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6)
제126화
일반적인 악마를 상대하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벅찬 일이다. 웬만한 성기사 수 명이 달라붙어야 악마 하나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베이언의 이름으로!”
“성자께서, 힐데스하임께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악의 무리를 베어 넘겨라.”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어도, 정황상 멀지 않은 미래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고, 그럼에도 베이언의 기사들은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3황자 전하를 위하여!”
가장 용맹하게 뛰쳐나가는 바이에른 백작, 그의 기사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베이언의 기사들은 그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기세를 내보였다.
“으악!”
“끄아아아악!”
성기사의 검이 악마를 베었으나, 악마들은 쉬이 쓰러지지 않았다. 루시퍼의 정예 악마들답게 일반적인 악마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악마들이 가볍게 손을 내뻗으며 뿜어져 나온 마기는, 제아무리 강력한 기사라고 하더라도 한순간에 공황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미래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니 오히려 내가 맞이하게 될 미래라는 점에서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불가피한 미래, 대악마와 그의 대군단의 부활. 그에 대한 준비도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였지만,
“……흐읍.”
“……커허억.”
갑작스레 나타난 턱없는 양의 마기.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찢어질 것같은 통증이 느껴졌고, 숨 쉬는 것조차 누군가의 자비 하에서만 가능한 느낌이었다.
지금껏 내가 계속해서 불안에 잠겨 있던 이유, 깨어나서는 안 되지만 필연적으로 깨어날 것이 예고되었던 존재, 대악마 루시퍼였다.
「가소롭구나, 인간들이여.」
그의 존재는 검을 들고 싸울 용기마저 꺾어버릴 정도로 강렬했지만, 기사들은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고작이었다. 한 발자국도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신이시여!”
“부디 저희에게 맞서 싸울 용기를 주시옵소서.”
“악의 무리에 좌절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기사들에게 가장 부끄러운 것은, 그들에게 맞서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닌, 싸우기도 전에 꼬리를 말았다는 사실인 듯 보였다.
하지만 겉보기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루시퍼를 향해 달려 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챈슬러와, 바이에른,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트루드였다.
콰앙!
성력을 잔뜩 머금은 챈슬러의 번개 같은 일격을 루시퍼는 손도 대지 않고 막아내었다. 챈슬러의 일격은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검은 연기, 막대한 양의 마기조차 뚫지 못했다.
「벌레 같은 놈이.」
허나 그 일격은 루시퍼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다.
자세히 보니 챈슬러가 일격을 날린 부분의 마기는 다른 부분에 비해 확연히 옅어져 있었다. 아주 무의미한 공격은 아니었으나.
콰아앙.
루시퍼가 손을 휘둘러 마기를 쏘아냈고, 챈슬러는 그것을 검으로 막아냈음에도 저만치 나가떨어져 버렸다.
“챈슬러!”
또다시 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챈슬러를 향해 뛰어갔고, 그는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찮나?”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의 심장에서 회전하는 성력은 그에 반하는 기운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괜찮지 않은 듯합니다.”
“잠깐만 기다려!”
내 심장에 있는 고리가 회전하며 성력을 내뿜어 그를 치료하려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기는 내 성력조차 튕겨내며 챈슬러의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전하.”
챈슬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으나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 갔다간 제 정신이 잠식당해 어떤 짓을 행할지 모릅니다.”
챈슬러가 하는 말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니까 빠르게 치료해야지. 사제들부터 불러 모을 테니까 최대한 정신 부여잡고…….”
“전하.”
사제들을 호출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는 내 손목을 챈슬러가 붙잡았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전하의 밑에 있으면서는 진정한 성기사로 살아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제 검은 늘 올바른 일을 행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불경한 살육을 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챈슬러!”
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챈슬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 검이 올바른 길을 개척하길 바랍니다. 허나 제겐 마지막 일격을 휘두를 힘이 남아있지 않으니…… 전하께서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챈슬러는 내 손을 자신의 검 손잡이로 이동시켰다. 그게 무슨 의미인 줄은 알고 있었고,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차마 실행에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챈슬러.”
“성기사로서의 제 명예를 지킬수 있게 해 주십시오.”
챈슬러가 바라는 건 그런 것 따위가 아님을 나는 안다. 그가 오로지 명예를 중요시 한 인물이었다면 성황의 뜻을 거절하고 황궁 기사단의 단장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크으윽. 전하! 시간이 없습니다.”
그 순간에도 챈슬러는 마기에 빠른 속도로 감염되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돼서.”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하께서는 누구보다 찬란한 빛을 품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은 신께서 전하께 내리시는 시험이고, 저는 그 시험의 마땅한 과정일 뿐입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내 손이 저절로 움직여 챈슬러의 검을 손에 쥐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메스를 쥘 때와는 달리 손이 덜덜 떨렸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칼을 든 적은 있었어도, 죽이기 위해 검을 든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게 모두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콰악.
망설임 끝에, 내가 쥔 검이 그대로 낙하하며 마기로 뒤덮인 챈슬러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하….”
챈슬러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으나,
“……가, 감사합니다. 전하의 앞길에 늘 빛이 비추길…….”
그는 마지막 순간에 웃고 있었다. 오만 가지 감정이 가슴을 괴롭혔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휩싸여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끄아악!”
챈슬러와 마찬가지로, 루시퍼에게 공격을 당한 바이에른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수많은 성기사들도 루시퍼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잔혹한 학살을 펼치던 루시퍼가 갑작스레 멈춘 것은, 그의 앞에 서 있는 트루드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너였군. 나의 해방을 앞당겨 준 것이.」
앵거바딜. 트루드가 그 검의 주인이 된 순간 루시퍼의 부활은 확정되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루시퍼가 깨어난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대악마의 부활은 예정되어 있었다.
「인간의 주제에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우친 자로군.」
허나 루시퍼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듯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검을 쥐고 루시퍼를 마주하고 있는 트루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악마 루시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 여긴 스스로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만해!”
비명처럼 들리는 고함을 지른 트루드는 루시퍼를 당당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그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과연 그대의 정당한 주인이 누구인가. 모든 것을 알고도 관망하는 그대들의 신인가, 아니면 이 세계를 직접 통솔하는 나인가.」
트루드는 흔들리지 않고 앵거바딜을 쥔 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의 검은, 마기와 성력으로 뒤덮여 기묘한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악마의 힘이 워낙에 다루기 위험한 탓에 그녀에게 사용을 자제시켜 두었으나, 이 상황에서만큼은 모든 걸 꺼낼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쾅!
「우습군. 그 힘의 주인이 누구인가. 나다! 내 힘의 일부일 뿐인 그것이 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대악마 루시퍼의 일격에 얻어맞은 트루드 역시도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루시퍼가 확실하게 그녀의 숨을 끊어놓기 위해 후속타를 날리려 했지만.
파앙!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내가 성력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녀석에게는 고작 가벼운 공격 한 번일 뿐인데. 고리에 있던 모든 성력이 탕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호막이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저, 전하…….”
피를 흘리고 있는 트루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전하와 힐데스하임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으나…….”
“조용히 해. 너 없어도 괜찮으니까.”
미래의 내게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트루드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최대한 걱정을 덜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말로 제가 없어도 괜찮으십니까?”
어쩐지, 그녀의 눈빛이 더욱 슬픔에 잠겼다.
이게 아닌데.
“그럴 리가.”
그녀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나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으며, 누구보다 충직하게 나를 따르는 기사였다.
나를 위해 검을 드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당연한 사명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명분이 되었다는 것쯤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서약한 기사는 너뿐이다. 그리고 그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그 말에 트루드는 오히려 안심한 듯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남은 것 중 걱정스러운 감정이 더욱 커 보였다.
막을 수 없는 미래, 대악마에 의한 세계의 멸망.
이제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죽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평소 운명의 권능이 발동되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생생했던지라, 순간 환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으나.
운명의 권능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쓰러진 채로 눈물을 흘리는 트루드의 얼굴 역시 흐릿해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 때문에.”
사라져 가는 트루드의 마지막 마디가 들려오며 온전히 시야가 꺼졌다.
* * *
“……허억.”
현실로 돌아온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미래였다.
대악마 루시퍼의 부활을 막는 일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근시일 내에 벌어질 줄도 몰랐으며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할 줄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운명의 권능이 발동되었다는 것은, 내가 바꾸길 바라는 미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떠올려 보자면 발칸 제국에 손을 빌리고, 성국 전체에 알려 모두의 힘을 합치는 것 정도.
운명의 권능을 통해 본 미래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바이에른과 베이언 그리고 이그네아 세 개의 세력만이 가담하여 악마를 상대하고 있었다.
똑똑.
잠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전하. 안에 계십니까?”
트루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