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5)
제135화
다행히도 칼로스는 의식을 회복했고, 체득의 권능이 성공적으로 그에게 내 지식의 일부를 전달한 것을 확인했다. 다른 의원들도 전보다는 겸손해진 것이, 성과가 분명히 있는 듯했다.
원래 무엇이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에 있는 놈들이 가장 의기양양한 법이다.
특히나 의학처럼 방대한 양의 학문에 접한다면, 더욱 많은 것을 알수록 오히려 더욱 겸손해지기 마련이었다.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의 달라진 태도만으로도 충분히 큰 소득을 얻은 것이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더욱 노력할 테고, 더욱 신중해질 테니까.
의원들의 육성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단지 내 보조로 붙어 줄 이들을 찾기 때문이 아니었다.
의원과 사제의 가장 큰 차이. 후천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는 생각보다 더욱 컸다. 애초부터 귀족들보다도 더욱 높은 지위에서 태어난 사제들은 고상한 자존심과 줏대에 빠져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물론 그것보다도 더욱 큰 문제는 신성력의 수준이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나처럼 특별한 경우라면 발전해 나갈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다를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반면 의학의 경우에는 현대에서도 말 그대로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에 가까웠다. 매년 수천 개가 넘는 의학 논문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들에게 의학을 가르친 것도, 그런 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함도 있었다. 언젠가 이들이 내가 가진 정도에 근접하게 된다면, 나도 배울 만한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직까진 막연한 미래일 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막연한 미래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을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너희도 대악마의 부활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힐데스하임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설이었다.
이따금씩 세계에 찾아오는 가장 큰 위기. 대악마로 인해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빠질 때마다 힐데스하임의 사제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하며 세계를 수호했다고 알려져 왔다.
“저, 전하……?”
“설마 그런 신탁이 내려온 것은…….”
이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가는 될 일도 안 되기 마련.
“최악의 수까지 대비하자는 거야. 치료소에서 민간인을 살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 이상이다.”
첫째로는 거룩한 혈투에 대비하는 것.
1황자와 2황자의 세력이 내게로 많이 돌아서고 있는 추세이기는 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나보다 훨씬 더 큰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들 중 대다수는 실질적인 무력을 보유한 성기사와 사제들이었다.
그에 비해 내가 보유한 사제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전투가 장기전으로 이어졌을 시를 대비해서 치료를 해줄 만한 대체 인력이 필요했다. 바로 의원들이었다.
그리고 같은 이치로 대악마와의 전쟁도 단기간에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전해지는 바는 없었지만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언제 어떤 곳에 너희가 투입될지 몰라. 그러니까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둘 필요가 있지. 그에 대비해서 앞으로는 꾸준히 새로운 수업을 할 테니까. 주말에는 이쪽으로 오도록 해.”
의원들은 아직 풋내기였다. 치료소에서 경험을 쌓아 나가고는 있으나, 전쟁터의 일촉즉발의 상황 앞에서는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뽐내지도 못할 터.
그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를 시켜둘 요량이었다.
* * *
“어쩐지 마물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난다고 했더니…….”
“대악마의 부활 마법진이 발견되었다면, 분명 이번 세대 안에는 큰 위기가 불어닥치겠군요.”
황궁의 가신들이 저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근심에 쌓여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성황 겔리두스였다.
그는 가신들을 제쳐두고는 자신이 부른 손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복도를 쭉 걷는 동안 겔리두스는 상념에 잠겼다.
그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변했다는 걸.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그는 힐데스하임에서는 죄인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권력으로 찍어누르며 덮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속여도 신은 속일 수 없다. 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어쩔 수 없었단 말이다!’
성황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얻게 되는 부와 권력, 그리고 막대한 명성. 인간인 그로서도 분명히 탐이 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거룩한 혈투에서 성황은 느꼈다. 힐데스하임의 규율대로 착해 빠지게 행동하다가는 뒤통수를 맞기 마련이었다. 간악하되 현명하게, 그것이 겔리두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겔리두스는 성황이 되지 못하고 다른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다.
‘……신이시여. 제가 과연 옳았습니까.’
성황의 자리에 오르고도 분명히 자책감과 혼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성황이 되고 나서 찾아오는 달콤한 현실. 그것에 성황은 눈이 팔려 버렸다.
처음 한 번은 어려웠지만 그 뒤로는 쉬웠다. 다만, 성황에게 계속해서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있었다.
현자 파우스트.
분명 그가 아니었다면 겔리두스는 이미 죽었을 목숨이었다. 그래서 바른말을 하는 간신들을 모두 쳐 낸 뒤에도 파우스트를 남겨 두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켠이 계속해서 불편했다. 항상 옳은 말만을 하던 파우스트인데, 성황이 부정한 길을 걷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때 나를 말리지 않았는가?”
지금에 와서야, 성황은 현자에게 물었다. 파우스트는 과거와 달리 주름이 꽤나 늘어 있었다. 세월이 지나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쩐지 성황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만 보였다.
“……허허.”
현자는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대의 탓을 하는 건 아니다. 그대가 올바른 소리랍시고 충언을 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니. 단지 나는 그 이유가…….”
그렇게 말하던 성황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현자가 자신을 만류하지 않았던 이유. 그걸 이미 본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대는 늘 내가 아는 걸 모두 아는 사람이었지. 아마 내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테고.”
“…….”
현자는 이번에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긍정의 침묵이었다.
“일전에도 물었던 것 같은데. 그대가 3황자에게 붙어있는 이유. 그대는 3황자가 성황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때는 지금과는 상황이 백팔십도 달랐다. 3황자는 힐데스하임의 황자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현자조차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단지, 3황자가 성황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말을 했을 뿐. 성황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차마 답하지 못했다. 그로서도 아마 확신이 없었겠지. 3황자는 정말로 막막한 입장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몇 년 만에 3황자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힐데스하임의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몇몇 귀족들은 그에게 붙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제 생각은 여전히 같습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3황자 전하께서 군주가 되신다면 훌륭히 잘 해내실 분이라는 것.”
“이미 한 번 틀리지 않았는가?”
성황은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그대는 내게도 그런 말을 했지. 허나 지금의 힐데스하임을 보게. 이게 올바른 신성 제국의 모습인가?”
현자는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의미 없는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지.”
성황은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말년이 되니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군.”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성황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들 말이야. 아마 죽고 나서 신의 곁으로 간다면, 그분께서는 나를 심판하시겠지. 어쩌면 루시퍼의 부활 역시도 내게 내리는 마지막 시련이자 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대악마의 부활을 성공적으로 막아낸다면 성황의 죄가 경감될 거고, 그러지 못한다면 성황은 세계를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 가장 큰 벌을 받게 될 거다. 성황은 그것이 두려웠다.
“3황자. 대악마의 부활을 지연시킨 것도 그놈이었지.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면, 그놈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분명히 3황자 전하께서는 훌륭하신 분입니다. 꼭 성황 폐하의 소년기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현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성황은 어쩐지 그것이 영 불편했다.
“당시 성황 폐하께서는 걷잡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셨고, 그건 3황자 전하 역시 마찬가지이십니다.”
일순 현자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졌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힘들 것입니다. 대악마의 진정한 힘을 겪어 본 이들은 없을 테니. 하지만 황궁의 비고에 감춰진 역사서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현재의 전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현자 역시도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었지만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만 했다.
“그래도 제가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3황자 전하께선 늘 제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시지 않을까……. 참 저도 많이 늙었지요. 앉아서 기대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성황의 얼굴에도 따라서 그늘이 졌다. 성황이 파우스트에게 바랐던 건 분명히 막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자는 선의의 거짓말조차 내놓지 않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현자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군.”
살다 보니 참 모를 일이었다. 성황이 3황자에게 기대하는 꼴이라니.
“그놈이 무언가를 해낸다면…… 그게 신성력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막대한 양의 신성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성황 혹은 1황자가 더욱 잘 해낼 수 있을 테고,
“무력도 아니고 말이야.”
2황자를 비롯한 막대한 성기사들 앞에서 3황자의 무력은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대체 무어란 말인가?!”
겔리두스가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신성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테지요.”
신성력의 원천이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겔리두스를 아주 천천히지만 꾸준히 성장시켜주었던, 정의로운 마음가짐.
하지만 그건, 고리 몇 개의 격차를 메울 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3황자 그놈이 베이언으로 돌아가 한다는 것이 의술인지 뭔지를 연구하는 거라더군?”
성황이 사람을 보내 파악한 바였다. 악마의 부활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놈이 그런 짓이나 하다니. 한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파우스트 경. 그대가 보기에도 정말로, 의술이 인류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가?”
성황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