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6)
제116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의원들이 나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베이언 내에서 의원들과 치료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이 들이닥치고 있는 와중에 일전에 치료했던 노인과 같은 증상의 환자가 방문한 것이었다.
아마도 폐암일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담배가 없는 이 세계에서 폐암의 발병률 자체가 희박하며, 폐암과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병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으니까.
하지만 뭣도 모르는 의원들이 보기에는 그 환자가 폐암인 것처럼 보일 터였고,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불가능하기에 내게 지원을 요청한 것.
설령 폐암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고, 나는 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치료소로 찾아갔다.
그런데.
“……뭐 하는 거지?”
의원을 양성하기 위해 힐데스하임에서 지원받았던 후보 중 한 명이 그 환자를 치료한답시고 메스를 들고 있었다. 이름이 발러였나.
정말 똑똑한 놈이었다. 하지만 똑똑한 것과 현명한 것은 별개의 문제.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놈은 어리석은 쪽에 가까웠다.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께 가르침을 받고 있는 발러 크라이스입니다. 전하의 가르침 덕에 깨우친 것을 실현하고자…….”
“그게 내가 가르친 것이라고?”
놈은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폐암의 수술을 모두의 앞에서 진행했던 것은 그들에게 그 과정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애초에 걸을 줄도 모르는 이들에게 뛰는 법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단지 의술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런 걸 가르친 적이 없다.”
단지, 예외라고 하면 바로 옆에서 조수를 보던 칼로스에게는 약간이나마 조언을 해 주었다. 칼로스는 아주 똑똑하지는 않을지언정 현명한 아이였으니까.
발러 크라이스, 이 녀석처럼 단지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환자를 개복하고, 폐의 일부를 잘라내려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메스를 내려놓아라.”
“……전하?”
발러가 내 얼굴을 보더니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는 조심스레 메스를 내려놓았다.
“전하께서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셨다고 한들, 제 눈으로 직접 보았던 환자와 동일한 증상을 보이고 있고, 똑같은 방식의 치료를 하려 했을 뿐입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말 그대로 내게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경솔하군.”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한번 본 것으로 그걸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발러는 자신이 있는 것인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직접 시켜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만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사용할 순 없었다.
“발러 크라이스.”
그는 분명 천재에 속한다.
“머리가 비상하더군.”
그렇지만 한국대 의대에 신입으로 들어오는 학생들만 하더라도 저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갔다.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발러와 같이 거만했었다. 세상에 자신보다 더한 천재가 많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지능에 비해 자신감이 도를 넘는군.”
그건, 의사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의학에 입문하는 단계에서, 사실 지능은 큰 쓸모가 없었다. 의학을 익힐 때만큼은, 그간 선현들이 쌓아 온 방대한 양의 의학적 지식을 머릿속에 새겨넣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자신이 머리를 굴린다고 굴려 봐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방대한 양의 의학 지식이 모두 탑재된 상태에서, 비로소 개개인의 지능이 의미가 있었다.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치료 방식이나 의학 기기의 개발은 거기서부터가 첫 걸음이다.
의대를 다니다 보면 웬만큼 거만했던 놈들도 겸손해지고 만다. 그 방대한 양의 지식 앞에 있다 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로 탈락이다. 너는 의원이 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이곳이 현대가 아닌 이상 발러 크라이스가 겸손을 찾게 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애초에 의대 교수를 하면서도 그런 거만한 놈들은 다 퇴학을 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던 것뿐. 환자를 대하는 데 있어 허황된 근거로 인한 자신감을 내뿜는 이들은 의사가 될 자격이 없었다.
“저, 전하! 어째서 그러십니까? 저는 단지 이 환자를 치료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내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군.”
발러 크라이스는 억울해했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수차례의 수업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했던 말들.
“내가 강조했던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나?”
“…….”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인상 깊었던 것들만 기억하는 것뿐이었다. 폐암의 수술 절차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강조했던 건 따로 있었다.
“보존적 치료의 중요성. 대부분의 치료에 있어, 특히나 해결법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기존의 상태를 유지한 채로 환자의 컨디션을 끌어 올려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는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단지 한번 본 것만으로 그는 내가 했던 것을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오만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전하께서 그리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저는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의 수술은 제게 큰 충격이었고 찰나의 순간까지도 전부 익혀 두었으니…….”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허. 참.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폐암의 수술에 있어서도, 폐암의 진행 상태와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폐의 절개 부위와 사후 처리법이 달라진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수술을 하겠다고?”
그는 말을 잃었다.
“기도라도 할 셈인가? 그 노인과 정확히 똑같은 상태이기를? 애초에 폐암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할 셈이었지?”
이번에도 그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제야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듯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처럼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너는 네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고 있지.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마저 네 마음대로 정한 채로 말이야.”
그는 베이언의 의원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건 의원으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지. 발러 크라이스 후보는 탈락이다.”
“저, 전하!”
애초에 의원이 되고자 모인 이들에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 밑에서 신세나 좀 펴 볼까 하고 온 이들이겠거니 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미 못을 박아 두었다. 의원이 된다고 하여 신세가 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훨씬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하지만 칼로스만큼이나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의원이 되고자, 사람을 살리고자 갈망하는 자들.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폐암에 걸린 노인을 살린 것이 컸다.
두 손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을 두 눈으로 본 이들은, 자신들도 사람을 살리고 싶어 했다. 그거면 의원이 될 자격은 충분했지만.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람을 살리고자 함이 아닌 것 같군.”
정말로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었다면. 낮은 이의 목숨이라고 한들 중히 여기고, 한번 더 고심하였다면. 그토록 멍청하게 메스부터 들어올리지는 않았을 터.
“돌아가라.”
나는 이럴 때 있어 그 누구보다도 냉정한 사람이었다.
* * *
발러 크라이스가 탈락했다는 것은 의원 후보생 사이에서는 큰 화제였다.
발러는 잘난 체가 조금 심하기는 하였으나 머리가 비상한 자였고, 아주 작은 땅덩어리지만 영지를 지닌 귀족가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3황자에게 밉보여 버린 것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었지만, 칼로스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가서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어? 전하께 배운 것을 말이야.”
발러가 칼로스를 찾아와 했던 제안. 칼로스는 그를 거절했다.
칼로스는 자신이 없었다. 의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중요했으나, 3황자와 함께 지내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기객관화가 된 칼로스였기에 오만을 부리지 않았다.
“칼로스.”
3황자가 칼로스를 불러들였고, 칼로스는 그 이유에 대해 알 것만 같아 찔리던 참이었다.
“예, 전하.”
“발러 크라이스 말이야. 평소에 행실은 어땠지?”
“…….”
칼로스는 잠시 고민했다. 발칸 제국의 평민으로 지내던 그가, 힐데스하임의 귀족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꼴이 될까 봐.
그것까지 눈치를 챈 것인지 3황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아. 네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알잖아? 나는 틈만 나면 우리 아버지랑 신까지 까 대는데.”
사실이었다. 새삼스럽게 3황자가 대단해 보였다. 칼로스는 고작 이 정도 깡도 없는 사람인데……. 마음을 먹은 칼로스가 입을 열었다.
“발러는 저를 좌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좌절이라. 어째서지?”
“제가 열흘 걸려 외운 것을 그는 그 자리에서 단번에 외워 버렸습니다.”
발러 외에도 천재 같아 보이는 이들은 많았지만, 유독 잘난 체를 하며 겉으로 드러낸 것이 발러인지라 그가 더욱 신경 쓰였다. 그리고 이것을 3황자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부끄러웠다.
칼로스가 의원이 되기에 한참이나 부족한 이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3황자에게 버림받게 될지도 몰랐다.
칼로스는 두려움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3황자는 예상치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너는 발러의 열 배만큼 열심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니까.”
퉁명스럽기는 했으나, 그것이 칼로스를 위로하고 있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기사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더라고. 주인 잃은 칼이 무엇을 벨지 모른다고. 뛰어난 무예가 있을지언정,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면 올바른 길을 나아가지 못한다는 거야. 지혜 역시 똑같은 것이지. 아무리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사상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건 쓸모가 없는 거지.”
이건 정말로 칼로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발러에게 정말로 해당이 되는 말이었으니까. 발러가 아무리 똑똑한 머리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칼로스가 보기에 그는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지혜를 엉뚱한 데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칼로스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가?”
“발러 크라이스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 환자를 살리러 가자고. 저는 거절하고 말았었으나, 사실은 제가 그를 저지했어야 하는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어?”
3황자는 그것까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상대가 힐데스하임의 귀족인데. 그리고 네가 밉보일 행동을 하면 나까지 욕 먹이는 행동이 되는 것인데. 그치?”
3황자에게는 그런 사정을 결코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품어 왔었다.
하지만 3황자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냥 내 이름 팔고 말려. 내 이름 얼마나 써 먹든 뭐라 안 할 테니까. 알았어?”
그 해결책까지 손에 쥐여 주었다.
“알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