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8)
제118화
힐데스하임의 귀족들이 3황자를 후계자 후보 중 가장 후순위로 보았던 것은 단지 신성력의 크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현명하고 어진 인품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2성으로 태어난 3황자가 황위에 오르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터였으니까.
헌데.
“이, 이게 어떻게 된…….”
3황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은 네 가닥으로 나뉘어 있었다. 신성력을 최대로 나눌 수 있는 가닥의 수는 고리의 개수만큼이었고, 그 말인즉슨 3황자는 4개의 고리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전하께선 태초에 두 개의 고리를 지니고 태어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배가 전하의 성력을 잘못 측정하였단 말인가.”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요? 성배가 오류를 만들어 낸 경우는 없었소.”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경우의 수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데미안.”
성황이 그 진실을 3황자에게 물었다.
“분명 너는 두 개의 고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랬었습니다.”
“헌데 지금은 총 몇 개의 고리를 가지게 된 것이냐?”
“방금 보여드린 것이 최대입니다. 4성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지요.”
모두가 눈으로 목격한 이상, 3황자의 말을 허풍이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느냐?”
“부단한 노력을 한 덕분입니다.”
“허나 성력은 선천적인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신이 주신 성력은 정해져 있으며 그것을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는 없다.”
“단순히 제 노력만으로 바꿀 수는 없을지도 모르나, 그러한 노력을 힐데스하임께서 어여삐 보셨는지 새로운 고리들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일일 뿐.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고리의 개수에 변동이 생긴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딱 떠오르는 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이들보다도 위대했다던 초대 성황의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는 무려 6성의 성력을 지녔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허나 그 사실은 역사가 과장되게 기록한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고리가 6개라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헌데, 정말로 3황자의 고리가 2개에서 4개까지 늘어나게 되었다면 아예 허풍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신께서는 신탁을 통해 제게 뜻을 종종 전해 오셨습니다. 얼마 전 신탁을 들은 이들도 이 자리에 있고요.”
분명히 그랬다. 3황자가 병자를 수술할 때 들려왔던 신탁. 그것이 오로지 3황자를 위해 신이 내린 목소리였다니.
“마, 말도 안 돼.”
“이놈! 네가 감히 주신의 이름을 팔아?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한들 신의 이름을 판 죄는 얼마나 혹독할지…….”
현실을 부정하는 이는 1황자와 2황자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신이 꾸준히 3황자에게 신탁을 내려왔다는 사실과, 고리의 개수에 변동을 주었다는 건 신이 직접 3황자를 간택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건 장차 3황자와 경쟁을 하여 황위 계승을 해야만 하는 다른 황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형님들은 제가 허튼소리 하는 걸 보았소?”
3황자는 두 황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과는 달리 한껏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신 앞의 작은 양으로서 맹세하오니, 내가 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소.”
“이럴 수가…….”
“신께서 원하시는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태초에 2성을 부여했던 3황자를 4성까지 끌어 올려준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신이 변덕을 부렸단 말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신이 생각하기에 1, 2황자에게 성황의 자질이 모자라거나, 혹은 3황자가 신의 예상을 뒤엎었을 정도의 막대한 군주로서의 역량을 지니고 있거나.
허나 힐데스하임의 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축드립니다, 3황자 전하.”
성국 내에서의 정치 싸움은 이제 더욱 치열해지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 * *
“3황자 전하. 그간 3황자 전하의 위대함을 몸소 느껴 왔음에도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라도 3황자 전하와 뜻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희 가문이 목숨을 바쳐 3황자 전하를 황위에 오르도록 이바지하겠습니다.”
이미 1황자나 2황자에게 완전히 붙어 버린 가문이야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사이에서 간만 봐 오던 이들은 곧장 태도를 바꾸어 나에게 붙으려 했다.
“됐소. 내겐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소.”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하. 대의를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욱 많은 힘이 필요한 법입니다.”
“거룩한 혈투에서 전하를 대신해 흘릴 피들이 요구될 것입니다. 그 역할을 저희가 하게 해 주시옵소서.”
“됐다니까.”
나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그들을 매몰차게 대했다.
아마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조금이라도 내 편이 늘어나면 좋아해야 할 것인데, 제대로 된 세력조차 없는 내가 어째서 그들을 거절한단 말인가.
“이미 나한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 더 늘어나면 그들을 내가 전부 다 챙길 수 없겠지.”
그게 나의 뜻이었다. 나에게 대체 무슨 세력이 있단 말인가.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내게 마음을 바쳐 온 이들은 제법 생겼다.
힐데스하임의 위대한 기사 가문인 바이에른은 아예 공식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있었으며, 근처의 왕국 중에서는 헬리배드와 마인츠가 부르기만 한다면 언제든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클레이디크를 통치하는 발칸 제국의 후작 아르민 역시 내 편이었다.
그들은 내가 가진 힘이나 장래성을 보고 내 편이 된 것이 아니었다. 보잘것없는 나를 믿고 마음을 열어 준 이들이었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인턴 때, 긴장감에 큰 사고를 치고도 나를 계속해서 믿고 레지던트로 받아주었던 최 교수님. 아마 그분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믿어준 사람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단순히 내가 지닌 능력이 아닌, 나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지닌 이들 말이다.
“전하!”
때마침 반가운 얼굴이 들이닥쳤다. 그는 주위에 몰려든 귀족들을 바라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고.
금세 상황을 파악한 그가 다른 귀족들을 내쫓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대들이 갑자기 무슨 영문으로 황자 전하를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이에른 가와 중요한 얘기를 나누셔야 하니 자리를 좀 비켜주겠소?”
마르코 바이에른. 그는 보기보다 영리한 구석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누던 이야기요. 갑자기 이야깃거리가 생긴 그대들과는 달리.”
귀족들은, 그제야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마르코.”
“전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그렇게 되었네.”
“서운합니다. 수도 근처에 오시고도 언질 한번 주지 않으시다니.”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알잖아. 나하고 엮일수록 그대들만 더 힘들어진다는 거.”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코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하를 모시게 된 것은 제가 가주로서 바이에른 가에서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새 황궁에서의 일을 접한 모양이었다.
“이제는 전하께서의 입지도 많이 바뀌셨을 테지요. 신께서 전하를 제대로 보시고 고리를 선사해 주셨으니.”
“소문이 빠르네.”
그는 잠시 웃어 보이다가,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베이언에서 기사와 병사들을 모집했었다 들었습니다.”
“힘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렇지요. 바이에른이 늘 검을 놓지 않은 이유도 최고로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힐데스하임 내에서, 중앙 기사단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기사단을 지닌 검의 성지, 바이에른 가문.
“그리고 이제부터 저희가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할 대상은 전하입니다.”
그렇게 말한 마르코가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그를 따라 나가자, 말 아래 내려 있는 수십의 기사들이 몸을 낮추었다.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
“송구합니다만, 현재 베이언의 병력만으로는 갑작스레 찾아올 위험에 대처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저희 바이에른의 기사 일부가 전하의 옆을 지키고 싶습니다.”
나는 잠시 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과거, 트루드와 함께 바이에른의 영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기사들의 역량을 직접 확인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바이에른 기사들은 그때와 비교하면 몰라볼 정도로 한층 성장해 있었다. 겉으로 보기만 해도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저렇게 발전한 거지?”
“전하께서 그간 이루어 내신 성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나, 전하를 지키기 위한 신념, 그것만으로 바이에른은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
“바이에른은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바이에른의 기사들이 도태되고 있던 것은 성국에서의 핍박도, 개개인의 역량 부족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이에른의 검은 방향을 잃었었고, 무얼 위해 검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만.”
차마 듣고 있자니 몸 둘 바를 모를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찾았습니다. 신께서 저희에게 내리신 사명은 오로지 전하를 지키는 것, 그리고 전하께서 온전히 군주의 자리에 오르시도록 그 옆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신념 하나로 기사들은 더욱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세계가 내게 또 다른 의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3황자 전하가 그리되실 줄 어찌 알았단 말인가.”
“설마 고리가 늘어나실 거라곤…….”
힐데스하임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일고 있었다. 1황자 혹은 2황자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기존 귀족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면, 이제는 3황자라는 선택지까지 생기고 말았다.
문제는 3황자는 귀족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만하기 짝이 없으시군.”
“설령 신께서 3황자 전하께 그런 특혜를 내리셨다고 한들, 신께서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법은 없다. 미래는 인간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고위 귀족들은, 3황자에게 바람을 맞은 뒤 어이없어하고 있었고.
“헌데 바이에른 가가 그런 3황자 전하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검의 성지도 다 옛말이지. 이미 그들은 도태되고 있었을 뿐이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결국 3황자 전하의 세력은 개미만도 못한 신세일 뿐이니.”
아직까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