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4)
제134화
발칸 제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과의 화합. 그것이 내가 첫 번째로 요구한 사안이었다.
당연하게도 성황은 정치적 사정 따위를 들어가며 곤란하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직접 칠흑 등대로 가서 소환 마법진을 확인하고 나자 그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발칸 제국과의 관계는 네가 해결할 수 있다고?”
성황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는 당연히 발칸 제국이었을 것이다.
힐데스하임 소속 왕국이나 독립 왕국 같은 경우에는 병력을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겔리두스가 성황이 된 후부터 발칸 제국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으니까.
심지어 발칸은 힐데스하임 주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린 상태였으니 힐데스하임과 손을 잡을 이유는 더욱 없을 터.
일전에 서부 왕국 연합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잠시나마 동맹을 한 적이 있었으나, 그건 각자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했던 선택이니 이번 일과는 달랐다.
“아시다시피 발칸 제국의 황제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안정화되지 않았다 보니…… 곧바로 수락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새로운 황제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으니 아예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 역시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그는 지금 황제가 되었다고 한들 발칸 제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얻지는 못했을 거다. 안정화시키는 시기가 필요했다. 그 전의 황제를 직접 사살하고 얻은 자리인 만큼.
그렇지만 그런 사정을 생각해 주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건 힐데스하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간 악마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인간이 힘을 합쳤을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과의 화합까지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은 너무 먼 길이었다. 대부분의 종족들은 인간의 핍박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어서 찾아내기도 힘들었고, 개중에는 이미 멸망해 버린 종족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눈으로 확인한 종족이라면 오우거와 엘프가 있었다.
그중 엘프들은 베이언의 땅에서 신성력을 쐬며 점차 중화되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다크 엘프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었다.
“그럼 발칸 제국의 황제부터 만나 보거라. 칠흑 등대는 황실의 병력이 확실히 지키고 있을 테니.”
그렇게 후속 조치는 황실 쪽으로 미뤄두고 베이언으로 돌아왔다.
성황 역시도 루시퍼의 위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결코 가벼운 사안으로 넘기지 않을 거다. 최대한 대악마의 부활을 늦출 방법을 생각해 보겠지.
“트루드.”
그렇다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의 동태에 대해서는 느껴지는 게 없어?”
루시퍼와 연결이 되어 있는 트루드. 그녀가 처음 그 힘을 얻었을 때 대악마의 부활 시기가 정확히 나오긴 했었지만 이제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신의 예언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듯, 흑마법사들의 행동에 따라 그리고 칠흑 등대의 토벌에 따라 대악마의 부활 시기에 변동이 생겼을 거다.
“……언제 깨어날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만…… 사실 칠흑 등대에 방문하기 전부터는 그의 속삭임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칠흑 등대를 토벌한 뒤로는 다시 그의 힘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이처럼 트루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부활 시기를 어림할 수는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나는 내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 * *
발칸 제국에 서신을 보내두었다. 대악마의 부활에 대해 언급을 해 두었으며 인류가 맞이할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손을 잡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까지 확실하게 일러두었다.
대악마 루시퍼에 대한 것이라면 분명 발칸 제국의 역사서에도 남아 있을 터. 당장에 발칸 제국의 황제가 병력을 보내는 식의 적극적인 지원은 해 줄 여력이 없을지라도, 그는 그 나름대로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베이언에서 각자의 역할에 매진하고 있는 의원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황자 전하께서 보급하신 비급 덕분에 질병에 걸리는 이들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치료소는 더욱 바빠져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란다.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신성력에만 의존하던 일부 귀족들까지 의술의 효용을 인정하며 치료소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대악마의 부활이 가까워지면서 드물지만 마물들이 일반 마을에 출몰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환자들까지도 의원들이 감당해내고 있었다.
그 수에 비하면 의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쭙잖은 실력을 가진 이들을 의원으로 무턱대고 뽑을 수는 없었으니 내 나름대로 최대한의 의원을 마련한 것.
최소한의 기본은 갖춘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여전히 아쉬운 실력들이었고.
그래도 이제는 그들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줄 만한 권능을 얻었기에, 그것을 실험해 볼 참이었다.
「체득의 권능」
내가 가진 의학 지식과, 실전에서의 손기술. 얼마나 많은 것이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친 건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야.”
몇몇 의원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걸 꺼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서 사용하던 의술을 그대로 사용할만한 환경도 갖춰지지 않았고, 그런 것들을 이들에게 가르쳐 봐야 되도 않는 겉멋만 들 테니까.
하지만 의원의 수가 늘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 혼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중대한 수술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춘 보조 의원들이 붙여준다면 해낼 수 있다.
예컨대 심장 이식이라든지. 오히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현대에서의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에 더욱 자유로이 실행에 옮기게 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신성력이 가미된다면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도 가능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미지의 영역에 가까운 그곳. 생각만 해도 설렜지만 아직은 먼 미래이기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좋지 않았다.
“너희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거든. 모든 일엔 단계가 있는 법이니까. 이제 너희들은 다음 단계를 밟을 차례지만.”
누구보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은 다름 아닌 칼로스였다. 그는 항상 내 곁에 있었던 만큼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가진 의학 지식의 총량이나 그 출처에 대해 궁금할 텐데도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만큼 나를 믿기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모아둔 의원들을 상대로 「체득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체득의 권능을 통해 지정한 지식과 체감의 일부를 전달합니다.] [신성력의 경지가 부족하여 그 양이 절반으로 제한됩니다.] [받아들이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추가적인 제한이 걸립니다.]내가 가진 의학 지식의 일부. 그것만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제한이 걸렸다. 저들이 받아들인 현대 의학이 어느 정도인 지는 나로서 아직 가늠할 수 없었지만,
“……전하?! 이, 이것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신께서 전하께 내리신 축복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들은 멍한 눈으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털썩.
그런 와중에,
“칼로스!”
칼로스는 돌처럼 굳어 있더니 결국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혹여나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어 곧장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의학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었고, 성력으로 살핀 몸 상태도 정상이었지만 그는 반나절 동안이나 깨어나질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옆을 지키며 녀석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 * *
칼로스에게 3황자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힐데스하임 주신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3황자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어리석은 결정을 한 적이 없었으며, 그런 현명한 행동은 그가 가진 방대한 지식과 올바른 가치관에 의한 것이었다.
3황자는 그 지식을 베푸는 데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단지 그가 가진 의술을 누군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선진적이고 파격적일 뿐.
언젠가 칼로스가 준비가 된다면, 그 지식의 일부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기는 했다.
정작 3황자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체감을 권능으로 전달해 준다고 하였을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처음으로, 3황자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칼로스는 스스로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여겼다. 3황자가 그간 가르쳐 준 의학 지식을 실전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들, 그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늘 그렇듯, 따스한 눈으로 칼로스를 안심시키고 있을 뿐.
하지만 3황자가 가진 지식을 권능을 통해 전수 받았을 때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홍수처럼 몰려드는 그가 가진 의학 지식들. 정말로 신이 아니라면, 이런 것들을 알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차마 받아들이기가 두려울 정도로 창의적이면서도 놀라운 내용들이었다. 그것을 수용하는 머리가 달아오르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꼈고.
칼로스는 결국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땐 낯선 세계 속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하고 다니는 이질적인 느낌을 지닌 사람들. 이상하게 생긴 철제 구조물을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꽂힌 것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하?’
어째서 그를 보고 3황자가 떠올랐는지는 정말이지 의문이었다. 분명 생긴 것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데.
“정 교수님! 급한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보고를 받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베이언에 있는 치료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간인 듯 보였지만 환자의 수나 의원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결국 낯선 남자가 도착한 곳은 수술실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그곳에는 같은 복장을 한 의원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남자의 손놀림은 놀라웠다. 칼로스가 새로 받아들인 지식을 토대로, 그 이상을 실현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보조로 붙어 있는 의원들의 수준도 수술 과정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에 수술이 진행될 수 있었다.
꿈일 거다. 분명히 꿈이겠지.
칼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꿈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말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만약 베이언의 의원들의 수준이 저 정도까지 이른다면, 지금 꿈속에서 펼쳐지는 수술을 실현할 수 있을까.
3황자의 수준은 결코 저들에게 뒤지지는 않을 터. 하지만 3황자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칼로스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에게 새로운 동기가 부여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