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내가 전한 신탁 덕분인지, 다른 이들은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차마 내가 진행하는 수술을 나서서 말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메스질에 집중할 수 있었고, 옆구리를 30cm가량 긋고 개흉을 해냈다.
“……으윽.”
불안함에 차마 그것을 제대로 지켜보지도 못하는 이들.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로스는 옆에서 피를 닦아낸 후, 피부와 근육을 양옆으로 잡아당겨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
그러자 옆구리가 완전히 벌어지고, 안쪽에 위치한 폐가 드러났다. 육안으로 확인한 나는 노인의 질병이 폐암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아주 늦은 것은 아니라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똑바로 봐. 외면하지 말고.”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무엇인데. 저들이 똑똑히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성력이 가진 한계와, 의술이 지닌 잠재력을.
그리고 저들에게 눈이 달렸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장기로 보이는가?”
양쪽에 달린 두 개의 선홍빛의 폐. 하지만 온전히 제 모양을 한 한쪽 폐와는 달리, 반대쪽의 폐는 검붉은 빛의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그건 의술에 대해 해박한 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외형이었다.
“으윽…….”
한쪽 폐의 거의 절반가량이 종양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것이 노인의 폐를 잡아먹고 있었다.
화악.
나는 신성력을 미량 발하여, 신성력이 암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려 했으나 종양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대들이 보다시피 신성력은 이 확실한 질병 덩어리에도 아무런 효력을 보이지 못한다.”
1황자가 신성력을 사용했을 때는 노인의 상태가 순간적으로 악화되었었지만, 내가 사용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1황자의 신성력이 나보다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1황자는 5성이었고 그의 신성력은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마인츠에서 살다 온 이에게도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일 지도.
설마 그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암 환자를 데려온 것은 그것까지 대비를 한 것이었다.
나는 노인의 폐를 자세히 살폈다. 우폐의 절반가량에 이미 종양이 번져 있었다.
노인의 몸상태와, 종양의 크기, 그리고 위치를 고려해 보았을 때 우폐의 상엽과 중엽, 그러니까 대략 2/3가량을 절제해 내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이 들었고.
폐를 절제하기 위해 메스를 가져다 댄 순간 놀란 듯한 얼굴을 한 것은 다른 이들 뿐만이 아닌 칼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전하. 이것이 정말로 신께서 바라시는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어찌 신께서 내려 주신 신체를 훼손하시려는 겝니까. 아무리 낮은 위치에 있는 이라고 한들…….”
하지만 대놓고 반발하는 이들과는 달리 칼로스는 나를 믿은 채로 계속해서 내 보조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는 그대들은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정말로 생각한 적이 있던가?”
내 말에 다른 귀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힐데스하임의 모든 귀족들이 악랄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1황자에게 붙어 있는 이놈들 중에는 정상인 자들이 없었다.
“놔둬.”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말린 것은 1황자였다.
“모두 똑똑히 봐 둬. 저렇게 무고한 노인을 직접 살해한 자가 누구인지. 저놈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을 하게 되는지 말이야.”
똑똑히 봐 둬.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중에 자기들이 편한 대로 말을 지어내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나는 다시 메스를 부여잡고 폐의 중엽과 하엽 사이의 경계를 그어냈다.
스윽.
메스가 지나간 길을 따라 폐가 빠르게 갈라졌고, 우폐의 2/3가 떨어져 나왔다. 종양이 번진 부분만을 깔끔하게 절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한쪽 폐를 완전히 절제하지는 않았지만 노인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폐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분명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으니 그에 대한 처치까지 할 수 있는 대로 해야만 했다.
소매 양폐엽절제술.
폐의 두 엽을 절제하고, 그 폐 안에 뿌리처럼 자리 잡고 있는 기관지만을 기존의 기관지에 다시 연결해 주는 것이었다.
시야에서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실과 바늘을 통해 기관지를 봉합했고, 기관지의 봉합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나는 절개했던 노인의 옆구리까지 다시 봉합해 내었다.
“후.”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로스에게도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손수건을 건네받은 칼로스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당연한 거야. 차차 배워 나가면 되는 거고.”
의대 교수 시절이었다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머리 한 대 쥐어 박아주었을 텐데.
비록 환자들에게는 정하늘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었을지언정, 내게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는 데미안이 백 배는 더 자비로운 사람일 것이다.
“의식을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깨어나면 다시 부르지.”
나는 그렇게 노인의 옆을 지킨 채로 귀족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무슨 수를 쓰는 거냐? 그딴 걸 했다고 정말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 노인은 평생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거다. 설령 모두의 눈을 피해 엄폐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너를 지켜보는 이들이 많으니.”
“억측이 좀 심하시네.”
나는 그런 그를 가볍게 비웃어 주었다.
* * *
“방금 수술했던 폐는 호흡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장기다. 일전에 발칸 제국의 황비를 치료하면서 본 적 있었지?”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노인의 폐가 비정상적이라는 건 너도 느낄 수 있었을 거고.”
“예, 마치 썩어 문드러진 무언가가 달라붙어 있는 것이 꼭 악마의 소행처럼…….”
“그런 건 없어.”
그러다 내가 다시 그 말을 번복했다.
“아니, 악마는 있지만. 방금 종양을 발생시킨 것은 암이라는 질환일 뿐이야. 치료하기 쉽지 않지. 사실 살릴 수 있는 암 환자의 수는 매우 적지.”
“헌데 전하께서는 그토록 쉽게…… 아, 전하께서 워낙에 뛰어나신 덕이니 의심의 여지를 가질 필요가 없겠군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암의 가장 무서운 점은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사실, 암 특유의 증상이 없어 다른 질환들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
“그리고 늦으면 결코 살릴 수 없다는 거야.”
순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떠올랐다. 내게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릴 수 없는 환자를 맞이했을 때였다.
아주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환자라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 했었고, 때문에 그 환자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미련이 덜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내 앞으로 찾아왔을 때. 그에게 “가능성은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 말을 내뱉는 순간은 나는 꼭 악마가 된 것 같은 죄책감에 휩싸여야만 했다.
“참 극한 직업이네.”
지금 생각해보면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직업이었다.
“……예?”
“너 후회할걸.”
“어떤 걸 말입니까?”
“의원이 되기로 한 거 말이야.”
칼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내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박을 하는 모습이었다.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후회를 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를 하게 될 테지만. 정말 제가 그런 것 때문에 살아야 할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전하께서 결코 저를 용서하지 말아 주십시오.”
“말은.”
나는 괜스레 칼로스의 머리를 주먹으로 콩 내질렀다.
아무튼. 내게 찾아왔던 암 환자중에 이미 시기를 놓쳐 버린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고, 그런 이들은 결코 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도 의원의 능력이야. 암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 내니까.”
그럼에도 당장 칼로스에게 암을 진단하는 법에 대해 알려줄 수는 없었다. 암의 종류별로 진단하는 방법도 달랐으며, 이미 말했다시피 특유의 증상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도 많았고, CT도 없는 이곳에서는 절개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절개라는 게 또 아무 때나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나는 방금 했던 수술에 대해서 복기하며 칼로스에게 조금의 가르침을 전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폐는 양쪽에 두 개가 달려있기 때문에, 종양의 진행 상태에 따라 한쪽 폐를 완전히 절제해 낸다고 해도 무방한 경우가 많아. 하지만 당연히 폐의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환자가 신체 기능이 좋지 않은 환자였던 만큼 나는 후속 조치를 취했다.
“가운데서 폐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 기관지야. 그리고 기관지는 폐로 뻗어나가 호흡의 역할을 돕고 있지만, 폐를 절제하는 과정에서 기관지까지 잘라낼 수밖에 없어.”
“……그래서 다시 봉합을 하신 겁니까?”
“맞아.”
기관지의 봉합의 경우에는 딱히 설명할 것이 없었다. 이미 혈관을 비롯한 여러 봉합 수술을 진행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폐에 암이 생긴 경우에는 많이 퍼지지만 않았으면 이렇게 절제하면 되지만, 당연하게도 절제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기에 암이 까다로운 거야.”
암. 그건 현대 의학에서도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곳은 현대에 비하여 평균 수명이 더 짧으니 암 환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위안거리이려나.
“보조하느라 고생 많았는데 들어가서 눈 좀 붙여라.”
내 말에 칼로스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전하께서 훨씬 더 많이 고생하셨는데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너 말이야. 이 자리가 왜 만들어진 건진 알지?”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내 형이라는 사람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거든. 우리 형이 와서 지금 이 노인을 어떻게 하려고 하면 네가 막을 수 있겠어?”
“서, 설마 힐데스하임의 황자라는 분께서 그럴 리가…….”
“네가 너무 좋은 황자만 봤구나.”
농담을 섞어 한 말인데 민망하게도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여 댔다.
“전하께서 워낙 훌륭하신 분인 지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곳이야. 신성 제국이니 황자이니, 다 좋게 포장하는 말뿐이지.”
“……제가.”
“응?”
“제가 전하께서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칼로스가 갑작스레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이미 너는 나한테 믿을 만한 사람인데.
그런 낯간지러운 얘기는 접어두기로 했다. 내가 성격이 좀 모나서 이런 말을 잘 못 하는 까닭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