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5)
제115화
1황자와 그의 무리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뒤 베이언을 떠났다. 그들이 베이언에서 보았던 의술과 성력의 진실.
그 모든 것이 널리 퍼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의술을 의심하던 이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의술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의 걸림돌도 치워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수술을 받은 후 기력을 회복한 노인은 베이언에 자신의 아들과 함께 남아 살기로 했다.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던 어리석은 저를 깨우쳐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녀에게는, 내가 그녀의 몸을 치료해 준 것보다 마음을 치료해준 것이 더 고마운 일인 듯 보였다.
이거 외과가 아니라 정신과를 전공했어야 했나.
괜스레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다시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다. 힐데스하임께서 직접 창조하신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강력한 생존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가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다.”
베이언에서 의원들을 길러내는 일 말이다.
“허면, 의술과 성력은 어째서 존재하는 것입니까?”
“좋은 질문이다.”
후보생 중 한 명이 한 질문이었지만, 모두가 마음 속으로 품고 있었던 의문인 것인지 유독 집중하고 있었다.
“성력의 경우, 인간의 신체가 가진 본연의 자가 치유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뿐이다. 다만, 상처나 병환이 심각하여 회복 속도가 손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그럴 경우에 성력을 통한 치유는 분명히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었고, 실제로 그 결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를 아직까진 보지 못했다.
신성력이 가진 부작용을 뒤로하고라도, 실제로 신성력은 이 세계에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만 한다면 의술에 비해 쉽게 익힐 수 있다는 것도.
“허나 회복 속도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때때로 그 속도가 과하게 된다면 오히려 인체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들에게 와닿을 만한 실례를 직접 보여준 것이 참 다행이었다.
“마인츠에서 왔던 노인의 경우가 딱 그랬지.”
모두가 보았다. 노인을 치료하기 위해 1황자가 자신의 성력을 끌어모았지만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그것이 의술이 필요한 까닭이다. 의술 역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허나 적어도 그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럼에도, 의술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점도 있었다.
“허나 내가 노인을 수술했던 것과 같은 치료 방법은 의술에서도 가급적이면 자제해야만 한다.”
“어째서입니까? 분명…… 전하께서 손을 써 주신 덕분에 노인이 살아난 것 아닙니까?”
“맞다. 허나, 다른 방법이 없었을 뿐이지. 의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 본연의 회복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식의 방식이 있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방법대로 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보존적 치료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내가 가진 능력을 보았고 그로 인해 의술의 매력에 완전 흠뻑 빠져 든 이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방금 내가 한 말이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들을 매혹시켰던 것은 신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없던 질병을 화려한 수술로 치료했던 것이니까.
실제 사례를 보여주고 싶어도 환자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원할 때 필요한 환자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니, 우선은 이론적인 부분들을 먼저 하나 하나 가르쳤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결코 몰라서는 안 될 것들.
이것이 장차 의원들에게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 * *
의원 지망생들은, 말로만 들었던 수술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뒤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칼로 살을 베어내고, 몸 안에 위치한 장기를 치료한 후, 다시 꿰매는 것. 3황자에게 말로만 들었던 그 일련의 과정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인간의 몸에 칼이 들어가면 부상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어찌 치료를 위해 칼을 댄단 말인가.
헌데 3황자는 결코 허풍쟁이가 아니었다. 노인의 배를 갈라 내어 그 안에 위치한 수많은 장기 중, 문제가 발생한 장기와 그 원인을 파악하고, 종양이라는 원인을 칼로 베어냈다.
“몸 안에 악마가 살고 있다니!”
“……그래서 칼을 몸에 대신 게로군.”
“예로부터 대의를 위해 스스로 잘라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헌데 수술을 마친 3황자는 도리어 그것이 항상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 말했다. 몸 안에 살며 인간의 몸을 괴롭히는 그 작은 악마를, 방치한 채로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라 말했다.
지망생일 뿐인 이들이 3황자의 뜻을 어찌 알겠냐만은, 그것만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이들이 3황자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은, 그만큼 똑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3황자의 시험을 통과해 모인 만큼 모두가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있었으며,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천재라고 불리던 이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의술을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들은 깨어 있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신성력과 신성 제국의 사상에 대해 기존에도 의심을 품고 있었으니까.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발러 크라이스.
그는 특히나 3황자를 만난 것이 그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겼다.
남작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크라이스 가문은 귀족가라 불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세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럼에도 자신의 아버지인 가주는 크라이스라는 귀족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힐데스하임 신성 제국에 소속되어 있다는 데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그것을 마음속으로나마 평생 믿어온 것은, 비단 발러의 비상한 두뇌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반감 덕도 있었을 것이다.
가주인 아버지에게 가문과 가족들은 늘 뒷전이었다. 그들을 구원해 준 적도 없는 신과 황족에게, 아버지는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섣불리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굳이 발러처럼 천재 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천재. 발러는 크라이스에서 분명 천재 소리를 자라며 들어왔고, 그것이 단순히 자신이 자작가의 아들이라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리가 좋은 것을 스스로가 모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가는 이유가 신성 제국에 대한 자부심이라면, 발러가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의 명석한 두뇌에 대한 긍지였다.
“……의술이라.”
그러던 와중 성국의 3황자가 의술을 배우길 희망하는 자를 모집했다. 그 조건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머리가 좋은 자. 그것이 발러 크라이스를 불러내었다.
의술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작은 자작가의 아들로서 황자를 접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하군.”
순전히 자신의 지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크라이스 내에서는 분명 비교 대상이 없는 천재였지만, 힐데스하임의 다른 곳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만큼 똑똑한 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도 분명 있었다.
1차 시험은 가볍게 통과했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다른 지원자들과도 접점을 만들며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결과는 큰 실망이었다. 발러가 보기에 그들은 그다지 비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다만, 3황자는 정말로 무언가 다른 사람이었다.
의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3황자만의 특별한 가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설은 퍽 그럴싸해 보였고.
허나 3황자에게 붙어 다니는 놈이 참 형편없었다.
“……칼로스.”
지원자 중 한 명인 칼로스는 3황자에게 특히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째서 3황자처럼 비범하신 분이 저토록 형편없는 놈에게 시간을 쏟고 있단 말인가.
아마도 눈에 띄지 않아서일 것이 분명했다. 만약 3황자께서 발러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신다면 칼로스가 아닌 자신을 더욱 총애하게 되실 터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단순히 눈에 띄는 것이 아닌, 칼로스를 눌러 버릴 필요가 있었다.
“칼로스.”
그래서 발러는 숙소에서 쉬고 있는 칼로스에게 다가갔고.
“근방 치료소에 환자가 들이닥쳤다더군.”
“……그건 어떻게 들은 거야?”
“친분이 생긴 의원 중 한 분이 황자 전하께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허탕 치고 가신 걸 봤어.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고 계시니.”
그렇게 말한 발러는 칼로스에게 제안했다.
“가서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어? 전하께 배운 것을 말이야.”
헌데 칼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배운 것은 아직 극히 일부일 뿐이야. 또, 거기 의원들도 있잖아.”
“환자 수가 많아서 의원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군. 그리고 얼마 전에 마인츠에서 보았던 노인과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던 자라고 하니, 배움의 폭이 좁더라도, 배운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니 문제는 없지 않겠어?”
“아니.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똑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발러 크라이스는 칼로스가 한 말이 외면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를 대하는 것이 귀찮거나, 혹은 실수를 할 것이 두렵거나.
비록 발러가 의술에 대해 배운 바라고는 이곳에서 3황자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에겐 자신의 지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가 보았을 때 칼로스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두뇌 수준이 낮았고. 그것으로 인해 오판을 내리고 있던 것이다.
칼로스의 의술 지식 역시도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전하께서 어여삐 여기시던데. 자격이 없군. 구태여 변명을 늘어가며 환자를 외면하다니.”
“좋을 대로 생각해.”
하지만 칼로스는 그의 도발에 넘어오지 않았다. 발러는 칼로스를 데리고 가는 것을 포기했지만, 치료소에 가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칼로스의 앞에서, 칼로스는 살리지 못할 환자를 살려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3황자의 마음을 따내고, 그와 사적인 친분을 쌓으며 지식을 주고받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3황자가 보였던 일련의 수술 과정을 정확히 구현해 내어 모두를 놀라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3황자에게까지 전해진다면 3황자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발러는 곧장 치료소로 들어섰다. 치료소는 정말로 많은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혼란한 와중 발러는 한쪽에서 기침을 토해내는 중년의 남성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3황자가 치료했던 노인과 정확히 같은 증상을 보이는 자.
같은 질환에는 같은 치료를 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때 보았던 것을 정확히 실현해 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발러가 메스를 꺼내 들려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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