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08)
제108화
“……미친.”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군.”
의원들은 3황자의 손놀림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저 순간에서, 저토록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저토록 어린 황자가, 산전수전 다 겪은 의원들보다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바늘을 이리저리 놀렸다.
피가 범벅이 되어 잘 보이지도 않은 혈관의 끊어진 부분을, 3황자는 말 그대로 신 내린 손놀림으로 꿰매고 있었다.
총 세 바늘.
3황자는 거리를 둔 채 혈관의 세 곳을 꿰매어 내었다. 그게 인간의 손재주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으나 3황자는 해냈다.
허나,
“저것을 어찌 다 꿰매시려고.”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혈관은 완전히 절단되어 있었고 모든 단면을 촘촘히 꿰매지 않는 이상 출혈을 막을 수는 없을 터였다.
이윽고 3황자가 들고 있던 바늘을 내려놓았다.
“그래. 3황자 전하로서도 너무 무모하셨던 게야.”
의원들은 그게 3황자가 포기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 바늘을 꿰매는 데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출혈이 멎을 정도로 완전히 꿰매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 텐데, 그 전에 병사가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하. 비록 병사는 세상을 떠날 테지만 전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함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잡아.”
“……예?”
3황자는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혈관을 꿰맨 실을 핀셋으로 집어 의원에게 내밀었다. 의원은 영문도 모른 채로 그 핀셋을 잡았다.
총 세 부분이었다.
세 부분을 모두 핏셋으로 집어두었고, 세 명의 의원들은 3황자에게 핀셋을 건네받았다.
“절대 놓치지 말고 살짝 잡아당겨.”
3황자의 말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의원들은 자신이 잡은 핀셋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동그란 혈관이 세 부분에서 나뉘어 잡아당겨지면서 삼각형 모양으로 바뀌었다.
“……?”
그때까지만 해도 3황자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허나 이어진 3황자의 행동을 보고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혈관을 꿰매기 어려운 것은 혈관의 단면이 원형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곡선형인 혈관을 봉합하는 것은 3황자의 놀라운 손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꽤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혈관의 단면이 삼각형으로 바뀌면서 꿰매야 할 부분이 직선이 되었다. 봉합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훨씬 더 간편하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아니.”
이제는 정말 3황자가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했단 말인가.
“똑바로 잡아!”
3황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치료를 할 때만큼은 3황자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엄격했다.
놀라운 장면에 잠시 핀셋에 힘을 놓았던 의원이 다시 힘을 주었다. 그러자 3황자의 바느질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들린 손놀림과 혁신적인 신기술. 두 가지의 결합으로 혈관의 봉합은 의원들이 생각지도 못한 빠른 속도로 이어졌다.
빠르면서도 꼼꼼하게, 3황자는 열 바늘이 넘게 혈관을 꿰매었고 그가 바늘을 내려놓았을 때 혈관은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다.
“칼로스. 이제 쉬어도 좋다.”
동맥 아래를 압박하고 있던 칼로스가 손을 떼어놓았다. 그럼에도 절단되었던 동맥에서는 아주 미량의 혈액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3황자는 가장 많은 고생을 했음에도 병사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됐어.”
3황자는 다른 의원이나 칼로스가 나서려는 것을 저지하고 자신의 손으로 심폐소생술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그를 그 누가 황족이라고 생각할까.
의원들은 혀를 내둘렀고, 의원이 되고자 희망했던 지원자의 대부분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생 연마한다고 한들 저런 걸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저런 발상을 통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의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했던 처음에는, 어째서 타고난 손재주와 뛰어난 지능을 요구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너무도 관대하셨군.”
오히려 자신들이 1차에서 합격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요구되는 것이 의술이었다.
* * *
마인츠의 병사를 치료한 후로, 발칸의 의원과 베이언의 지원자들이 의술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그들이 익혀야 할 의술의 잠재력을 두 눈으로 목격한 덕이었다.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루었다.
그들에게 의술이 지닌 진정한 잠재력에 대해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몸소 느꼈을 터였다.
그렇게 마인츠의 병사들을 어느 정도 치료하고, 그들에게도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 처치법을 전수해 준 뒤 베이언으로 돌아왔다.
국왕은 내게 무언가 보답이라도 해 주려 했지만 그런 걸 바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무시한 채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베이언으로 돌아오니 예상치 못했던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그를 본 순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요새 참 시끄러워.”
1황자였다.
“쥐 죽은 듯 살면 모른 척해 주려고 했더니. 나이가 들면서 권력에 욕심이라도 생겼는지 이리저리 잘도 다니더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오. 큰형이든 작은형이든 누가 그 자리에 올라도 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욕심이 생기더군.”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힐데스하임의 성황이 되는 것이었고, 잘못된 것들을 모두 바로잡는 것이었다.
“너는 선을 넘었다.”
“성족 중에 선을 넘지 않은 자가 있던가?”
1황자가 내 말을 듣더니 얼굴을 붉혔다.
“이…… 미친 새끼가! 아무리 붙어먹을 데가 없다고 해도 마인츠에 붙어?! 너 그걸 성황께서 알면…….”
“이미 아시겠지.”
딱히 감추기 위해 조용히 간 것도 아닌데 성황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걸로 성황이 내게 문책을 하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뭐가 문제요? 마인츠는 힐데스하임과 같은 신을 모시는, 같은 땅에 사는 자들인데.”
마인츠 왕국이 설령 외교적으로 성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들, 대외적으로는 한 편이었다. 물론 성황이 내게 알게 모르게 압박 정도는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라서.
“미친놈. 정말 돌아버렸군. 하다 못해 되도 않는 발칸의 잡기에 손을 대고 있다지? 그딴 걸로 사람을 살려? 그건 신성 모독이다!”
신성 모독.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힐데스하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맹신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국에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의술의 수용에 대해서는 이미 성황께서 허락하신 바가 있는 걸 모르시나 보군.”
움찔거리는 반응을 보니 1황자는 정말로 성황이 의술을 허락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었다.
허나 1황자는 또 어찌 의술에 대해 들은 것이 있는지 되려 목소리를 높였다.
“그 미친 기술이 사람을 칼로 베고, 바늘로 찌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성황께서도 가만있지 않으실 거다!”
“귀는 참 밝으시군. 성황께서도 그 효능을 직접 보신다면 인정하실 수밖에 없겠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 마라!”
1황자는 끝까지 우겨댔지만, 그의 정보력이라면 의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역시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겠지.
“허면 내기라도 하시겠소?”
그에게도 직접 보여줄 셈이었다.
“무슨 내기 말이냐.”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고 의술만으로 사람을 살려보지.”
“허.”
1황자는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 있게 소리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차피 살 사람을 의술인지 뭔지 시늉으로만 보여준 뒤에 그 잡기로 살려냈다고 우겨댈 것이 아니냐.”
“우겨대는 것은 형님들이나 했던 짓이지, 나는 그런 데 취미가 없어서. 허면 공정하게 형님과 내가 합의 하에 치료할 사람을 정하고, 형님의 신성력이 먼저 살려내는지, 내 의술이 먼저 살려내는지 내기하는 것은 어떻소?”
“정말 돌아버린 모양이군. 웬 이상한 기술을 손에 얻더니 본질을 잊어버린 모양인데. 그딴 게 정말로 신께서 점지해주신 내 성력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정말로 자신이 지닌 성력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럴 법도 했다. 역대 힐데스하임을 통틀어도 쉽게 찾기 힘든 5성의 보유자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내기에서 그는 결코 이길 수 없을 터였다. 의술의 잠재력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기도 했지만, 그의 성력이 그 마음대로 빛을 내지는 못할 테니까.
* * *
마인츠의 국왕은 3황자가 떠난 후 그에 대한 것들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서는,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분명 보답할 것이지만 그 전에는 그에 대해 회상해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마인츠가 3황자와 엮일수록 성국 내에서 3황자의 입지는 불리해져 갈 테니까.
헌데 3황자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인츠의 국왕을 직접 호출해왔다. 국왕은 혹여나 3황자에게 보답할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 곧장 그를 만나러 찾아갔다.
“근심이 많아 보이시오.”
국왕을 본 3황자의 첫마디였다.
“……예?”
국왕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인츠의 훗날에 대해 걱정이 많으신 듯한데.”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국왕은 3황자가 혹여나 신경을 쓸까 봐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미 3황자가 아는 눈치였기에 감출 수 없었다.
“신께서 말씀해 주셨지.”
3황자가 워낙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었기에 잠시 잊고 있었으나, 그는 성국의 황자이자 신성력을 보유한 이였다. 그런 그가 신에게 들은 것이 있다면…….
“혹시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마인츠 국왕이 걱정하는 것에 대하여 3황자가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또다시 3황자에게 손을 벌리는 것 같아 괜히 신경이 쓰이던 무렵.
“그걸 전해주는 대신 조건이 있소.”
“……어떤 것입니까?”
“큰 건 아니긴 한데 거절해도 상관은 없소. 대답은 나중에.”
그렇게 말한 3황자가 손을 내밀었고, 새하얀 신성력이 마인츠의 국왕을 덮쳤다.
왕자가 죽은 후 줄곧 느껴왔던 공허한 감정들이 따스함으로 채워지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독한 상처가 위로받는 것만 같아 울컥함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국왕의 눈앞에 새로운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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