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7)
제137화
성황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으나 예상 밖의 상황에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저희를 보살펴 주었던 것은 의원분들입니다!”
“저희에게 빛을 내려주셨던 것이 의원님들이란 말입니다. 부디 계속해서 저희 곁에 있게 해 주시옵소서.”
성황은 이미 의원을 사제로 대체할 거라 공표를 한 상황이었다. 그 소식을 접해 들은 베이언의 농노들이 봉기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럴 거라고는 차마 예상치 못했다. 큰 오산이었다. 의원들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그리고 힐데스하임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심에 대한 자만 때문이었다.
3황자나 의원을 탓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권력으로 찍어 누르기엔 저들의 규모가 너무 컸다. 억지로 억누른다면 소문이 힐데스하임 전역에 퍼지면서 오히려 황권이 더욱 위협이 가해 올 것이다.
이런 쪽으로는 워낙에 감각이 좋은 성황이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3, 3황자 전하. 저들을 거두어 주시지요.”
대주교가 당황한 얼굴로 3황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3황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무슨 힘으로? 자신들의 의지로 들고 일어난 농노들을 짓누를 만한 힘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땅한 명분이 없잖아.”
3황자의 말이 맞았다. 이건 3황자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그가 직접적으로 일으킨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황은 이대로 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의술에 대한 저들의 충성심은 생각보다 더욱 높았고, 이대로라면 신성 제국 전역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터.
그렇게 된다면 신성력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될 거고, 그건 황실의 권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베이언에 사제들을 두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의술 따위는 애초에 등장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 3황자에게 의술의 사용을 허락한 것부터가 문제였을까?
“……데미안.”
생각에 빠져 있던 성황은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과거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것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예.”
“우선은 의원들을 그대로 둔 채로 사제들과 함께 치료를 병행시키도록 하지.”
그것이 최선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의원들을 당장에 치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사제들의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애초에 힐데스하임과 신성력에 대한 절대 복종은, 신성력이 가진 놀라운 힘에서 비롯된 것. 성황이 보았던 의술이라면 신성력이 가진 효용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베이언 영지민들이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것을 잘 모르겠지만, 한 달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사제들이 지닌 신성력이 얼마나 놀라운 힘인지 깨닫는 것은.
“우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영지민들이 적당히 납득하는 것 같다 싶으면 의원들을 모두 해산시켜라.”
3황자가 의술에 열마나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고, 의원들의 육성에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께서는 네게 축복을 내리고 계시니. 네 역할에 본분을 다 할 생각을 하거라.”
3황자도 이미 느끼고 있을 터. 처음에는 신이 3황자를 버린 줄로만 알았으나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의술은 3황자가 신성력이 미천할 때 구제책으로 익혔던 잡기일 뿐이며, 이제 와서는 그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손에 얻었으니. 의술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면서.
그런데도 3황자는 미심쩍어 하고 있었다.
“제 본분은 무엇입니까?”
“……어찌 그리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게냐? 너는 힐데스하임의 황자다. 더욱 높은 경지의 신성력을 갈구하고, 성국의 주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역할이다.”
“아버지께선 사제들과 의원들을 함께 두면 영지민들의 민심이 바뀔 거라 생각하십니까?”
“……허.”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너무도 당연할 물음이었다. 3황자도 이제는 많은 양의 신성력을 지니게 되었으니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어째서 3황자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이 3성의 사제들이다. 4성의 사제들도 한둘 끼어 있지. 영지민들이 신성력의 효용을 몸으로 체감하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말한 성황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설마 사사로운 정을 말하는 것이냐?”
영지민들이 의원들에게 정을 가지고 있어서 신성력의 맛을 보더라도 계속 의원들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3황자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이 많은 놈이니 분명 그리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정이라는 것은 하등 쓸모가 없은 것이다.”
허나 그건 곱게 자란 황자의 좁은 사견일 뿐이다.
“기사들의 전우애는 전장의 위협에서 균열이 생기며, 친우간의 우정은 사소한 다툼으로도 깨어질 수 있다. 그만큼 가소로운 감정일 뿐이다.”
그리고 혹여나 3황자가 성황이 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그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전해주기로 했다.
“너 역시도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그게 언젠간 너에게 복병으로 남아 네 뒤를 찌를 수 있으니 말이다.”
“정이라.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만.”
“……뭐?”
“저는 의원들이 만들어 낸 변화 이상을 사제들이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일 뿐입니다.”
정말이지, 가당찮은 말이었다.
* * *
“허, 참.”
황궁으로 돌아온 성황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는 의원들이 만들어 낸 변화 이상을 사제들이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일 뿐입니다.’
그게 진심으로 한 소리라면 3황자가 미쳐 버려서 제대로 된 사리 판단을 못 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 분명했다.
‘신성 모독이다! 네가 황자라고 하더라도 방금의 발언은 쉬이 용서받을 수 없을 터. 사제들이 진리를 보여주고 난 후에 네가 한 말의 책임을 묻겠다.’
성황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것은, 정말로 신성 모독이라서가 아니었다.
어쩐지, 3황자의 확고하고 태연한 태도가 거슬렸을 뿐이다.
워낙에 말도 안 되는 행보를 보여줬던 놈이기에. 설마 이번에도 그 놈의 말이 들어맞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황궁으로 돌아온 성황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동안 칠흑 등대에서는 마물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탓에 병력을 추가적으로 보내면서, 왕국과의 동맹도 추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한 달이면 베이언 내에서 사제들의 위상이 충분히 뒤바뀌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베이언에서 활약을 하고 있었을 대주교가 성황에게 보고를 하러 황궁으로 되돌아왔다.
“어땠는가? 슬슬 의원들을 해산시켜도 영지민들의 반발은 없을 것 같은가? 아니면 아직은 조금 이른가?”
하지만 정작 대주교가 내놓은 말은 성황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 그것이 말입니다…….”
대주교가 이런 저런 수식어와 변명들을 섞어가며 돌려 말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영지민들은 사제보다 의원에게 치료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의원들의 손에서 치료가 끝이 나서 사제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도 않았다.
“……그걸 어찌 그대로 두고 보고 있었단 말인가? 대주교 자네가 힘을 써서라도 사제들의 위용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 분명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하기도 했으나 사제들이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의원들이 치료해 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사제들과 영지민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낳을 것이 분명하여…….”
그건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헌데 성황은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사제들이 치료하지 못하는 병환을 의술 따위로 치료한단 말인가.
“물론 의원들이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사제들이 치료한 적도 더러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영지민들의 기억에는 의술의 우위만 더욱 뚜렷이 각인되는 것 같아 보여서…….”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영지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기 위해서는 성력이 의술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했다.
“대주교. 그대가 보기엔 어땠는가.”
“예, 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의술의 잠재력이 성력에 못지않다는 것 아닌가? 애초에 베이언으로 파견된 사제들의 대부분이 3성이야.”
분명 톡톡히 제 역할을 해 낼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3성의 사제들. 그들이 의원들에게 밀렸거나, 혹은 비등했다고 한다면 신성력의 가치는 확연히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째서지?”
“분명히 의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과격하면서도 효과적인 술기였으나…… 신성력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신성력은 단순히 사람을 살리는 데 국한된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 분명 신성력은 단순히 치료를 목적으로 내려진 힘이 아니었다.
때로는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는 힘이었으나, 때로는 좌절한 이들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때로는 흑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신성력은 완벽에 가까운 위상을 지녀야만 한다.”
그것이 겔리두스가 신성 제국을 운영해 온 방식이었고, 황권이 하늘까지 치솟을 수 있는 이유였다.
만약 치료에 한정해서 의술이 신성력과 비등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 거라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강압적으로 의술을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3황자가 의술에 빠져 있는 것을 가만히 둘 수도 없었다. 그 놈은 분명히 신성력에 집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의술은 신성력에 결코 비할 수 없는 미천한 잡기입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의술은 단순히 외상적인 부분에 있어서만 치료가 가능하며, 치료 부위에 따라서도 대처가 달라질 만큼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허나 그만큼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탓에, 오히려 잘못 사용했다가는 의술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기술이었습니다.”
그 말이 성황의 머릿속에 꽂혔다.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위험한 기술.
“그래. 사람을 치료하는 데 칼을 사용한다고 했었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것이 시기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금세 바뀌어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은 베이언 영지 내에서만의 상식이지만, 언젠가 신성 제국 전역의 상식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전에 뿌리를 뽑아야겠지.”
정치.
그것은 겔리두스가 가장 잘하는 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