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Idol RAW novel - Chapter (902)
성스러운 아이돌-902화(902/902)
◈ 902화. 렘브러리의 초대 (22)
“왜 그래?”
장태리는 신조운의 표정에 덩달아 불안해져서 물었다.
“뭐가 찍혀 있어.”
신조운은 찌푸린 표정을 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장태리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뭐가?”
“사람이 아닌 거.”
장태리는 기함해서 상체를 뒤로 뺐다.
“유령? 귀신?”
신조운은 성자인 장태리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웃음을 터트렸다.
“뭘 무서워해? 가끔 유령 보잖아?”
“내 눈으로 보는 거랑 사진에 찍히는 거랑 다르지!”
장태리는 당당하게 반박했다.
렘브러리는 간식을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나도 보자.”
신조운은 휴대폰을 렘브러리에게로 넘겼다. 렘브러리는 신중히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장태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진짜 유령이에요?”
렘브러리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장태리는 더욱 놀랐다.
“정말 유령이에요?!”
렘브러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마족 같아요.”
장태리는 안도해서 중얼거렸다.
“아, 다행이다.”
“마족이 덜 무서워요?”
“말은 통하잖아요.”
장태리는 농담하듯 말했다. 사실은 그냥 공포 영화의 영향이었지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렘브러리는 장태리가 마족을 너무 우습게 보는 듯하자 걱정되어 충고했다.
“말이 통해서 더 위험하기도 해요. 마족들을 너무 친근하게 대하지 말아요, 태리 씨. 마족들은 약점을 잡고 파고들어 가길 잘해요.”
장태리는 항복을 선언하듯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요.”
장태리도 그냥 유령이나 귀신이 더 무서울 뿐이지, 마족들을 친근하게 여긴 건 아니었다.
렘브러리는 휴대폰을 장태리에게 돌려 주면서 신조운에게도 충고했다.
“너도 조심하거라.”
신조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쪽이든 그리 무섭지도 않았고 친근하지도 않았다. 대신 신조운은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그런데 대신전에 마족이 나와도 괜찮아? 위험하지 않나?”
“마왕이 너희 세계에 있지 않느냐. 괜찮느니라. 마왕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마족들도 큰 사고는 못 칠 거다.”
장태리는 휴대폰에 찍힌 희미한 실루엣을 보다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실루엣은 분명 자신 쪽을 보고 있었다.
밤에 자신이 휴대폰으로 열심히 여기저기 자신을 찍는 광경을 마족이 쳐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장태리는 이걸 무서워해야 하는 건지 기막혀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어쨌든, 렘브러리 씨 말대로 별일은 없겠지. 마왕은 봉인되어 있고…… 마왕 측근인 다른 마족은 렘브러리 씨랑 힘을 합쳐서 봉인이 폭발하지 않게 막아 준 데다가 이세계에도 같이 오고 그랬잖아?’
* * *
아는 길이라서 그런지, 처음 대신전으로 갈 때와 달리 대신전에서 시작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의외로 길지 않게 느껴졌다.
미리 어느 정도의 고생을 하리라 짐작할 수 있어서일까. 마차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나 이따금 시간 계산에 실패해 마차에서 불편하게 자야 하는 일도 견딜 만했다.
신전에 들러 환대받는 시간조차 줄이기 위해, 일행은 돌아가는 길에는 그냥 지나가다가 저녁 무렵에 들리게 되는 마을의 여관에서 쉬었다.
장태리는 가끔 아침이나 밤에 시간이 나면 기념품으로 쓸 만한 작은 조각들을 사 모았다.
나중에 지구에 돌아가서 장식장에 넣어 놓고 이 시간을 추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동한 끝에 일행은 마침내 북쪽 대륙과 남쪽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산맥도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내 평온하던 장태리의 기분은 산꼭대기에서 샌드위치로 점심 식사를 할 때가 되자 주춤했다.
며칠 동안 잘 잊고 지냈던 그 원수 닮은꼴이 떠오른 탓이었다.
원수 닮은꼴과 만나기로 약속한 후로는 신조운이 평소처럼 행동했기에 장태리도 그 일에 대해 잊고 지냈다.
하지만 그자를 만날 날이 성큼 다가오자 잠시 접었던 걱정이 다시 일어났다.
장태리는 렘브러리가 양 같은 몬스터들을 데리러 간 사이 신조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너, 그 마을에 가면 원수 닮은꼴이랑 싸울 거 아니지?”
아르도르는 시큰둥하게 빵을 먹다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내가 뭐 하러.”
신조운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그래도 장태리는 안심하지 못하고서 신조운을 힐긋거리며 빵을 씹었다. 그러다 뒤늦게 아르도르의 눈길을 느끼고 아차 싶어서 더 말하지 않았다.
“원수요? 싸울 일 있나요? 내가 도와드릴까요?”
하지만 아르도르는 이미 두 사람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감지하고서 평소답지 않게 상냥한 말투로 묻고 있었다.
장태리는 소름이 돋아서 냉랭하게 대답했다.
“없어요.”
“있어 보이던데.”
“없어요.”
아르도르는 더 묻는 대신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하지만 그의 한쪽 입꼬리는 내려오지 않았다.
‘렘브러리 님이 싸고도는 저 이단 녀석들이 사고라도 치면 분명 렘브러리 님의 총애를 잃게 되겠지. 저 작자들이 사고를 치고, 내가 해결하면 그 총애는 분명 내게 올 거야.’
장태리는 아르도르의 불쾌한 표정을 눈치채고서, 신조운을 끌어당겨 작은 목소리로 충고했다.
“조심해. 쟤 뭔가 눈치챈 것 같아. 아무 일도 없게 해.”
신조운은 아르도르를 힐긋 보았으나 별거 아니라 생각해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
* * *
렘브러리가 양처럼 생긴 몬스터를 데리고 나타나자 일행은 다 같이 산에서 내려갔다.
빠른 속도로 신을 내려가면서 장태리는 아쉬운 기분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여기를 넘어가야 한단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새삼 아쉬운 마음이 들 줄이야.
“태리 씨? 한 번 더 올라갈까요?”
렘브러리는 그 아쉬움을 눈치채고서 물었다.
“아니요.”
아쉬운 마음은 렘브러리의 제안을 듣자마자 다행히 싹 가셨다.
마침내 일행은 산맥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다. 장태리는 양 몬스터의 등에서 내리면서 신조운을 확인했다.
신조운은 평소처럼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행이야. 조운이도 이젠 좀 진정이 됐나 봐.’
하지만 신조운은 겉보기와 달리 속이 마냥 평화롭지는 않았다. 이성은 앞으로 만날 원수 닮은꼴이 원수와 같은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았고, 낙루조차 아니란 걸 알았다.
레드린 신관이라고 하니 오히려 낙루와는 동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수와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신조운은 무거운 족쇄를 다리에 매단 듯 기분이 가라앉았다.
렘브러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뿐한 사람은 아르도르였다. 아르도르는 이단들이 사고를 치기를 고대하면서 표정을 감추느라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장태리와 신조운은 짐을 다 정리하고 식당에 자리 잡을 때까지도 무난하게 지냈다. 둘이서 소곤거리던 그 수상쩍은 대화도 더 나누지 않았다.
이에 아르도르가 실망할 무렵, 신조운이 드디어 묘한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은?”
렘브러리는 메뉴판을 들고서 뭘 먹을까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
“그 사람.”
신조운은 렘브러리가 자신이 찾는 사람에 대해 까먹었다는 걸 눈치챘다.
“아아, 그 사람.”
렘브러리는 한 박자 늦게 떠올리고서 속 편하게 웃었다.
“여기 어디 있겠지. 이거 다 먹고 이따가 전서조를 보내 보마.”
신조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술이 꿈틀했다.
렘브러리는 신조운의 표정을 알아차렸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신조운이 찾는 사람은 신조운이 싫어하는 사람과 닮았다지만 어쨌든 장본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만나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큰 배려를 한 것이니, 빨리 만나도록 더 마음 쓸 필요는 없다는 게 렘브러리의 생각이었다.
렘브러리는 멸치가 혼자 끙끙거리게 두고서 자신은 식사에 몰두했다.
“이거 근데 맛이 없구나. 메뉴를 잘못 주문한 모양이다. 다른 거로 새로 시켜야겠어.”
그러나 신조운은 그새 멸치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서 렘브러리의 메뉴판을 뺏어 버렸다.
렘브러리는 기가 막혀서 신조운에게 너는 통로까지 걸어오라고 할 뻔했다.
하지만 렘브러리는 자애로운 대신관답게 그러진 않았다. 어찌 대신관이 멸치처럼 굴겠는가.
“여기 메뉴판 새로 가져오너라.”
물론 음식은 새로 주문했다.
그리고 식사를 느긋하게 끝낸 뒤에야 렘브러리는 여관에 숙소를 잡고 그곳에서 전서조를 불러서 쪽지를 적었다.
어느 어느 여관에 묵고 있으니 그쪽으로 자신을 찾으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렘브러리는 다 쓴 쪽지를 전서조의 다리에 묶어 날려 보냈다.
그런데 날아가던 새가 뜻밖에도 잘 날아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휘청이며 어딘가로 내려앉았다.
‘뭐지? 멸치가 찾는 사람이 저기 있나?’
렘브러리는 멸치에게 가 보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멸치가 찾는 사람이 레드린 신관인 걸 떠올리고서 자신이 먼저 그쪽으로 가 보았다.
멸치가 싫어하는 사람 닮은꼴을 만나면 무시무시하게 노려볼지도 모르니, 미리 언질이라도 해 둘 생각이었다.
렘브러리는 여관 밖으로 나가서 전서조가 내려간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전서조가 내려선 곳에 있는 사람은 레드린 신관이 아니었다. 렘브러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저자가 왜 여기 있지?
“너, 왜 여기 있느냐?”
렘브러리는 성큼성큼 그 낯익은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자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족이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누아르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렘브러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네가 왜 여깄어?”
아무래도 그는 렘브러리를 만나자 놀라고 기쁜 듯했다.
하지만 그 기쁜 마음을 대놓고 표현하면 마족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인상을 찡그린 게 분명했다.
렘브러리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장태리에게 조언했던 것처럼, 렘브러리는 마족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누아르는 마왕 봉인 폭발을 막은 후 자신을 너무 가깝게 여기는 게 틀림없었다.
“이봐, 대신관. 너 무슨 생각을 해 대길래 표정이 짜증 났다가 재수 없어졌다 하는 거야.”
“날 보러 왔느냐?”
“헛소리.”
“하지만 내 새를 데리고 있지 않느냐.”
렘브러리가 누아르의 어깨에 앉은 새를 가리키자, 누아르는 질색하면서 새를 쫓아냈다.
“네 새인 줄 알았다면 절대 데려오지 않았어!”
“그럼 누구 새인 줄 알고 불러들였느냐?”
“……이봐, 착각하지 마. 난 널 찾으러 온 게 아냐, 대신관. 저 새는 그냥 전서조로 쓸 만해 보여서 부른 것뿐이라고. 내가 찾으러 온 건 에이제다.”
“그게 누구더라?”
누아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멍청이. 붕어도 너보다는 기억력이 좋을 거다.”
“농담도.”
렘브러리가 웃음을 터트리자 누아르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한소리를 더 하고 싶은 듯 입을 벌렸다.
아마 사과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더 이상 말을 뱉지 못하고 팩 돌아서서 가 버렸다.
렘브러리는 그 뒷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섰다. 그런데 몇 걸음 가기도 전.
“대신관님?”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렘브러리가 돌아보니, 레드린 신관복 차림의 낯선 일반 신관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관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렘브러리는 신관의 손에 들린 전서조를 알아보았다. 아까 누아르가 쫓아낸 새였다.
이 운 좋은 전서조는 코앞까지만 날아가 임무를 완수한 모양이다.
“네가 그자로구나.”
렘브러리는 이 낯선 신관이 신조운의 원수 닮은꼴임을 알아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낯선 신관은 긴장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렘브러리를 따라 웃었다.
“대신관님께서 절 보겠다고 하셔서 좀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