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6)
제106화
“혹시 아들이 황자 전하께 남긴 말은 따로 없었습니까?”
추모식까지 모두 마친 후 마주한 마인츠 국왕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처음 보았던 굳건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으니 너무 걱정 말라 하더군요.”
왕자가 국왕을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들을 나는 굳이 전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수록 국왕의 죄책감과 괴로움만 더욱 커질 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탓이었다.
“……제 고집 때문입니다. 성국과 담을 쌓아야만 한다는 제 괜한 고집이 이리 만들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성국에는 이토록 훌륭한 분도 계셨는데 말입니다.”
“너무 자책할 필요 없소.”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뿐이다. 힐데스하임에서 태어난 이들이 모든 일을 신과 엮는 것도, 사회가 그렇게 형성되었을 뿐이고.
내가 보기에는 마인츠의 사상이 적어도 힐데스하임보다는 나았다. 합리적이지는 않더라도, 비인륜적이지는 않으니까.
“황자 전하께서 마인츠까지 오신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로서는 당연히 이해가 가지 않을 터였다.
“처음에는 저와 마인츠를 기만하러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할 왕자를 전하께 맡긴 것이었고, 일이 잘못된다면 그 길로 성국과 전쟁을 벌일 셈이었습니다.”
“……마인츠의 전력으로는 안 될 텐데.”
혹여나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마인츠가 최강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인츠 내에서 해당되는 것이었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마인츠의 영토를 성국에서 토벌하지는 못하더라도, 성국으로 쳐들어 온 마인츠의 병력을 상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
“알고 있습니다.”
그걸 국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인츠는 지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매년 수천, 수만 명의 왕국민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수백의 병사들이 끔찍한 사고로 희생됩니다. 허나 저희가 모시는 힐데스하임 주신께서는 저희에게 빛을 내려주지 않으십니다.”
의술도, 신성력도 없는 마인츠의 상황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수많은 희생양들이 발생하고 있을 것이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마인츠로 왔던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의술이오.”
“……예?”
“신성력 없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의 이름이오.”
물론 왕자의 목숨을 잠시나마 붙들 수 있었던 건 마력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밑바탕이 된 건 해박한 의술 지식이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술인지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신성력처럼 선택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오.”
“왕자의 생명을 두 손으로 직접 붙들고 계셨던 것이 의술이란 말입니까?”
“의술의 일환이라 볼 수 있소. 제가 이끌고 온 이들 중에는 이미 그러한 기술을 손에 얻은 자들도, 아직 배워가는 단계에 이르러 있는 이들도 있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해하오. 힐데스하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술기였으니. 아마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요.”
“허면 어찌…….”
“발칸에서는 진작부터 성행하던 기술이었소. 비록 그들의 의술 역시도 아직 모자란 것은 많으나 직접 발전시킬 생각이오.”
“발칸이라.”
그의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마인츠가 아무리 성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들, 그들 역시도 힐데스하임 주신을 모시는 이들이었으니 발칸에 대해 적대심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하게도 성국에서 이 기술의 존재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지 않으며, 당장 알려지게 된다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질 것이 분명하지.”
내가 마인츠에 온 진짜 이유.
“직접 보여줄 셈이오. 신성력 없이 두 손만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러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 중 하나가 마인츠 왕국이라는 것을 국왕도 어느새 이해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군요. 제가 보지 못했다면 전하에 대해 의심을 품었을 테지만, 왕자의 생명을 직접 부여잡고 계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비록 살리지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의술의 효능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그건 마인츠의 국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허면 신께서 존재하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인간의 목숨을 내리고 거두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영역…….”
“언제까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에 빠져있을 셈이오?”
이 멍청한 세계의 상식. 너무도 오랫동안 마주해 온 탓에 나도 모르게 발끈하고 말았다.
“전염병에 무고하게 죽어가는 왕국민들도, 전장에서 희생당한 기사들도, 전부 신의 뜻에 따라 죽은 것이란 말이오?”
그는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성국의 황자라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충격이었을 터였다.
“내가 마인츠로 온 것은 어디까지나 의술로 왕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자력으로 온 것이지, 신의 뜻에 따라 강림한 성자 따위가 아니오.”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성자 따위보단 의사라는 칭호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혼자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국왕은 내 말을 듣고 머리가 복잡해진 듯 보였고, 수십 년간 당연시해 온 상식을 뒤엎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터.
“그러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국왕의 방을 나가려는데.
“황자 전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부디, 그 힘을 불쌍한 왕국민들을 위해 베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바라던 바요.”
그러려고 온 것이었다.
* * *
“하아.”
마인츠의 국왕은 홀로 남아 두 눈을 감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의 죽음 때문에 슬프던 머릿속이 하염없이 복잡해졌다.
3황자는 분명히 힐데스하임에 성족이었고,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마인츠에서 그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들, 망령이 된 아들의 목소리를 전해 준 것만으로도 3황자가 고위의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신의 전지전능함을 부정하신다라…….”
3황자는 힐데스하임의 성족임에도 신의 한계에 대해, 그리고 인간 본연의 능력의 위대함에 대해 떠들어 놓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옳은 말이었다.
두 손으로 직접 왕자를 살리고 있던 것이 신께서 내린 또다른 능력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니. 분명 상식 밖의 일이었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에 3황자가 한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지금껏 주입되어 온 힐데스하임 주신에 대한 사상 때문이었다.
마인츠는 감히 신성력을 무력을 강화하는 데 불태워 버렸고, 그로 인해 벌을 받고 있다. 마인츠가 신성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힐데스하임 주신을 더더욱 믿고 숭배하는 이유는 더한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미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희생되고 있는 판국에, 신에 대한 숭배마저 저버리게 된다면 마인츠라는 국가가 통째로 날아갈지도 몰랐다.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를 3황자의 말 한마디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3황자가 가진 의술이라는 것의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3황자에게 부탁했다. 마인츠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줄 수 없겠느냐고.
“신이시여. 3황자는 당신께서 보내신 성자입니까, 혹은…….”
그러다 문득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신은 인간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간혹 선택받은 성자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으나, 고작 그게 전부였다. 직접 인간 세계에 드러내어 관여를 한 바가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애초에 신은 인간들에게 미지의 형태로서 존재해야만 그 성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정말로 이 세계가 신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면 신은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관여해야만 할까.
“설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마인츠 국왕의 머릿속을 맴도는 가설이었고.
“설마 당신께서 직접 황자로 태어나시어 깨달음을 전해주시는 것입니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3황자는 아리송한 능력과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애초에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신성력으로 사람을 살리는 힐데스하임에서, 그것도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3황자가 사람을 살릴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점점 더 마인츠 국왕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으며, 3황자가 힐데스하임 주신의 현신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 아닐지라도.
마인츠 국왕은 3황자라는 사람에 대해 강한 신뢰감을 지니게 되었고, 그에게 왕국민들의 치료를 부탁해 두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마인츠가 얻는 것은 단순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희망.
평생 신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인해 죄책감과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마인츠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성국의 황자가 나타나 직접 죽어가는 이들을 살림으로써 모두가 희망을 지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앞으로 달라질 삶에 대한 기대.
그것만으로도 마인츠 국왕은 3황자에게 더없이 큰 빚을 지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분께 은혜를 갚을 방법은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는군.”
3황자가 더욱 영향력을 넓히고, 그의 정의로운 사상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3황자가 성국의 황좌에 올라야만 한다. 그리고 힐데스하임에서 황좌에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우리는 하던 대로 하면 되겠군.”
강한 군사력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언젠가 3황자가 필요로 할 때, 그의 앞에 나타나 도움을 줄 것이다.
마인츠 국왕에게는 그날만큼 기다려지는 것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