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6)
제136화
의술. 그것이 분명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의 하나라는 건 성황도 알고 있었다.
다만, 신성 제국의 절대적인 복종심을 끌어모으고, 발칸 제국과의 적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의술을 부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의술의 힘은 결코 신성력과 비할 수가 없었다. 발칸의 의술은, 신성력이 없기에 만들어 낸 인간의 비기일 뿐. 그것이 신의 힘과 비교 대상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믿기 힘든 소리들이 들려왔다. 3황자가 습득하고 전파하는 의술은 가히 신성력에 못지않은 기적과도 같은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힐데스하임 전역에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고는 있었으나, 1황자가 살리지 못한 병자를 3황자가 살려냈다는 것. 그리고 베이언 영지 내의 병자들의 수가 확연히 줄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놀라운 일이지만, 성황의 입장에선 결코 달갑지 않았다. 의술이 신성력의 우위에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며, 그런 헛소문이 퍼졌다가 힐데스하임에 대한 충성도가 바닥까지 떨어지게 될 거다.
“의술이 인류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가?”
그에 대한 현자의 대답은 역시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3황자는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그건 현자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적어도 성황이 보기에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3황자가 해야 할 것은 의술의 보급 따위가 아니었다.
현자를 돌려보낸 성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성배가 그놈에게 있었다라.”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긴 했었다.
황자라는 놈이 2성을 부여받은 것부터, 그날 성배가 힘을 잃은 것. 그리고 2성이라고 보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신성력.
‘칠흑 등대에서 분명 3황자 전하의 손에 성배의 형상이 보였습니다.’
얼마 전 그에 대한 해답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성배가 빛을 잃었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로 3황자가 신에게 버림받은 아이인 줄 알았다. 혹은 겔리두스 성황에게 내리는 신의 경고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3황자는 신이 남몰래 편애하고 있던 진정한 성황의 후계자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신께서는 두 개의 고리만을 갖고 태어나게 함으로써 3황자를 모두의 눈 밖에 나게 하셨다. 하지만. 그동안 3황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력을 모았고.
“신이시여. 무엇이 진정 당신의 뜻입니까?”
성황은 황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제가 당신의 뜻을 어기며 살아왔다고 한들, 당신께서 간택한 아이를 저버릴 정도는 아닙니다.”
이 세상은 신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신이 내린 신탁이나 예언들도 꼭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법이 없었다.
인간은 신의 뜻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세상이 신탁대로만 흘러갔으면 인간의 존재 의의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산증인이 버젓이 있었다. 성황 겔리두스. 만약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였다면 자신이 성황이 되지도 못했을 터.
신이 선택한 것이 본인이 아니라는 데 반발심으로, 성황이 된 후 더 방탕하게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당신께서 3황자를 택하셨다면…… 그놈이 올바른 길을 걷도록 돕는 것이 제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지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성황은 뜻을 확고히 했다.
3황자가 성황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은 없었다. 성황이 될 만한 재목이라면 본인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그렇다면 단지 성배의 일을 모른 척 덮어주고, 의술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걷게끔 방향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성황이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방법이 될 것이었다.
성황은 곧장 황실 소유의 사제들을 베이언으로 보냈다. 자신의 뜻을 담은 서신과 함께. 신이 성배까지 쥐여준 마당에, 그놈이 의술에 시간을 낭비하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 *
성황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보고는 코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본인이 궁지에 몰리니 이제 와서 챙겨주는 척하는 꼴도 참 같잖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웃긴 것은 나를 조종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의술을 포기하고 신성력에 매진하라느니, 신께서 나를 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느니.
그의 말대로 따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갈기갈기 편지를 찢어버렸지만, 무언가 걸리는 문구 하나가 계속해서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곧장 의원들을 대체할 황실의 사제들을 지원해 주겠다나 뭐라나.
“……어이가 없네.”
대체 그 양반한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버리기로 했으면 차라리 아예 가만히 내버려 두든지. 이제야 간섭한다고 하는 꼴이 나를 돕기는커녕 방해만 되고 있었다.
베이언에 사제들이 늘어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신성력은 수명을 당겨 쓰는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 당장 닥친 위험을 넘겨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의원들을 대체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의원들을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면. 당연히 나로선 극구 사양이었다.
“……전하.”
황실의 사제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의원들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서신의 내용이 어찌 또 그들의 귀에 들어간 것인지,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팍팍 묻어 있었다.
“이제 못 볼 사람처럼 왜 그래?”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폐하의 결정이시니 어찌하실 수 없으실 테지요. 전하께서 베푸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쓸모없는 삶을 살던 저희에게, 처음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뻤습니다.”
“허.”
그래.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쩌면 나를 생각해서 먼저 인사를 건네러 온 걸 수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 꺼내는 걸 주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아니었다.
“폐하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가?”
내 다소 수위 높은 질문에 의원들은 일제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안한데 베이언에서만큼은 내 생각대로 할 거야. 너희들을 이대로 보내줄 것 같아? 너희는 평생 사람 살리다가 과로로 일찍…… 아니다. 이건 아니지.”
농담 삼아 던졌다가 취소했다. 실제로 그렇게 과로한 놈이 나였으니까. 괜히 불길한 말은 삼가기로 하고.
“성황께서는 의술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뿐이야.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니까, 사제들로 대체하려 하시는 거지. 하지만 너희들은 알잖아?”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단지 침울한 얼굴들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혹여나 전하께서 저희를 위해 폐하의 명을 거슬렀다가 잘못되실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알아. 너희가 나를 생각해서 찾아와 준 거. 그래도 많이 서운하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의대 교수로 생활하면서, 꽤 괜찮은 실력과 머리, 그리고 참한 품성을 지닌 학생들을 만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런 놈들을 미리 알아보고는 잘 키워보려고 했으나, 결국 의사로서의 자질이 맞지 않아 자퇴를 하거나 다른 과로 가는 놈들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꼭 죄를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숙이곤 했었지. 교수로서 나는 정말로 엄격한 사람이었기에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인마.’
서운한 감정을 뒤로 하고,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교수가 아니기에, 인간적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었고. 그게 참 기쁘기도 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의원들. 이 놈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저들의 선택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른 게 아닌, 외부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학비가 부담이 많이 돼서요. 장학금을 타려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제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놈들에겐 예외였다.
극구 사양하는 놈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면서 나중에 의사가 된 뒤 돌려받았다.
만약 그대로 그만둔다면 얼마나 크게 후회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 서운한 건 너희들이 나를 못 믿고 있다는 거야.”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을 마주했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둬도 돼. 근데,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와.”
의원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갈팡질팡하고 있겠지.
정말로 내가 성황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울 테고.
그렇게 그들을 마주하고 있을 때.
“전하. 폐하께서 보내신 사제단이 도착했습니다.”
타이밍 죽이게 사제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을 이끄는 이들은 무려 대주교였다.
“전하. 간만입니다.”
대주교와는 구면이었다.
“폐하께 소식은 전해 들으셨을 테지요?”
그렇게 말한 대주교는 내 뒤쪽에 있는 의원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의원들은 사제들의 눈을 피해 죄인처럼 움츠러들어 있었다.
“의원들은 모두 돌려보내시지요. 베이언 내에서 발생하는 병자들은 저희 사제들이 치료하겠습니다. 빠른 내에 저들이 사용하던 치료소를 신전으로 재건하도록 하지요.”
대주교의 언행엔 거침이 없었다. 마치 내가 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일부러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대주교.”
“……예?”
“그대가 생각하기에도 의술이 신성력보다 한참 모자란 것 같아?”
“……말씀을 거두어 주시지요. 신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힘을, 그런 잡기와 비교하는 것은 모독입니다.”
“재밌네.”
정말로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전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든, 이것은 성황 폐하의 명령입니다. 제게 결정권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폐하의 뜻을 이행할 뿐.”
성황의 뜻. 정말 대단한 논리였다. 신성 제국에서는 차마 이길 수 없는 절대적인 논리.
그것에 대항한다면, 황자든 뭐든 역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역적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그런데 내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전하! 오, 온 마을의 농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곧장 밖으로 나가 확인해보니 성벽 아래로 셀 수도 없이 많이 몰려 있는 수의 사람들. 복장을 보니 농노들뿐만 아니라 일부 하위 귀족들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
“우리를 지금까지 살려주신 건 의원 나리들이오!”
“지금에서야 우리를 생각하는 척하지 마시오. 우리에겐 당신들이 필요 없단 말이오!”
농노들이 주축이 되어 봉기를 일으키고 있었고. 사제들은 당황한 얼굴을, 의원들은 곧 울 것 같이 감동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