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황비께서는 참 따뜻한 분이었지요.”
내가 어머니에 대해 묻자 현자는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하께서는 그분의 성격을 꼭 물려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건 성격 더럽다는 뜻 아냐?”
“아닙니다.”
현자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성황과 다른 황자들에 대해서 물으면 좋은 말을 할 게 없으니 그냥 함구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황비에 대해서는 끝없이 칭찬을 늘어놓는 걸 봐선 정말로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전하를 잉태하셨을 땐 더없이 기뻐하셨지요. 제게 와서 어린아이처럼 자랑하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봤던 남자의 말대로 나에 대한 애정이 꽤 각별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성황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일까. 그것에 대해 묻자 현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저 역시도 알지 못합니다. 마음씨가 워낙 고우신 탓에 적을 둔 적도 없고, 폐하의 미움을 살 법한 일도 없었을 듯한데. 아마 가문 일과 좋지 않게 엮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머니의 가문은 힐데스하임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발칸 쪽으로 넘어간 상태란다.
허나 어머니가 사형 선고를 받고 그 가문이 돌아선 것인지, 돌아섰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부연 설명까지 이어졌다.
“아무튼 전하께서도 외가가 없고 모친이 계시지 않아 많이 힘드실 테지만, 가급적이면 다른 데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전하께는 불리하게 작용할 이야기가 될 터이니.”
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도, 감옥에 있던 그 남자가 누군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애초에 현자조차도 황비가 살아있는 사실을 모르니.
우선 당장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알아보니 서쪽에 있는 섬은 힐데스하임의 영토가 아니라서 쉽게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막상 가려니까 좀 떨리네.”
지금은 참회의 숲인지 뭔지 하는 곳에 가서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마음 편하게 가지십시오. 성기사들이 따라가 혹시 모를 사태에 모두 대비를 해 둘 겁니다.”
“잘하고 올게.”
대비는 나 역시도 짧은 시간 치고 훌륭하게 해냈으니 쫄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 * *
“가서 짐덩이나 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성에나 박혀 있지 그래?”
1황자는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늘 그렇듯 구태여 대꾸하질 않았다.
“하긴. 가서 망신 당하면 나만 좋은 일이지 뭐.”
화가 잔뜩 올라 보이는 1황자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1황자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순간 검이 내게 날아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캉.
본능적으로 반응하곤 실드를 만들어 검을 막아냈다. 이전에 상대했던 발칸 제국의 기사와 비교하면 훨씬 느리고 형편없는 검격.
다름 아닌 2황자였다. 2황자의 검은 내 실드에 튕겨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자리에 모여 있던 성기사들이 그 장면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2황자 전하의 검을…….”
“현자께서 괜히 칭찬하시던 게 아니었던 건가.”
2황자는 10살의 나이에 황궁 기사단의 수습 기사로 입단하여 놀라운 재능을 뽐내고 있다고 들었다. 황족에 대해서는 여러 허무맹랑한 뜬소문이 많이 도는 것은 사실이나, 1황자가 성력에 재능이 있다는 것과 2황자가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의 검을 가뿐히 막아낸 장면이 성기사들이 보기엔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이 새끼가!”
그리고 2황자는 꼴이 이렇게 되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되려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어 또다시 내게 휘두르려 할 때,
“전하.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성기사 한 명이 2황자 앞을 가로막고 섰다. 척 보기에도 꽤나 직책이 높아 보이는 기사였다. 결국 혼자 씩씩거리던 2황자는 휙 돌아서고 말았다.
“전부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참회의 숲으로 떠날 것입니다. 성기사는 세 조로 나누어 전하들의 호위를 맡게 될 예정입니다. 혹여나 여쭙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저 머저리까지 챙겨서 가려면 여정이 늦어질 텐데, 가는 길에 꼭 기다려야 하나?”
1황자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꼭 숲으로 함께 들어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기사를 세 조로 나누는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도달하여 절차를 마치신다면 귀환 역시 빠르게 하실 수 있지요.”
1황자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좋네. 그럼 내쪽 붙기로 한 기사들은 바로 준비해. 먼저 출발하지.”
2황자는 자연스레 말에 올랐다. 기사 생활을 하면서 숙달이 된 듯 꽤 그럴싸한 승마였다.
1황자와 2황자는 뭐가 그리 급한 듯 빠르게 출발했고 나도 그 뒤를 쫓기 위해 말에 올랐다.
“전하. 혹여나 말씀드리는 것인데 무리하실 것 없습니다. 빠르게 임무를 완수할수록 더욱 높은 등급이 매겨진다고는 하나 신변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십시오.”
성기사 한 명이 내 쪽으로 붙으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사들 모두 못 미더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 타는 건 이 세상에서 조금 익힌 게 다라서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뒤처질 정도도 아니었다.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저만치 앞에 보이는 1황자와 2황자의 일행을 놓치지 않았다. 해 질 무렵이 됐을 때, 말에서 내려 근처에 야영지를 세우게 됐다.
1황자와 2황자도 나와 거리를 벌리지 못한 탓에 바로 옆에서 야영을 하게 됐다.
“끈질기게 잘도 쫓아왔네.”
1황자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애써 태연한 척 그리 말했다.
“이딴 데서 어떻게 자라는 거야? 더러워 죽겠네.”
“배고프니까 빨리 먹을 것 좀 구해와 보라고.”
그리고 1황자와 2황자는 타고난 금수저 아니랄까 봐 이 환경에 몹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나와 함께 하게 된 성기사들 역시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전하.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근처에 마을도 없고 마땅한 사냥감도 보이지 않아 지체되고 있습니다.”
“괜찮아.”
사냥할 능력이 되지 않아 얻어먹는 주제에 저놈들처럼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호위를 위해 남은 일부의 성기사를 제외하곤 모두가 흩어져 분주하게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30분 정도 끝에 몰려온 기사들이 구해온 것은 버섯이 전부였다.
1황자와 2황자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당연하게도 불만을 토해냈다.
“지금 이딴 걸 먹으라고?”
“환장하겠네. 진짜.”
나도 매일 진수성찬만 먹다 이런 걸 먹으려니 익숙치 않은 건 사실이었으나, 저래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얼른 먹고 빨리 자자고. 내일 해 뜨면 바로 출발하게.”
내가 버섯을 우걱우걱 씹어넘기자 눈치를 보며 기다리던 성기사들 도 하나둘 식사를 시작했다.
결국엔 칭얼거리기만 하던 1황자와 2황자도 배가 고팠는지 마지못해 버섯을 씹어 넘겼다.
문제는 모두가 자려고 누웠을 때쯤 벌어졌다.
“으윽.”
성기사들이 하나둘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려댔다.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이들까지 속출했다.
그건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1황자와 2황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같이 모두가 비슷한 고통을 호소했다.
“저, 전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급하게 구해온 버섯에 독성이 있었던 듯합니다.”
성기사 한 명이 배를 부여잡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이미 이 정도 독에는 면역이 됐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1황자와 2황자 쪽 사람들이 끊임없이 내게 독을 먹여왔고, 여러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꾸역꾸역 버텨왔다.
실제로 그들이 그 빈도를 줄여나가게 되었을 때쯤엔 여러 독에 면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센 독을 먹였던 건지, 덕분에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어.”
“혹시 성력은 나오십니까?”
버섯에는 성력에 대한 거부 반응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 성기사들은 물론이요 다른 황자들도 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나는 멀쩡히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치료할 수도 있나?”
신성력을 통해 해독까지 가능한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른 성기사들 역시 그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보면 될 문제였다.
특정 부위에 상처가 난 게 아니다 보니 성력을 어디에 투여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몸 전체에 성력을 도포할 정도로 여유롭지도 않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성기사의 목 옆, 경동맥 쪽으로 최대한 성력을 집중시켰다. 뚫려있지도 않은 혈관 안으로 성력을 투여하는 것은 들어가는 것보다 빠져나오는 것이 더 많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성력이 혈관을 통해 잘 돌고 있는 것인지 성기사가 점차 정신을 차렸다.
“가, 감사합니다. 전하!”
“됐어. 상태 안 좋은 기사부터 데려와.”
나 혼자서 열 명이나 되는 성기사를 치료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해 모두를 회복시키고도 성력은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
“이 새끼야! 나 안 보여? 빨리 나부터 어떻게 하라고!”
소리쳐대는 1황자와 2황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무리의 성기사들 역시도 눈에 띄었다.
황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기사들은 여력이 닿는 대로 도와주고 싶었다. 저들은 괜히 따라나서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쪽의 지휘를 맡은 성기사가 나를 말렸다.
“전하. 성력을 최대한 아끼시어 시험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보기는 그렇잖아. 독성이 강해서 혹시 죽기라도 한다면…….”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성력을 억제시키고 몸에 통증을 유발하는 독성을 가지고 있는 버섯입니다. 길어야 반나절 안에 회복되고 결코 생명에 지장은 없는 놈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말하는 걸 보니 아까 먹은 버섯에 대해 퍽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 왜 말 안했지?”
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그가 말했다.
“이 여정의 모든 과정은 시험입니다. 부디 이번만큼은 전하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주십시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