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0)
제100화
여인은 처음에는 부정하다가도,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간 자신의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받아왔던 폭행에 대해 실토했다. 그걸 보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옥에 가둬라.”
다만 여인이 그토록 자신의 남편을 감싸려고 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그게 남편에 대한 사사로운 정 때문이라면 주제넘더라도 떼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터.
이미 그녀에게는 자식이 셋이나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아랫사람을 시켜 그 집에는 평생 굶을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지원을 보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남편 같지도 않은 놈을 아예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아직 내가 그 정도로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음속에 남은 일말의 윤리의식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이 가진 의의는 내가 단순히 한 가정을 구해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의원들은 내게 고개를 숙여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나 역시도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하며 다독여주었다. 그 덕분에, 의원들은 한동안 베이언에 남아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솔직히 그들이 가진 의술에 대해서 온전히 믿고 있지는 않았다. 이곳의 의술은 워낙 낙후되어 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 내 생각보다는 나은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클레이디크에서 보았던 의원들이 사람을 살린답시고 거꾸로 매달고 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양반이었다. 적어도 이들이 하려고 했던 인공호흡은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확실히 수도의 의원들은 클레이디크에서 보았던 이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처음 여인에게 행하려 했던 인공호흡은 일반인들에게 CPR에 대해 교육을 할 때도 점점 그 과정이 생략되고 있을 정도로 중요도가 떨어졌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결국 심장을 압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심장의 압축을 유도함으로써 혈액을 순환시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순환된 혈액은 온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의원들에게 그런 것까지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아직 의학 수준이 짧은 이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식일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 심폐소생술이 지닌 효과를 의원들은 똑똑히 눈앞에서 보았고, 나는 그들에게 직접 심폐소생술의 원리와 방법을 설명해두었다. 이것만 하더라도 응급 환자들을 훨씬 더 많이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의술과 치료소의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베이언 내에서 발생하는 사망자의 수는 눈에 띄게 줄 것이다. 그게 내가 가장 바라는 첫 번째 목표였고, 그를 위해서 베이언에서 의원이 되고자 희망하는 이들을 모으는 중이었지만.
의원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아무나 될 수 없듯이.
나는 이런저런 조건들을 걸어 의원이 될 이들을 모집하는 중이었고 인원이 추려지는 데까지는 아직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나는 베이언 내에 또 다른 지침을 내렸다.
「힐데스하임 내에 흐르는 모든 물은 신께서 내리신 성수요, 만악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근본이다. 시시때때로 온몸을 성수로 적셔 죄악을 씻겨 보내라.」
참 오그라드는 개소리가 아닐 수 없었지만, 이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위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의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세계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질병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병의 원인은 터무니없는 위생이 가장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위험한 바이러스나 세균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인들이 상식으로 배우는 멸균법만 옳게 실행된다면 사실상 감염률은 0%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적용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손과 몸을 깨끗이 씻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신의 이름을 팔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막 팔아먹으면 나중에 천벌을 받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이해해 주겠지 뭐. 내 방식대로 하라고 나를 이 세상에 부른 것일 텐데.
* * *
“심폐소생술이라…….”
발칸의 의원들은 3황자가 만들고 명명한 신비로운 기술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황자께서 힐데스하임의 힘을 쓰신 줄로만 알았네.”
“심장을 외부적인 압력으로 눌러 혈액의 순환을 이끌어낸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발상이란 말인가? 아니, 그 전에 혈액을 순환시키는 것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아셨는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혈액이 신체 내부를 타고 흐르는 것, 그리고 그 출혈이 많을 경우 그 순환이 깨져 생명에 지장이 간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출혈이 없는 경우에도 혈액의 순환을 돕는 것만으로 의식을 되찾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로서는 차마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혁신적이었다.
“황비님을 치료했다는 것이 결코 허풍은 아니었나 보군.”
“그건 모르지. 황비님의 병환은 심폐소생술로 치료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
아직까지도 3황자가 가진 의술 실력에 대해서 완전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긴급 조치를 했던 것 외에 3황자가 직접적으로 의술을 펼치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다만, 심폐소생술이라는 놀라운 기술을 만들어 낸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심폐소생술이 얼마나 뛰어난 효능을 지니고 있는지는 의원들도 치료소에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사용해 봄으로써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일전에 저를 살려주신 것 정말 고맙습니다. 의원님들이 아니었다면 불쌍한 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 얼마나 한스러웠을지…….”
그리고 덕분에 의원들의 손으로 살릴 수 있었던 환자들은 의원들을 찾아와 연신 감사를 표했다. 없는 처지에 선물이랍시고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자들도 있었다.
“이런 거 가져오지 말라고 했잖소. 그리고 감사 인사는 그대들의 황자께 표하시게.”
3황자가 아니었다면, 심폐소생술을 익히지 못했다면 이미 세상을 떠났을 이들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물론 심폐소생술은 만능이 아니었고,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의원들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의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이 가진 부작용도 있었다.
“……그때 부러진 갈비뼈는 좀 괜찮은가?”
“한동안 골골대기는 했으나. 허허. 뼈 좀 부러지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3황자가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아무리 주의한다고 하더라도 급박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펼치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혹은 그 외의 신체 부위가 파열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죽을 생명을 구해낸 것 치고는 아주 작은 부작용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점차 베이언 내에서 의원들과 치료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가고 있다. 덕분에 훨씬 많은 환자들이 치료소를 찾아오게 되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가진 이들의 수도 훨씬 적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발칸의 의원들은 더없이 뿌듯한 일이었다.
“참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군. 힐데스하임에 사는 이들도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어.”
울고, 웃고, 은혜를 가슴에 새길 줄 아는 인간들. 아직까지도 대외적으로 힐데스하임과 발칸은 적국이었지만, 발칸의 의원들과 베이언 영지민들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변해만 갔다.
“그러게나 말일세.”
아직까지 3황자의 의술 실력에 대해서는 미지수였지만, 그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있었다.
“참 좋은 분이신 것 같군. 우리 황제 폐하만큼이나.”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도 황태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신 게지.”
처음으로 찾아왔던 환자의 남편, 그에게 보인 분노에서 의원들에 대한 존중심과 낮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따스함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3황자에 베이언 영지민들의 태도에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인지도 알 수 있었다.
성력이나 의술, 다른 걸 제쳐두고라도 3황자는 정말로 훌륭한 군주가 맞았다.
“힐데스하임은 참으로 열등한 국가로군.”
“……응?”
“저런 3황자 전하가 성국 내에서 가장 입지가 낮다는 것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그 말을 부정하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 * *
칼로스는 의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혹여나…… 혹여나 그들 중 자신의 아버지가 있지는 않을까. 일전에 발칸 제국에서 보았던 것이 정말로 아버지였을까.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베이언에 모인 의원들 중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칼로스로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단 말이냐?”
“선배님들께는 제가 배신자처럼 여겨지실 테지요.”
“배신자라.”
의원들이 웃어 보였다. 발칸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던 그 날카로운 비웃음이 조금은 따스하게 변해 있었다.
“분명 그리 생각했었고, 자네가 발칸에서 힐데스하임으로 넘어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허나.”
그리 말하는 의원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들 누군가가 너와 같은 처지였다면 누가 3황자 전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긴 하는군.”
칼로스가 처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3황자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이나마 알게 된 덕에 칼로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이 너를 온전히 용서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너를 용서할 수 있을 때는 발칸과 힐데스하임이 온전히 화해를 한 뒤가 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칼로스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전까지 우리는 너를 과거의 동료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칼로스가 이곳에 찾아온 본론이었다.
“혹시…… 제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칼로스의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발칸 제국 제일의 의원이라 불리던 자신의 아버지가.
“그, 그게 무슨 소리냐?”
“힐데스하임의 신성력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더냐? 네 아버지가 죽은 지가 언제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칼로스는 3황자와 함께 황비를 치료하러 왔을 때 분명히 아버지인 게 분명한 이를 보았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발칸의 의원들은 칼로스를 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정말 모르시는지, 아니면 아직 제게 알려주실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칼로스는 지금 당장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가진 복잡한 감정의 응어리도 다 풀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직은 3황자의 밑에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제 아버지는 죽을 사람을 살릴 정도의 의원이라 들었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뭐라고 하건, 칼로스에게는 한없이 자랑스러웠던 아버지였고.
“저 역시 그런 아버지께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의원이 될 것입니다.”
칼로스는 예전부터 자신의 의술을 무시하던 의원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의술을 지니고 말리라고,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당당히 설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먼저 그를 찾아올 수도 있으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