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7)
제117화
발칸의 의원들, 그리고 베이언의 후보생들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수업과 담론을 통해 듣게 되는 이론적인 부분은 자칫 지루하고 현실성 없게 여겨질 만도 했다.
허나 그 내용을 전하는 당사자가 바로 나였다. 이미 나는 실제 행적으로 의술의 효용과, 나의 이론의 실증을 보여주었기에 그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로선 다행스런 일이었다.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겸비하게 된 의원이 늘어날수록, 이 세계에서 의술이 하는 역할이 커질 것이며 점차적으로 의술에 대한 인식은 바뀔 것이다.
이미 베이언에서는 발칸의 의원들이 운영하는 치료소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성국 전체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의술은 널리 통용된다고 보기엔 부족했다.
“……막막하네.”
비록 성황에게 의술을 전파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허락 받긴 했지만 성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서 신성력은 죽은 생명의 불씨를 지피는 유일한 수단이며,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전하. 폐하의 부름이 있었습니다. 속히 황궁으로 오시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던 와중, 성황의 부름이 있었다.
발칸과의 외교에 대한 진전을 확인코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말했던 의술의 진행 상황에 대해 묻고자 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1황자가 내게 망신을 당하고 돌아간 뒤 성황에게 뭐라 누명을 씌워두었을지도 몰랐다.
“하긴. 그러고도 가만히 있을 양반은 아니지.”
꼭 그게 아니라도 1황자는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성력이 밀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거다. 아마 가만있지는 않겠지.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상황은 점차 내게 유리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으니.
나는 곧장 성황의 부름에 따라 수도로 향했다.
* * *
황궁으로 들어가자 성황 외에도 많은 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에 내게 망신을 당한 1황자와, 그간 쌓인 것이 많았던 2황자는 죽일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 외에도 높으신 양반들이 왠지 모를 비장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3황자 데미안.”
성황이 엄중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결코 유쾌한 일로 나를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눈칫밥은 이미 인턴 때 수도 없이 먹어 온 덕분이었다.
“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말해 보거라. 1황자. 네가 본 것이 무엇인지.”
성황이 1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1황자는 곧장 위선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게 참……. 3황자 역시 신의 가호를 받은 성족이자 피를 나눈 혈육이기에 말해도 될지 많은 고민을 하였으나…….”
“쓸데없는 말 붙이지 말고 가감 없이 말해 보거라. 네가 목격했던 것들을.”
“예.”
1황자가 시선을 내 쪽으로 옮겼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모여 있는 수많은 가신들의 시선은 내게 향해 있었다. 개중에는 1황자를 따라 베이언으로 왔던 이들도 있었다.
“신성력이 없는 발칸에서는 의술이라 불리는 허황된 잡기로 사람을 살리려 한다 들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1황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에 빤히 보였다. 아주 멍청한 짓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미신일 뿐입니다. 실제로 효력은 거의 없다 알려져 있습니다.”
의술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모르는 자들이 훨씬 많았고. 단순히 발칸에서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 존재하며 사실상 효과를 보이지 못한다, 는 것이 성국에 알려진 내용이었다.
원래 발칸의 의술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으니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헌데. 3황자가 클레이디크에 있는 동안 그 잡기를 익혔다는 사실을 들었고, 베이언으로 찾아가 직접 확인해보았습니다.”
가신들과 2황자는 설마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님. 저놈이 아무리 생각이 없고 미천한 성력을 지녔다고 한들, 아예 힐데스하임을 반하는…….”
“2황자는 가만히 있거라.”
성황이 2황자의 입을 다물도록 한 후 다시 1황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계속.”
“저는 발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혈육을 즐기는 야만적인 자들이며, 그로 인해 신에게 버림받게 된 악인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서, 그것만 알면 충분하다 여겼습니다.”
그것 역시 오해였다.
야만적인 것은 오히려 힐데스하임 쪽이 가까웠으나, 힐데스하임에 악인만 있는 것이 아니듯 발칸에도 선인과 악인이 두루 섞여 있었다.
“그런 이들의 기술을 3황자가 손에 넣었다는 것이 차마 믿기지 않았건만……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순간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설마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
허나 나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부정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었으며, 그것을 내가 부끄러워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이미 성황께서 허락하신 부분이오. 의술 역시 성력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구원할 힘을 지니고 있소.”
내가 특히나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미 성황에게 언질을 해 둔 덕분이었다.
“저, 정말입니까?”
“성황 폐하께서?”
“하필 발칸이라니…….”
주위는 더욱 소란스러워졌고, 그것이 성황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그가 입을 열었다.
“조용!”
일순 침묵이 맴돌았다. 성황은 계속해 보라는 듯 1황자를 향해 턱짓했다.
“3황자는 칼로 병자의 베를 갈기갈기 찢어두었고, 안에 있는 장기를 파고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신성력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던 병자가 그렇게 목숨을 되찾았으나 그 병자에게서 보인 현상은 마치…… 흑마법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흐, 흑마법!”
“설마 3황자 전하께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오오, 신이시여. 부디 힐데스하임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무리 네 신성력이 미천하여 병자를 살릴 수 없다고 한들, 그런 힘을 손에 넣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냐. 부끄러운 줄 알거라.”
흑마법이라는 말에 난리가 났다. 듣고 있자니 헛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한창이나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던 이들이 조용해진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편한 시선들.
저들은 내게 해명을 바라고 있었다.
“……형님.”
“네가 할 말이 있느냐?”
“혹시 전생이나, 환생 이런 것을 믿으시오?”
“선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는 것. 그것이 진리일 뿐, 죽어서 되살아 나는 일 따위는 없다.”
“그건 장담할 수 없지.”
이미 내가 환생이라는 걸 한번 해 봤거든.
“혹시 형님이 죽어서 환생이라는 걸 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난다면 말이오.”
그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
“소설가라는 걸 한번 해 보시오. 재밌게 잘 쓰실 것 같은데.”
“……뭐?”
“개연성이 없다고 욕은 좀 먹겠지만. 뭐 어떻소?”
아마도 천직일 듯 보였다.
* * *
“내가 너에게 의술을 허락해 준 것은, 네가 선을 지킬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성황은, 자신이 3황자에게 의술의 수용을 허락한 이유에 대해 늘어놓았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이의 배를 칼로 찢어놓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라 생각하느냐?!”
그건 성황으로서도 차마 생각지 못한 수준의 일이었다.
성황은 발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신성 제국에 알려진 것처럼 발칸이 악의 무리인 것도 아니며, 그곳의 기술을 수용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의술에 대해서도 허락한 것이었다. 3황자는 분명 신성력이 부족할지언정, 위로 있는 두 형들보다는 훨씬 더 현명한 놈이었으니까.
알아서 잘할 것이며, 발칸과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우호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특히 이미 곳곳에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대악마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 발칸과의 협력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헌데 1황자가 말한 내용은 힐데스하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3황자는 그런 성황의 다그침을 뒤로 한 채로 1황자를 향해 물었다.
“형님. 제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셨소?”
“그래. 신께서 우리에게 저마다의 힘을 주신 데는 전부 이유가 있다. 네게 그만한 힘을 주신 것은 네가 딱 그만한 그릇인 탓이다. 헌데 어찌 그 뜻을 거스르고 감히 신께 반하는 힘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형님이시지.”
3황자가 1황자의 말을 잘라버렸다. 지금껏 보아온 3황자의 유하고 온순한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왠지 모를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만한 성력을 지니고 제가 살린 병자를 살리지도 못하셨으니 말이오.”
“그건 네가 흑마법을 사용했기 때문 아니냐?”
“그것이 아니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지 않소?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몇몇 보이는군. 그대들은 힐데스하임 주신의 앞에서 맹세할 수 있겠소? 그 자리에서 내게 흑마법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졌소?”
1황자의 편에 선 가신들. 그들은 3황자의 질문에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외면했다.
그 반응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마치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3황자의 당당한 태도는 확실히 그가 하는 말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흑마법은 말이오. 신성력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실 텐데.”
“허나 네 몸에 있는 신성력은 존재하는지도 몰라볼 만큼 미량 아니냐?”
“그래서. 내가 허튼 수를 썼다는 말이오?”
“네가 행한 것이 흑마법이라는 것은 분명 장담할 수 없지.”
그제야 1황자는 한발 물러나는 기색을 보였다.
“허나 신께서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선사해주신 신성력을 뒤로 하고, 얕은수를 쓰려 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너는 신을 모독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1황자는 그럴싸한 말을 토대로 다른 이들의 앞에서 3황자를 몰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신성력은 생명을 구원하는 힘이었으며, 각자에게 주어진 신성력만큼의 환자를 살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거슬러서도 안 되는 신의 뜻이었다.
적어도 힐데스하임에서는 말이다.
“네가 만약 2성이 아니었다면, 신께 버림을 받지 않았다면 그 병자를 살려내는 것도 상관이 없었겠지. 하지만 나도 살릴 수 없었던 병자다. 그는 신께서 거두어 가기로 결정하셨던…….”
“말은 번지르르한데, 여전히 개연성이 모자라시네.”
3황자는 웃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형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신탁을 듣지 않았소?”
신탁. 그것은 무엇보다 확실한 신의 뜻이었으며, 아무 때나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헌데 신탁을 들었다는 것은, 그리고 3황자가 그 병자를 살리게 두었다는 것은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내가 2성이라고 하셨소?”
3황자는 여전히 1황자가 한 말을 지적하고 있었다.
3황자가 자신의 고리를 회전시킨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