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
제13화
-어떻게 아무런 악행이 없을 수 있냐는 말이야!
그걸 나한테 물으면 내가 알겠냐고.
……어쨌든 벌 받을 만큼 잘못한 일은 없다는 건가?
고통스럽고 말고를 떠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구태여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놈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1황자나 2황자처럼 개 같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똑같은 놈은 아닐까. 황족으로 태어나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위로 두 놈들과는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군. 인간 중에도 이토록 선한 이가 있었다니.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조금 간지러운데. 저렇게 말할 정도로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오는 길도 꽤 험난했군. 하필이면 스펙터를 만났어. 그런데 보자…… 지도력이 훌륭하고 위기 대처도 탁월했군. 게다가 고리 두 개를 그 정도로 발전시키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했을 거야.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무튼 잘 보이면 좋은 거였다. 그만큼 좋은 권능을 줄 가능성이 커지니까.
-사실 그에 걸맞은 권능을 찾기는 힘들군. 가장 높은 등급을 줘도 그대에겐 턱없이 모자랄 테니. 대신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권능 두 개를 주지.
요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 퍼져 있던 빛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빛은 그대로 나를 감싸더니 고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져 들어왔다.
「통찰의 권능이 깨어납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역설의 권능이 깨어납니다.」
「그대의 뜻을 상대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뜻에 신의 힘이 부여됩니다.」
권능 두 개. 이건 예상치도 못한 결과였다.
설명만 봤을 땐 어떤 능력인지 가늠이 잘 가지 않았으나 요정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결코 나쁜 건 아닌 듯 보였다.
나를 감싸던 빛이 사라지고 나자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성기사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바로 돌아가자. 얼른 가서 쉬고 싶네.”
지금은 마냥 좋아하기엔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빠르게 수도로 돌아가 조금 쉰 후 새로 얻은 권능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앞으로 무얼 할지도 계획할 생각이었다.
* * *
참회의 숲 시험에 대한 평가는 총 두 번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숲 안에 있는 요정에 의해 그간의 업적을 평가받고 권능을 부여받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황자들과 동행한 성기사들이 여정에 있어 누가 가장 탁월했는가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것. 그리고 성황이 1순위로 선정된 황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첫 번째야 신의 계약자가 직접 평가하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문제는 두 번째였다.
여정에 대한 업적을 평하는 주체가 인간이고, 명확한 기준조차 없다 보니 평가가 제각각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아무리 객관적인 평가를 요청한다고 한들, 성기사들의 입장에선 황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외가 쪽 세력이 강한 황자들이 다소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3황자라니…… 놀랍군.”
성기사들이 참회의 숲 시험에서 1순위로 결정한 것이 외가도 없는 3황자였다. 심지어 전대미문으로 만장일치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지?”
성기사들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이 함께한 황자의 편을 조금이나마 더 들어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1황자와 2황자를 따라나선 성기사들조차도 모두 3황자의 손을 들어줬다.
“3황자 전하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에 부실 정도였습니다. 이번에 3황자 전하를 보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힐데스하임에서는 나름 냉정하기로 소문 난 성기사들조차도 모두 3황자를 극찬했다.
물론 성황에게 이 상황이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3황자에게 밀리다니. 위로 두 녀석들은 쓸만한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군.”
아직까지도 성황에게는 성력이 황자를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었다. 비록 3황자의 성력을 직접 확인하기는 했으나 고리가 2개라는 치명적인 단점은 바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전통은 전통이지. 3황자를 불러오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성황으로서도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3황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수밖에.
* * *
수도로 돌아와 침대에 머리를 붙이자마자 말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창창한 성인의 몸도, 잠을 확 달아나게 하는 아메리카노도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나서야 머리가 확 개운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깨어나고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당연히 권능에 대해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통찰의 권능과 역설의 권능.
현자에게 물어봤지만 그조차도 난생처음 듣는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확인해 볼 방법은 있었다. 직접 사용해보는 것.
[데미안 힐데스하임] [소속 : 힐데스하임] [2성의 성력] [신의 부름을 받아 태어난 불운의 황자]거울을 보며 나를 향해 권능을 사용하자 꽤나 친절한 메시지가 떴다.
그런데 설명을 읽던 나는 불운의 황자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 돌팔이네.”
나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것은 물론이요, 가슴 속에 영겁의 성배를 품고 있어 앞으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누구보다 큰 힘이 될 현자가 내 편으로 있었다.
“이게 어떻게 불운한 거야. 럭키 가이지, 럭키 가이.”
거울에 대며 혼잣말을 중얼거려 봤지만 메시지는 그 문구를 결코 정정해 주지 않았다.
“……앞으로 불운해질 거라는 건가?”
괜히 불안감이 엄습했다.
“알 게 뭐야.”
운 따위는 믿지 않는 성격이다. 노력과 발상은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무튼 통찰의 권능에 대해선 대충 파악이 끝난 것 같은데, 역설의 권능은 어떻게 해도 사용이 되질 않았다. 차차 알려주거나, 차차 스스로 알게 되거나. 어차피 둘 중 하나일 거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대한 것들은 쭉 그래 왔으니까.
일단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이젠 성황에게 원하는 소원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할 때였다.
사실 나는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1황자나 2황자를 없애달라는 황당한 소원 따위는 이뤄줄 리 없었고, 고리를 늘려달라거나 하는 걸 들어줄 수도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말하라면 대충 떠오르는 게 있었다.
* * *
나는 곧바로 성 내의 지하 최하층, 저번에 발칸 제국의 기사를 풀어준 적 있었던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전하. 이들은 모두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입니다. 힘을 봉인해 두었다 한들 위험한 자들이니 만에 하나 잘못될 것이 염려되어…….”
옆에서 잔소리 해 대는 간수는 여전했다. 그를 밖으로 내쫓아 내고는 저번에 내 어머니에 대해 말을 했던 남자가 있던 옥방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엔 무슨 일이십니까.”
나를 먼저 알아보고 그때의 그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그 어둠을 향해 새로 얻은 권능을 사용했다.
[챈슬러] [소속 : 힐데스하임] [5성의 성기사] [격의 차이로 인해 정보가 제한됩니다.] [격의 차이로 인해 정보가 제한됩니다.] [성국에서 버림받은 불운의 천재 기사.] [격의 차이로 인해 정보가 제한됩니다.] [정도正道만을 걷는 불굴의 신념.]현 성황이 4성이었으며, 지금 신성 제국을 통틀어 5성이라고는 1황자만이 유일하다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보통은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무려 5성이었다니.
“그대도 참 불운하네.”
“……예?”
공교롭게도 나와 겹치는 단어가 딱 하나 있었다.
불운.
“스스로가 불운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습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며 저는 제 선택을 통해 이렇게 되었습니다. 후회한 적도, 그렇다고 불운하다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나랑 통하는 구석이 있네.”
정도를 걷는다는 문구 역시도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내 편이 되면 큰 힘이 될 사람이겠노라고.
“전에 어머니에 대해 말해준 건 고마운데 서쪽 섬이 어딘지 찾아갈 수가 있어야지. 직접 길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어?”
“……아시다시피 상황이 이래서. 저를 놀리러 오신 것이라면 죄송하지만 장단 맞춰 드릴 기분이 아닙니다.”
“놀리는 거 아닌데. 어쨌든 같이 갈 생각 있는 거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성기사 챈슬러는 분명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감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성황의 호출이 있었다. 지체 없이 그 길로 성황을 찾아갔다.
“챈슬러를 사면시켜 주십시오.”
내 요구를 들은 성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눈동자가 내 얼굴 이곳저곳을 훑었다.
그의 생각은 뻔했다.
“그가 누군지 알고 하는 말인가?”
그 말이 꼭 내게는, 네 어머니를 죽이라는 명령을 거절한 남자라는 걸 아느냐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태연하게 준비해 온 변명을 늘어놓았다.
“뛰어난 기사라 들었습니다. 첫째 형을 제외하면 현 성국에 있는 유일한 5성이라고.”
“허나 중범죄를 저지른 자다.”
“사람을 벤 검도 참된 주인을 만나면 마물만을 베는 검이 되기 마련입니다.”
“말은 청산유수군.”
“아시다시피 제게는 이렇다 할 세력이 없습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실력 있는 호위 기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황은 한동안 말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챈슬러와 어머니의 일이 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확고하군.”
“이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알겠다. 우선 내가 그를 만나 이야기 좀 나눈 뒤 네게 보내도록 하지. 궁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고 마침내 성황의 허락이 떨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