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2)
제122화
“그거 내가 한 거야.”
그 말을 들은 바이에른 백작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저, 전하……?”
그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성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역설의 권능은, 저들로 하여금 내가 전하는 의사를 신탁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아니, 애초에 이것이 신탁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들이 들은 신탁을 전한 것은 나였고, 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백작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백작은 나를 희한할 정도로 우러러보고 있었다.
“전하께서…… 힐데스하임이시란 말입니까?”
그가 꺼낸 말은 나조차도 황당하게 만들 정도였다. 백작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앞에서 망언을 한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신께서는 잘못된 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직접 인간의 몸으로…….”
“그만해. 농담한 거니까.”
그는 내가 힐데스하임의 현신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예?”
“나는 신도 아니고, 신의 대리인도 아니야.”
그에게 확실하게 말해두었다.
백작이 보였던 신에 반하는 행동. 신성 제국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절대자에 대한 복종을, 백작은 깨부숴 버렸다.
바이에른 가에 전쟁을 일으킨 명분이 된 신탁이 내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바이에른 가는 할복을 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들은 검을 들었다. 끝까지 맞서 싸우려 했다. 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 이유는 아까 들은 백작의 말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저는 신의 뜻을 거스르고 힘이 닿는 데까지 전하를 위해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신께서 제게 어떠한 벌을 내리신다고 하여도,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바이에른 백작에게 베풀었던 내 선행은, 그다지 커다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백작은 과할 정도로 내게 충성심을 보였다.
신을 부정하면서까지.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더없이 기쁘기도 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참 잘 뒀구나, 싶으면서도. 이 세상에 퍼져 있는 잘못된 사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희망이 엿보였다.
“나는 그냥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늘 그래왔지. 힐데스하임 주신이 내게 자신의 뜻을 강요한 적도 없었고,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따를 생각도 없었어. 신성 제국의 바람직하지 못한 규율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치지.”
이왕 시작된 것, 바이에른 백작의 생각을 더욱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단순히 전하의 뜻대로 전쟁을 막기 위해 찾아오셨단 말입니까? 신탁이 들려온 것은 단순히 우연일 뿐이고?”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허나 신과 신성 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꾸어 놓기 위해 한 말이, 그에게 다른 의미로 자극을 줄지는 몰랐다.
“…신께서 전하를 보내신 것은 정말로 전하께서 이 세상을 바꾸어 놓게 하기 위하신 듯합니다.”
“응?”
“전하께서 바이에른을 구원하러 오셨으니, 힐데스하임께서 전하를 도우신 것뿐. 전하가 오지 않으셨다면 힐데스하임께서 또 다른 신탁을 내리시지 않았겠지요.”
“그게 왜 꼭 그렇게 되는 거야?”
귀족 놈들이 만들어 낸 가짜 신탁이라는 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바이에른은 나를 지지하는 유일한 가문이야. 신이 정말로 나를 보살피시는 거라면 바이에른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겠어?”
그러나 이렇게까지 말해도 바이에른 백작은 여전히 기가 막힌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바이에른이 전하께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하신 것이겠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고 하니.
“전하께서는 바이에른이 없어도 충분히 군주에 자리에 오르실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바이에른은 전하를 도울 자격도, 능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셨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지금 내게 바이에른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그들이 가진 무력도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나를 믿고 따르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의지가 되었다.
솔직히 그들이 없었다면 나 역시 흔들렸을 수도 있었다.
세뇌라는 것이 참 무서웠다.
전생에서 40년 가까이 살았고, 덕분에 나는 이 세상에 퍼진 사상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종종 나조차도 내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었다.
모두가 맞다고 외치는데, 홀로 아니라 말하고 있으니 흔들릴 때가 있었다.
절대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딴 바보 같은 사상에 휘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십 년 가까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렇지만 다소 과격한 내 행동에도 지지를 보내주는 이들 덕분에 꿋꿋이 내 생각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이에른 백작이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 바이에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지도 않았을 거고, 앞으로의 바이에른이 없다면 미래의 내 위치도 달라질 거야.”
“허나 신께서는…….”
“그놈의 신, 신.”
바이에른 백작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지겹지도 않…… 됐다.”
충동적으로나마 바이에른 백작이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힐데스하임이라는 우물을 벗어나기는 무리인 듯했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었고, 더욱 강해질 명분이 될 수 있었다.
특히나 성력을 기반으로 수련하며 성자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성기사들에게 신실함이 빠진다면 더욱 약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 층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우물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도 있었다.
“백작의 말대로라면 신은 자신과는 조금 다른 내 뜻을 존중해주기로 결정해서 바이에른을 구원하신 건가?”
“…….”
대답이 없었다. 긍정의 침묵이었다. 단지, 백작은 내 속을 파악하기 위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바이에른도 나처럼 꼭 신의 뜻이니 뭐니 하는 것에 얽매일 필요 없어.”
“예?”
“그게 내 생각이니까. 신께서는 이것마저도 존중해 주시겠지.”
당장에 바이에른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아마 이번 일을 통해 그들도 조금은 느낀 바가 있었으리라 믿으며 천천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팔츠 백작!?”
2황자는 전쟁을 하러 갔다가 허무하게 돌아온 귀족들을 다그쳤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으나, 차마 믿기가 힘든 사실이라 그들에게 직접 확인을 해 봐야만 했다.
“시,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팔츠 백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여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시, 신께서 저희를 벌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3황자 전하와 바이에른을 구원할 신탁을 내리셨으니, 저희는 신께서 바라시는 것과 완전히 정반대로 행동한 꼴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 계획을 들었을 때, 모두가 불안해하면서도 동의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신께서는 3황자 전하를 이미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분명 그렇게 믿었다.
사실 최근 행보만 보자면, 3황자도 다른 두 황자들에게 밀릴 것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고리의 개수가 2개나 늘어난 것을 보면 꼭 그렇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단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뿐이었다.
이미 이들은 2황자를 위해 충성을 바쳐 왔고, 3황자가 황위에 오르게 된다면 끝장이 난 목숨들이었다. 좋든 싫든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고, 신탁으로 내세운 명분이 거짓된 것일지라도 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신이 그들을 가로막고, 바이에른과 3황자를 구원할 ‘진짜’ 신탁을 내려왔다. 아직까지 그 신탁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며 이들을 징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젠장!”
2황자 역시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2황자는 3황자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가장 불편해하고 있었다.
“아니지. 애초에 신께서는 데미안 그놈을 구원하실 생각이 없으셨을 거다.”
그러더니 2황자가 입을 열었다.
“……예?”
“신께서는 단지 공정한 경쟁을 원하셨을 뿐이지. 애초에 누군가를 성황으로 지목하실 계획이셨다면 황자를 이 세상에 여럿 내리셨을 필요도 없었고.”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역사적으로, 신은 어떤 황자를 특별히 편애한 적이 없었다.
성황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항상, 경쟁에서 승리를 갈취한 이였을 뿐이다.
오히려 3황자가 2성으로 태어난 것이 특별히 신의 미움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이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다면…….”
“허황된 신탁을 만들어 명분이랍시고 내세웠고, 그것이 공정함을 깨뜨린 것이야. 신께서는 그 부분에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기심에 관여를 하신 게고.”
2황자의 말은 썩 맞는 말처럼 들렸다.
“쯧, 괜히 3황자에게만 좋은 일을 해 주게 되었어.”
분명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신탁을 들었다. 2황자의 세력들이 모두 침묵한다고 해도, 3황자의 편인 바이에른 쪽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신탁이 3황자와 바이에른에게 내렸다고.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고 떠들고 다니겠지.”
3황자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나, 실제로 바이에른의 기사들은 그날의 신탁을 썩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무용담처럼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고.
“그런 게 아니라도 말이야. 신께서 관여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뜻과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이겠지.”
그것이 이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신이 내리게 될 심판.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2황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2황자의 시선이 향한 것은, 특히나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주교였다.
“신탁을 꾸며내자고 했던 것이 그대였나?”
“예, 예, 예?”
그는 화들짝 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찌 그런 불충한 생각을 품었단 말인가?!”
2황자는 그를 다그쳤다. 진심인지, 아닌지 모두가 헷갈리고 있었으나 2황자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감히 힐데스하임 주신의 이름을 판 죄, 그분의 뜻과 반대되는 길을 걸으려 한 죄, 그리고 세 치 혀로 모두를 나락에 빠뜨리려 한 죄! 그대의 죄는 한없이 무겁고, 그 죗값 역시도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전하!”
꼬리 자르기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주교가 2황자에게 달라붙으려 했지만 2황자는 가차 없었다.
“끌고 가라!”
주교를 쳐다보지도 않는 2황자였다.
2황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자신이 토사구팽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2황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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