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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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의학 지식을 단계별로 차근차근 가르쳐 나가는 것은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이론을 뒷받침해줄 교구도 없었으며, 이론 위주의 설명이라 이들에게는 너무 막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이들이 당장 백 퍼센트 신뢰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발칸의 의원들이나 칼로스에게는 보여준 것이 있었지만, 베이언에서 의원이 되고자 모인 이들에게 나는 신성력을 가진 황자일지언정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으로 보일 리는 없었다.
언제 한번 저들이 도달해야 하는 의술의 위치를 제대로 보여주고자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내게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 * *
힐데스하임 내에 ‘망자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마인츠라는 작은 도시 왕국이 바로 그곳이었다.
“……3황자께서 마인츠에 가신다고?”
그리고 3황자가 마인츠로 향한다는 소식은 베이언 내에 빠르게 퍼졌다.
최근에는 발칸에 다녀왔고, 그 전에도 이미 3황자의 행보는 예상 밖을 벗어난 적이 많았기에 웬만해서는 납득이 될 터였지만.
“마인츠에는 갑자기 왜?”
“너무 위험한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지…….”
베이에른과 마인츠, 그리고 이외의 몇 곳이 현 힐데스하임 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뽐내는 가문이라 일컬어지고 있었지만 마인츠는 종종 그 목록에서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 이유는 마인츠를 힐데스하임 내의 전력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그 골칫덩어리들에게는 대화도 안 통할 텐데.”
“이미 몇 대째 성황께서도 버려둔 곳 아닌가.”
분명 마인츠 왕국은 공식적으로 힐데스하임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마인츠는 다른 왕국들과는 달리 힐데스하임의 정치적 영향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마인츠에서 때때로 힐데스하임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들을 해 왔음에도 힐데스하임에서는 묵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성력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괜히 몹쓸 짓을 당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마인츠 내의 기사들은 성력을 쓰지 못하니 힐데스하임 내에서 유일하게 성기사로 불리지 않는 기사들이었다. 그럼에도 마인츠 내에서 싸운다면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신께서는 어찌 그 극악무도한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셨는지.”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은 아니지. 힐데스하임에서 신성력을 빼앗긴다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가혹한 처벌 아닌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마인츠의 이들이 신성력을 빼앗긴 것과 더불어 마인츠 내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신이 내린 처벌이라 여겼다. 허나 마인츠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면 그들은 신성력을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전해지지 않은 일부 궁극 신성 마법.
가슴 속의 고리를 불태우는 대신 극강의 위력을 얻을 수 있는 비기였고, 그 중 하나를 손에 얻은 것이 마인츠였다.
신에 대한 막연한 믿음보다는 자신들의 무력을 우선시했던 마인츠에서는 모든 고리를 불태워 신체 능력을 강화했다. 또한 마인츠 내에서는 어떠한 성력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들이 마인츠로 갔을 때, 마인츠의 기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이유였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이 버린 땅이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여겨졌으나, 그런 곳에 어찌 3황자가 방문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 * *
신성력을 사용하면 대개 겉으로 빛이 발산하기에 모두가 알아챌 수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신성력은 비록 효용이 떨어지기는 하나 겉으로 티가 나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게 내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의술로 사람을 살려냈다고 한들 내게 달린 신성력과 황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의심하는 이들은 분명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술이 아닌 성력에 의한 치유일 것이라고.
이제 막 의술을 배워나가는 지망생들에게 내가 가진 의술의 효용을 확실히 보여주려면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곳이 바로 마인츠였다.
그래서 나는 일부 기사들과, 발칸의 의원들, 그리고 의원이 되고자 하는 지원자들을 데리고 곧바로 마인츠까지 향했다.
“마인츠의 국왕 웰터 마인츠라고 합니다. 성국의 황자 전하께서 이곳까지는 웬일이십니까?”
마인츠의 국왕은 달갑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인츠가 힐데스하임 내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가 황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 저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인츠에서는 신성력이 통하지 않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소. 그렇게 죽어 나가는 이들의 수도 셀 수 없이 많다지.”
“희생 없는 대가는 없는 법이지요. 그게 마인츠입니다. 평생 신성력의 따스한 바람만 쐬어 오신 황자께서는 이해하기 힘드시겠지요.”
그의 눈에는 적대심이 가득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는 마시오. 그런 걸로 마인츠를 깎아내리려 할 생각은 없으니. 단지 같은 힐데스하임의 총애를 받는 입장으로서, 그들에게도 신께서 내리시는 치유의 권능을 베풀어 주려 왔소.”
“핫. 푸하하핫.”
마인츠의 국왕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라보고 있자니 그리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황자 전하께서 설마 모를 리는 없으실 텐데, 무슨 속셈이십니까? 이곳 마인츠에서는 그 누구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듣자 하니, 차기 성황으로 1황자 혹은 2황자 전하가 되실 거라 소문이 돌고 있던데. 그분들은 물론이요, 지금의 성황 폐하가 오셔도 이곳에서 성력은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헌데 3황자 전하께서…….”
“누가 꼭 신성력으로 치유한다고 했소?”
“……예?”
“그대들이 신성력과 교환한 그대들의 강함은, 그대들에게 있어 신의 축복이라 여겼소. 남들이 어찌 바라보든.”
“당연한 말입니다. 저희는 힐데스하임 신께 버림받았다는 바보 같은 말은 결코 믿지 않습니다. 신은 저희에게 신성력을 거두어가신 대신, 신체에 또 다른 힘을 주셨습니다. 성력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직접적인 힘이지요.”
그는 정말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마찬가지로. 나도 신께 받은 게 신성력뿐만이 아니라서. 신성력이 아닌, 이 두 손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권능을 전해 받았소.”
“…그게 말이…….”
“되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든지.”
* * *
마인츠에서는 죽어가는 이들을 치료할 방법이 오로지 신께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이들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신성력을 잃어버린 대신 얻게 된 새로운 힘은, 오히려 주변에 즐비한 적들에게 대항할 힘을 갖게 함으로써 더한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부패해 버린 힐데스하임에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면 됐다. 죽어가는 이들을 구원할 신성력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막대한 힘이 없었더라면 현 마인츠의 상황은 훨씬 더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고, 누가 죽더라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염병에 희생당하더라도 힐데스하임에 손을 벌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게 선대 국왕들이 이끌어 온 마인츠였고, 앞으로 꿋꿋이 유지해 가야만 하는 마인츠의 태도였다.
분명, 마인츠의 왕국민 혹은 가신들 중에서도 국왕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피 흘려가며 죽어가는 이들을 모른 체 자존심만 내세워 간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허나 마인츠 국왕이 힐데스하임에 고개를 숙였다가는 어찌 될지 알고 있었다. 단순히 고리를 불태워 힘을 얻은 이들만이 신성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마인츠 전역에서 신성력이 무력화되는 것은 신의 깊은 속뜻이 담겨 있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부패한 힐데스하임 성족들에게 밀리지 않도록, 이들에게 가호를 베푼 것이었다. 또한, 신성력의 힘에 대중들이 매료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코자 하는 뜻도 담겨 있을 터였다.
헌데,
“신성력이 아닌, 이 두 손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권능을 전해 받았소.”
난데없이 찾아온 힐데스하임의 3황자는 신성력과는 별개의 능력으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인츠의 국왕은 당연히 3황자가 신성력을 통해 마인츠의 사람들을 구원해주려 하는 줄 알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했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기까지 엄청난 고민을 했다.
많은 이들이 신성력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 국왕은 그것을 무시하는 냉철한 인간이라 하지만,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어린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선 채로 오늘내일하던 것이 벌써 일 년째 되었다.
3황자의 말이 사실일까.
엄청난 고민이 들었다.
마인츠가 이렇게 된 것은 분명 신의 뜻이다. 신성력이 없이도 마인츠는 굳건히 한 왕국으로서 입지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고, 국민들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신이 점지한 바였다.
헌데 마인츠 국왕은 알게 모르게 신성력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 수 차례였다. 자신의 아들이 죽어갈 때에는 아들을 데리고 수도로 가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도록 할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단지 신성력을 멀리하라는 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들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3황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성력이 아닌 다른 힘으로 죽어가는 이를 살릴 수 있다면.
마인츠 내에서도 죽어가는 이를 그저 바라만 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신이 내린 성자가 아닐까. 신이 꿋꿋이 버텨 온 마인츠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그 말이 거짓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나는 사람의 목숨을 결코 가벼이 여긴 적이 없소. 반드시 살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정치적인 관계를 뒤로하고 최선을 다해보겠소.”
그 말에 마인츠의 국왕은 그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을 가장 먼저 3황자에게 맡기기로 한 것은, 그의 아들을 그만큼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왕국민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3황자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대에 자국민들을 올릴 수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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