보여 주었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도 살짝 보여 주었다.
장태리는 지구에 있을 때는 뭘 하든 좀 어설픈 느낌이 났던 렘브러리가 여기서는 능숙하게 일하는 걸 보면서 감동받았다.
“렘브러리 씨가 지구에서 일 못 하는 것처럼 보인 건, 진짜 일 못 해서는 아니네요.”
“태리 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의 그런 적 없는데요. 아주 간혹. 아주 가끔이요.”
신조운은 장태리가 서둘러 말 수습하는 걸 보면서, ‘애초에 돼지는 지구에서 주도적으로 일한 적이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렘브러리가 바빠서 그들을 데리고 돌아다녀 주지 못할 때면, 신조운은 물루에게 이쪽 사람들이 몬스터와 싸우는 방식 등에 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물루는 렘브러리의 최측근 근위기사단장이어서 렘브러리를 보호하는 위주로 활동하고 있었다.
대신 몬스터와 싸우는 게 주력 임무인 성기사들을 몇 명 불러 주었고, 신조운과 장태리는 그들에게 이세계 방식 전투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물루가 렘브러리와 함께 다른 곳에 가야 할 때는 닌링이 신조운과 장태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닌링조차 바빠서 함께할 수 없게 되면 신조운과 장태리는 안내자 없이 자유롭게 대신전 안을 돌아다녔다.
렘브러리는 아르도르라도 붙여 주려고 했으나, 아르도르는 장태리가 질색하면서 거절했다.
“제일 처음 도착한 영주 성에서도 각자 혼자 잘 돌아다녔잖아요, 렘브러리 씨. 길 잃어버리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죠. 괜찮아요.”
“하지만 영주 성은 작았잖아요. 여기는 넓고요.”
장태리는 충분히 크고 넓고 웅장했던 영주 성을 렘브러리가 작은 성 취급하자 웃음이 터졌다.
렘브러리의 말이 웃겨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이제 렘브러리의 저런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게 신기해서였다.
장태리는 예전에는 렘브러리가 이런 식으로 말할 때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렘브러리의 기준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알기에 한결 그를 이해하기 쉬워졌다.
“정말 괜찮아요. 여기가 넓어도 메인 건물이 커서 길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처음 신조운과 장태리를 안내하는 사람 없이 보낼 때는 렘브러리도 걱정했다.
하지만 한 번 보내고 나자 두 번째부터는 별다른 말 없이 신조운과 장태리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뒤, 렘브러리는 아침 식사를 할 때 장태리와 신조운에게 제안했다.
“여기 구경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우리 집에 가 볼래요?”
“그 우리 집이 궁전 말하는 거지?”
신조운이 묻자 렘브러리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보면 놀랄 거란다. 거기는 침대도 더 좋고 식사도 아주 맛있느니.”
“와. 가면 좋겠네요!”
장태리는 흥분해서 외쳤다. 격변 전 지구에서도 몇 개 궁전에 관광차 가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세계 궁전이라니! 장태리는 머릿속으로 남은 배터리 개수를 헤아렸다. 궁전 사진을 잔뜩 찍을 수 있을까?
“잠시만요.”
장태리는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장태리는 계획해 온 일정과 준비물 변동 상황 등을 휴대폰에 내내 기록하고 있었기에, 방으로 돌아가서 남은 배터리 숫자를 헤아리지 않아도 되었다.
“좋아요. 배터리는 충분해요!”
그러나 달력을 확인하자마자 장태리의 표정이 흔들렸다.
“왜?”
신조운이 눈치 좋게 알아차리고 옆에서 물었다.
“날짜…….”
장태리는 멍하게 중얼거렸다.
“날짜?”
신조운의 시선이 장태리가 든 휴대폰으로 향했다. 달력에 알록달록한 색으로 뭔가가 많이 표시되어 있었다.
신조운은 수많은 글자 중 ‘이날까지는 무조건 돌아가기’라고 쓰인 표시를 보았다. 그리고 ‘오늘’이라고 표시된 날짜를 보았다.
“이런.”
신조운도 장태리가 왜 놀랐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왜 그러느냐?”
“돌아갈 날짜가…… 얼마 안 남았어요.”
장태리는 계속 멍한 채 중얼거리다가 탁자에 이마를 박고 엎드렸다.
“말도 안 돼!”
아르도르는 ‘말이 안 될 건 없지!’ 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는 장태리와 신조운이 빨리 돌아가기만을 고대했기 때문에, 역시나 날짜를 정확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아르도르는 이동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으니 장태리와 신조운이 얼마 여기 있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걸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는데요? 우리 집 들를 시간 없어요?”
렘브러리는 아쉬워서 재차 물었다.
“여기서 궁전까진 얼마나 걸리는데?”
신조운은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해 볼 생각으로 물었다. 며칠 걸리지 않는다면 하루 이틀이라도 들르고 싶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오고 싶긴 했지만, 장태리와 그가 동시에 시간을 길게 내는 건 까다로운 일이었다.
“음. 그게 말이다.”
렘브러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장태리는 흠칫했다. 렘브러리는 평소에도 따뜻한 표정이긴 했지만, 저렇게 유난히 자애롭게 웃을 때는 이상하게도 그다음 언행은 자애롭지 못할 때가 많았다.
“보름?”
역시나. 렘브러리가 꺼낸 말도 안 되는 날짜에 신조운과 장태리는 침묵했다. 대신전에서 보름 걸리는 거리라면 애초에 궁전에 같이 가자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한 달 시간 잡고 왔어요, 렘브러리 씨.”
장태리는 한참 만에 힘없이 중얼거렸다.
렘브러리는 불만스럽게 물었다.
“왜 이렇게 촉박하게 온 거예요?”
“그야 통로를 빠져나가면 목적지 근처라거나, 목적지 근처는 아니어도 목적지랑 아주 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렘브러리 씨는 레드린 대신관인데 통로는 한참 먼 북쪽 대륙에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장태리는 돌아가기까지 또다시 한참 마차를 타고 이동할 생각에 갑자기 멀미가 났다.
처음 여기로 올 때는 잔뜩 들떠서 오느라 피로조차 즐거웠고, 이후에는 걱정하느라 마차에서 오래 탄다고 지루할 새가 없었다.
하지만 몸이 편해져서일까. 그 긴 거리를 마차를 타고 내내 또 이동할 생각을 하자 뒤늦게 갑갑해졌다.
“다음엔 사자를 꼭 데려와야겠네요.”
렘브러리는 아쉬워서 포크까지 내려놓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중간 다른 신전에 들러서 쉬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장태리는 자기가 미안할 일이 아닌데 괜히 미안해졌다.
* * *
노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결국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날이 되었다.
“벌써 가십니까? 온 지 며칠이나 되셨다고요?”
식사를 하면서 그 이야기가 나오자, 최고위 신관은 놀라서 물었다.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서요.”
장태리는 힘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계산을 잘못했습니다. 석 달은 휴가를 내서 와야 했는데요.”
신조운의 말에 최고위 신관은 렘브러리에게서 장태리와 신조운이 이세계에서 꽤 바쁜 사람들이라던 설명을 떠올렸다.
“그렇군요. 너무 아쉽습니다.”
최고위 신관은 진심으로 한탄했다. 혹시나 해서 라이달에게 전서조도 보냈고, 그가 알기로 렘브러리도 리불렌 황실에 전서조를 보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도 전에 장태리와 신조운이 떠나야 한다니.
이세계에서 왔다기에 조금 걱정한 부분도 있었지만, 장태리와 신조운 모두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조용히 잘 구경하며 다녔기에 최고위 신관은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장태리는 복도를 걸어가면서 신조운에게 아쉬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래도 이세계에 놀러 오는 거니까 구경도 많이 하고 신기한 경험도 하고 여기든 지구에든 도움 되는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역시 한 달 가지고는 안 되나 봐. 렘브러리 씨 이미지 회복도 돕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 되고.”
“네가 말하는 걸 다 하려면 석 달 가지고도 안 되겠는데.”
대신전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 장태리는 아쉬워서 잠들 수가 없었다.
짐은 이미 낮에 다 싸 둔 상태였기에, 그녀는 결국 휴대폰을 챙겨서 방 밖으로 나갔다.
커다란 화원으로 걸어가자 지구보다 훨씬 맑은 공기와 풍부한 꽃향기가 사방에서 번져왔다.
장태리는 화단에 걸터앉은 채 넋 놓고 이곳 풍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아니, 아니지. 전부 휴대폰에 찍어 가자. 어차피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 그대로이니까 굳이 더 사진 찍을 필요도 없잖아. 여기서 많이 찍어 가자.’
장태리는 휴대폰을 꺼내서 이름 모를 꽃으로 가득한 화원과 물이 높이 치솟아 오르는 분수대, 짙은 남색 하늘과 아름다운 조명, 고대의 건축물 같은 대신전 모습을 전부 다 휴대폰 사진에 넣었다.
‘그런데 렘브러리 씨도 휴대폰이 있지 않았나? 지금은 배터리가 다 됐으니 못 사용하나? 하긴. 휴대폰이 작동해도 나처럼 그냥 사진 찍거나 기록해 두는 용도로밖에 못 쓰긴 하겠다.’
장태리는 배터리가 다 닳을 만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는 장태리도 피로해져서 자신이 뭘 찍는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무슨 사진을 찍었는진 나중에 마차 타고 가면서 확인해 봐도 되겠지. 잘못 찍힌 사진도 그때 정리하자. 마차 안에선 어차피 할 일이 없으니까.’
장태리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하품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아침,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다 같이 식사한 장태리와 신조운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친해진 이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렘브러리도 처음에는 그들 곁에 있었다.
하지만 도중에 렘브러리는 장태리와 신조운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갑자기 생각나서 혼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창 바쁘게 걸어가고 있자니, 황실에서 전서조로 기르는 새가 빠르게 날아왔다.
렘브러리가 손을 뻗자 전서조는 얼른 팔에 내려앉더니 우아하게 꽁지깃을 흔들었다. 렘브러리는 새의 다리에서 종이를 빼냈다.
‘이런.’
렘브러리는 혀를 찼다. 언제쯤 도착할 거냐든가, 그런 답장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편지 내용은 지금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한 달 안에 돌아간다면서 여기까지 왔다 갈 수 있겠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편지 보내면서 바로 출발한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며칠 전에 리불렌 수도를 떠났다고 해도 이미 소용없었다. 장태리와 신조운은 오늘 떠나니까.
렘브러리는 어쩔 수 없단 판단을 내리고서, 안 와도 된단 답장을 쓴 뒤 선물을 챙겨 장태리와 신조운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렘브러리는 장태리와 신조운에게 선물을 건넨 다음 혹시 몰라 최고위 신관에게도 미리 말해두었다.
“황실에서 전서조가 왔단다. 여기로 직접 온다더라. 이미 출발했대. 내가 안 와도 된다고 답장하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 내가 없을 때 황실 사람이 여기 도착하거든 말 좀 잘해 다오.”
장태리는 정체불명의 선물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놀라서 물었다.
“황실에서 누가 여기로 와요?”
“아마 형 아니면 누나일 거예요. 누가 온단 말은 없어서 누가 오는 건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냥 가도 돼요?”
장태리는 자신이 질문한 다음 자신이 답을 내리고서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궁전에 가는 시간이 보름이면 궁전에서 여기로 오는 시간도 보름일 테니까.
결국 일행은 예정대로 식사를 마치고 40분 뒤 마차에 올라 대신전을 떠났다.
장태리는 아쉬운 마음에 끝까지 창밖으로 손을 흔들다가, 한참 만에야 마지못해 손을 내렸다.
그동안 신조운은 장태리가 밤새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보면서 한두 마디씩 놀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사진을 옆으로 넘기던 신조운이 어느 사진에서 멈칫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