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19)
제119화
베이언으로 돌아온 뒤, 의원들을 육성하는 일과 영지의 관리에 전념했다. 그것이 당장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베이언만큼은 신성 제국의 다른 곳과는 달리 살기 좋은 곳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작으로 적폐 세력을 갈아 치운다거나 남아 있는 악습을 금지하면서 차츰 변화를 꾀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일지언정 이것은 장차 분명 큰 변화를 만들어 낼 발판이 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의원들의 성장 역시 마찬가지. 그들에게 지금 가르치는 부분은 너무 기초적이라 당장 실효성을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의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꼭 알고 있어야 할 제반지식들이었다.
그 사실을 몇 번이나 의원 지망생들에게 각인시켰음에도, 그 과정에 있어 느끼는 지루함 때문인지 버티지 못하고 나간 이들의 수만 해도 절반 가까이 되었다. 나는 굳이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정도의 끈기가 없다면 제대로 된 의원은 되지 못할 터.
다만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아닌, 심폐소생술이나 하임리히법 같은 간단한 처치법에 대해서는 일반 영지민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전파를 시켰다. 이미 치료소에서 발칸의 의원들을 통해 그 실효성을 엿본 이들은 그 방법을 자신들도 사용하여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퍽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이미 강조하고 있던 위생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영지민들에게 각인시켜 두었다.
6개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행동 양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전하. 병에 시달리는 이들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힐데스하임께서 정말로 베이언에 축복을 내리신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체감이 될 만큼 질병에 걸리는 이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신의 축복이라고, 누군가는 3황자의 헌신 덕분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신의 축복 같은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전염병 환자에 대한 올바른 격리. 그리고 수시로 손을 비롯한 몸을 깨끗이 씻기.
현대에서는 지극히도 당연한 생활 양식이 이곳에 적용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모두가 잘 따라주었기에 생겨난 변화였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토록 커다란 기적을 만드는 일이, 이토록 간단한 일이었을 줄은.”
현자는 베이언에 생기고 있는 변화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적어도 그 변화를 만들어 낸 요소에 대해서는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참 웃기지. 이러고도 나를 성자니 뭐니 하면서 떠받드니까. 그거랑은 하나도 상관없는데 말이야.”
“……허나 전하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기적이었을 테지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인 현자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만드신 기적은, 고리를 불태우며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보다도 훨씬 더 큰 의의가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성력 고리를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실행시킬 수 있는 궁극의 신성 마법. 그 종류와 사용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이미 현자는 두 번이나 그것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고리를 불태워 사용할 정도라면 정말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다.
헌데 현자가 말하는 의의라는 것에 대해서는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겠지.”
“성력의 힘이 아닌, 3황자 전하께서 온전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낸 기적. 그리고 영지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적. 그것만으로도 모두가 선택받았다고 여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야. 선택받았다느니, 성자라느니. 그런 걸 원했으면 의술을 나만의 것으로 갖고 있었겠지.”
“전하의 뜻은 잘 알고 있으나, 그것을 나쁘게 여길 것만은 아닙니다. 선택받았다는 일념이,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살아갈 희망이 될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누군가에게는 전하를 위해 검을 들 명분이 될 테지요.”
“……그래.”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고 한들, 그것이 내게는 나쁘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베이언 영지민들의 사기가 올라간다면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사기라는 것은 일반 영지민들에게도 중요한 것이지만, 훗날 전장에서 싸워야 할 병력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니 기사들을 계속해서 육성하는 중이기도 했고.
“잘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더없이 훌륭하십니다.”
현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
* * *
3황자가 베이언 영지를 훌륭히 탈바꿈하고 있다는 사실은 성국 전역으로 퍼졌다.
3황자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알게 모르게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으나, 확실한 전환점이 된 것은 6개월 전 성력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아무리 3황자가 의술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사람을 살리고, 발칸 제국이라는 든든한 세력과 나름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그건 힐데스하임 황족에게 있어 엄청나게 큰 이점은 아니었다. 황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에게 선택받았느냐’였다. 그리고 그것을 판가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연히 신성력의 경지였다.
그러니 3황자가 아무리 예상치 못한 행보를 걸어왔다고 한들 귀족들에게 3황자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헌데,
“태초부터 4성도 아니고, 2성으로 태어나 4성까지 깨우치셨다니.”
“……신께서 결국 3황자 전하의 잠재력을 깨닫고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심이 아닐지.”
3황자에게서 나온 네 가닥의 성력을 본 귀족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심지어 베이언 영지 내에서 3황자의 위세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병에 대한 면역의 권능이 주어진다는 헛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신께서 아무리 3황자 전하를 어여삐 여기신다 한들, 어차피 황위는 혈투에서 승리를 한 자가 차지하는 것이지만…….”
“베이언 영지에 대한 소문이 힐데스하임 전역으로 퍼지고 있소. 이러다 농노들이 봉기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되오만.”
“그쪽으로 대거 이민이라도 가게 된다면 병력에 큰 손실이 생기는 셈이오. 오히려 그쪽은 전력이 공짜로 늘어나게 되는 셈이고.”
2황자의 편에 선 귀족들은 상황이 점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신께서 내리신 검이 모든 것을 심판할 것이다.”
2황자는 그런 이들에게 걱정 말라는 듯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툭툭 쳤다.
2황자는 분명 1황자에게 뒤지지 않는 인재였다.
1황자에 비해 고리가 한 개 부족한 4성이지만, 4성 치고도 막대한 양의 성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술의 재능은 많은 귀족들로 하여금 그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성기사이자 황자.
전장에서 직접 검을 휘두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같은 세력들에게 사기를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
다만.
“……2황자 전하. 허나 싹은 잘라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구태여 불필요한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1황자라는 만만치 않은 적대 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삼파전으로 흘러가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나를 못 믿는다, 이 말이오? 내가 데미안 그놈한테 밀릴 것 같소?”
이마에 핏줄이 선 2황자를 달래고 나선 것은 백작령을 소유하고 있는 주교였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2황자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실 것은 당연한 결과이나, 그 과정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생각됩니다.”
“……허면 주교에게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주교는 교활하며 약삭빠르고, 좋게 포장하면 영리한 인간이었다. 아무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나선 것은 분명 수가 있을 터.
“최선은 아닐지언정, 최악은 면할 수 있는 계책이 있습니다.”
그런 주교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3황자 전하를 지지하고 있는 세력은 바이에른 백작뿐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허나 바이에른 가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직접 보았으니.”
2황자는 힐데스하임의 성기사로서, 당연히 바이에른에 대한 소문을 들었었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력과 기세를 확인한 2황자는 바이에른 백작에게 제안을 건넸었다.
‘그대들의 검이 나를 따른다면, 그대들에게 찬란한 대가를 약속하지.’
비록 현 성황 겔리두스의 눈 밖에 난 이들이었지만, 적어도 2황자에게 있어 그들은 단순히 강한 무력을 지닌 집단 그 이상이었다. 성기사로서 그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은 더없는 영광일 터.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바이에른은 그 누구도 지키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의 뜻을 따를 뿐이며, 신께서 직접 목소리를 내리시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검을 갈고 닦을 뿐입니다.’
분명 그리 말했었다.
그런데 바이에른 백작에게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아니면 그저 2황자에게 했던 거절은 돌려 말했던 것뿐인지 한참 후에 그들은 3황자를 지지하고 나섰다.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들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바이에른 가는 혈투에 들어설 경우 상대하기 까다로울 테지요. 애초에 그쪽으로 특화되어 있는 자들이니.”
주교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었으나.
“허나, 거룩한 혈투가 아닌 일반 전쟁에 들어선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그들이 혈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것은, 그에 대한 노하우가 전수되고 있는 덕분이지요. 저희가 그들을 견제해야 하는 이유는, 혈투에서는 1황자 전하의 세력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 봐.”
“저희가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침공한다면, 과연 단일 세력으로만 그들이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주교가 꺼낸 계책은 과감하다 못해 황당하게 들릴 정도였다.
“전쟁을 일으킨다? 그건 너무 과한 것 아니오?”
“전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힐데스하임이 십수 년간 평화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한들, 제국 내에서의 세력 다툼은 그 전까지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허나,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지 않소?”
전쟁의 명분.
거룩한 혈투에는 정당한 신의 대리자를 가리기 위함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며, 힐데스하임이 발칸과의 전쟁을 언제든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발칸이 신을 따르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인식을 심어둔 덕분이었다.
헌데 귀족들이 바이에른에 대해 내세울 만한 명분은 그다지 없는 듯 보였다. 애초에 바이에른이 정치판에서 발을 뺀 지 오래라 이렇다 할 여지가 있을 리가 만무했으나.
“명분은 만들기 그만입니다.”
“만든다?”
“이를테면…… 신탁이라든지요.”
신탁. 그보다 확실하고 간편한 명분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