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2황자 측 쪽 사람이었던 펠라프 주교가 황실로 잡혀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사형이 내려졌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게지요.”
아마 현자의 말대로일 터였다.
그들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신탁은 역시 그들이 조작하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의 신탁이 내려왔으니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마치 신이 직접 그들을 가로막은 거나 다름없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일이 생각보다 커졌다고 여겼을 거고.
그러니 2황자 측의 귀족들은, 모든 걸 펠라프 주교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그가 모든 것을 꾸몄고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펠라프 주교에게 속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허나 내가 그 모든 사실을 바로잡을 수도 없었고, 당장에 바로잡을 필요도 없었다. 어쨌거나 펠라프 주교는 사형을 당하게 될 거고, 그러는 동안 2황자를 지지하던 귀족 세력들 사이에서는 균열이 생겨날 것이다.
두려움과 불신, 그 두 가지의 감정으로 인해 그들의 사이는 일정 수준 이상 단단해질 수 없으며 분열이 생기게 되겠지.
“2황자 전하를 따르고 있는 이들이, 전하를 따르려 할 날이 머지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도 현자와 같았다. 이미 그들 중에는 슬쩍 소매 넣기를 시도하는 이들까지 있었으나,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는 그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전하께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것 같았습니다만, 그들의 도움 없이 대의를 이루시는 것은 험난한 길이 될 것입니다. 자고로 군주의 자질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꿋꿋함도 필요하나, 세태와 야합하는 현명함도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게 세태와 야합하게 된 군주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아?”
현자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겔리두스 폰 힐데스하임. 아버지께서는 나보다도 더욱 현명하고, 어질며, 신실한 분이셨다지.”
현자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 대해 나쁘게 말한 적이 없었다. 허나, 아무리 현자라도 모든 이를 좋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말을 돌리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제가 괜한 말씀을 드렸군요. 전하께서는 지금껏 해오신 대로 잘 하실 것인데.”
“파우스트 경.”
하지만 이야기는 확실히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경의 말대로, 지금의 내 세력으로는 부족한 게 많겠지. 아무리 특별한 권능들과,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해도 말이야. 그건 나도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거야. 구차하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전하께서 잘하실 거라고 믿는다는 것은 진심입니다. 저는 평가처럼 현명한 이가 아닌 탓에, 전하께서 어떤 길을 택하실지 내다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저와 성황 폐하가 함께 걸었던 길을 제시한 것뿐입니다. 제가 경솔했던 게지요. 전하께서도 분명 생각이 있으실 텐데.”
“현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나는 다소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그건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왔던 고집이며, 현생을 살아가면서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야.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아버지가 옳다는 게 결코 아니지만,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고.”
자리라는 게 참 무서웠다.
그건 의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많이 느껴온 것이다. 의사로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는 환자를 살리는 것보다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주변에서 수도 없이 보아 온 탓이었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던 놈도, 의사가 되면서 성공하고, 더욱 큰 성공을 갈망하면서 차츰 변해갔다. 처음 의료인이 되면서 세웠던 뜻을 잃고 부와 명성만을 탐하는 존재가 되기 일쑤였다.
나는 나조차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렸웠다. 때문에 그런 쪽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허나 전하께서는 성황 폐하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현자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드디어 그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시의 성황 폐하가 지금과 다른 분인 것은 맞으나, 전하는 그때의 성황 폐하보다도 훨씬 뛰어나신 분이지요.”
성황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현자가, 조금은 솔직해졌다.
“전하께서는 걱정하고 계시지만 저는 전하가 누구보다도 군주의 자리에 적합한 분이며, 성국을 훌륭하게 이끌어 나갈 분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번 틀렸는데, 괜찮겠어?”
“그래서 더욱 걱정했었습니다. 저를 미워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고, 그러한 질타들이 마땅한 것이기에, 저는 실수를 거듭하지 않고자 다시는 이 정치판에 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전하께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역시나 조금은 부담스러운 말이었지만, 현자의 말을 듣자 오히려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현자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전생에서 세미나를 할 때나 보았던 외국의 천재 의사들보다도 더욱.
“차라리 제가 없었더라면, 그날 성황 폐하를 살리지 않았더라면. 성국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죄책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자가 자신의 고리 한 개를 불태우며 성황을 살려내었다.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바가 있었으나, 말 그대로 소문에 불과한지라 자세한 정황을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현자는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면 구태여 꺼내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현자도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그에게도 억울한 점이 한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아닌 척하지만 그는 피해자였다. 성황을 그 자리에 올리기 위해 가장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버림을 받게 되었으니. 게다가 다른 이들에게는 죽일 놈이 되었다. 결코 그가 바랐던 상황이 아니었겠지.
한참 후에야 현자가 입을 열었다.
* * *
현자에게는 끔찍한 기억이었다. 때때로, 악몽에 그날의 기억이 나타나곤 했다. 현자는 그것이 신께서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여겼다.
“성황께서 어찌 그 자리에 오르게 되신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3황자가 고개를 저었다.
황자였던 성황은, 위로 있던 형들에 비해서 그 입지가 턱없이 낮았다.
지금 3황자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시의 겔리두스가 성황이 될 거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허나 현자는 겔리두스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고 그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가 성황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신성 제국은 더욱 찬란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모르는 이들은, 단지 성황께서 거룩한 혈투의 승리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그게 아니야?”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이전부터 이미 대세가 기운 덕분에 성황께서 승리하실 수 있었던 게지요.”
겔리두스가 한순간 많은 귀족들의 눈에 들었고, 그들이 겔리두스를 지지하게 된 일련의 사건.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대악마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대악마 루시퍼.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탓에, 역사서에서도 종종 대악마가 강림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루시퍼가 부활했던 것이 거룩한 혈투가 일어나기 일 년 전의 일이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대악마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는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 테니.”
일개 인간의 힘으로는 대적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상대. 그래도 신성력은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고.
“그때의 신성 제국은 지금과는 다른 곳이었지요. 낮은 이들은 높은 이들에게 경의를 보내며, 높은 이들은 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형식뿐인 믿음이 아닌, 인간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하는 근본적인 믿음이었지요.”
그것은 힐데스하임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고, 덕분에 그때의 사제와 성기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용맹하고 자비로우셨던 것이 성황 폐하셨습니다. 아무리 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한들, 대악마에게 대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성황 폐하께서는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맞서 싸우셨지요.”
그건, 파우스트가 겔리두스에게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계신 폐하께서 솔선수범하셨으니, 모두가 맞서 싸울 의지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폐하께서는 결국 대악마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셨지요.”
대악마 루시퍼를 봉인하는 데 성공했으나, 가장 용맹하게 싸웠던 겔리두스는 크나큰 부상을 입었다.
“수백의 사제가 달려들어 치료를 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실로 죽음의 문턱 앞에 서셨지요. 아니, 이미 들어가셨던 것일 지도 모릅니다. 이미 심장이 멈추셨으니.”
“……심장이 멈췄다고?”
“예. 분명히 그랬습니다. 심장에 머무르던 성력의 기운도 일순간 완전히 꺼졌었고. 저는 차마 그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가문 내에 비밀스럽게 내려오던 궁극의 신성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던 제게 그 소생 마법에 대해 알려주셨을 때도, 절대 사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시전자가 고리 한 개를 잃으면 천운인 것이요, 목숨을 잃게 되면 다행일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 하셨으니. 단지 잊히지 않도록 전달되기만 하는 소생법이었습니다.”
겔리두스를 살려내기는커녕,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실에 파우스트는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겔리두스를 살려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상관없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고, 성황께서는 목숨을 되찾으셨으며 그 대가는 고작 고리 한 개였습니다.”
“고리 한 개가 어떻게 고작이지?”
허나 3황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 고리 한 개로 훗날 살릴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 아냐?”
3황자의 말은 다소 과격했으나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현자가 3황자에게 감복한 면모이기도 했다.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목숨에는 경중이 없지요. 허나 제게는 그만큼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단지 그뿐이었다. 성황의 자리에 올라 대의를 이루어야 하는 것을 떠나서, 성황은 현자에게 훌륭한 스승이었고, 뛰어난 제자였으며, 더없는 우정을 나눈 친우였다.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네.”
3황자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허허. 아닙니다. 다 지난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게 되었다. 그것이 현자에게는 어쩌면 가장 슬픈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전하께서 가지신 의술이라면, 아무런 대가와 위험도 없이 그때의 성황 폐하도 살려내실 수 있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글쎄.”
3황자는 긍정하지 않았으나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랬을 지도 모르겠네.”
그것이 현자가 3황자에게 더욱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