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5)
제105화
사실 이건 소아마비의 증상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소아마비는 대개 하반신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곳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심해져도 다리 두 쪽 못 쓰는 경우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질병이든 최악의 상황은 있었고, 소아마비의 경우에는 호흡기 마비가 그러한 것이었다.
갑작스레 쓰러진 마인츠의 왕자는 목을 부여잡으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고 있었다.
“……젠장.”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한다고 한들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호흡 곤란의 경우 대부분 심폐소생술을 통하여 해결됐었습니다.”
나를 따라온 발칸의 의원 중 한 명이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았지만 결코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심폐소생술은 폐보다는 심장의 기능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호흡과 혈액의 순환, 두 가지 중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혈액의 순환인 탓에 심폐소생술이 그만큼 큰 효용을 보일 뿐이다.”
지금은 심장이나 혈액의 순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혈액의 불순환에 의한 호흡 곤란이 아니라, 순전히 호흡기에 생긴 마비에 의한 것 때문이었기에 심폐소생술이 일시적인 효과를 보일지언정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인공호흡도 호흡기 마비에 걸린 왕자의 목숨을 몇 분 정도 더 구제할 뿐일 터였다.
마인츠의 국왕은 이곳을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의 비참한 뒷모습에서 전에 보았던 수많은 모습들이 지나갔다. 정말로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있던 나는 내 뺨을 후려쳤다. 그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언제나, 환자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까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진정한 의사의 삶이었다.
소아마비. 호흡 곤란.
그 두 가지의 키워드를 떠올리고 있다가 문득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철의 폐.
Iron lung이라 불리는 인공 호흡 장치는 20세기 중반부터, 현대까지도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을 만큼 뛰어난 효용을 보이고 있었다.
호흡기가 마비된 환자들의 경우,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커다란 철제 폐 안에 들어가 평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외부에서 공기를 주입하여 폐에 인위적인 압력을 가하고, 그를 통해 호흡을 유지하게 하는 기계이었다. 물론 지금의 기술력으로 그런 것을 당장 만들어 낼 수는 없었으나 비슷하게나마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왕자를 침대 위에 확실히 고정시켜라.”
호흡 곤란으로 인해 발작하고 있는 아이를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단단히 붙들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손을 뻗음과 동시에, 심장의 고리를 회전시켰다.
이곳에서 신성력은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인지 마인츠에 온 첫날 확인해 보았고, 정말로 성력의 고리는 무언가에 턱 걸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마력의 고리는 회전시키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화아악.
마력의 고리가 강하게 회전하며 내 손을 통해 무형의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비록 성력에 비해서는 초라한 양인데다, 조절조차 익숙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터.
나는 아이의 가슴 위에 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뿜어낸 마력을 안으로 집어넣어 양쪽에 위치한 폐를 마력으로 감쌌다. 가운데 위치한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 반면, 폐는 딱딱하게 굳어만 있었다.
파악.
마력을 통해 폐를 압축시켰다가 다시 이완시켰다. 폐에 압력이 가해지며 호흡이 전달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악, 화악.
이후로 수 차례 폐를 압박시켰고, 발작하던 아이의 몸짓이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완전히 잠잠해진 아이는 두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전하.”
“와아! 왕자께서 살아나셨다!”
“3황자 전하께서 두 손으로 하여금 왕자님의 목숨을 구제하셨다!”
모르는 이들은 그리 떠들어대고 있었고, 의원들과 마인츠의 신하들을 비롯한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잠겨 있었지만.
“허억, 허억.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데, 누군가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 말하는 왕자와, 그의 상태를 알고 있는 나는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왕자의 말을 들은 이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와,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는 게냐? 어떻다는 게냐. 똑바로 말을 해 보거라!”
국왕은 놀란 듯한 얼굴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5살짜리 아들은 익숙한 일인지 되려 웃어 보였다.
“아마도 신께서는 저를 거두어 가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황자 전하께서 억지로 저를 붙들고 계십니다.”
왕자의 말을 들은 이들은 전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왕자의 가슴 위에 올린 두 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채로, 계속해서 마력으로 그의 폐를 박동시키고 있었다.
“……전하.”
국왕의 눈빛은 간절해 보였다. 그는 내가 두 손을 떼어내면 왕자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 제길!”
그렇다고 평생 내가 왕자의 옆에서 붙어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그것 역시 알고 있는 국왕은 얼굴을 감싸며 욕설을 내뱉었다.
“모두 나가거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마인츠의 국왕은 나와 왕자를 제외한 모두를 밖으로 내보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의원 지원자들과 발칸의 의원들도 모두 밖으로 나갔다.
“결코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그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회피할 수도 없었다.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오. 예상치 못했던, 아니 예상했더라도 불가피한 최악의 상황이라.”
“허면 이것이 정녕…… 신께서 내리시는 벌인 겝니까? 저희가 신께서 선사하신 힘을 저버려서?”
가당치도 않은 개소리였다.
“이건 결코 신과는 상관없다. 신의 뜻대로 악한 이들이 벌을 받고 선한 이들이 상을 받는다면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겠지. 마인츠와, 그대의 왕자 역시도 이런 꼴이 되진 않았을 테고.”
“정말로.”
마인츠 국왕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정말로 듣고 싶던 말이었습니다.”
그런 국왕과는 달리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것은 그의 아들인 왕자였다.
“저도 역시 그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 전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모든 죄가 사하여지는 것만 같습니다.”
애초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어린아이인데.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정말로 세상이 잘못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있던 마인츠의 국왕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 아래에서 자라거라.”
“이번 생에선 충분히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 다음 생에는 좀 못된 아비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인츠 국왕은 그 말까지 듣고는 뒤를 돌아 걸어갔다. 그의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들의 최후는 차마 그의 눈으로 보지 못 하겠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눈물을 터뜨리는 걸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인지 그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단둘이 남자 왕자는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감사합니다. 잠시나마 다리가 움직여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왕자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가슴 위에 얹어진 내 손을 떼어내었다.
“커헉.”
그는 고통스러움에 목을 부여잡으며 발작하기 시작했고, 애써 참으려 노력했지만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참…… 다리 주물러 주신 것, 커헉. 정말 시원했습니다. 커허헉.”
그는 결국 축 늘어진 채로 운명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들이 또다시 목까지 차올랐다.
* * *
마인츠에서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다. 고리를 회전시키려 하면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고리를 회전시키지 않고도 성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영겁의 성배.
성물에 채워진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마인츠 내에서도 가능했다.
의술만을 사용하기 위해 온 마인츠에서 신성력을 발현시킬 방법을 기어코 찾아낸 것은 치료를 위함이 아니었다.
“……마인츠 대왕국의 2왕자께서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되셨으나, 그것은 저주가 아닌 신의 은총이요, 신께서 왕자님을 일찍 부르심이라.”
왕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왕자의 추모식에 대거 참가하여 묵념을 올렸다. 마인츠의 국왕과, 왕자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다는 방증이었다.
“어찌 이렇게 떠나신단 말입니까!”
“평생 왕자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울부짖으며 그를 떠나보낸 슬픔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저들의 심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자니 비겁해지는 것만 같았고.
오오오….
근처에 떠도는 영혼의 기운도 내 귓가를 간질여대고 있었다. 그 망령의 정체는 당연히 왕자였다.
성배를 통해 발현시킨 미량의 신성력을 통해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한이 많이 남았군.”
아닌 척 하던 그에게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원한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런 원한은 아니었다.
「이리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라도 해 두었을 것을.」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정말로 괜찮은데.」
「나로 인해 이토록 많은 이들이 괴로워할 줄이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 것에 격분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만, 그로서는 추모식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이 한스러운 일인 듯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정말 훌륭한 왕이 되었으리라.
나는 그런 그를 위해 성배에 남은 성력을 모두 털어내었다.
[역설의 권능을 발휘합니다.] [혼령이 되어 목소리를 잃은 자에게 잠시나마 은총을 내립니다.]왕자의 영혼은 한참이나 나를 주시한 채로 멈추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게 고마움을 표하더니 울분을 토하는 왕국민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자랑스러운 마인츠 왕국에서 왕자로 태어난 것은 항상 과분한 일이라 여겨왔습니다.」
“와, 왕자님!”
“바, 방금 잘못 들은 것이 아닌……?”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늘 과분한 대우를 받아온 탓에 나도 모르게 자만심이 차오르면 다음 날을 반성하는 데 모두 사용하곤 했습니다.」
“왕자께서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저희 같은 분을 어루만져 주시어 늘 감사했습니다.”
“어찌 신께서는 저런 왕자님을…… 흑흑.”
「부디 나로 인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또다시 과분한 대우를 받아, 힐데스하임 주신의 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니.」
“아아…….”
「마지막 가는 길까지 저를 위해 은총을 베풀어 주신 힐데스하임 3황자 전하와, 훌륭한 아버지이자 스승이셨던 국왕 전하께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거기까지 전한 왕자의 영혼은 바람에 흩어져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나갔다.
왕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으며, 국왕뿐만 아니라 많은 마인츠의 왕국민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배웅할 수 있었다.
내가 끝내 살리지 못한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 * *
“왕자께서는 한을 많이 털어내셨겠군.”
“그건 무슨 소린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래도 왕자께서는 죽은 후에도 3황자 전하 덕분에 목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주실 수 있었으니.”
“힐데스하임에서는 신성력 덕분에 그것이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왕자가 추모식에서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3황자 덕분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3황자 일행이 마인츠 왕국 내를 떠돌며 중환자를 치료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모두가 열렬히 환호하고 있었다.
이미 3황자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쌓여 있었으며, 그의 두 손으로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신에게 은총을 전해 받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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