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저는 결코 당신과 힐데스하임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인츠의 국왕이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그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달라진 그의 표정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맡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제 아들입니다.”
침대에 기댄 채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안색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시체처럼 초췌해져 있었다.
고작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였지만 이 세계의 특수한 환경과 그가 처한 위치 때문인지 나이와 맞지 않게 성숙한 언행을 보였다.
“힐데스하임의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미 아이의 상태를 들어 알고 있었다.
수시로 미열과 두통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으나, 부가적인 증상일 뿐이었다. 심각한 것은 하반신 전체가 마비되어 걷는 것은 물론이요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이를 보고 있던 나를 마인츠 국왕이 따로 불러내어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듯 전하께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아이를 맡기는 것은 전하를 신뢰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허면 어째서.”
“저와는 상관없는 이를 맡기는 것은 왕으로서 무책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허나 그대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아이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적어도, 제 아이이기 때문에 병이 낫지 못하고 죽는다면 저는 누구보다 슬퍼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상태로 멈춘다고 해도 이미 몸 반쪽이 병신이 된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왕족이라면 결국……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은 삶을 살게 될 테지요.”
마인츠 국왕의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그건 아이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 그 보호자인 국왕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내가 손을 써 보는 것이 무조건 낫지만.
국왕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혹여나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저를 현혹하기 위한 허풍이셨다면, 가엾게 그 희생양이 된 아이를 위해 저는 복수를 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께서는 저희를 버리지 않으셨다 믿고 있습니다. 마인츠는 쭉 그리 믿어왔고 언젠가 저희에게 새로운 방식의 구원을 내려 주실 거라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마인츠는 알려진 것처럼 무자비한 폭군이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었으며, 신성력과 신을 저버리고 망나니처럼 사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일면만 보고 판단할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내 앞에 있는 마인츠의 국왕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부디 전하께서 신이 내려 주신 새로운 빛이라 믿겠습니다.”
그의 눈빛은 꽤 결연해 보였다. 갑자기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마인츠 왕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상태를 살폈다.
증상으로 보건대 십중팔구 소아마비였다.
바이러스에 의해 신경계가 감염이 된 소아 마비의 경우에는 단순히 안정을 취하거나, 마비된 근육을 중점적으로 물리 치료를 진행하면 낫게 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좀 어떻습니까?”
칼로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이 잘못 되었다가는 정치적인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게 되어버렸으니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이 감염된 것 같아.”
“신경이라 하심은.”
“전에 오크의 팔을 붙였을 때 연결했던 작은 실 같은 것 있지? 그게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게 공격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허면 이럴 때는 어찌 해야 합니까?”
그 말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주로 다루었던 것은 외과적인 부분이었고, 애초에 외과적인 시술이 아니라면 이 세계에서는 행하는 데 특히나 더욱 많은 제약이 걸렸다.
아니, 소아마비의 경우에는 전생에서도 굉장히 까다로운 질병 중 하나였다. 백신을 통해 예방할 수는 있으나, 이미 발병한 소아마비에 대해서는 항바이러스제조차 만들어지지 못해 직접적인 치료법이 없었다.
재활 치료를 통해 마비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욱 악화하는 것을 막을 뿐이었다.
“기력을 최대한 회복하게 해서 면역력을 증진시켜야지.”
그렇게 말한 나는 왕자에게 다가갔다.
“아버지께서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는 나를 바라보며 조심히 물었다.
“너를 치료해달라시더군.”
“정말로 저를 낫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의사로 살던 시절부터 늘 그랬다.
‘환자한테는 좀 좋게 말해주면 안 되냐? 넌 너무 솔직한 게 문제야.’
‘어차피 보호자는 알 거 다 아는데. 환자한테까지 솔직히 말할 거 뭐 있냐. 그러다 환자 정신적인 충격 받으면 몸 건강에까지 악영향 간다니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지극히 내 개인적인 마인드 문제였다. 나중에 가서는 대답을 회피하는 지경에까지는 올랐지만, 차마 하얀 거짓말을 내놓지는 못했다.
“종종 그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제가 몸이 아픈 것이 마인츠가 벌을 받는 것이라고. 신이 내려 주신 축복을 저버린 탓이라고.”
고작 5살짜리가 한다는 소리가 저런 것이라니, 이 아이도 나처럼 인생 2회차가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만약 정말 그런 것이라면, 그래서 제가 벌을 받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응?”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제가 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절대 알려진 것처럼 나쁜 분이 아닙니다. 신께서 오해를 하고 마인츠에 더 큰 벌을 내리신다면…….”
“걱정 마. 신은 모든 걸 알고 있거든. 정말로 마인츠와 너희 아버지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면 벌을 내릴 일은 없을 거야.”
“허면 제게 내리신 벌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병에 걸리는 게 신을 똑바로 믿지 않아서라고?”
나는 애써 웃으며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그거 다 개소리야.”
* * *
“병에 걸리는 게 신을 똑바로 믿지 않아서라고? 그거 다 개소리야.”
3황자의 말을 훔쳐 들은 마인츠 국왕의 심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오묘한 기분이었다.
마인츠는 여전히 힐데스하임 주신을 모시고 있었으며, 신성 제국에서 성행하는 율법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다.
허나 신성 제국과 대립하는 와중에 문득 회의감이 몰려들고는 했다.
정말로 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이들은 신성 제국의 황족들이었음에도 그들은 누구보다 배불리 잘 살아가고 있었다.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야 할 것은 신성 제국민들이어야만 했음에도 그들은 신성력을 통해 질병을 견뎌내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다른 누구도 아닌 힐데스하임의 3황자가 신성 제국의 절대 법칙을 부정했다. 그에 마인츠 국왕은 누구보다 속이 시원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위로라도 받은 느낌이었다.
“소문과는 다르군.”
힐데스하임 내에서 도는 3황자에 대한 소문은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신성 제국 놈들이 하는 말은 전부 개소리였으니, 어쩌면 그 소문과 정반대인 3황자의 모습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마인츠의 국왕은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자신의 아들과 3황자의 행동을 감시하며, 그에 대한 내용을 계속해서 보고받았다.
“신성력은 사용하지 않고 다리를 주무른다라.”
두 손으로 직접 고쳐보겠다던 3황자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3황자는 정말로 마비된 아이의 다리를 두 손으로 주무르고만 있었다.
고작 그런 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나.
“전하! 전하!”
신하 한 명이 급하게 국왕을 찾아와 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와, 왕자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국왕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한걸음에 달려간 왕자의 방에서, 정말로 왕자가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서 있었다.
“……!”
국왕은 그것을 보며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짧은 순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심정이 국왕의 머릿속을 오갔다.
호전된 아들의 상태를 보며 당연히 느끼는 부성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국왕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신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단 말인가.”
국왕은 3황자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말로, 3황자는 두 손으로 아이의 다리를 어루만져 주었을 뿐인데 일 년간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던 아이가 직접 일어서게 되었다. 아직 제대로 걷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호전된 것이었다.
“……이 정도로 호들갑은.”
국왕은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았다. 계속해서 아이의 나아진 다리를 보고 싶었고, 따스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인츠는 약육강식의 사회였다.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아이가 나았다는 것과, 3황자의 치료가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국왕. 그는 안심하고 국정을 소화해 나가고 있었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늘 나쁜 일이 있는 법이었다.
“저, 전하. 급히 왕자님께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왕자께서 쓰, 쓰러지셨습니다!”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상태가 나아지고 있었고, 얼굴도 밝아져만 가던 아이가 이번에는 왜 또 쓰러졌단 말인가.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아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국왕은 쓰러진 채로 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자신의 아들을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결코 3황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성을 잃은 국왕은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마비가 호흡기까지 이어진 것 같소.”
3황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국왕을 바라보았다.
“호흡기가 마비되었다는 건…….”
“다리가 마비가 되면 걷질 못하듯이, 폐나 기도가 마비되면 숨을 쉴 수 없소.”
“허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장담할 수는 없소.”
3황자의 그 말에 국왕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