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성자께서 바이에른을 어루만집니다.] [신의 뜻이 바이에른 전역을 뒤덮습니다.]갑작스레 들려온 성스러운 목소리.
전쟁을 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당황하고 있었다. 신탁은 한두 명이 아니라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어, 어째서 신탁이…….”
“신께서 우리에게 명을 내리신다! 바이에른을 어서 벌하라 재촉하고 계시니……!”
바이에른과의 전쟁을 모인 이들은, 모두 신의 명을 받들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금 신탁이 내려와 그 명분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다들 그렇게 믿고 있었고.
“신이시여!”
“정말로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바이에른 측의 인원들은 좌절하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었지만, 정말로 바이에른을 토벌하라는 신탁이 내려진 것이 기정사실처럼 보이고 있었다.
“고개 들어!”
그런 바이에른 측의 이들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른 것은 3황자였다.
“……전하.”
바이에른은 이제껏 3황자를 바라보며 검을 들었다. 3황자를 직접 대면하지 못한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백작을 통해 그의 고결함을 전해 들었으며, 그가 당연히 성황이 될 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것이 바이에른 가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에도 균열이 가고 있었다. 비겁하게도, 순간적으로 3황자에 대한 원망까지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신이 바이에른을 벌하라는 명을 내린 거라면, 그 이유는 필시 3황자를 지지한 탓일 터였고, 그건 신이 직접 개입하면서까지 3황자가 성황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일 테니까.
허나 3황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들 주눅 들어 있는 거지?”
3황자는 꽤나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는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께서는 아무래도 저희의 그릇된 선택을 바로잡으실 생각인 듯 보입니다.”
유독 3황자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백작인지라, 그를 대신해서 바이에른 기사단의 부단장이 나섰다.
“그릇된 선택? 바이에른이 했다는 그릇된 선택은 무엇이지?”
“…….”
부단장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당사자 앞에서, 신께서는 당신을 버리셨노라고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힐데스하임에서는 둘 가라면 서러운 황족이었으니.
“……혹시 전하께서는 신탁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무래도 3황자의 반응을 보니 그런 듯했다. 신은 3황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전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것일까.
허나 그건 착각이었다.
“들었지.”
“저들이 명분으로 삼은 신탁이 허풍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바이에른과 전하를 지키기 위한 저희들의 신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부단장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놀란 눈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한 단장은 아마도 더욱 그런 심정일 터였다.
“경도 그렇게 생각해?”
3황자가 그런 백작을 향해 대놓고 물었다.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던 백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그들이 지어낸 신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백작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왠지 모를 비탄의 심정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신성 제국을 자기 손으로 타락시킨 자들이기에. 그것이 특별히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작의 솔직한 심정. 신성 제국에서 자칫하다가는 목이 떨어져 나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발언이었다.
“바이에른 백작!”
“신께 버림을 받아 정신이 나가버린 게요?”
“그 이상의 모독은 그대에게 더욱 큰 벌을 내릴 것이다!”
전열에 서서 지켜보던 귀족들은 그 내용을 훔쳐 듣곤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바이에른 백작은 꿋꿋이 3황자를 향해 고백했다.
“제가 모시는 신은 이 세계에 따스한 빛을 전하는 구원자이자, 만물을 치유하는 전지자시니. 늘 그분을 모셔왔고, 그분의 뜻을 따라 한 치의 부끄럼도 없게 행동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건 바이에른에 소속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가끔은 지독하게 융통성이 없어 답답해 보이기도 했으나, 그런 점은 모두가 백작을 더욱 충실히 떠받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하를 알게 되었습니다. 3황자 전하에 대해 알아가면서 전하께서는 신의 뜻을 실행시키고자 이 세상에 내린 성자라고 확신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충분히 그럴 만한 분이시니.”
백작이 3황자를 그토록 높게 평가하는 만큼, 바이에른의 이들도 3황자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을 품어왔다.
허나 백작이 틀렸다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나 제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
백작조차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부끄럽습니다. 바이에른을 명예롭게 이끌고자 늘 다짐했건만 제 생각이 틀렸고, 잘못된 믿음으로 바이에른을 이끌어 왔다니.”
“……그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3황자는 내색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한 바이에른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선택 말씀이십니까?”
“아마도 상황을 이렇게 만든 선택이라면, 그대가 나를 믿기로 했던 선택이겠지.”
그런데 바이에른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제가 후회하는 것은 전하를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아온 전하는 누구에게나 따스한 분이셨고, 제가 바라던 군주의 모습 그대로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힐데스하임 주신. 그분의 뜻이 정말로 전하를 버리는 것이라면.”
바이에른이 갑작스레 검을 뽑아 들었다.
“신은 단지 전지전능한 존재일 뿐. 제가 믿고 따라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백작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게 보일 정도였다.
허나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가, 가주님……!”
“정말로 돌아버린 모양이군. 그대가 정녕 신성 제국의 귀족인가!”
그런 그들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에 올라탄 백작이 작게 읊조렸다.
“저는 신의 뜻을 거스르고 힘이 닿는 데까지 전하를 위해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신께서 제게 어떠한 벌을 내리신다고 하여도,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게 흘러나온 백작의 의견에는, 아무리 그를 존경하는 바이에른 기사들이라 하여도 쉽게 따를 수가 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백작은 당장에라도 적들을 향해 달려가려 했으나.
[바이에른 백작의 올곧은 태도에, 성자께서 찬사를 보냅니다.] [불필요한 전쟁의 막을 내립니다.]연이어 들려온 신탁이 백작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백작은 놀란 눈으로 3황자를 바라보았다.
* * *
[성자께서 바이에른을 어루만집니다.]처음 들려왔던 신탁.
그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이가 아무도 없었으나, 사실 신탁은 처음부터 바이에른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허나 그 뜻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이전에 내렸던 신탁이 바이에른을 벌하라는 것이었다 보니 그와 같은 뜻을 전한다고 판단하기가 쉬웠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다.
바이에른 백작은 그 착각에 분노가 차올랐다. 아무리 신이 힐데스하임에서 누구보다 높은 존재라고 한들, 차마 그 뜻을 존중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저는 제 믿음에 의심을 품어 왔습니다.”
바이에른 백작은, 전쟁이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나버린 후 3황자를 독대하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전하께서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나, 저는 신성 제국이 올바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성황 폐하는 분명 신께서 선택하신 성국의 군주이며, 부패한 성국도 제 조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부패했다는 건 나도 동의하는 바야.”
“허나 그것을 알면서도, 저는 비겁하게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겁한 게 아니야. 거기서 무식하게 맞서 싸웠다간 바로 끝장이 났겠지. 훗날을 도모하는 게 나았을 거고.”
“……부끄럽게도 훗날을 도모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3황자 전하 같은 분이 계실 줄 몰랐기에. 성국은 절대 바뀔 수 없을 거라고, 속으로 지레짐작해 왔습니다.”
허나 그런 백작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은 3황자였다.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아도, 신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째서 신께서는 신성 제국을 이렇게 내버려 두는 것인지. 정녕 이것이 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인지. 하지만 3황자 전하를 통해서 신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지요.”
백작은 진지한 눈으로 3황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신께서 3황자 전하를 성황의 자리에 오르도록 점지한 성자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신을 완전히 저버리게 될 뻔했으나, 다행히도 신탁은 역시나 3황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심지어는 3황자를 성자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3황자 전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이, 제 아들을 통해서였지요.”
백작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그랬다.
3황자는 참회의 숲에서 있던 시험에 동행했던 바이에른 가의 장남을 직접 구해주었고,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3황자에게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보냈다.
“……헌데 3황자 전하께서 패물을 극구 사양하시다, 결국에는 그것을 작은 마을의 주민들에게 돌렸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건 내가 생각이 짧았지. 백작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빴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양해라도 미리 구했어야 하는 거고. 이제라도 사과를…….”
백작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응?”
“3황자 전하께서 이토록 훌륭한 분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제가 보아왔던 고위 귀족이나 황족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제가 기다려 왔던 분이 드디어 도래하신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에 며칠은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습니다.”
낮은 이들을 굽어살피는 황족이라니. 고작 그것으로 3황자에 대해 그토록 기대를 품었다니.
모르는 이들이 들으면 황당해하겠지만.
“신성 제국의 고위층은 완전히 타락해 있으니, 오히려 전하가 더욱 빛나 보였던 게지요.”
그것만 하더라도 다른 황족들과 비교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던 것이었다.
“됐어. 아부는 그만하고. 앞으로는 함부로 그런 결정은 하지 마. 바이에른 가는 내게 충성을 맹세했으니. 전쟁이니 뭐니 하는 중대한 일 생기면 나한테 바로 보고해.”
“……알겠습니다.”
3황자에 대한 바이에른 백작의 마음이 일방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3황자 역시도 바이에른을 어느 정도 생각해 주고 있었다.
“헌데 전하께서는 어찌 알고 오셨습니까? 전쟁을 말리러 오신 것인지, 아니면 신탁을 미리 전해 듣고 오신 것인지…….”
갑자기 든 의구심에 바이에른 백작이 그리 물었고.
한참이나 고민하던 3황자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내가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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