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1)
제141화
“우와아아아!”
신성 제국 소속의 병력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플라타 왕국은 근방의 다른 왕국의 병력 지원을 받은 터라 머릿수가 부족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기세부터 밀려 있었다.
절대 무너질 리 없었던 무적의 성채를 자랑하던 것이 플라타 왕국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을 제외하면 별 볼 일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플라타 왕국의 병사들은 수비에 능했던 것이지, 이런 전면전에 능했던 것이 아니니까.
“으, 으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수적인 격차는 빠르게 좁혀졌고, 적군은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플라타 왕국의 국왕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수비 대장이라는 놈이!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것이냐.”
지금에 와서는 회피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마, 맞서 싸워라. 힐데스하임의 힘은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허울일 뿐이다.”
분명 그랬다.
신성 제국의 신성력이라는 것은 인간을 치료하는 데나 사용할 수 있는 힘. 물론 그것만으로도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은 맞았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신성력을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신성력이 전투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도록 하는 것에 도움이 될지언정, 막상 전투력 자체를 증강하는 것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니까.
무술을 더욱 연마하거나, 마력을 갈고닦거나, 효과적인 전술을 펼칠 수 있도록 지혜를 쌓는 것. 그것이 신성력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더욱 강해지는 비결이라 사람들은 믿어 왔다.
신성 제국의 전력은 약해지고 있었으며, 발칸 제국과는 확연한 우위가 나뉘어 버린 것이 그렇게 생각한 원인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헌데 착각이었다.
“돌격하라!”
적국의 병사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했다.
힐데스하임 소속의 성기사들이 유별나게 강한 것도 아니었다. 볼라벤 왕국 병력 개개인이 플라타 왕국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게 대체…….”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혹여나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밀리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화악.
플라타 왕국의 병사들은, 일반 병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힘차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사실에 놀란 것은 플라타 왕국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것이…… 신의 축복인가.”
“신께서 우리에게 가호를 내리셨다!”
“우와아!”
정작 검을 휘두르고 있는 자신들조차도 놀란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은 이들이 그토록 우습게 보았던 신성력이었다.
병사들에게 새하얗게 어려 있는 신성력의 기운은 저들의 무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신성력이란 부상 당한 이를 치료하는 잡술일 뿐이다. 그 말은 이곳에서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후퇴하라!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할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라.”
지금으로서는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아니, 최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도망치려던 플라타 왕국의 국왕 앞에는, 신성 제국의 성황과 황자가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더없이 고귀한 기운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지.”
성황이 국왕을 향해 그리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반갑게 들렸던지. 국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독립된 왕국으로서, 그 어떤 제국에도 충성을 약속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신념이란 원래 상황에 맞게 바뀌는 법.
분명 신성 제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악습을 신의 뜻이랍시고 성행시키며는 위선자 무리들. 그래서 신성 제국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도 있었다.
“……대악마를 상대할 때 우리 쪽의 병력을 지원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까?”
힐데스하임이 내건 조건은 그랬었다. 사실 플라타 왕국 입장에서 크게 부담되는 조건은 아니었다.
대충 흉내만 내는 식으로 소수의 병력을 지원해 주면 그만이었고,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의를 위한 일인 것도 맞으니까.
이제라도 마음을 돌려 신성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는 꼴만은 피하기로 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은 병력을 가다듬고, 추가적으로 병사들을 소집하여 대악마의 침공에 대비하도록 하지요. 성황 폐하의 부름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성황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일은 일대로 벌여 놓고 이렇게 무마하려는 속셈이냐는 듯.
하지만 플라타 국왕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성황은 왕국에 처벌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간 신성 제국이 위선적인 모습으로 강조해 온 자신들의 대의명분 때문이었다.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모아야만 한다. 그것이 신성 제국이 처음부터 내건 대의였고, 처음에는 왕국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언정 그 뜻을 따르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는데 벌이란 명목으로 인간의 군사력을 깎아 먹는다면 분명 일각에서 비난이 나올 것이다.
신성 제국이 말하는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그대는 성국이 보낸 전령을 잔혹하게 죽였다. 그건 성국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라고 보아도 되겠지.”
“잘못된 판단으로 했던 실수입니다만. 이제라도 바로잡고자 합니다. 플라타는 멸망을 막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성황은 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자신이 꾸민 꾀에 자신이 빠져든 꼴이었다.
그렇게 국왕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성황의 옆에 줄곧 서 있던 미소년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성황보다도 더욱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영 못마땅한 모습이었다.
그러면 어쩔 텐가. 성황도 이렇다 할 해코지를 할 수가 없는데, 기껏해야 신성 제국의 귀족이나 황족쯤 되는 자가 무얼 할 수는 없을 거라 분명히 여기고 있었다.
* * *
나도 알고 있었다.
플라타 왕국의 국왕이 표면적으로나마 신성 제국의 뜻을 따르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애당초, 그들의 전력은 사실상 있으나 마나였다.
그럼에도 성황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저들이 출정하든 말든,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성채 안으로 들여보냈던 전령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전령이 영혼이 되어 남긴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영 불편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표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데. 부검을 해 볼 필요도 없이, 겉으로 보이는 외상만으로도 심각한 고문과 가혹 행위가 이어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체득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가엾은 영혼이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고스란히 심장에 각인됩니다.」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윽.’
숨통을 틀어막고, 급소를 쇠붙이로 난도질당하는 고통.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손끝과 발끝이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감각들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참지 못하고 권능의 발동을 중지시켰다. 이게 전령이 받았던 고통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경악케 했다.
오지랖 때문일까. 새삼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의 고통에,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공감하고, 왜 이렇게까지 이해하려 드는가.
그 오지랖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건 단순히 내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내 귓가를 간질여 대는 영혼들의 목소리.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나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들고, 그들을 더욱 가엾게 여기게 하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플라타 왕국의 국왕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자리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원혼들이 국왕에 의해 고통을 받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까지 깨닫게 되었다.
어쩐지 영 불쾌하고 추잡한 느낌이 뿜어져 나오더라니. 촉이라는 게 참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건가 보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내 목을 통해 나간 목소리는 나도 놀랄 정도로 날카로웠다.
“죽는 것이 두렵소?”
나를 바라보는 플라타 국왕의 눈알이 이리저리 열심히 굴러갔다.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하더니, 성공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는 몰라도 제 나름대로의 대답을 내놓았다.
“왜 아니겠습니까만은. 저보다는, 대악마를 막지 못하면 죽게 될 수많은 목숨들이 더욱 걱정될 뿐입니다.”
헛웃음이 튀어 나갔다. 그 웃음을 긍정적인 뜻으로 파악한 것인지 국왕이 신이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실은 의심했었습니다. 정말로 악마가 부활하는 것은 맞는지. 신성 제국이 요구하는 바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닐지.”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헌데, 흉폭하고 미천하기 그지없는 오우거까지 성국에 가담하더군요. 이것이 어찌 신의 뜻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앞으론 힐데스하임의 뜻을 무조건 따를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확고하게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계기라고 말하는 것 치고는 피해가 크군.”
필요 없는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목소리가 내 주변에서 계속해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이지요. 희생당한 이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나, ‘대의’를 위한 희생은 값진 법이지요. 이제야 저희는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으니.”
그럴싸하지도 않은 개소리였다.
“허면…….”
입술을 꾸욱 씹었다. 당장에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는 중이었다.
혹시나 성황이 국왕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이도 그러지는 않았다.
이놈은 아직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냥 편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놈 주변에 맴도는 수많은 영혼들의 복수는 누가 한단 말인가. 그들이 가진 원한이 내게로 향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찝찝한 일은 극구 사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의 복수를 해주기로 했다.
「체득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수많은 원혼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그 시작점이었던 자에게로 되돌아갑니다.」
그들이 받았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꺼어억.”
절반 정도는 성공한 듯 보였다.
플라타 왕국의 국왕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형편없는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