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황실 정예 기사단. 단일 세력으로 보면 신성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3황자를 위해 검을 들게 되었다.
“우리는 칠흑 등대로 향할 것이다. 신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명이니, 단단히 마음을 먹고 꼭 이행해야만 한다.”
성황의 명에 따라 3황자의 곁에서 움직이게 된 그들이었지만, 여전히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칠흑 등대라니.”
“정말로 그곳에 다다를 수나 있을지.”
황궁의 최정예 사제와 기사들. 그리고 베이언의 기사들과 3황자까지.
그들을 실은 전함은 이미 북쪽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끝낸 것은 아니었다.
사실, 신탁이라는 것 덕분에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 말라.”
그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 때 그들의 단장이었으며, 부단장으로 격하되었다가, 결국 기사단에서 제명되어 버린 챈슬러였다.
“부단장.”
하지만 그 부단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고, 황궁의 성기사들은 챈슬러를 아직까지도 부단장이라 불렀다.
“나는 부단장이 아니다.”
하지만 챈슬러는 그것을 부정했다.
“왜 그러십니까. 일전까지는 부단장이라 부르는 것을 용납하셨으면서.”
“이제는 베이언 기사단의 단장이니까.”
“……아.”
“죄송합니다. 실례를 범했군요.”
확실히, 챈슬러에게 특별한 지위가 없을 때에는 뭐라 불러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새로운 기사단을 이끄는 챈슬러를 부단장이라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 수 있었다.
다만, 그 베이언 기사단의 수준이 황궁의 기사들에 비해 턱없이 낮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
챈슬러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기사들은 그런 말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다들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챈슬러는 베이언에 있기에 너무도 아쉬운 존재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챈슬러와 꽤나 깊은 사이였던 기사 한 명이 조용히 챈슬러에게 다가갔다.
“글쎄. 잘 지냈는지……. 일전의 삶과 비교하자면 분명 잘 지내고 있지. 황궁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말이야.”
“……그것 참 다행입니다.”
챈슬러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조금만 빨리 알아챘었더라면. 모든 게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허나 그 때의 일이 여전히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기에, 잘 지낸다고 할 수는 없겠군.”
“……어찌 모든 걸 혼자 안고 가셨습니까?”
챈슬러가 있던 시절엔, 황궁 기사단의 기사들이 꽤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강한 무력과 올곧은 신념을 바탕으로, 그들은 진정한 성기사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챈슬러가 부단장으로 좌천되었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무수한 소문이 돌았지만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기사들에게 진정한 자신들의 지도자는 챈슬러 뿐이었지만, 성황의 명에 따라 새로운 단장을 모실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성기사단에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황궁의 성기사단은 변절하였으며, 그들이 갖고 있던 올곧은 신념은 명령에 의해 버려지고 말았다. 그러다, 결국 챈슬러는 역모에 휩싸이며 기사단에서 쫓겨남과 동시에 투옥되었다.
‘어찌 챈슬러 경께서 그러셨단 말인가?’
‘부단장님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야. 뭔가 오해가 있으심이 분명하다.’
‘부단장께서는 어찌 입을 다물고만 계신단 말입니까? 무어라 말을 해 보십시오.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지나가는 새도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챈슬러가 그 일에 대해 함구했던 것은 일이 더욱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썼고, 그 주동자가 성황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일부 성기사들은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거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받칠 만큼 멍청한 놈들이었으니까. 자신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기사란, 홀로 적을 상대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허나 동료들과 함께 빛을 모아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도 하는 법이지요.”
“……그 얘기는 그만하지.”
챈슬러의 뜻은 확고했다. 그가 무어라 하든 챈슬러가 그 일에 대해 더 꺼내지는 않을 테니 떠들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챈슬러 경께서 사면받으신 것과, 3황자 전하를 모신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셨는데. 그것은 우연한 시기의 일치일 뿐입니까? 아니면 그 일이 3황자 전하와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까?”
챈슬러는 쉬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가 작게 한숨을 삼키는 것을 본 그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걸 직감했다.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으나, 성기사로서 3황자 전하를 모시게 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챈슬러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챈슬러 경.”
“…….”
“근래 들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경께서 부단장으로 좌천되셨을 때부터 들기 시작했으나 최근에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바래 오던 성기사의 모습인지. 나는 단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뻔했다. 아무리 챈슬러라고 하더라도, 성국에 대한 비난이 담긴 말을 들으면 불편할 테니 조심해야만 했다.
챈슬러는 그런 자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다행히 그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허면 제가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으며, 안타깝게도 역량의 한계가 정해져 있지. 나는 그 역량을 넘어서 투옥되었던 것이었으며.”
“그럼 이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단 말입니까?”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때를 말입니까.”
“성국에 어울리는 진정한 군주가 강림하실 때.”
“……예?”
“3황자 전하께서 성황이 되시는 날 모든 것이 뒤바뀔 것이다.”
가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챈슬러가 모시는 3황자가 보통 사람은 아닐 테지만, 그로서는 단지 차악을 선택했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지, 진심이십니까?”
챈슬러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 배가 강하게 흔들렸다.
“우현으로 틀어라!”
“소용돌이다! 전부 몸을 낮춰!”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강한 움직임. 파도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저만치서 거대한 크기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제들이 소용돌이를 막기 위해 성력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보았으나, 잠깐 시간을 벌 뿐 금세 깨어지고 말았다.
“저, 전하!”
챈슬러는 저도 모르게 3황자 쪽으로 다가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황궁 쪽 사람들 중 일부는 3황자를 원망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신탁을 들은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단지 자신의 위세를 위해 되도 않는 일을 벌인 것인지. 어째서 이런 위험한 일에 자신을 끌어들인 것인지.
하지만 챈슬러는 그 누구보다 3황자를 믿고 있었다. 오히려 이제는 신보다 3황자를 더 믿고있을지도 모르는 탓에.
“괜찮으십니까?!”
신이 신탁을 내려 놓고 3황자에게 너무 무모한 일을 시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허나 3황자의 얼굴은 지나치게 태연했다.
“괜찮아.”
이미 저런 얼굴을 몇 번 본 적 있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을 해결하려 할 때마다. 3황자는 저런 얼굴로 태연하게 기적을 불러 일으켰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참 신기하게도 3황자의 그 얼굴 덕분에 안심이 되고 있었다.
3황자가 손을 내뻗음과 동시에, 그가 고리를 회전시켜 성력을 내뿜고 있었으며.
일전에 몇 번 보인 적 있듯이, 기후를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몇 번 보아도 차마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
챈슬러조차도 놀라고 있는데, 그것을 처음 본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 * *
칠흑 등대에는 현존하는 흑마법사들 중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고위 흑마법을 구사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칠흑 등대에 위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륙으로 나가 있는 흑마법사들도 거의가 칠흑 등대 출신들이었으며, 사실 그들의 임무는 대륙에 있는 시체를 운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수준은 당연히 칠흑 등대에 상주하는 이들에 비해 낮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흑마법사들은 그 어떤 대륙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으며, 그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계속해서 존속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칠흑 등대라는 위치 덕분이었다.
대륙의 끝에 다다르면 어느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일반적인 상식.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흑마법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대륙은 둥글게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덕에 그들은 누구도 감히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대륙의 끝에 자리를 잡았으며, 안전 장치를 하나 더 심어두었다.
흑마법을 통한 기후 조절. 칠흑 등대에 다가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폭풍을 뚫어야만 한다. 운이 좋으면 난파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기후 조건은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하기엔 충분했다.
대륙의 끝이 다가오고 있고, 어느 순간 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그래서 칠흑 등대로 접근하는 이제껏 인간들은 없었으나.
“……가소로운 인간이군.”
힐데스하임에서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배를 몰고 다가오고 있었다.
“저 자가 누군지 빠르게 알아보도록.”
흑마법사들의 수장은 자신의 부하에게 명을 내렸고, 부하는 흑마법을 통해 저 일과 관련된 과거들을 엿보았다.
“힐데스하임의 3황자가 성국의 기사와 사제들을 이끌고 오고 있습니다.”
“명목은?”
“저들에게 저희를 잡는 데 있어 명목이야 특별한 것이 있겠습니까. 흑마법에 대한 말살이지요.”
“허면 어찌 저런 생각을 품게 되었단 말인가?”
멍청한 인간에게는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지는 오류 덕분에, 칠흑 등대로 다가오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는데.
“무식하면 용감한 것 때문인가. 아니면 진리를 깨달은 명석한 인간인가.”
“평범한 인간 따위가 진리를 깨우쳤겠습니까. 신에 대한 멍청한 믿음으로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는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힐데스하임의 인간들입니다. 설령 발칸의 인간이었다면 후자의 경우일 수도 있겠지요.”
맞는 말이었다. 허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어쨌거나 저들은 빠르게 북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고, 흑마법사들은 그걸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저들은 자신에게 상성인 사제와 성기사들이었으니까.
“마법진을 최대로 끌어올려라. 폭풍이 저들을 뒤삼켜 박살내고 나면, 인간들은 다시 접근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겠지.”
그래, 오히려 본보기가 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칠흑 등대로 접근한 인간들이 300년 전에 살던 이들이었던가. 흑마법을 통해 영생을 얻은 지라 시간 개념이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굉장히 오래 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앞으로 몇 대동안 다시 인간들은 칠흑 등대가 가진 무서움을 머릿속에 상기시키겠지.
흑마법사들은 근처의 바다에 생성시켜놓은 마법진을 최대로 발동시키며, 소용돌이를 더욱 크고 강하게 만들었다.
사제들이 보호막을 만들어 보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용돌이는 보호막을 깨고 빠르게 배를 향해 접근했다.
헌데.
콰창.
소용돌이가, 마치 유리 파편처럼 깨어지고 말았다.
“……뭐지?”
완전히 박살이 나며 주위에 몰려들었던 먹구름마저 사라지고 있었고, 환한 빛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저건!”
흑마법사들의 수장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몇백 년 전 보았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