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3)
제133화
황궁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가장 놀란 것은 3황자의 능력이 생각보다도 더욱 뛰어났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3황자의 성력이 듣던 것보다도 더욱 뛰어나기는 했으나, 이미 3황자에 대해 여러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3황자의 능력에 대해서는 베일에 싸여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3황자의 성력은 놀라웠다.
바다를 가르거나 태양을 지게 하는 등, 기후를 조절하는 능력은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몇 되지 않는 성황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이었음에도 3황자는 바다에 들이닥친 태풍을 몰아내었다. 그것이 3황자의 신성력 덕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급속도로 날씨가 뒤바뀌었다는 것은 정말로 신이 3황자를 직접 돌보신다는 뜻.
하지만 이들을 더욱 놀라운 사실은 3황자의 당당한 태도였다.
칠흑 등대의 흑마법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목을 옥죄어 오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흑마법에 대한 위험성은 수도 없이 들어 왔으나, 사실 사제들 중에서도 실제로 흑마법을 마주해 본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힐데스하임이 워낙 흑마법에 대해 엄격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흑마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것을 그나마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과거부터 세뇌처럼 받아 온 교육 덕분이었다.
신성력은 흑마법에 상성이다. 신성력을 극도로 단련한 자들이라면 흑마법에 면역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상대해 보니 신성력은 흑마법에 대항하기 수월한 것은 맞았으나, 그에 대해 완전히 면역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 튀어 있는 혈흔과 살점들은, 흑마법사들이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이 사제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을 심판할 더욱 확실한 명분이 되어주고 있었으나.
덜덜, 다리가 저절로 떨려왔다.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일을 저질렀으니 분노가 차올라야 하는 것이 맞으나, 사제들을 장악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극한의 공포.
수십의 사제들이 만들어 낸 수호 마법으로 흑마법사들이 쏘아대는 구체를 막아내고 있으나, 언제 뚫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지 못하면 마왕이 부활한다. 코앞에 그려져 있는 거대한 마법진을 보면서 모두가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랬다간 정말 말 그대로 대재앙이 휘몰아칠 것이다. 성황은 늙어버렸고, 세 명의 황자는 너무 어리다. 그들을 제외하고서라도 힐데스하임의 전력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이곳에서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점차 약해져 가고 있는 수호 방벽 틈새로 흑마법의 기운이 미세하게나마 새어 나왔고,
“끄아아아악!”
일부 사제들은 그 조금의 기운에도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것이 다른 사제들의 마음도 더욱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 칠흑 등대에 도달했을 때 마주했던 환영 마법. 3황자가 사제들을 깨워주지 않았다면 정신이 무너져버렸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게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며 두려움이 더욱더 그들을 잠식하려던 찰나.
“동요하지 마!”
3황자가 외쳤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모두가 들을 수 있었고, 그 목소리에서는 알 수 없는 울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힐데스하임에서 사제들은 웬만한 고위 귀족들보다 더욱 높은 지위로 취급받고 있었지만, 황족은 예외였다. 성국의 황실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가히 우러러보기도 벅찰 정도로 높은 벽이 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고귀한 존재들은 마땅히 대우에 걸맞은 의무에 대해선 늘 뒷전이었다.
사제들에게는 솔선수범을 강요하면서,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정치나 펼칠 줄 알았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사제들은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위험한 발언이거니와, 그런 생각을 품는 것마저 불경한 일이라고 수도 없이 교육받아 왔다.
언제부턴가는 당연하다시피 여겨왔다.
“너희는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생각해라!”
그런데 3황자는 그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을 깨 부시고 있었다.
그는 가장 젊은 사제보다 열 살 가량 어리면서도,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다.
‘……그래.’
3황자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워낙 많았다. 이제 와서 헛소문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3황자에 대해 꾸준히 나오던 말이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셨다지.’
성숙이라. 단지 이걸 그렇게 표현하는 건 너무도 무례한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3황자가 보이는 위용이 대단했다.
그는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 많은 흑마법을 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내며 사제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황자께서 저리 직접 나서시는데.”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한참이나 어린 황자가 저리도 용맹하게 나서는데. 뒤에 숨어 벌벌 떠는 꼴이라니.
흑마법에 정신을 잃었던 이들이 다시금 마음을 부여잡았고, 겁에 질려있던 이들은 투지를 불태웠다.
“3황자 전하를 보조하라!”
“필시 힐데스하임께서 지켜보고 계실 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3황자 전하를 위하여!”
사제들은 고리를 회전시켰고, 성기사들은 검을 들어올렸다.
「악을 처단할 용기가 다시금 샘솟습니다.」
때마침 나타난 신탁은 그것을 가속시키는 데에 더욱 큰 역할을 했다. 신탁이 내린 거라면 정말로 신께서 지켜보고 계시고, 지금 이러한 거사가 올바른 방향이라 일러주신 것이리라.
고리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신성력이 고리를 뚫고 나올 것처럼 충만하게 차올랐다.
모두가 그것을 쥐어짜냈다.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한 곳에 모이며, 이제는 막기 급급한 것을 넘어 반격을 할 여력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사제들에 의해 모인 신성력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가항력적인 현상이었지만 사제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는커녕 반갑게만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 성력이 3황자에게 향하고 있는 까닭인 탓이 크리라.
마무리만큼은, 모두를 구원해 준 3황자가 해내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3황자가 손을 높게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는 빛나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고, 그것이 모두의 신성력을 흡수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저것은……?!”
빛나는 형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3황자의 성력을 측정하다가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성물, 영겁의 성배였다. 실체가 있는 물건은 아니었으나, 분명 저 형상은 영겁의 성배와 완전히 동일했다.
“저게 어째서?”
그것에 놀라고 있을 틈도 없이 또다시 기적이 펼쳐졌다.
성배를 통해 흡수된 사제들의 성력은, 다시금 그 성력을 뱉어내기 시작했고.
막대한 양의 성력이 천지를 뒤덮었다. 새하얀 빛이 사방에 펼쳐졌다.
장담컨대, 이것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황홀한 광경이었다. 성황 겔리두스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거룩한 혈투를 벌이는 중에도, 이 정도로 많은 성력이 오가지는 않았다.
“아아…….”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만 보았다. 그것은 사제들 뿐만 아니라 흑마법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신성력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장면. 그것을 바라보던 몇몇 흑마법사들은 그대로 소멸되었고.
“제, 젠장.”
너무 늦지 않게 정신을 차린 흑마법사들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아쉽게도 놓쳐 버렸지만, 대악마의 부활을 저지시켰다는 것과, 칠흑 등대를 점령했다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3황자에게서 진정한 힐데스하임의 차기 군주의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사실이었다.
* * *
이곳에서 흡수한 많은 영혼들이 힘이 되어 주었고, 황실에서 파견한 고위 사제들도 한 몫 했다. 그들의 힘이 아니었다면 성배가 있었다고 한들 이 정도로 많은 성력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성배의 힘을 그 정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성배 형상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보는 눈이 많았지만 그것까지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정도의 일을 해 냈으면, 아무리 성황의 눈엣가시인 내게 성배가 귀속되었다고 한들 딴지를 걸 수는 없을 거다. 힐데스하임의 입장에서는 평생 걱정거리나 다름 없는 칠흑 등대를 점령하였고, 대악마의 부활을 저지시킬 수 있었으니.
그나저나…….
아직까지 아까 보았던 신성력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내가 보고도 놀랄 만큼 경이로운 양이었다.
그 힘이라면 어떤 기적도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정말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권능을 통해 과거에 살았던 성웅을 불러내는 것까지도 실현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꼭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저런 사제들이 내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 언제나 저들의 힘을 한데 모을 수 없다는 것이.
그러나 반대로 그만큼 차오르는 기대가 있었다.
“내가 성황이 되면 그게 가능하다는 거잖아?”
신성 제국 힐데스하임의 주인, 성황의 자리에 오르고 난다면 사제들은 온전히 내 명을 따르는 내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
힐데스하임에 대해 어느 정도 착각한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부패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제들 역시 잘못된 사상에 사로잡혀 있을지언정, 옳은 일에 힘을 보태지 않는 멍청이들은 아니었다.
1황자나 2황자 같은 놈들이 저들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는 상상을 하자 더욱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당장엔 뒤처리가 더욱 중요했다.
흑마법사들이 남겨두고 간 대악마의 부활 마법진.
몇몇 흑마법사들은 소멸되었고 남은 이들은 도망을 쳐 버렸지만, 그럼에도 마법진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신성력을 통해 소멸시키려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마법진을 가만히 둘 수도 없었다. 언제 대악마가 깨어날 지도 모를 일이고, 언제 흑마법사들이 되돌아 와 또다시 허튼 수작을 부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직접 성황에게 부탁을 해 두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칠흑 등대를 토벌했다는 것이 사실이더냐?”
성황은 차마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믿기 힘든 것인지, 믿기 싫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제들이 동행했고, 모두가 보았습니다. 일부는 그 곳을 남아 지키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본 것이 무엇이더냐?”
성황은 어쩐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의 과거에 대해 일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우려가 어쩐지 그의 흑역사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걸 따질 수는 없는 일이었고.
“대악마 루시퍼의 부활. 그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성황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미간에 더욱 많은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