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칼로스가 본 바에 따르면 3황자는 신체 내의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토록 완벽하게 장기들을 피해서 배를 갈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배를 칼에 찔리면 죽는다. 칼로스를 비롯해 의학에 무지한 사람들에겐 상식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정말 무지와 오류로 가득 찬 발상이었다.
칼에 깊숙이 찔린 이들이 대부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신체 내부가 주요한 장기들로 꽉 차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칼이 신체 내부를 파고들면 웬만해서는 치명적인 손상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헌데 3황자가 개복을 했음에도 조금의 후유증조차 없이 깨어났던 황비를 생각한다면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남들이 떠들어내는 것처럼 신성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3황자에게는 해박한 의학 지식과, 그것을 실현해내는 뛰어난 손놀림이 있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칼로스에게는 목표가 생겼다. 3황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의 발끝만큼만 따라가자는 것. 급박한 상황에서도 칼로스에게 자세하게 부연 설명을 해 주었던 3황자. 그건 그가 칼로스에게 기대를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칼로스가 그 기술을 재현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처음이었다. 칼로스가 의원이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모든 의원들이 그를 무시하고 비난했었다.
너는 결코 너의 아버지처럼 될 수 없다. 괜히 아버지를 망신시키지 말고 그만두어라.
칼로스는 바보가 아니었고, 그 의원들의 원색적인 무시조차도 그를 생각해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었다. 칼로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베일에 싸여 있는 부분이 많았고 의원들은 칼로스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칼로스는 보기 좋게 뛰어난 의원이 되어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고자 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수도에서는 의술을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고, 결국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클레이디크 행이었지만 그곳의 의술은 낙후되어 있었다. 발칸의 상식과는 완전히 벗어난 의술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까지.
회의감을 느껴 모든 것을 포기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신이 내려준 영웅처럼 앞에 나타난 것은 3황자였다.
칼로스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전장에서, 패닉에 빠져 있던 자신의 앞에 나타난 3황자. 그는 칼로스에게 빛이었다.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로 찬란한 빛.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3황자에게서 제대로 된 의술을 배울 기회가. 발칸 제국의 수도에서 전해지는 의술보다도 몇 배는 고도화 된 지식들을.
“후우.”
이미 개복하는 과정을 두 번이나 봤고, 수술 도중에 3황자에게서 조언을 듣기도 했었다. 그 과정을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 틈이 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상기시켜 두었다.
그럼에도 긴장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3황자까지도 무시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3황자의 눈 밖에서 벗어날지도 모르지만.
“시작하겠습니다.”
후회는 없었다.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자신은 3황자의 간택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을 명의가 될 자격 또한 없었다.
칼로스가 칼을 들어 고블린의 배 위에 가져다 댔다.
스윽.
3황자가 했던 것처럼 꾸욱 눌렀다. 너무 가볍게도, 그렇다고 너무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중도적인 손놀림. 머릿속으로 수백, 수천 번을 회상해왔다. 그것을 완벽하게 모방할 수는 없었으나 흉내 정도는 내 볼 셈이었다.
찔끔.
칼이 베어낸 고블린의 배에서 피가 새어 나왔으나 많은 양은 아니었다. 목숨에 지장이 가는 큰 혈관은 확실히 피해낸 것이었다. 허나 이 정도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아악.
손을 움직여 칼이 계속해서 배를 파고들어 갔다. 3황자가 했던 것만큼 손쉽게 파고들지는 못했다. 역시 눈으로 봤던 것만큼 손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조금 더 강하게.
칼을 움켜쥔 칼로스의 손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를 가르는 감각은 정말이지 묘했다. 소생은 살해의 역과정이라는 3황자의 말처럼. 자칫 그 과정이 꼬였다가는 괜한 생명을 죽이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그만.’
배를 주욱 그어내던 칼로스의 손이 멈추었다. 개복의 정확한 경로와 정도에 대해서 알지는 못했으나 그가 봤던 3황자의 개복술은 딱 여기에서 멈췄었다.
칼로스는 고블린의 갈라진 배 안을 열어 안이 확실히 보이게 한 뒤 수술용 칼을 내려두었다.
다행히 절개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출혈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칼이 신체 내부의 장기를 훼손한 것 같지도 않았다.
“다 된 것 같습…….”
3황자를 향해 그리 말하려던 칼로스는 주위의 시선을 바라보며 멈칫했다.
의원이 되기 위해 모인 지원자들은 고블린의 갈라진 신체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고개를 돌린 채 애써 헛구역질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발칸에서 모여든 의원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집중이 쏠려있는 것은 고블린의 시체가 아닌 칼로스였다.
“어떻게…….”
“저놈이 정말 칼로스란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칼로스가 여전히 철없고 형편없는 애송이처럼 보였을 터였다. 칼로스는 그것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여전히 많은 것이 부족했다. 다만 그것은 칼로스의 주변에 다른 의원들이 없었고, 비교 대상이 오직 3황자밖에 없던 탓이었다.
3황자에 비하면. 칼로스는 여전히 의원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놈이었다. 허나 발칸의 의원들은 칼로스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대체 그간 무슨 일을 겪은 것이냐.”
그 자리가 파한 직후 찾아온 의원들은 칼로스에게 물었고.
“3황자 전하에게 가르침을 조금 받았습니다.”
“정말로…… 3황자 전하께서 황비를 의술로 살리신 것이 맞단 말이냐?”
“두 손으로 직접 살리셨습니다. 저보다 백 배는 뛰어난 절개술로 황비께서는 수술 직후 조금의 후유증도 없으셨으며, 문제가 된 장기를 파악하시어 직접 정화하셨습니다.”
칼로스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모시는 3황자를 자랑하며 더욱 콧대가 높아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분 좋은 일이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군.”
“칼로스가 그 짧은 시간에 저 정도로 성장한 것도……. 과연 그의 아들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간절히 듣고 싶었던 소리까지 의원들에게 들을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3황자 덕분이었다.
칼로스는 집으로 돌아간 뒤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아직 그가 원하던 수준까지 다다르지는 못 했지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일을 이루게 된 덕이었다.
* * *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칼로스는 개복을 훌륭히 해냈다.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고, 수술 대상이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면 내가 끼어들어서 조정을 했을 테지만 고블린의 시신을 개복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칼로스를 제자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칼로스에 대한 시선들이 이토록 달라져 있었고, 칼로스는 지금 누구보다도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없었다.
“잘했다.”
나는 개복을 마친 칼로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가 진심으로 대견했다.
고작 두 번 곁눈질로 본 것만으로 이렇게 훌륭히 수행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한국대 의대생들을 데려다 놓아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는 결코 없을 것이다.
재능.
누군가는 그렇게 재능의 탓으로 돌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칼로스는 나와 비슷한 부류라 잘 알고 있었다.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집념. 그리고 그 탐구를 통해 얻은 것을 결코 잊지 않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과거의 나와 꽤나 닮아 있었다.
한국대 의대를 다니던 시절, 그리고 의사가 된 후로도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절의 정하늘이었다.
잠시 회상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과거였다. 그 시절 얻었던 의학 지식들만 기억하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당시 정하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면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현 세계를 살아가는 데 오히려 지장이 될 뿐이었다.
“칼로스가 말했던 대로 많은 양의 출혈을 야기하는 혈관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출혈로 인해 사망하지 않는다.”
동맥과 정맥.
의원들에게는 이미 혈액의 순환에 대한 중요성을 심폐소생술을 통해 인지시켜 두었으니,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이어가기로 했다.
“여기 선홍색의 혈관은 동맥, 검붉은색의 혈관은 정맥이라 부를 것이다.”
개복을 해 드러나 있는 동맥과 정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 종류의 혈관은 몸 전체에 퍼져 있어 어느 곳이든 절개를 함에 있어서 주의를 해야 한다. 잘 훈련된 기사들은 상대를 손쉽게 제압하기 위해 정맥 혹은 동맥의 위치를 대략으로나마 파악하고 있으나 우리는 결코 대락적으로만 알아두어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 확실히 인지를 시켜두어야만 했다.
“앞서 말했듯 살해를 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으나, 소생을 하기 위한 방법은 많지 않다. 오히려 소생을 하려다 찰나의 실수로 인해 그대들이 살인마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의료 사고는 대한민국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수술을 한 당사자에게도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일이요,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 환자와 유가족들에게도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었다.
“고블린의 경우에는 복부에 칼을 맞았으나 보다시피 칼이 동맥과 정맥을 피해 들어갔고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양의 출혈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허나 개복을 해 확인을 해 본 결과 칼이 깊숙이 파고들어 장기에 손상을 만들어냈다.”
고블린의 사인은 대장의 파열이었다.
“장기에서의 출혈과 염증 발생은, 해당 장기의 원활한 기능을 방해함으로써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아직 이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난해한 부분일 테지만.
“신체의 어떤 부분에 어떤 장기가 있는지, 어떤 장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것을 알아야만 원활히 치료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너희들이 배우게 될 내용은 의술에 필요가 있느냐 의구심이 들게 할 테지만 그런 의심은 접어두어야만 한다.”
정말이지 다시 의대 교수가 된 기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