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현자에게 들은 내용은 예상 밖의 부분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충격적인 내용도 아니었다. 성황이 그 정도 쓰레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건대, 군주의 자리에 올라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이들을 내치는 토사구팽이라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만 현자의 경우에는 성황에게 버림받은 이유가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를 터였다.
보통 군주가 공신들을 쳐내는 것은, 공신들이 쌓아 온 업적으로 인하여 그들의 위세가 과할 정도로 올라가는 것을 경계해서였다.
허나 현자는 권력이 생긴다고 하여 그 권력을 휘두를 사람도 아니었고, 군주에게 반기를 들 사람도 아니었다. 나보다 현자를 훨씬 더 많이 겪었던 성황이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성황은 현자와 함께 다짐했던 미래 그대로 성국을 이끌어 나갈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자를 내치게 된 계기가 되었을 터다.
현자가 자신의 고리를 바쳐가며 성황을 살린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사실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사실을 듣고 놀란 것은 성력이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멈춰 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는 것. 그건 현대 의술로도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세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 리가 없었다.
허나 그것을 가능케 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의술로써 성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 사실을 힐데스하임에 널리 알리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의술에 대한 믿음을 전반적으로 퍼뜨려야만 더 편하게, 그리고 더 널리 의술을 행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성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법을, 의술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술과 성력은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를 상호 보완하는 형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의술의 효용을 보여주는 것은 단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내 자존심 문제가 되고 있었다. 가능한 한 의술은 성력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현자가 성력으로 해낸 것이라면 의술로도 해내고 싶었다.
‘헌데 전하께서 가지신 의술이라면, 아무런 대가와 위험도 없이 그때의 성황 폐하도 살려내실 수 있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현자 역시도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멈춰 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은 심폐소생술로도 가능한 일이었으나, 그건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했고. 만약 정말 치명적인 손상으로 심장이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면 심폐소생술 정도의 처치로 되살리는 건 불가능할 터.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른 대책은, 심장 이식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간단한 수술이 아닐뿐더러, 뇌사자에게 심장을 기증받아야 하는 만큼 이 세계에서의 완전한 인식 변화가 필요했다.
당장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인식 문제는 차츰 해결해 나가고 있었으며, 수술을 도울 어시스턴트들은 베이언에서 한창 육성 중이었다.
언젠간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의 이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괜히 그런 기대를 하며 새벽 공기를 쐬었다.
“진짜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아직은 머나먼 꿈 같기만 했다.
* * *
시간이 점차 지나며 발칸 제국에서 파견을 왔던 의원들이 돌아갈 때가 되었다. 저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은 탓에 기간이 조금 길어지기는 했으나, 무려 1년이나 지났고 발칸 제국에서도 의원들을 필요로 하는 눈치였다. 더 잡아둘 수는 없었다.
“전하께 들은 내용들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성 제국에 빚을 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하께서 베푸신 은총은 발칸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훗날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돌아가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매주 왕궁에 모여 토론을 나누며, 그들에게 새로운 의학 지식들을 전수해 주었기 때문에 그동안 깨달은 바가 꽤 많을 것이다.
나는 그 지식을 나누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황태자가 발칸 제국의 황제가 된 이상 그들은 내 편이나 다름없었고, 혼자서 할 수 없는 대수술이나, 많은 환자가 발생할 때 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달려오겠다는 말, 기억해 둘 거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하로 인해 구원받게 될 인간의 수는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가르침을 받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고작 1년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길어 보일 것이나, 의학 지식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나마 발칸의 의원들은 힐데스하임의 의원 지망생들에 비해 그들만의 노하우가 조금씩은 있었고, 이상한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았으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절약되었다.
“나로 인해 살 사람이 죽는 경우도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역시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가만히 놔뒀으면 신체의 자가 회복 능력으로 살아날 환자도, 괜히 손을 댔다가 죽게 될 수도 있었다. 의료 사고는 현대에서도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서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했고.
“결코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증상이 확실한 경우에만, 확실한 치료법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에게 전부터 수도 없이 강조했던 부분이었다. 다행히 이들은 철없는 의대생이 아닌,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온 그들의 이웃이자 가족이었다. 내가 주의를 준 부분에 있어 확실하게 선을 지켰고, 베이언의 치료소에서 사고를 낸 적도 없었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의원들은 마차 위로 올랐다. 여전히 떠나기 싫은 눈치로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했다.
나 역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내게는 대안이 있었다.
* * *
발칸 제국은, 새로운 황제가 부임한 후 1년간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기본적인 제도부터, 민간에 전해지는 기본적인 사상들까지. 제국에서 많은 부분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결국은 그 변화를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민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훨씬 줄고,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덕분에 삶의 질이 한없이 높아졌다. 발칸 제국의 높으신 양반들 중 일부는 그러한 변화를 달갑지 않게 여겼으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현 발칸의 주요 귀족들은 대부분이 황제의 사람으로서, 그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었던 까닭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했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 수도 없이 고민했다.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었지.”
황제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부당한 방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에 최근까지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힐데스하임의 3황자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는 것 덕분이었다.
그가 그러한 미래를 알려줬던 것은, 분명 자신이 그 미래를 바꾸길 바라는 것이었을 터. 그리고 황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며 못마땅하게 여길 터였으나, 아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직 그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황제가 개편한 발칸 제국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제국, 그것을 완전히 실현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과거에 비하면 그가 바라는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폐하. 힐데스하임으로 파견 나갔던 의원들이 돌아왔습니다.”
때마침 그들이 돌아왔다. 3황자에게 입었던 은혜로 발칸의 의원들을 지원해 주었으나, 이제는 슬슬 그들을 불러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 정도 규모의 의원들의 빈자리는 발칸에서도 꽤나 크기도 했으며, 1년 정도면 조금이나마 3황자에게도 은혜를 표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외에도,
“고생들 많았다. 힐데스하임에서의 생활은 어땠는가?”
그곳에서 지냈던 의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3황자가 다스리는 지역의 삶은 어땠으며, 3황자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헌데 의원들 중 한 명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황제에게 말했다.
“얼마나 힘들던지. 매일 같이 몰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진을 뺐습니다.”
예상과는 다른 말이었다. 자신이 아는 3황자라면 분명 의원들이 극찬을 내놓아야 맞을 터인데. 3황자는 신성력을 지녔음에도 의술에 뛰어난 경지를 달성한 이이고, 의원들이 그에 대해 감복을 했어야 맞는 일인데.
혹시나 3황자가 황제의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일까. 다른 의원들에게는 자신에게 보였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던 것인가?
그런 생각이 피어오르며 인상이 찌푸려질 때쯤.
“그런데 죽을 뻔했지만, 아주 죽여주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또 다른 의원 한 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분명 그랬죠.”
“힐데스하임이 그런 곳인 줄 몰랐습니다. 아니, 힐데스하임이 아니라, 베이언 영지만이 그런 곳이었겠죠.”
“그들은 저희와는 다르게 발칸에 대한 적대심도 없었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훌륭한 군주이신 3황자 전하께서 그 영지를 다스리고 계신 덕입니다.”
“……그랬던가.”
황제는 차마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더 해보라는 뜻으로 파악한 의원들은 신나서 입을 열었다. 황제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3황자에 대해서 늘어놓으라면 신나서 일 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 3황자 전하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 중이시지요.”
“혹여나…… 그분이 힐데스하임의 성황이 되신다면 정말로 세상에는 큰 변화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황제 폐하의 안목을 뒤늦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황제 폐하만큼은 아니나 군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계시며,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의술에 있어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랬던가?”
그건 황제로서도 의외였다.
이들은 명색이 발칸 황실의 의원들이었고, 발칸 내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물론 3황자는 이들이 치료하지 못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치료한 전적이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3황자가 신성력을 지닌 덕분이라 여겼다.
의술과 신성력의 합작이라고 생각했거늘, 의술 실력만 놓고 보더라도 의원들이 저렇게 극찬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3황자가 어떻게 그런 의술을…….”
“그분께서는 힐데스하임의 신께서 그런 의술을 내리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하며 왠지 모르게 주눅 든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그게 발칸의 한계였다. 힐데스하임 주신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
허나 의원들은 곧장 기운을 차렸다.
“그래도 그런 분께서 의술을 손에 넣으신 것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모두에게 자신이 가지신 의술을 베풀어 주셨고, 덕분에 저희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역시나, 3황자는 속이 참 깊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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