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자네 아들은 참 좋겠군.”
“…….”
발칸의 의원이 돌아와 회포를 푸는 자리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발칸의 전설적인 의원이자, 지금은 은퇴하고 정체를 숨기고 살고 있는 칼로스의 아버지였다.
“주인을 정말 잘 만났어. 자네의 말대로더군. 3황자 전하께서는 의술에 한없이 해박하시고, 하셨던 수술 또한 가히 경이로운 수준의 난이도였다더군.”
칼로스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칼로스가 자네에 대해 묻더군.”
“……나에 대해?”
“그래. 일전에 우리 제국의 선대 황비를 치료하러 왔을 때 자네를 보았던 모양이야.”
“뭐라고 했는가?”
“뭐라고 하긴. 대충 둘러댔지. 그런데 죄를 짓는 기분이더군. 멀쩡히 살아 있는 자네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아들에게 자신의 아비의 생사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네.”
칼로스의 아버지는 차갑게 말했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그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기세등등하던 발칸의 천재 의원이었던 그가, 실수로 인해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데 대해서.
“차라리 이런 아비는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 그놈에게도 이득일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만약 칼로스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부끄러워하겠지. 그 충격으로 녀석 역시 병자를 대할 때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지는 않을걸.”
힐데스하임으로 다녀왔던 의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주 현명한 의원이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답답할 정도로 멍청하고 고지식했다.
“누가 뭐래도 자네는 발칸 제일의 의원일세. 역사적으로 보아도 자네보다 뛰어난 의원은 없었을 것이며, 자네의 손으로 인해 목숨을 구하게 된 이들의 수는 셀 수도 없이 많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겠지. 허나 자네가 손을 대지 않았으면 그자는 살 수 있었을까? 그가 죽은 것이 꼭 자네의 실수 때문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네만, 결국 내 손에 의해 죽게 된 것은 사실이지. 의원으로서, 부끄러워할 일일세.”
“그러면 우리 모두가 떳떳하지 못하겠군.”
그건 발칸의 의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우리 주제에 자네에게 훈수를 두는 것만 같아 자제하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군. 자네가 살릴 수 없었다면 그 누구도 살릴 수 없었을 걸세.”
“모르는 소리 마! 내가 그 정도 안목도 없을 줄 아나? 그건 실수였어. 황실의 의원이라면 누구든 살릴 수 있을 정도로 그다지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도 아니었지.”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한 의원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이들 중 가장 최고령이자, 칼로스의 아버지와는 가장 오랫동안 보아 온 베테랑 의원이었다.
“언제까지나 그런 죄책감에 빠져서 한심하게 있을 셈인가? 자네의 아들이 자네를 부끄럽게 여길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칼로스는 자네를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
“…….”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그저 회피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 안타까운 사고였지. 자네의 말대로, 단지 자네의 불찰로 인해 벌어진 실수라고 해도, 자네가 그런 식으로 죗값을 치르는 걸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네. 오히려 자네가 복귀하여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
칼로스의 아버지는 그 사실에는 부정했다.
“의술이란 알면 알수록 복잡한 술기였네. 나 역시도 자네들처럼 생각한 적이 있어. 허나, 깊이 파고들다 보니 내가 가진 지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요, 평생을 갈고 닦아도 일정 수준 이상을 지닐 수 없지. 그건, 결국 내 어쭙잖은 의술로 인해 죽게 될 환자도 생기게 될 수 있다는 말이야. 꼭 실수가 아니더라도.”
그런데 그 사실까지도 의원들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 전하께서도 말씀하셨지. 불가피한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그 사고를 최대한 회피하는 방향으로 의술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한 의원이라고.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던 말일세.”
그건, 꽤 충격적인 말이었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가 의술을 펼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그가 가진 의술이 어느 정도인지 완전히 간파하지는 못했다. 헌데 자신이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깨달은 부분을, 3황자는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헌데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불가능하겠지. 지금 우리의 의술로는.”
의원들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3황자 전하라면 가능하시지.”
“……뭐라?”
“그분의 의술을 완전히 전수 받게 된다면 우리도 가능하게 될 거고 말이야.”
“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아무리 그 황자라는 작자가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아무리 동일해 보이는 증상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서로 다른 질환인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 경우에, 치료를 위해서 행했던 처치법을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었다. 그건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딜레마였다. 분명 그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 중에는 발칸으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하루라도 더 베이언 영지에 남아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어. 허나 돌아와야만 했지.”
칼로스의 아버지는, 저 의원들과 함께 지내왔던 세월이 있던지라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박식하지만 고지식하며, 자신들만이 옳다고 굳게 믿는 양반들이었다. 헌데 저 정도로 3황자에 대해 높이 평가하니 그조차도 3황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아마 우리가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 만약 자네가 그곳으로 갔다면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 거야.”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음번에 3황자 전하를 영접할 기회가 있다면 자네도 꼭 참석하기를 바라네. 분명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그에게도 다시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 * *
발칸의 의원들이 돌아간 후, 나는 현재 베이언에 남은 의원 희망생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백여 명 가까이 되었던 지원자의 수는 이제 고작 스무 명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능력, 혹은 의원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여 탈락을 시켜버린 후보생도 있었고, 지루한 수업을 견디다 못해 자진으로 나간 이도 있었다.
생각보다 그 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전혀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런 이들이 의원이 되었다면 달갑지 않은 상황이 펼쳐졌을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남게 된 스무 명가량은 확실히 이제는 의원이라고 자칭할 만한 이들이었다. 의원으로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이들이기에 후보생이라는 타이틀을 빼고, 의원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러면 이제 저희는 전하께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나같이 아쉬운 얼굴들이었다. 남은 이들은 모두가 학구열과 탐구심이 뛰어난 탓에, 계속해서 의술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물론 내 수업을 통해, 지금 그들이 지닌 의술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보 같은 소리.”
애써 일정 수준까지 가르쳐 놓았는데, 여기서 놓아주기엔 나도 아쉬웠다.
“일단, 발칸의 의원들이 돌아가고 치료소에 생긴 빈자리들을 그대들이 채우게 될 거야.”
그 말에도 딱히 두려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법 막중한 임무이긴 했지만, 그만큼 저들 또한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 있는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대들도 알고 있겠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주기적으로 모여서 원래 하던 것처럼 수업을 진행할 거야. 모르는 점이 있으면 물어봐도 되고.”
그 말에 의원들의 표정이 일제히 밝아졌다.
이렇게 되면 저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좋은 기회가 될 터. 스스로 치료를 진행하며 경험과 지식을 쌓고, 실전에서 생겼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내게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의원들을 치료소에 배치함으로써, 기존에 발칸의 의원들이 자리하고 있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휴우.”
그새 정이라도 든 것인지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었지만 멀리 떠나보낸 것도 아니었으니 아쉬워할 건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영지의 내실을 확실히 다지는 것 말이다.
* * *
훈련하는 기사들을 닦달해 보기도 하고, 주변의 영주들을 감시하기도 하다가. 부상 입은 이들을 직접 치료하기도 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을 때.
[‘운명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경사진 오르막길, 난관이 기다리는 미래가 제공됩니다.]예고도 없이 찾아온 운명의 권능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일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뒤바뀌며 나는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두구두구.
대지를 울리는 소리. 억센 바람의 감각. 수없이 늘어져 있는 병력들.
나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지금까지 3인칭으로 현장을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 입과 손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들에게 목이 떨어져 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대악마 루시퍼의 부활을 막을 것이다!”
“우와아아아!”
어?
그제야 나는 주변의 풍경이 꽤나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나의 차원 속 몽환적인 풍경. 드넓은 섬을 감싸고 있는 것은 푸른 빛의 바다였고, 익숙한 얼굴들이 한쪽에 서 있었다.
내 어머니를 비롯한, 이그네아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 어려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빠른 속도로 뜀박질을 했다. 입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긴장이 나를 에워쌌다.
“우리는 용맹한 베이언의 기사들이며, 우리를 보조하는 것은 힐데스하임 최고의 마법 가문인 이그네아다! 신께서 우리를 돌보시니,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베테랑 기사답게 챈슬러가 검을 뽑아들며 그들의 사기를 돋우었다.
그리고 때마침, 섬 주위의 바다에서 커다란 회오리가 요동을 쳤다.
이그네아 가문의 사람들은 일제히 마법을 사용하여 그 회오리를 막아내었다. 그러나 단순한 회오리가 아니었다.
회오리 속에서 구멍이 생기며, 악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발하는 흉흉한 기세에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고.
[위축된 이들에게 용기를 부여합니다.]미래의 나는 성력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다시 검을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악마와 인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