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4)
제114화
“……쿨럭.”
반나절 정도 지났을 때, 노인은 기침을 토해내며 의식을 되찾았다. 종양 제거는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노인의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녀가 깨어난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가.”
눈을 뜬 노인은 아직 정신이 완전히 들지 않은 것인지 비몽사몽한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됐습니까?”
“치료를 하긴 했는데 장담할 수는 없어. 그렇게 쉽게 안심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서. 몸 상태는 좀 어떤 것 같아?”
“쿨럭, 쿨럭. 기력이 부족하기는 하나 가슴 밑에서 항상 조여오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녀가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우선은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안정을 취하고 있어. 움직이지 말고.”
“예. 비록 전하께서 저를 치료해주시는 것을 바라보지는 못했으나…… 정말 감사드립니다.”
“됐어. 이걸로 힐데스하임은 빚을 갚은 거야.”
언제는 힐데스하임 전체를 미워할 일이 아니라며 설교를 늘어놓던 게, 이제 와서는 이런 말을 하는 게 그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법도 하나.
“부끄럽습니다. 비록 전하께서 넓은 아량으로 저를 이해해 주셨다고 하나, 모든 걸 심판하시는 신께서도 저를 용서해주실지 두렵습니다. 제 남편은 죽어 필시 천국으로 갔을 터인데, 저는 지옥으로 가게 되어 그를 만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 정도의 성력으로는 그녀에게 권능을 작동시킬 수 없었으니, 신탁을 전해 안심시키는 방법을 쓸 수는 없었지만 해줄 말이 없지는 않았다.
“잘은 몰라도 지옥에 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걸?”
나는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신성 제국은 타락했고, 신의 사도라는 자들이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지. 힐데스하임께서 정말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그들을 먼저 지옥으로 잡아다 넣겠지.”
그녀의 잘못은 잘못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황자 전하께서 위로를 건네주시니 말만으로도 안심이 됩니다.”
그녀는 한층 홀가분해진 얼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이 깨어났다는 소식이 그새 퍼진 것인지 1황자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곤 정말 의식이 돌아온 노인을 보고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떻게…….”
자신의 신성력으로도 살리지 못한 환자. 아니, 오히려 신성력을 퍼부을수록 더욱 상태가 악화되고 있던 이가 살아나 버렸다. 그의 눈에는 차마 이해가 되지 않을 해괴망측한 의술을 통해.
“무슨 더러운 수를 쓴 것이냐?!”
그는 부정하기 시작했다.
“내 신성력으로 살리지 못하는 이는, 그 어떤 방법으로 살릴 수 없다. 그건 부정의 여지가 없는 진리이다. 헌데!”
그에겐 당연할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5성으로 태어났으며, 모든 이들의 기대를 받으며 살아왔고. 타고난 신성력 덕분에 다른 이들은 살릴 수 없는 환자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신성력은 수명을 앞당기는 것뿐이요, 그것이 아니라도 효과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노인이 걸렸던 암이 그런 질병 중 하나였다.
“그래. 흑마법을 쓴 게군.”
1황자는 결국 아예 편할 대로 생각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1황자를 따라온 가신들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랬겠냐는 반응이면서도,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짜. 병신 같은 놈들이었다.
“흑마법을 심어 놓아 내 신성력이 역효과를 내게 한 게지. 그리고 네 놈이 병자를 살린답시고 칼질을 하며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 흑마법사들이 하는 짓과 다를 것이 무어가 있단 말이냐? 내가 그 정도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로…….”
“바보 맞네.”
1황자 뿐만 아니라 그에 선동당하고 있는 가신들마저도. 1황자를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를 겪어온 바, 그는 설득한다고 설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대신, 그 가신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속아 넘어가 성국 내에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지켜볼 수 없었다. 그건 장차 내게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었으니까.
“의술은 신께서 내게 직접 선사하신 힘이다.”
그 말에 가신들은 또다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직접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을 주셨으며, 그대들이 보았다시피 성력으로 살릴 수 없는 사람도 치료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힘이다.”
“저, 정말로 신께서 전하께 하사하셨단 말입니까?”
“힐데스하임께서 황자께 개입을 하셨다는 것이…….”
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일. 힐데스하임 주신은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신성 제국과 인간사에 개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말한들, 저들이 쉽게 믿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신께서 그대들에게도 뜻을 전하시지 않았는가.”
성배를 통해 얻게 된 역설의 권능을 이용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노인을 치료하는 데 방해하는 저들을 설득하기 위해 권능으로 신탁을 전달하였고.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신탁이라 생각하여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을 터다.
“그, 그걸 어떻게.”
“신께서 내 뒤를 봐주고 계시다는 뜻이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이들에게 더 요구할 것은 없었으며, 이제는 1황자와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
“형님. 따로 얘기 좀 하시죠.”
1황자는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달은 것 때문인지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 * *
신성력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었다. 흑마법에 감염 된 이를 치료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알게 모르게 도는 소문이 있었다. 신성력이 치료할 수 없는 환자. 그리고 신성력이 작용할수록 더욱 악화되는 질병이 있다고.
그런 소문이 신성 제국 내로 퍼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신성 제국에서 그 소문들을 묵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신성력이 가해질수록 상태가 악화되는 이는, 감히 신성 제국의 뜻을 어기고 흑마법을 가슴에 품었다고 간주해 버렸다. 환자의 심장 속에서 흑마법의 기운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백 퍼센트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신성 제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결론 짓는 것이 편했다.
왜? 신성력은 절대적이어야만 했으니까.
성족들이 권력을 유지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신성 제국의 주축이 되는 신성력에 빈틈이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1황자는 이제껏 자신의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만나보지 못했기에 생각이 조금 달랐다. 신성력으로 환자를 살릴 수 없었던 것은, 단지 그 사제의 신성력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의 신성력으로 대부분의 환자를 살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이었다.
정말로 신성력이 작용할수록 상태가 악화되는 환자가 있었고, 그의 가슴 속에서 신성력에 발하는 흑마법의 기운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1황자는 애써 흑마법으로 몰아가 보려 했지만,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그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신의 음성, 신탁은 그런 1황자를 지켜보고 있다는 듯 그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차마 3황자를 그 자리에서 더 몰아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1황자가 살리지 못했던 환자를, 3황자가 의술인지 뭔지로 살려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두가 봐 버렸다.
비록 자신을 따라온 가신들이 대부분 1황자의 주축 세력이라 봐도 무방했으나, 의미심장한 신탁을 들은 이상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랬다간 정말로 신의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뭘 말이오?”
3황자를 독대하게 된 1황자는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신께서 어찌 너를 특대하신단 말이냐?”
“특대라고 하면 형님이 더욱 많이 받지 않으셨소? 5성의 성력으로 태어나 제 잘난 줄로만 알고 살아오셨지.”
“이 새끼가!”
“지금 나한테 욕 할 처지가 아닐 텐데. 형님의 상황이 그리 좋게 보이시오?”
3황자는 이제 아예 1황자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어렸을 적 얌전했던 그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성국에 이 모든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되겠소? 1황자의 신성력으로 살릴 수 없었던 환자를 3황자가 두 손으로 살려냈고, 수백 년 만의 신탁을 전해 들었다. 그게 알려진다면 파장이 좀 크지 않겠소?”
“……젠장.”
1황자는 3황자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지만 그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헌데 3황자가 저리 말한다면 1황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
“원하는 게 뭐냐?”
“형님이 생각보다 바보는 아니셨군.”
“뭐야?!”
3황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현장을 보았던 가신들과 함께 폐하께 보고하시오. 의술은 신성력만큼의 잠재력이 있다고. 실은 신성력 이상이라는 것을 보셨겠지만, 그것까진 내가 양보하겠소. 딱 신성력만큼만이라고 보고하시면 되오.”
말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1황자의 화를 돋우려고 한 것이라면 정말 제대로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형님의 신성력을 좀 빌립시다.”
“……이 자식이. 신성력은 신께서 직접 내게 내리신 힘이다. 각자가 필요한 만큼 내리신 성력을, 네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걱정 마시오. 아주 거창한 데 사용할 것은 아니니.”
3황자가 옅게 웃으며 1황자를 노인의 방문 앞으로 데려갔다.
* * *
노인은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힐데스하임 주신과 신성 제국을 감히 모독한 죄.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신의 사도인 3황자에게 비아냥거린 죄.
어떠한 벌을 받아도 마땅할 것이며,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딱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어차피 그녀의 삶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길어 봐야 십 년 안에 세상을 뜨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천국 혹은 지옥을 가게 될 터인데.
“……여보. 당신을 영영 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자신의 남편은 누구보다 신실하고 선했던 자이니 틀림없이 천국으로 갔을 테지만, 그녀는 이미 신에게 너무 큰 죄를 지어버렸다.
신의 사도인 3황자가 직접 그녀에게,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 위로해 주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3황자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 수 있었다. 3황자는 그러고도 남을 마음 따스한 자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걱정에 휩싸여 있던 그녀에게 문득 들려온 음성.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신께서 직접 전하신 자신의 뜻, 신탁. 신탁을 통해 들은 신의 음성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그녀에게 안심하라고 전하는 듯.
그제야 노인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