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142)
제142화
플라타 왕국의 국왕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보면서, 투항한 이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국왕을 저렇게 만든 것이 나라는 걸 눈치챈 사제와 성기사들은 나를 말리려 했지만, 성황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시켰다.
그들은 성황에게 무슨 말을 고하려고 입을 달싹거리다가 결국엔 한숨만 작게 내뱉고 있었다.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보지 않아도 뻔했다. 내게도 귀가 있고, 들려오는 말들이 있었다.
내가 가진 의술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이후부터는, 아무리 내게 특별한 신성력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사제들은 아직 나를 좋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이 아는 신성력은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는 힘일 뿐이니, 지금 이건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의술의 효과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테니까.
또한 내가 살던 세상이나 이 세상이나 불가피하게 생명을 죽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단숨에 숨통을 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로 여겨지고 있었으니 지금 고통받는 플라타 국왕의 모습이 더욱 보기에 좋지는 않을 것이다.
“……전하. 그를 벌하는 것은 신성 제국의 율법에 따라 진행될 것입니다. 혹여나 왕국의 국왕이 사망했다가는…….”
결국 대주교가 나섰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신성 제국의 윤리에 어긋난다느니, 정치적인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느니.
나는 손을 저어 대주교에게 듣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대주교는 나를 가만히 두는 성황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다, 결국 포기했다.
“크억, 사, 살려주…….”
플라타 왕국의 국왕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숨은 붙어 있었다.
“그쯤 해라.”
성황이 나지막이 말했다.
“따라오거라.”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플라타의 국왕을 일별하곤 성황의 뒤를 따라갔다.
성황은 아무도 없는 접견실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엿보이지 않는 희미한 눈동자였다.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아느냐?”
“그가 한 짓을 되돌려 주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것은 뭐지? 성배의 권능이 그런 데나 사용하라고 주어진 줄 아느냐?”
“제가 얻는 것이 없을지언정, 그에게 희생되었던 이들은 위로를 얻었지요.”
“부질없는 짓이다.”
성황은 고개를 저었다.
“허면.”
그런데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어째서 가만히 놔두셨습니까?”
“……뭐?”
“그리 못마땅하셨으면 원하시는 대로 하셨으면 될 일 아닙니까?”
그게 성황의 방식이었다. 신성 제국 내에서는 그가 원하는 일만 벌어져야 한다. 그게 아마도 신성 제국이 이 모양이 된 데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을 테지.
“이번 일을 빌미로 삼아 제게 벌이라도 내리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가장 타당한 이유인 듯했지만, 아마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 * *
성황은 자신의 막내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렬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로, 좋게 말하면 떳떳하게, 나쁘게 말하면 시건방지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해 대고 있었다.
사실 조금은 의외였다.
성황은 원래도 3황자에게 관심이 없던지라 그를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가 어떻게 자랐는지만 전해 들었을 뿐.
착하고 인자하지만, 마치 갈대와도 같은 유약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했던가.
애초에 신성력도 부족했지만, 그런 말랑한 성격 탓에 결코 성황이 될 수 없을 거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확신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유약한 성격이란 말인가.
자신의 앞에서 할 말을 다 하는 3황자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벌이라.”
성황이 3황자를 말리지 않았던 이유는 복합적이었지만, 가장 주된 것을 꼽자면 묘한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벌을 받을 만한 일인지, 아닌지는 네게 들어봐야겠지. 너도 생각이 있었을 테니.”
현자가 칭송할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총기 하나는 타고난 놈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이성적이라고도 했고. 그런 놈이 감정적인 이유로 국왕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럼 네가 황자라고 하더라도 가벼이 넘어갈 수는 없겠지.”
대악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왕국 하나하나의 전력이 아쉬운 시점이었다. 3황자가 저질렀던 일에 대한 반발심으로 다른 왕국들이 더욱 더 성국의 뜻에 반기를 들게 된다면 안 될 일이었다.
그건 분명히 3황자에게 벌을 내리기에 좋은 명분이었다.
무엇을 벌로 내릴지까지 성황은 이미 생각을 마쳐 두었다.
“네가 저질렀던 일은 신성력이 아닌 의술에 의한 것이라 확실히 못 박아야 할 것이다.”
이미 사제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3황자는 의술을 포기하겠다 선언하면 민심은 분명이 되돌아올 터.
그게 성황이 바라는 바였다. 지금 3황자는 의술 따위에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신성력의 경지를 더욱 끌어올리고, 성배의 감춰진 권능들까지 깨워 낼 필요가 있었다.
“의술이야말로 온전히 사람을 살리는 데 치중한 술기입니다. 국왕을 고문한 기술이 어찌 의술이 된단 말입니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너로서도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
3황자는 말이 없었다. 예상 외로 다른 꿍꿍이는 없는 듯했다.
“모두 이해한 줄로 알겠다.”
성황은 그렇게 끝난 것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플라타 국왕에게 가했던 행위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 겁니다.”
“……뭐?”
“그는 속죄했을 것이며,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았을지언정 같은 악행을 되풀이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에게는 더없는 두려움이었을 테니.”
“그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이냐?”
“어찌 중요하지 않습니까. 악한 이를 뉘우치게 하는 것이 신성 제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 아닙니까?”
맞는 말이었다. 분명 대외적으로는 그랬지. 하지만 성황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지금은 더욱 중요한 거사를 앞두고 있다. 비교적 사소한 문제는 제쳐두어야만 하지.”
“그럼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다른 왕국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왜 아니겠느냐.”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로 인해 틀어진 것은 아닐 테지요.”
“뭐라?”
“애초에 신성 제국의 뜻에 따르지 않던 왕국들이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은 무력이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성황으로서는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던 왕국들을 회유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본보기로 왕국 몇 개만 정리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숙이고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신성 제국의 힘을 보았고, 플라타 왕국의 국왕이 받은 고통도 전해 듣게 되겠지요. 무력으로 굴복당할 자들이라면 오히려 더욱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겁니다.”
“허면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애초에 성국에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던 자들이겠지요. 저로 인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성황도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3황자에게 압박을 가해 그가 의술을 포기하도록 만들 셈이었다. 그런데 이 맹랑한 녀석을 말로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왕국들에 서신을 보내십시오.”
“뭐라고 말이냐.”
“지금이라도 뉘우치는 자들은 얼마든 포용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플라타의 국왕과 같이 신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럴싸해 보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확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은 3황자를 몰아붙일 만한 계책이 떨어지고 나니, 성황은 3황자를 돌려보내고 그 뜻대로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다른 왕국들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 *
서신에 대한 회신을 받아 본 성황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과 한 달 전 받아보았던 회신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으니까. 같은 놈들이 보낸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손해진 태도가 필체에 묻어 있었다. 대다수의 왕국들이 신성 제국과 뜻을 함께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독립 왕국들과 신성 제국을 가로막고 있던 견고한 성벽, 플라타가 무너져 버렸으니 그들로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의사는 확실하게 신성 제국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애써 돌려 표현하고 있었지만 그들로서도 눈치를 봐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이 은연중에 드러나 있었다.
그게 누군지는 성황도 머리가 있으니 알고 있었다.
왕국임에도 왕국의 범주를 벗어난 강함을 지닌 강대국. 서부의 중앙에 자리 잡은 젠스위트 왕국이 바로 그것이었다.
성황은 당연히 젠스위트 왕국에도 서신을 넣었고, 가장 마지막에 그들의 회신을 받아볼 수 있었다.
「내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었고, 가장 추악한 인간인 성황이여.」
첫 줄을 본 순간 성황은 서신을 찢어버릴 뻔했다.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당장에라도 젠스위트 왕국을 짓밟아 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대악마의 부활이 언제인지도 모를 시점에서, 전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성황은 서신의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갔다.
젠스위트 왕국의 국왕은 자신의 뜻을 확고히 표현하고 있었다.
신성 제국에 고개를 숙이느니, 차라리 악마에게 충성을 바치겠다. 과격하게 정리하면 딱 이러한 내용이었다.
젠스위트 왕국이 그토록 신성 제국에 반기를 드는 이유는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황은 그 사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 버렸다. 신성 제국의 오점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그대는 내 원수이기 전에 친우였으며, 그대를 원망하고 있으나 그리워하고 있소. 그대 속에 따스한 힘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으로 갈수록 분노가 묻어 있던 필체는 점점 더 유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마지막 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의 슬픔은 가히 심장을 칼로 베는 듯했으나, 아이를 얻으면서 상처받은 심장이 다시금 치유되어감을 느꼈소. 그러나 내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제는 신께서 하나뿐인 아이마저 데려가려 하오.」
그러한 내용을 적은 이유는 뻔했다.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달라는 것. 애써 담담한 척 청하고 있었으나, 힐데스하임만이 가능한 일이기에 속은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대의 실수를 그대의 손으로 만회할 기회이자, 젠스위트가 힐데스하임과 유착 관계를 갖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욕이란 욕은 다 적어 놓고는 마지막은 부탁으로 끝내다니. 그것도 부탁하는 태도가 영 글러먹었다.
하지만 분명히, 젠스위트와의 관계를 다잡을 필요는 있었다.
성황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이것은 함정일 수도 있었다.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젠스위트의 국왕을 다시금 이런 문제로 만나 볼 자신도 없었다. 성황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분명하니.
고민하던 성황은 돌아가 휴식을 취하던 3황자를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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