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이 힘은…….”
“신께서 이들을 보호하고 계셨던 것인가…….”
칠흑 등대의 도망자들이 안전지대라 칭한 곳은 신비한 힘이 머무르고 있었다. 사제들을 그 힘을 신성력이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신성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는 힘. 그럼에도 신성력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했고, 이것이 흑마법으로부터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케르반!”
이곳에서 몸을 감추고 있던 이들은 우리를 보고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케르반이라 불린 안내원이 얼른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힐데스하임에서 자신들을 구하러 온 구원자니 뭐니 하며 떠들어 대자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머무른 것인진 몰라도 꽤나 힘든 시간을 지내 왔을 것이다.
하나같이 제대로 먹지도 못한 듯 비쩍 마른 채로 몸 이곳저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을 묻힌 모습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이 받았을 정신적인 충격이 꽤나 컸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나는 사제들에게 이들을 진정시키도록 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지럽네.”
신성력과 비슷한 힘이 머무르는 이곳의 공기도 숨을 내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탁했으며, 가슴 속을 꽉 막힌 듯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을 맴돌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하나 같이 복수심과 괴로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성배의 능력 덕분에 저들을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 왔지만 그래도 축복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었다. 찝찝하게 넘어가고 나면 몇 날 며칠이고 악몽을 꾸는 내 빌어먹을 성격 탓이었다.
「우우우.」
「아파, 아파!」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영혼의 힘을 동료였던 이들을 보호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
-너희를 괴롭게 한 이들은 어떤 존재들이지?
역설의 권능을 통해 그들에게 내 목소리를 전달했다.
한순간.
수천, 수만 개의 영혼이 일제히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름이 돋을 만큼 기괴한 장면이었다.
「목소리가…… 들려?!」
「저기요. 저는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살려줘요. 제발요!」
……
-그만!
이랬다간 정말로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이 성력으로 영혼들을 저지시켰다.
-너희를 돕기 위해 온 힐데스하임의 3황자다. 비록 내가 늦어버린 탓에 너희들까지 구하지는 못했으나, 피해가 더욱 번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
「……그래야죠.」
「그 끔찍한 일을 다른 이들이 겪게 할 수는 없어요.」
「끄으아아악!」
언제부터 존재해 왔을지 모를 영혼들이 살아남은 이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동료애 때문인지, 아니면 흑마법사들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끔찍한 일이 재발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했던 것일지.
중요한 것은 이 비극의 뿌리를 뽑는 것이었다. 영혼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했을 테지.
「보여드릴게요.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고통스러울 거예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거든요, 저희도.」
영혼 하나가 환한 빛을 내며 서글픈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이내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그가 내 몸으로 흡수되며, 나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희미해진 시야 속으로 흐릿한 형상이 점차 뚜렷 지고 있었다.
“……하하하.”
“드디어 루시퍼께서 재림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
“으, 으으읍!”
새까만 로브를 뒤덮어 쓴 인간들. 로브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그들의 피부는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피부의 색은 인간으로 보기 힘들었으나 다른 특징들을 보건대 분명 저들은 인간이었다.
온통 피비린내가 풍기는 공간의 벽과 바닥에는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십 명의 인간들. 그들은 꽁꽁 묶인 채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나 오히려 흑마법사들은 그것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일 년이면 대악마께서 힘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게야.”
“너무 서두르지 마. 그랬다가 저번에도 온전한 힘을 깨우지 못하신 탓에 금세 소멸당하시지 않았는가.”
“삼백 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지. 그때는 인간들의 힘이 훨씬 강했고…… 특히나 힐데스하임의 신성력이 나날이 강해지던 탓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거야.”
“맞아. 조금 더 시간을 지체했더라면 루시퍼께서 모든 힘을 되찾으셨다고 한들…… 빌어먹을 성기사들의 전력은 더욱 강해졌겠지.”
삼백 년 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흑마법사들. 정말로 인간이면서도 영생을 얻은 것일까.
“그럼 시작해보자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잔혹한 살육을 벌이기 시작했고, 죄 없는 인간들이 희생당하기 시작했다.
“으으읍……!”
피가 사방으로 튀고, 인간들은 발작을 일으켰지만 흑마법사들은 더욱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나온 마기는 인간의 정기를 완전히 흡수해 버렸다. 더없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희생자 하나가 결국 축 늘어지며 형체가 완전히 뒤틀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 외에도, 칼로 인간을 난도질하고 몽둥이로 내려치며 최대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했다.
낄낄거리며 웃는 그들은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부류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원망과 분노. 복수심과 좌절.
인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흑마법사들에 의해 새까만 기운으로 변하며 그들에게 흡수되었다.
신성력이 지닌 힘의 원천은 많은 이들에게 받는 긍정적인 감정이었다. 신이 내린 원초적인 힘이라고들 하지만, 신성력은 많은 이들의 존경과 경의를 받을 때마다 한층 더 강해해지는 힘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와 반대로 흑마법이 지닌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단순히 생명체를 제물로 바쳐 마력으로 치환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흑마법 역시도 인간의 감정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성장시킬 수 있었다. 다만, 신성력에 영향을 주는 존경과 경의가 아닌 고통과 절망이 흑마법에게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흑마법사들이 저런 짓을 강행한 것이고.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이 차마 열리지 않았다. 수많은 영혼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본 나에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는 심심한 위로라도 바라고 있을 거고, 누군가는 알맞은 보답이나, 당한 만큼의 복수를 원하고 있을 텐데.
그런 이성적인 생각 따위는 뒤로 하고, 가슴 속으로 차오르는 이 먹먹한 감정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젠장.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저들에게는 와닿지 않겠지.
자식을 잃은 부모가 그랬고, 동생을 잃은 한 소년 가장이 그랬다. 아니, 그런 법이었다.
의사라는 놈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애초에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있었다느니,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라느니, 그런 핑계는 뒤로 하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변명처럼 들릴 것이기에.
‘너는 진짜 보살이다. 나라면 억울해서 한마디라도 하겠는데. 가끔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걸로 따지는 환자들한테, 대체 왜 고개를 숙이는 거야?’
동료 의사들이 그럴 때마다 웃어 넘겼다.
나라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때때론 능력이 부족한 나를 원망하기도 했고, 정말로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억울하기도 했고, 변명을 내뱉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환자와 유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었거든.’
정말 친한 동료 의사들에게만, 내가 아주 진탕 취했을 때 늘어놓는 비밀이었다.
‘집에 큰 불이 났었어. 내가 열 살 때였지.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통이 아직까지 생생한데…… 참 대단한 게 부모님이 나 하나 살려 보겠다고 몸으로 직접 막아주셨던 거야.’
지금 생각해도 참 놀라운 일이었다. 내게는 회상하기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정말로 고통이 극한에 달하다 보니……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내 자신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살기 위한 발버둥이, 부모님의 희생을 통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를 껴안는 부모님의 품 안을 더욱 비집고 들어갔었다. 진짜 못된 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니까 소방관들이 구하러 왔고, 다행히 나는 화상 좀 입는 걸로 그쳤는데…….’
부모님은 10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세상을 뜨셨다. 그 일이 내가 의사가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뭣도 모를 나이라 의사에 대한 원망만 들더라. 나는 꼭 전부 다 살릴 수 있는 의사가 되자고 다짐했었고.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아주 멍청한 생각이었던 거지.’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의사임에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입장을 더욱 더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원혼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손길을 전합니다.」
「성자의 위로에 원혼들이 깊은 감명에 빠집니다.」
별다른 일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 속의 고리가 회전하며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우우우우우.」
뒤이어 영혼들의 수많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성자시여. 저희에게 남은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칩니다.」
아까처럼 불협화음 같은 불길한 목소리가 아닌, 조화가 담긴 감미로운 음색.
어느새 영혼들의 색깔도 찬란한 흰색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들은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아악.
수많은 영혼들. 그들이 일제히 내 몸속으로 들어오며 고리를 더욱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결코 불쾌한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듯한 상쾌한 감정.
「신성력의 경지가 한 단계 성장합니다.」
굳이 그러한 문구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 몸에 생긴 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있었다.
나의 네 번째 고리는 다른 고리들과는 다르게 아주 작은 크기였다. 그래서일지 무슨 짓을 해 봐도 그것을 성장시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허나 영혼들이 내게 귀속된 후로, 네 번째 고리는 훨씬 비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탄탄하게 제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리가 성장한 것은 분명히 바라던 일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성장하는 것은 역시나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현자라면 내가 그들을 위로해 준 것이니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해 주었다고 할 테지만, 어쩐지 그들을 이용한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는 것뿐이지, 정말로 나는 그들을 이용한 것이 아니고,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내게 힘을 보탰을 것이라 믿는 게 내 최선이었다.
「새로운 권능이 발아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내게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