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39)
제139화
힐데스하임에서 본보기로 택한 곳은 플라타 왕국이었다. 독립 왕국 중에 나름 규모도 있으면서 무력도 쉽게 볼 수 없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생각했던 것처럼 플라타 왕국 한 곳만을 상대하게 되진 않을 수도 있었다.
서부에 위치한 왕국들이 힐데스하임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잡았듯, 플라타 왕국도 어떤 왕국과 연합을 할지 모를 일이니까.
근방의 다른 왕국들의 입장에서도 플라타 왕국의 다음 차례가 본인들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힘을 합칠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꽤나 높았다.
“대의에 거스르는 자들은 모두 꺾으면 그만이다.”
성황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국가도 무적이 될 수 없다. 상대하는 인원이 많아질수록 우리 쪽의 피해가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며, 그만큼 빠르고 적합한 치료가 중요해질 터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달갑지 않았다.
성황은 아예 노골적으로 의술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며, 이번 작전에서 사제들의 위용을 보여줌으로써 의원들의 무능함을 보여주려 할 것이었다.
의원들은 전장에서의 경험이 적은 탓에, 그리고 즉각적인 치료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불리한 만큼 분명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성황의 뜻을 따랐던 건 아니다.
“바짝 긴장하되, 너무 긴장하진 마.”
바보 같은 소리를 듣고 의원들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들의 긴장을 어느 정도 떨쳐 내기 위해 던진 농담이었지만 그다지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의원의 대부분이 그다지 신분이 높지 않은 자들이었으니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없겠지.
기천 명에 달하는 볼라벤 왕국의 병력들이 줄지어 서 있었으며. 선두에는 신성 제국의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와, 성황, 그리고 사제와 성기사들이 빛을 내며 서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그들이 뽐내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저희들이 따라가는 것이 민폐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럴 수도 있겠지.”
당연히 이들이 무언가를 해내기는커녕, 오히려 짐짝이 될 수 있었다.
“대신 경험을 쌓는 거잖아.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고.”
대학 병원의 인턴들도 대부분이 짐짝에 가까웠다. 더럽게 손은 많이 가면서, 환자를 처치하는 과정에 있어 인턴이 끼면 오히려 귀찮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인턴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나도 그런 짐짝이었고, 그 아무리 저명한 의사라고 할지라도 한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인턴이었을 뿐이니까.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과, 수도 없이 많은 돌발 상황을 맞이하면서.
경험을 쌓고, 지식을 쌓으며 원활한 대처를 몸으로 배우는 과정은 꼭 필요했다.
문제는 이번 일을 통해 성황이 의원들을 묻어버리려고 한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 대의에 어긋난 길을 걷는 자들을 심판할 것이다.”
성황의 말에 모든 병력이 소리를 질렀다. 가식적으로나마 외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성황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광신도가 따로 없네.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성황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플라타 왕국에 서신을 보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었지만, 저들은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에는 그 해결책이 전쟁이었다.
“또한 저들은 우리와 싸우는 것조차 겁을 먹고 성안으로 꽁꽁 숨어 버렸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플라타 왕국을 불태울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할 뿐이다.”
“와아아아아!”
성황이 말 위에 올라 고삐를 잡았다. 새하얀 갑주를 입은 신성 제국의 병력이 선두가 되어 앞으로 달려 나가고, 볼라벤 왕국의 병사들이 그 뒤를 따라 줄지어 달려갔다.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달리자, 저 멀리 커다란 성벽이 보였다. 성벽에는 플라타 왕국을 표시하는 새파란 문양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대기.”
성황이 손을 들어 말하고는 전령을 플라타 왕국의 성벽 안쪽으로 보냈다.
“계획은 원래대로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볼라벤 국왕의 질문에 성황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돌리면 받아주고, 여전히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숨통을 확실하게 끊는다.”
성황의 말에는 자비가 없었다.
“……헌데 저들이 성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전쟁은 턱없이 길어질 것이며, 진형 상으로도 불리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비겁한 놈들이라면 맞서 싸울 용기조차 없다는 뜻이겠지. 심판을 내리는 데 유리하든 불리하든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황 폐하의 뜻대로.”
그렇게 모두가 선 채로 저 멀리 보이는 플라타 왕국의 성벽만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수많은 병력이 서 있음에도 소름이 돋을 만큼 간결한 침묵이 일었다.
그러다 문득. 플라타 왕국의 성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손에 있는 커다란 무언가를 던져놓고는 도로 들어갔다.
“가서 확인해 보라.”
성황의 명에 병사 한 명이 달려가더니 그 무언가를 품에 안고는 허겁지겁 달려왔다. 멀리서 보기에도 당혹감이 가득 들어찬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까이 왔을 때 놀라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협상을 위해 들여보냈던 성황의 전령을 플라타 왕국에서는 난도질을 해 놓았다. 숨도 이미 확실히 끊어져 있어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이런 미친놈들!”
정의감이 넘치는 사제와 성기사 중 일부는 그 광경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신이시여……. 어찌 어린 양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셨나이까.”
성황은 몹시 분노한 듯 새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가 보건대, 성황이 분노한 건 가엾은 생명이 죽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감히 자신의 전령을 죽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보았는가! 플라타 왕국은 힐데스하임이 제시한 대의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감히 행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에, 힐데스하임은 마땅한 대처로서 플라타 왕국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와아아아아!”
“플라타 왕국을 무너뜨리자!”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저들이 성 밖으로 나와서 싸와 준다면야 순수한 무력 싸움이 될 테지만, 성안에서 수비만을 하는 입장인 만큼 뚫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보병과 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성벽에서 날아드는 각종 투척 무기들을 막아내었고, 궁병들은 성벽 쪽으로 화살을 날려 댔다.
마법사들은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수도 없이 오가는 양측의 공격이 꽤나 볼 만했지만 전투는 점점 지루하게만 흘러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의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성황 폐하! 메테오가 준비되었습니다.”
그 말에, 내 두 눈이 번뜩 뜨였다.
나 역시 마나의 고리를 만들어 두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진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더욱이 성국에서는 제대로 된 마법을 보고 배울 만한 기회조차 얻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마법은 내게 막연한 미지의 세계일 뿐이었다.
메테오.
설마 저 메테오가 내가 생각하는 메테오랑 같은 마법이라면, 성벽 정도는 가볍게 뚫을 만도 했다.
볼라벤 왕국의 고위 마법사 수십 명이 모여서 만들어 낸 메테오 마법진.
“발하라.”
성황의 명에, 마법사들이 마지막 술식을 완성시켰다.
이윽고 어마어마한 마법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내 가슴 속의 마나 고리가 그에 반응하고 엄청난 속도로 회전할 만큼.
하지만 어느 순간.
뚝.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모든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메테오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당황하는 듯한 마법사들의 반응을 보니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어떻게 된 것이지?”
“그, 그게……. 아무래도 플라타 놈들이 대비를 하고 이 공간에 마법 봉인 술식을 걸어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도 있나.”
성황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도 마법에 대해서만큼은 잘 모르는 듯했다.
“허면 어찌해야 하는가? 방법이 아예 없단 말인가?”
“술식을 해제할 수는 있으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 드릴 수 없습니다. 짧아도 일주일, 길면 한 달이 걸릴 수 있습니다.”
전투가 그렇게 길어진다면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보급 등의 문제로 훨씬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가능하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최선일 테니까.
“현자가 짬이 있어서 그런가. 바이브가 장난이 아니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현자에게 이미 전해 들었다. 그가 말한 그대로 상황이 흘러가고만 있었다.
“……예?”
내 혼잣말을 들은 사제가 내게 되물었다.
“너한테 한 말 아냐.”
고개를 저은 나는 미리 마나의 기운을 남겨두었던 곳에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두 시간 가량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져 가고 있을 때쯤, 대지가 강하게 흔들렸다.
“어어?”
“플라타 놈들이 또 무슨 짓을…….”
다른 이들은 그걸 플라타 왕국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흔들림이 다가오는 쪽으로 향했다.
“오, 오우거입니다.”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오우거와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면 플라타 놈들이 기회를 잡고 치고 나올지 모릅니다. 거리를 벌려 오우거부터 확실하게…….”
“그럴 필요 없다.”
그들을 말린 것은 나였다.
왜냐고?
오우거를 부른 것이 바로 나였으니까.
* * *
“그럴 필요 없다.”
3황자는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들을 불렀다. 우리를 도울 것이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우거란 인간에게 적대적인 종족이니까.
모두가 검을 내리지 않은 채로 경계하고 있을 때, 오우거들이 갑자기 저 멀리서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3황자를 향해 있었다.
“엥?”
“저, 전하.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니까.”
3황자가 한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오우거들이 3황자를 향해 충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우거들이 3황자에게 완전히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부름을 받고 왔다.”
3황자에게 감히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오우거에게 질책을 하지는 못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엄청난 위압감이 전해지는 터라.
하지만 정작 3황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저 멀리 성벽을 가리키며 오우거에게 물었다.
“저거. 무너뜨릴 수 있어?”
그러자 오우거가 해괴망측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웃는 것이 아닐까 싶은.
“쉽다. 너무나도 쉽다. 더 어려운 일은 없나?”
대체 무슨 상황인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