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
운 의사생활
제1화
‘내가 의학을 구원할 것이다. 의학의 구세주 자리는 나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 파라켈수스가 했던 말이다.
파괴적인 질병에, 의학 대신 점성술과 철학, 신앙으로 대처하던 중세의 시대상.
직접 겪어보니 파라켈수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믿음에 대한 부족이 만악의 근원입니다!”
“오로지 기도만이 죽어가는 이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툭하면 믿음, 툭하면 기도, 이 새끼들은 도무지 상식이라는 게 없었다.
조금만 분발하면 치료할 수 있는데. 조금만 노력하면 살릴 수 있는데.
“비켜, 이 돌팔이 새끼들아!”
그래서 내가 나섰다.
비록 원래 세상에서 쓰던 고도화 된 의료기기는 없었지만, 현대 의학을 총동원하여 병자들을 살려냈다.
그랬는데.
“역시 황자님이시다! 황자 전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
사람들은 그걸 기적이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손으로 직접 사람을 살리시니, 가히 성자께서 도래하심이라!”
이제는 아예 나를 성자란다.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전문의일 뿐인데.
지금은 엉뚱한 몸에 들어와 있지만.
* * *
정하늘.
한국대 병원의 외과 조교수, 기혼, 37세의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요절.
특히나 정하늘의 유능함을 알고 있는 의료계 종사자들은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했다.
“그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놈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릴 줄이야.”
“마지막 순간에도 장기 기증으로 죽을 사람을 살리고 가셨다지.”
“정 교수님은 다음 생에도 의사가 되어 사람을 살릴 분이야.”
정작 그 당사자인 정하늘은, 죽음 이후 처한 상황에 황당해하는 중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정신이 들었을 땐 누군가 목을 옭아죈 것처럼 턱 막힌 것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하고 싶은 말 대신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내 목을 타고 흘러나갔다.
“응애애애!”
어찌 해보려 해도 거부할 수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내 몸에서 나는 소리가 신기하게도 꼭 아기의 울음소리 같았다.
“응애!”
목소리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체부위를 내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일, 두 눈을 치켜뜨는 일조차 버거웠다.
으으읍!
간신히 눈을 부릅뜨자 낯선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
그마저도 너무 희미해서 어떤 표정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입에서는 계속해서 거친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거 참. 목청 하나는 좋은 놈이구만.”
“축하드립니다, 성황 폐하! 이번에도 득남을 하신 것이, 가히 신께서 신경써 주심이 분명합니다.”
아랑곳 않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 내용을 엿들은 순간 내게 닥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게 된 건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내게서 나오는 걸 보니 거의 확실했다.
“이름은 데미안으로 하겠다. 데미안 힐데스하임.”
데미안 힐데스하임.
내가 부여받은 이름이나 저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추측컨대 이곳이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이 낯선 언어를 어떻게 들을 수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이전에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기묘한 일이었다.
“헌데…… 몸집이 왜소해 보이는군. 체중이 어떻게 되는가?”
“4파운드가 조금 넘으십니다. 평균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편이기는 하나,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십니다.”
“쯧. 사내 자식이 평균만도 못하다니.”
아버지로 추측되는 작자는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그래도 벌써부터 안광에 총명함이 가득하신 것이, 어쩌면 첫째 도련님보다 더 뛰어난 신성력을 지니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러려고 낳은 셋째니까.”
신성력이니 뭐니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대화가 오가는 중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눈앞의 초점도 마찬가지로 흐려졌다.
아직 알아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어쨌든가 첫 생일 때 이놈이 가진 자질을 봐야…….”
내 의지와는 달리 점점 힘이 빠져갔다.
며칠을 꼬박 지새우며 환자들을 볼 때도 견뎌냈던 잠기운이 무겁게 내 머리를 짓눌렀다. 고작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응애애애…….”
* * *
이후로도 깨어났다 잠들었다를 수 차례.
요람에 꼼짝없이 누워있는 탓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난 지 몇 달 정도가 흘렀다고 지레짐작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몇 달간 꽤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가 내가 살던 현대와 상당히 다르다는 건 베이스로 깔아두고……
우선 내 위로 배다른 형이 둘이 있다. 고용인들의 오가는 말을 들어보니 성격들도 보통은 아닌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버지라는 사람이 이 세계 최고의 권력자, 성황이란다. 모르긴 몰라도 다이아 중에서 최상급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거다.
성격이 좋기가 더 힘든 환경이긴 하지.
“불쌍한 3황자 전하. 황비님도 없이 어떻게 혼자 살아가실까.”
그리고 그런 두 형 밑에서 홀로 자라게 될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으나, 나는 별 상관없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전생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왔다. 부모 없이 홀로 자라나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떠올리면 차라리 정 붙일 부모가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허나, 지금 내 처지에서 부모가 없다는 것은 내 생각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벌써부터 첫째 황비님하고 둘째 황비님이 벼르고 계시던데.”
“그렇겠지. 어쨌거나 성황님이 낳으신 아들이니, 황위 계승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실 테니까.”
“고단한 싸움이 되시겠어. 뒤에서 밀어주는 외가도 없으니…….”
아버지의 성황 자리를 두고 나중에 싸우게 될 것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 어머니가 없다는 건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상관없었다. 이곳이 어떤 세계관을 가진 곳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나는 계승권이니 뭐니에 관심이 없었다.
성황, 그런 거 안 되더라도 잘 먹고 잘 살 텐데, 뭘.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고달픈 삶은 이미 전생에서 겪어왔고, 이번 생은 그에 대한 보상인 양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게 되었다. 치열하게 사는 것은 이제 질색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차피 성황님의 뒤를 이으실 분은 신성력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어?”
“조만간 3황자 전하의 신성력이 발현되고 나면, 조금은 확실해지겠네. 어떤 분이 황좌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분이실지.”
“나는 기왕이면 3황자께서 되셨으면 좋겠다. 아기인데 어쩜 이리 총명하신지. 필요할 때만 우시고, 평소엔 나이에 맞지 않게 의연하시니…… 첫째 도련님이나 둘째 도련님하고는 너무 다르…….”
“조용히 해. 얘가 큰일 날 소릴.”
첫째와 둘째.
고작해야 걸음마 좀 뗀 것들이 얼마나 망나니처럼 구는 것인지,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는 나에게까지 그 악행이 전해 들어 올 정도였다.
굳이 친해질 필요는 없겠지. 상황을 들어보니 친해지기도 힘들 것 같고.
그럼 애초에 그놈들과의 인연을 최소로 한 채 묵묵히 지내다가 홀로 떨어져 나가면 그만이다.
그래, 평화로운 삶을 살자. 다시 한번 다짐했다.
“우에에에.”
행복함에 저절로 몸이 파들거렸다. 베시시 웃음도 새어나갔다.
“도련님 웃으시는 것 좀 봐. 어이구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
“꺄아. 어쩜 이렇게 천사 같으실까. 가끔 식사 챙겨드리거나 하면 꼭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니까.”
“어?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네. 정말 어린아이 같지가 않으셔. 이런 분이 성황이 되신다면 정말이지…….”
내 인사가 잘 전달이 되고 있었다니, 그것 참 다행이네.
* * *
신성 제국의 성황 겔리두스 폰 힐데스하임.
아직 황위를 내려놓기에는 창창한 나이인데다 그의 세 아들이 너무 어리기도 했으나, 사람들은 벌써부터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1황자 전하께서는 5성급 신성력을 갖고 계시다지? 장자인데다, 최상급 신성력을 보유하셨으니 당연히 뒤를 이으시겠지.”
“모르는 소리. 1황자 전하는 간직하신 신성력에 비해 방출 능력이 부족하시다더군. 비록 2황자 전하의 신성력이 4성이기는 하나, 검술에 막대한 재능을 보이시니 군주로서의 면모는 1황자 전하보다 더 뛰어나다고 판단하실 수도 있는 게야.”
“이 양반들이 벌써부터 설레발들을 얼마나 치는 거야? 아직 3황자 전하의 자질이 드러나지도 않았으니 우선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
“혹여나 막내 황자께서 5성급에다 방출 능력마저 그에 걸맞은다 하셔도, 외가의 지원 없이 황좌에 오를 수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구만.”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는 중에, 막내 데미안 힐데스하임이 태어난 지 정확히 일 년이 되는 날이 찾아왔다.
“성배는 준비가 되었는가?”
성황이 손수 데미안이 가진 신성력을 깨우는 의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성물, 영겁의 성배.
“예, 준비 마쳐뒀습니다.”
이제 그 성배가 얼마나 채워지느냐에 따라서 데미안이 가진 신성력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성황이 신전에 들어서자 무수한 사람들이 보였다.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와중에, 가운데에 갓난아기가 엎드려 있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 데미안 힐데스하임이었다.
성황이 들어서자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은 분위기를 파악한 듯 안간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오, 사제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때때로 아이답지 않은 총명함을 보인다더니 정말이었다.
힘이 부족하여 넘어지는 데미안을 받아낸 대주교가 양탄자 위로 그를 올려두었다.
성황은 말없이 그 바로 앞에 서서 두 손을 높게 뻗어올렸다.
“친애하는 아버지시여. 당신께서 선사하신 세 번째 성자가 무탈히 일 년을 넘겼습니다.”
지루한 서두가 한참동안 이어지는 와중에도, 데미안은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혹여나 버둥거릴 것을 대비해 데미안을 잡고 있던 대주교의 손이 무안해 질 정도였다.
1황자와 2황자가 난동을 부려 골치가 아팠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역시…… 중요한 자린 걸 아시는 게야.”
“이토록 총명한 분이라니. 신께서는 분명히 더없는 권능을 주셨을 테지.”
그렇게 지켜보는 이들이 기대하는 와중에도 의식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당신께서 이 아이에게 선사하신 권능의 격을 살펴보려 하오니,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기나긴 의례 끝에 드디어 모두가 기다려 온 순간이 왔다.
데미안에게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빛은 영겁의 성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잔이 새하얀 신성력으로 차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사제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오…… 가히 성자께서…… 응?”
허나 그 감탄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의아함으로 뒤바뀌었다.
성배를 채우던 신성력은 고작해야 절반 조금 되지 않은 곳에서 멈추고 만 것이다.
그것을 본 여러 고위 사제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누군가는 황당해했으며,
“이럴 리가 없습니다! 성황님의 자제분께서 2성이라니. 착오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군가는 현실을 부정했고,
“아아, 신께서는 어찌하여 저희 인간의 미래를 저버리셨나이까.”
누군가는 절망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성황만큼은 싸늘하리만치 침착했다.
“2성이다. 성배를 원래대로 옮기고 의식을 마무리하라.”
평소 데미안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고위 사제가 씁쓸한 심정으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나이에 맞지 않게 명석한 분이라 신성력도 가히 남다를 줄 알았건만.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데미안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평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밝은 것처럼 보였다. 꼭 무거운 짐을 덜어낸 것처럼.
‘안타까울지로고.’
그러는 와중에, 성황의 서슬 어린 혼잣말이 들려왔다.
“저놈은 사경을 오가는 사람은커녕, 얕게 베인 상처조차도 치유하지 못하겠군. 쯧.”
그 순간.
찬란하게 빛나던 성배의 빛이 데미안의 몸속으로 온통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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